나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다. 가르치는 일과 기르는 일은 서로 다르면서도 깊이 닮아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늘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산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성적을 올려 주는 ‘능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를 만들고, 해설을 외우듯 반복했고, 기출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눈빛은 점점 흐려졌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수학은 외워야 하는 건가요?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은 내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쳤던가? 아니면 그저 ‘잘 외우는 기술자’로 만들고 있었던 건가? 그 순간, 내 수업이 성적만을 위한 지식 공급이 아닌, 아이의 삶에 의미 있는 무언가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나의 ‘부모 됨’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것?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바랐던 건, “이 아이가 자기 삶을 사랑하면서 살기를,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기를.” 그것이 내가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후 나의 가정과 교실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
내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아깝다 학원비』를 처음 읽은 건, 첫째 아이가 태어난 해였다. 밤중 수유를 마치고 겨우 잠이 든 아이 옆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그 순간, 내 삶의 축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책의 핵심은 단순했다.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말이 내게는 세상의 구조를 부정하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방치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학교를 믿어도 된다.’, ‘아이를 믿어도 된다.’, ‘불안보다 믿음이 앞서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특히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찔렀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교육은 부모의 따뜻한 대화와 믿음이다.” 나는 그날, 책을 덮고 조용히 아기를 안았다. 그 작은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사교육 없는 길을 걸어보겠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게 어떤 사교육도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학원 안 보내기’가 아닌, 아이의 삶 전체를 둘러싼 환경과 나의 관점을 바꾸는 여정이 되었다. |
불안이 작아진 그 자리에
사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영어 학원 다닌다던데?”,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코딩을 가르친대.”, “선행학습 안 하면 학교에서 너무 힘들어해.” 이런 말들이 내 귀를 자꾸만 흔들었다. 더 무서운 건, 이 말들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부모’라는 점이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치 의무처럼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었고, 그 선택이 ‘옳은 길’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 불안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불안의 정체는, ‘내 아이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하지만 나는 교사로서 수많은 학생들을 보아 왔다. 선행학습을 많이 했다고 해서 반드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교육을 오래 받았다고 해서 사고력이 깊어지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사교육은 문제를 푸는 속도를 높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를 이해하고 삶과 연결 짓는 힘을 주지는 못한다. 진짜 학습은, ‘자기가 배운 것을 자기 삶 안에서 써먹는 능력’이다. 나는 다시 다짐했다. 불안에 흔들릴 시간에, 아이의 오늘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고. 문제집 한 권 더 푸는 것보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보자고. 그러자 신기하게도, 불안은 조금씩 작아졌고, 그 자리에 ‘아이를 향한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
한글을 모른 채 초등학교 입학했더니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는 “한글 떼었냐”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내가 선택한 유치원은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의 정서, 사회성, 놀이 중심의 유치원. 당연히 교육과정에도 ‘학습’이라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뒤처지지 않겠냐”는 걱정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불안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아깝다 학원비』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바로 ‘속도의 존중’이었다. 모든 아이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고, 그 리듬을 존중해 줘야 아이는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자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한글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입학 첫날, 아이는 자기 이름을 읽지 못했고, 알림장조차 못 쓰는 상황에 부딪혔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써 준 이름표도 이해하지 못했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도 불편함을 느꼈다. 그 순간, ‘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에게 조금 더 눈을 맞추고, 반복해서 설명해 주셨다. 한글을 몰라서 창피한 줄도 모르던 순수한 아이는 선생님의 인내와 친구들의 배려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입학 두 달쯤 지나자, 아이는 자기 이름을 썼고,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 기쁨에 아이는 “나 이제 학교 재미있어졌어!”라고 외쳤다. 나는 마음속 깊이 외쳤다. “그래, 네 속도를 기다리길 잘했다.” |
영재고를 가장 많이 보내는 명문중에서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는 소위 ‘명문중’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영재고를 가장 많이 보낸다고 소개되고, 언론에도 몇 차례 등장한 학교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성과의 이면에는 가려진 ‘불안’이 있었다. 이 학교에는 외지에서 월세를 얻어 통학하는 ‘유학형 중학생’이 많았다. 각 지역 초등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오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밤늦도록 빽빽한 스케줄 속에 살아가고 있었고, ‘영재고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매일 ‘미래’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아이는 불면증과 위장 장애로 병원을 다녔고, 어떤 아이는 성적 압박에 시달리다 상담실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었다.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도, ‘진학 성과’에만 주목하는 구조는 교육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깨달았다. “입시 결과가 좋아 보인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교육이 잘 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그때부터 ‘성취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수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교육 없이도, 아이 스스로 ‘배운다는 기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진학률 높은 학교’가 아니라 “학생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학교”였다. |
수업이 바뀌니 사교육도 줄었다 교사로서의 내 교육 철학은 교실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수학 책임 수업’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개념을 탐구하고, 친구와 협력하고, 스스로 정리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다음과 같은 5단계 구조로 이루어진다. - 생각 짚어보기
- 전 시간 활동 중 인상 깊은 질문이나 개념을 다시 꺼내며 수업 시작 - 학생 스스로 배운 것을 재확인하고, 교사 발문으로 오늘 수업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
- 예습 점검
- 학생들이 미리 학습한 내용을 짝과 모둠 단위로 공유 - 핵심 질문을 도출하고, 모둠의 칠판에 정리하면서 오늘의 개념을 예고
- 탐구 활동
- ‘수학의 발견’ 교재의 질문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 - 상황 맥락 자료, 개념도 및 실생활 사례 등을 활용하여 개념을 깊이 연결 - 이 과정에서 ‘탐구 흔적 남기기’ 활동을 통해 학생 개별 생각을 기록
- 설명하기
- 짝과의 설명 시간 운영 - 내가 이해한 개념을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진짜 이해했는가’를 점검 - 이때 “언제 이해가 됐는가?”, “무엇이 내 방식과 달랐는가?” 같은 메타인지 질문 진행
- 개념 정리
- 개념 노트에 정의, 성질, 성질 간 연결 등을 자기 언어로 정리하며 개념 구조를 완성 - 교사가 몇몇 사례를 공유하고, 잘 정리된 개념은 칠판 혹은 전자칠판에 공유해 확산 이 수업을 운영하며 학생들은 크게 변했다. 예전엔 문제를 틀리면 위축되던 아이들이, 이제는 “이건 내 방식인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말하게 되었다. 수업을 촬영하기 위해 EBS에서 찾아왔고, 교육청 장학사 및 타지역 교사들도 참관했다. “이 수업은 사교육을 넘어선다.”, “수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수업이다.” 그런 평가를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수업이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 그리고 사교육도 줄어든다.” |
웃음, 재미, 성장 다 있는 수업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장 기쁘고 보람된 순간은, 수업 중 아이들이 웃을 때다. 그 웃음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고, 친구의 의견에 영감을 받고, “아, 그렇구나!” 하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다. 예전에는 수학 시간에 웃음이 없었다. 정답이 맞았을 때만 칭찬을 받고, 틀리면 조용히 넘어가거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틀린 답에서 더 깊이 있는 질문이 나오고, 친구들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라며 대화가 오간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도입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학생이 “직각이 아니면 이게 왜 안 되죠?”라고 물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칠판에 적고, 모둠별로 예각삼각형과 둔각삼각형을 만들어 직각삼각형이 아닐 때, 작은 두 변의 제곱의 합이 나머지 한 변의 제곱과 같지 않은 이유를 직접 탐구하게 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오늘 진짜 재밌었다”고 말하며 직접 만든 삼각형 종이를 들고 교실을 나갔다. 나는 그날, 수학 수업이 이렇게도 즐거울 수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들은 웃고, 생각하고, 친구와 연결되며 자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사교육 없이 가능했다. |
배움의 속도는 자연스럽고 깊게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사교육 없는 삶의 길을 확고히 선택한 상태였다. 첫째와의 경험 덕분에 흔들림 없이 둘째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둘째 아이 역시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에 보냈다. 집에서는 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하고, 블록 놀이를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언어와 수 개념을 익혔다. 다른 부모들이 “한글 떼야지”라고 할 때,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서 배울 겁니다. 그게 원래 학교의 역할이잖아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도 초반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첫째와 달리, 나는 훨씬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경험했기에, ‘조급함’이 아닌 ‘확신’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다. 둘째 역시 지금은 학교를 즐기고 있고, 담임 선생님도 “이 아이는 배우는 속도가 아주 자연스럽고 깊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안정적이고 자존감 높은 아이가 자랄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걱정은 있지만, 믿음이 더 커요 내가 걸어온 이 길은 나 혼자만의 여정은 아니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도서, 강좌, 캠페인, 커뮤니티는 내가 계속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나침반이었다. 한 번은 지역모임에서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도 영어 알파벳을 못 외워요.”, “저희는 하루에 책만 읽어요. 그런데 걱정은 돼요.”,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걱정은 있지만, 사랑과 믿음이 더 커요.”
나는 이 모임에서 감동을 받았고, 이후 교사 연수나 학부모 교육에서 내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수학 수업을 바꾼 경험, 사교육 없이 자녀를 키운 이야기, 불안을 다스리는 내 방식, 아이와 대화하는 언어 등등. 그 이야기를 들은 한 학부모가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느꼈다. 이 경험은 나 혼자 간직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길잡이로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
아이도,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아깝다 학원비』를 처음 읽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 책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꿨고, 지금 나는 ‘사교육 걱정 없는 삶’을 실천한 부모이자, ‘사교육을 줄이는 수업’을 만드는 교사가 되었다. 나의 수업은 많은 교사에게 영감을, 나의 자녀는 사교육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매일 이 선택을 이어 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유혹은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성적과 입시를 고민할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을 수 있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그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습니다. 지금 아이도, 부모인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이 글이 한 사람의 삶에 작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삶의 기록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고픈 선생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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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란 무엇인가
나는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다. 가르치는 일과 기르는 일은 서로 다르면서도 깊이 닮아 있다.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늘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산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성적을 올려 주는 ‘능력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수많은 문제를 만들고, 해설을 외우듯 반복했고, 기출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눈빛은 점점 흐려졌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뒤, 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수학은 외워야 하는 건가요?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은 내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나는 아이에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쳤던가? 아니면 그저 ‘잘 외우는 기술자’로 만들고 있었던 건가? 그 순간, 내 수업이 성적만을 위한 지식 공급이 아닌, 아이의 삶에 의미 있는 무언가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나의 ‘부모 됨’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 아이에게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공부를 잘하게 만드는 것?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 아니었다. 내가 진심으로 바랐던 건, “이 아이가 자기 삶을 사랑하면서 살기를,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기를.” 그것이 내가 교육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최종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방향은, 이후 나의 가정과 교실을 완전히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교육
내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아깝다 학원비』를 처음 읽은 건, 첫째 아이가 태어난 해였다. 밤중 수유를 마치고 겨우 잠이 든 아이 옆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던 그 순간, 내 삶의 축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책의 핵심은 단순했다.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 말이 내게는 세상의 구조를 부정하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사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아이를 ‘방치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내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학교를 믿어도 된다.’, ‘아이를 믿어도 된다.’, ‘불안보다 믿음이 앞서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특히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찔렀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교육은 부모의 따뜻한 대화와 믿음이다.” 나는 그날, 책을 덮고 조용히 아기를 안았다. 그 작은 체온을 느끼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이 아이와 함께, 사교육 없는 길을 걸어보겠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에게 어떤 사교육도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학원 안 보내기’가 아닌, 아이의 삶 전체를 둘러싼 환경과 나의 관점을 바꾸는 여정이 되었다.
불안이 작아진 그 자리에
사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사실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가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영어 학원 다닌다던데?”, “요즘은 유치원에서도 코딩을 가르친대.”, “선행학습 안 하면 학교에서 너무 힘들어해.” 이런 말들이 내 귀를 자꾸만 흔들었다. 더 무서운 건, 이 말들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같은 부모’라는 점이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치 의무처럼 사교육을 선택하고 있었고, 그 선택이 ‘옳은 길’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나는 내 불안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불안의 정체는, ‘내 아이가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하지만 나는 교사로서 수많은 학생들을 보아 왔다. 선행학습을 많이 했다고 해서 반드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사교육을 오래 받았다고 해서 사고력이 깊어지는 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다. 사교육은 문제를 푸는 속도를 높여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문제를 이해하고 삶과 연결 짓는 힘을 주지는 못한다. 진짜 학습은, ‘자기가 배운 것을 자기 삶 안에서 써먹는 능력’이다. 나는 다시 다짐했다. 불안에 흔들릴 시간에, 아이의 오늘을 더 깊이 들여다보자고. 문제집 한 권 더 푸는 것보다, 오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물어보자고. 그러자 신기하게도, 불안은 조금씩 작아졌고, 그 자리에 ‘아이를 향한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한글을 모른 채 초등학교 입학했더니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주변에서는 “한글 떼었냐”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졌다. 내가 선택한 유치원은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곳이었다. 아이의 정서, 사회성, 놀이 중심의 유치원. 당연히 교육과정에도 ‘학습’이라는 말은 거의 없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뒤처지지 않겠냐”는 걱정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불안에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아깝다 학원비』에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바로 ‘속도의 존중’이었다. 모든 아이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고, 그 리듬을 존중해 줘야 아이는 자존감을 잃지 않고 자란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한글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입학 첫날, 아이는 자기 이름을 읽지 못했고, 알림장조차 못 쓰는 상황에 부딪혔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써 준 이름표도 이해하지 못했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도 불편함을 느꼈다. 그 순간, ‘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에게 조금 더 눈을 맞추고, 반복해서 설명해 주셨다. 한글을 몰라서 창피한 줄도 모르던 순수한 아이는 선생님의 인내와 친구들의 배려 속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익혀나가기 시작했다. 입학 두 달쯤 지나자, 아이는 자기 이름을 썼고,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았다. 그 기쁨에 아이는 “나 이제 학교 재미있어졌어!”라고 외쳤다. 나는 마음속 깊이 외쳤다. “그래, 네 속도를 기다리길 잘했다.”
영재고를 가장 많이 보내는 명문중에서
내가 근무했던 중학교는 소위 ‘명문중’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영재고를 가장 많이 보낸다고 소개되고, 언론에도 몇 차례 등장한 학교였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성과의 이면에는 가려진 ‘불안’이 있었다. 이 학교에는 외지에서 월세를 얻어 통학하는 ‘유학형 중학생’이 많았다. 각 지역 초등학교에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오는 곳이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밤늦도록 빽빽한 스케줄 속에 살아가고 있었고, ‘영재고 진학’이라는 목표를 위해 매일 ‘미래’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아이는 불면증과 위장 장애로 병원을 다녔고, 어떤 아이는 성적 압박에 시달리다 상담실 문턱을 닳도록 드나들었다. 아이들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도, ‘진학 성과’에만 주목하는 구조는 교육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깨달았다. “입시 결과가 좋아 보인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교육이 잘 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그때부터 ‘성취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수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교육 없이도, 아이 스스로 ‘배운다는 기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진학률 높은 학교’가 아니라 “학생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학교”였다.
수업이 바뀌니 사교육도 줄었다
교사로서의 내 교육 철학은 교실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내가 실천하고 있는 ‘수학 책임 수업’은, 학생이 주도적으로 개념을 탐구하고, 친구와 협력하고, 스스로 정리하는 수업이다. 이 수업은 다음과 같은 5단계 구조로 이루어진다.
- 전 시간 활동 중 인상 깊은 질문이나 개념을 다시 꺼내며 수업 시작
- 학생 스스로 배운 것을 재확인하고, 교사 발문으로 오늘 수업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
- 학생들이 미리 학습한 내용을 짝과 모둠 단위로 공유
- 핵심 질문을 도출하고, 모둠의 칠판에 정리하면서 오늘의 개념을 예고
- ‘수학의 발견’ 교재의 질문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고,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
- 상황 맥락 자료, 개념도 및 실생활 사례 등을 활용하여 개념을 깊이 연결
- 이 과정에서 ‘탐구 흔적 남기기’ 활동을 통해 학생 개별 생각을 기록
- 짝과의 설명 시간 운영
- 내가 이해한 개념을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진짜 이해했는가’를 점검
- 이때 “언제 이해가 됐는가?”, “무엇이 내 방식과 달랐는가?” 같은 메타인지 질문 진행
- 개념 노트에 정의, 성질, 성질 간 연결 등을 자기 언어로 정리하며 개념 구조를 완성
- 교사가 몇몇 사례를 공유하고, 잘 정리된 개념은 칠판 혹은 전자칠판에 공유해 확산
이 수업을 운영하며 학생들은 크게 변했다. 예전엔 문제를 틀리면 위축되던 아이들이, 이제는 “이건 내 방식인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말하게 되었다. 수업을 촬영하기 위해 EBS에서 찾아왔고, 교육청 장학사 및 타지역 교사들도 참관했다. “이 수업은 사교육을 넘어선다.”, “수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수업이다.” 그런 평가를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수업이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 그리고 사교육도 줄어든다.”
웃음, 재미, 성장 다 있는 수업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며 가장 기쁘고 보람된 순간은, 수업 중 아이들이 웃을 때다. 그 웃음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존중받고, 친구의 의견에 영감을 받고, “아, 그렇구나!” 하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웃음이다. 예전에는 수학 시간에 웃음이 없었다. 정답이 맞았을 때만 칭찬을 받고, 틀리면 조용히 넘어가거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히려 틀린 답에서 더 깊이 있는 질문이 나오고, 친구들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네!”라며 대화가 오간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피타고라스 정리’를 도입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학생이 “직각이 아니면 이게 왜 안 되죠?”라고 물었다.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 질문을 칠판에 적고, 모둠별로 예각삼각형과 둔각삼각형을 만들어 직각삼각형이 아닐 때, 작은 두 변의 제곱의 합이 나머지 한 변의 제곱과 같지 않은 이유를 직접 탐구하게 했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오늘 진짜 재밌었다”고 말하며 직접 만든 삼각형 종이를 들고 교실을 나갔다. 나는 그날, 수학 수업이 이렇게도 즐거울 수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 아이들은 웃고, 생각하고, 친구와 연결되며 자란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사교육 없이 가능했다.
배움의 속도는 자연스럽고 깊게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이미 사교육 없는 삶의 길을 확고히 선택한 상태였다. 첫째와의 경험 덕분에 흔들림 없이 둘째에게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둘째 아이 역시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 유치원에 보냈다. 집에서는 책을 읽어 주고, 이야기하고, 블록 놀이를 함께 하며 자연스럽게 언어와 수 개념을 익혔다. 다른 부모들이 “한글 떼야지”라고 할 때, 나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교에서 배울 겁니다. 그게 원래 학교의 역할이잖아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도 초반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첫째와 달리, 나는 훨씬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었다. 이미 한 번 경험했기에, ‘조급함’이 아닌 ‘확신’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었다. 둘째 역시 지금은 학교를 즐기고 있고, 담임 선생님도 “이 아이는 배우는 속도가 아주 자연스럽고 깊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아이가 성장하는 속도를 존중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안정적이고 자존감 높은 아이가 자랄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걱정은 있지만, 믿음이 더 커요
내가 걸어온 이 길은 나 혼자만의 여정은 아니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도서, 강좌, 캠페인, 커뮤니티는 내가 계속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든든한 나침반이었다. 한 번은 지역모임에서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도 영어 알파벳을 못 외워요.”, “저희는 하루에 책만 읽어요. 그런데 걱정은 돼요.”, 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이것이다. “걱정은 있지만, 사랑과 믿음이 더 커요.”
나는 이 모임에서 감동을 받았고, 이후 교사 연수나 학부모 교육에서 내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기 시작했다. 수학 수업을 바꾼 경험, 사교육 없이 자녀를 키운 이야기, 불안을 다스리는 내 방식, 아이와 대화하는 언어 등등. 그 이야기를 들은 한 학부모가 말했다.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도 아이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느꼈다. 이 경험은 나 혼자 간직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한 길잡이로 나눠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도,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아깝다 학원비』를 처음 읽은 지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그 책은 내 삶의 방향을 바꿨고, 지금 나는 ‘사교육 걱정 없는 삶’을 실천한 부모이자, ‘사교육을 줄이는 수업’을 만드는 교사가 되었다. 나의 수업은 많은 교사에게 영감을, 나의 자녀는 사교육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매일 이 선택을 이어 가고 있다. 물론 여전히 유혹은 있다.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성적과 입시를 고민할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사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을 수 있는 내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그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불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다. “괜찮습니다. 지금 아이도, 부모인 당신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 이 글이 한 사람의 삶에 작은 용기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삶의 기록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