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홈스쿨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와 아내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어느 초등학교 보내는 게 좋을까? 미리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흔히 떠올리는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학교를 보낼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특별히 교육적 소신이 분명하거나, 공교육을 불신해서도 아니었다. ‘꼭 보내야 할까?’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계속 집에 데리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는 산후조리원에도 가지 않았다. 남편인 나를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제안이나 고집이 아니라 아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아기가 막 태어나서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그 시기에,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출산을 하고 회복이 안 된 몸으로 아내는 네 아이를 집에서 보살폈다. 아내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관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지만 어린이집에도,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양육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아기 때부터 발버둥 치고, 뒤집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서 걷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더 많이, 더 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고를 감당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와 아내는 네 아이가 자라는 경이로운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할지를 고민할 때도, 이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아이들의 오늘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
아이들의 오늘을 함께 보내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주 가는 미용실 사장님 딸이 첫째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분에게서 초등학교의 현실을 종종 들었다. 1학년 때부터 학원을 3, 4개씩 다닌다는 이야기, 보드게임 한다고 과외를 받는다는 이야기 등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조금 더 놀게 해 주면 안 될까? 우리 부부는 어린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경쟁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남을 이기는 것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네 아이를 학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운다고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며 박수쳐 주시는 분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 말에 동의했고, 우쭐하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을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감당해야 할 고민과 걱정을 우리 부부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학교를 보내면서도 자녀들에게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라고 가르치는 부모님들이 훨씬 더 용기 있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심한 뒤, 지금까지 8년째 우리 여섯 식구는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집에만 있으면 아이들의 사회성은 괜찮은가요 홈스쿨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이들의 사회성이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녀가 넷이라 이미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 같이 놀고,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서로 알려주며, 힘든 일은 도와주면서 협력하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싸우고 삐지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화를 풀고, 화해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배운다. 무엇보다 관계를 중재해 줄 수 있는 나와 아내가 있다. 갈등이 심해지면 아내와 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화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때로는 아이들 스스로가 서로의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둘이 싸우면 남은 둘이 장난을 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사회성을 배우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과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감정을 공감해 주는 친구들도 필요하지만,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아이의 감정과 존재를 온전히 받아 주는 부모의 존재는 무엇보다 크다. 부모가 곁에서 자리를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안정감을 느낀다. 첫째와 둘째가 큰 어려움 없이 사춘기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참 감사하다. 아직 초등학생인 셋째 아들과 넷째 딸에게도 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 둘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
같은 부모, 같은 책, 다른 관심사 아내와 내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책 읽기’였다. 어렸을 적에는 부지런히 책을 읽어 주었다. 네 아이에게 같은 책을 읽어 주기도 했고, 때로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오기도 했다. 한 권씩만 들고 와도 네 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은 마르고 혀는 굳어져 갔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책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긴 책을 읽다 중간에 멈추면 더 읽어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더 읽어 주고 싶었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뒤였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책 읽기에 진심이었다. 지금은 아이들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는다. 좋아하는 분야도 모두 다르다. 첫째는 역사나 현실을 기반으로 한 청소년 소설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둘째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전사들』이란 책을, SF를 좋아하는 셋째는 요즘 『나니아 연대기』에 푹 빠져 있다. 넷째는 한동안 전래동화를 읽더니 요즘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부모도 같고, 읽어 준 책도 같은데 자라면서 각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분야가 달라진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
자기만의 속도로 나아가기
아이들은 관심사도 다르지만, 공부하는 속도도 다르다. 첫째는 욕심도 있고 목표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셋째는 형, 누나가 공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금세 배운다. 기억력이 좋아 한 번 본 것을 오래 기억하고, 그래서 습득력도 좋다. 그에 비해 중간에 낀 둘째는 느리다. 둘째가 한글을 완전히 익히는 데 2-3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를 5학년에 시작했을 때에도 알파벳을 완전히 외우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곁에서 누군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대충 하고 넘어가려 했다. 나는 둘째를 붙잡고 영어 공부를 함께했고, 최근에는 수학도 함께하고 있다. 방금 배운 것을 쉽게 잊어버리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마다 화가 나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둘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이제는 스스로 하는 힘이 어느 정도 생겼다. 나도 조금은 더 느긋하게 둘째를 대하게 되었다. 가끔 ‘이 아이가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와 아내는 둘째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하고 답답해했을지도 모른다. 아이 역시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 속도는 느릴지 모르지만, 둘째는 꾹꾹 눌러 가며 자기의 속도로 걸음을 내딛고 있어 참 대견하다. |
너만의 길을 걸었으면 첫째가 벌써 중학교 2학년이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곧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슬프다. 성격이 급한 첫째는 가끔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을 할지 이야기한다. 그때가 되면 엄마 아빠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지금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잘 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다. 결국 졸업을 앞두고 4년 동안 공부한 전공을 포기하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고,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빨리 발견해서 자기만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이면 첫째의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한다. 중학교 입학할 때는 큰 고민 없이 홈스쿨을 선택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고민이 깊어졌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금처럼 해도 괜찮을지, 이러다 대학에 못 가거나 사회에서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
선택의 시간 작년 노워리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근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는 채송아 선생님의 딸, 그린 님과 인터뷰를 했다. 그린 님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저의 학창 시절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취업에 성공하는 성과를 내서 만족하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했던 경험이 지금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해요.” 누군가에 의해 ‘선택당한’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도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그린 님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자녀를 길러낸 채송아 선생님이 존경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나와 아내가 그린 큰 그림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걸어 왔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학교에 들어가든, 여전히 집에서 함께 하든 방식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삶이 아이에게 즐겁고 가치 있는지, 어떤 선택이 아이의 인생을 그려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이 남들처럼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길을 열어갈지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아야겠다.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고픈 선생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지역등대 모임과 노워리스쿨 강의를 신청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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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홈스쿨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나와 아내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어느 초등학교 보내는 게 좋을까? 미리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는 게 아닐까?’ 흔히 떠올리는 그런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는 학교를 보낼까 말까를 고민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특별히 교육적 소신이 분명하거나, 공교육을 불신해서도 아니었다. ‘꼭 보내야 할까?’라는 질문이 맴돌았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계속 집에 데리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는 산후조리원에도 가지 않았다. 남편인 나를 타박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제안이나 고집이 아니라 아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아기가 막 태어나서 엄마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그 시기에, 다른 이의 손에 맡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출산을 하고 회복이 안 된 몸으로 아내는 네 아이를 집에서 보살폈다. 아내가 참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아이들이 자라서 기관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지만 어린이집에도, 유치원에도 보내지 않고 집에서 양육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아기 때부터 발버둥 치고, 뒤집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서 걷는 그 모든 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더 많이, 더 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고를 감당해 주었다. 그 덕분에 나와 아내는 네 아이가 자라는 경이로운 순간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야 할지를 고민할 때도, 이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아이들의 오늘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아이들의 오늘을 함께 보내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자주 가는 미용실 사장님 딸이 첫째보다 한 살이 많았다. 그분에게서 초등학교의 현실을 종종 들었다. 1학년 때부터 학원을 3, 4개씩 다닌다는 이야기, 보드게임 한다고 과외를 받는다는 이야기 등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조금 더 놀게 해 주면 안 될까? 우리 부부는 어린 아이들에게 벌써부터 경쟁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남을 이기는 것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네 아이를 학교 보내지 않고 집에서 키운다고 하면 용기가 대단하다며 박수쳐 주시는 분들이 있다. 예전에는 그 말에 동의했고, 우쭐하는 마음도 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경쟁이 시작되는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을 조금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 감당해야 할 고민과 걱정을 우리 부부는 하지 않아도 되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학교를 보내면서도 자녀들에게 남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라고 가르치는 부모님들이 훨씬 더 용기 있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는 부모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첫째를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결심한 뒤, 지금까지 8년째 우리 여섯 식구는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집에만 있으면 아이들의 사회성은 괜찮은가요
홈스쿨을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아이들의 사회성이 괜찮겠냐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길러야 하는데, 집에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는 걱정이었다.
그럴 때마다 자녀가 넷이라 이미 작은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씀드린다. 같이 놀고,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서로 알려주며, 힘든 일은 도와주면서 협력하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싸우고 삐지며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화를 풀고, 화해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지 배운다.
무엇보다 관계를 중재해 줄 수 있는 나와 아내가 있다. 갈등이 심해지면 아내와 나는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화난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때로는 아이들 스스로가 서로의 마음을 풀어주기도 한다. 둘이 싸우면 남은 둘이 장난을 치거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사회성을 배우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과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부모와의 관계도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기 감정을 공감해 주는 친구들도 필요하지만,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아이의 감정과 존재를 온전히 받아 주는 부모의 존재는 무엇보다 크다. 부모가 곁에서 자리를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큰 안정감을 느낀다.
첫째와 둘째가 큰 어려움 없이 사춘기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참 감사하다. 아직 초등학생인 셋째 아들과 넷째 딸에게도 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 둘은 또 어떨지 궁금하다.
같은 부모, 같은 책, 다른 관심사
아내와 내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있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책 읽기’였다. 어렸을 적에는 부지런히 책을 읽어 주었다. 네 아이에게 같은 책을 읽어 주기도 했고, 때로는 각자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오기도 했다. 한 권씩만 들고 와도 네 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은 마르고 혀는 굳어져 갔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 책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긴 책을 읽다 중간에 멈추면 더 읽어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더 읽어 주고 싶었지만 이미 체력이 바닥을 드러낸 뒤였다. 그렇게 나와 아내는 책 읽기에 진심이었다.
지금은 아이들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골라 읽는다. 좋아하는 분야도 모두 다르다. 첫째는 역사나 현실을 기반으로 한 청소년 소설을, 고양이를 좋아하는 둘째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전사들』이란 책을, SF를 좋아하는 셋째는 요즘 『나니아 연대기』에 푹 빠져 있다. 넷째는 한동안 전래동화를 읽더니 요즘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부모도 같고, 읽어 준 책도 같은데 자라면서 각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분야가 달라진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
자기만의 속도로 나아가기
아이들은 관심사도 다르지만, 공부하는 속도도 다르다. 첫째는 욕심도 있고 목표와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것을 좋아한다. 셋째는 형, 누나가 공부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며 금세 배운다. 기억력이 좋아 한 번 본 것을 오래 기억하고, 그래서 습득력도 좋다.
그에 비해 중간에 낀 둘째는 느리다. 둘째가 한글을 완전히 익히는 데 2-3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를 5학년에 시작했을 때에도 알파벳을 완전히 외우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곁에서 누군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대충 하고 넘어가려 했다. 나는 둘째를 붙잡고 영어 공부를 함께했고, 최근에는 수학도 함께하고 있다.
방금 배운 것을 쉽게 잊어버리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마다 화가 나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 때마다 둘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아이를 달랬다. 그리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이제는 스스로 하는 힘이 어느 정도 생겼다. 나도 조금은 더 느긋하게 둘째를 대하게 되었다.
가끔 ‘이 아이가 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와 아내는 둘째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불안해하고 답답해했을지도 모른다. 아이 역시 다른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힘들어하지는 않았을까. 속도는 느릴지 모르지만, 둘째는 꾹꾹 눌러 가며 자기의 속도로 걸음을 내딛고 있어 참 대견하다.
너만의 길을 걸었으면
첫째가 벌써 중학교 2학년이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곧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벌써부터 슬프다. 성격이 급한 첫째는 가끔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을 할지 이야기한다. 그때가 되면 엄마 아빠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지금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잘 안다. 하지만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될 때까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몰랐다. 결국 졸업을 앞두고 4년 동안 공부한 전공을 포기하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고, 전공과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나처럼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빨리 발견해서 자기만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년이면 첫째의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한다. 중학교 입학할 때는 큰 고민 없이 홈스쿨을 선택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고민이 깊어졌다.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금처럼 해도 괜찮을지, 이러다 대학에 못 가거나 사회에서 실패자가 되는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선택의 시간
작년 노워리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근 활동가로 근무하고 있는 채송아 선생님의 딸, 그린 님과 인터뷰를 했다. 그린 님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저는 저의 학창 시절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취업에 성공하는 성과를 내서 만족하기도 하지만, 학창 시절부터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했던 경험이 지금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기반이 된 것 같아요. 그런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굉장히 감사해요.”
누군가에 의해 ‘선택당한’ 것도 아니고, 남들 다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도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그린 님의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자녀를 길러낸 채송아 선생님이 존경스러웠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나와 아내가 그린 큰 그림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걸어 왔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 아닐까. 학교에 들어가든, 여전히 집에서 함께 하든 방식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삶이 아이에게 즐겁고 가치 있는지, 어떤 선택이 아이의 인생을 그려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이 남들처럼 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길을 열어갈지 한 발짝 물러서서 지켜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