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속도가 느린 아이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다가 첫째가 유독 장난을 치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밥 먹는 속도가 너무 느려 참다 참다 결국 한마디 했다. “오늘은 엄마가 밥 먹는 거 1등 해야지! 이거 봐라! 엄마 다 먹었지?” 그때 첫째가 말했다. “엄마,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맛있게 꼭꼭 씹어먹는 게 중요해. 그거 몰라?”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평소 첫째에게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재밌게 하는 게 중요해.”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그것을 이렇게 나에게 되돌려주다니.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 첫째가 기특하고 예뻤다. |
내가 1등 해야 하는데 2025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첫째는 놀이를 할 때 부쩍 1등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와 놀다가도, 동생과 놀다가도, 경쟁심을 보이며 1등을 해야 한다고 외쳐댔다. 어떤 날은 둘이서 게임을 하다가 일부러 내가 이겨버렸다. 첫째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내가 1등 해야 하는데… 엄마! 엄마가 왜? 엉엉!” 여러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고민이 깊어졌다.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모습이라곤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성장해갈 시간 동안 아이가 느낄 경쟁의 압력과 부담을 생각하니, 다른 관점을 지금부터라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1등보다 중요한 것 마침,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유아 부모들과 함께 읽던 책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주세요”라는 내용을 여러번 접하던 차였다. ‘그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부터 알려주자.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금부터 바로잡아 주어야지.’ 다섯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1등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재미있게 하는 거야. 게임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게임을 즐겁게 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좀 지면 어때? 엄마는 너랑 함께해서 너무 재미있었어.” 처음 이 말을 해주었을 때 첫째는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후 몇 번 반복해서 이 말을 해주자, 어느 날은 첫째가 동생과 놀다가 똑같은 말을 해주는 것을 보았다. “1등 하는 것보다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알았지?” |
얄팍하고 부끄러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고, 적절한 상황에서 이 말을 동생에게 해주고 있었다. 그 뒤로 굳이 내가 이 말을 반복하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는 이제 놀이를 하다가 1등을 하지 못해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러다가 내가 저녁 밥상 앞에서 실수를 한 것이었다. 밥 먹는 데 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답답하던 차에 내뱉은 말이었다. 밥을 빨리 먹게 하겠다는 나의 의도와 방식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조금 부끄러웠다. 이 경험은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가 변화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은 부모로서 나의 경험과 내면이 변화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좀 더 단단한 부모가 되고 싶다. |
만 네 살과 두 살을 키우며 단단한 부모가 되어가는 데 있어 요즘 몇 가지 고민이 있다. 첫째, 만 네 살과 만 두 살이 된 두 딸을 키우며 나는 육아 효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낀다. 첫째가 자라면서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며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가는 것을 보니, 부모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듯하다. 부모가 심어준 가치관과 세계관은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것 같다. 나의 말 한마디, 생각 한 조각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
1등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계속 말해줄 수 있을까 둘째, 나는 앞으로 아이에게 계속해서 “1등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도 나는 똑같이 말해줄 수 있을까. 때론 노력과 열정과 재능이 시험 성적에 반영되지 않을 때, 그래도 너의 노력과 열정과 재능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해가는 시간, 네가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성장해가는 시간, 그 시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
현실과 정신승리 사이 셋째, 오늘 이 순간 아이와 나는 영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며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만 네 살, 만 두 살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놀이’를 매일 충실히 하고 있다. 여름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져서 이른 저녁을 먹은 후에, 해가 건너편 아파트 뒤로 숨으면 놀이터로 나간다. 놀이 외에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는 우리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지극히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과연 먼 훗날 후회할 일은 없을까. 초등학교 부모들로부터 듣게 되는 공포 괴담-선행교육을 받은 학생들에 비해 학습 속도가 느려 1학기 말 즈음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는 일이라든지-이 현실인 지금, 과연 나는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파악일까, 아니면 현실 파악을 뛰어넘는 정신승리일까. 자기 속도대로 자란 아이들이 비정상이라고 평가받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이 속도의 삶을 계속해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
소신을 지킬 수 있나요? 넷째,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잘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서 정신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학구열이 높은 대전 서구다. 만 3세부터 ‘자기 속도’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정어린이집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수학이나 영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유아가 스마트 러닝으로 가정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특별활동/특성화프로그램은 그 가짓수가 최소 다섯 개는 된다. 사립 기관의 경우 일곱여덟 가지를 한다. 이 동네에서 “저는 특성화 활동을 많이 안 하는 유치원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상대방을 비난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신을 밝히는 순간 대화는 단절되었다. 나의 소신을 밝히든 밝히지 않든 나는 앞으로 소신 있는 삶을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정신승리가 곧 고립인 것은 아닐까. |
미래를 가장 잘 아는 건, 아이 자신 이런 고민들 속에서 그래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붙들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입시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부모는 없다. 크든 작든 그 압력을 모두가 느낀다. 문제는 부모가 느끼는 압력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유아 시기에 입시 경쟁의 압력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줄 수 있는 길은, 부모들의 눈을 현재로 돌려 지금의 내 아이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내 아이의 발달 상황, 현재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 현재 내 아이가 잘 해나가고 있는 것, 현재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가능한 시기가 영유아 시기다. 부모로서 첫 번째 나의 결심은 “이 시기만큼은 ‘오늘’을 살아내자”는 것이다. 미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 미래를 살아갈 아이 자신일테니,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부모의 걱정일랑 접어두고 내가 오늘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을 주자고. 그 선물은 발달 과업에 맞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은 매일 ‘놀이’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둘러 아이의 놀이를, 정상적인 발달을 훼방놓지 말자는 결심을 마음에 되새기며 영유아 부모로 살아가고 있다. |
당신들의 고군분투 덕분에 이 모든 생각이 가능한 것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덕분이다. 내가 만나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 앞서 부모 역할을 감당해온 선배님들의 삶이 이러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선배님들의 삶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롤모델이자 레퍼런스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오늘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 회원들의 삶의 이야기는 나에게 북극성과 같다. 옳다고 믿는 것을 붙들고 초중고 12년을 살아낸 그들의 삶이 결코 단순하거나 쉽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양육서보다도 나에게 필요한 현실 인식이 이들의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 또한, 지금 나와 함께 양육자로서의 고민을 나누고 있는 ‘영유아 부모 모임’이 나의 정신승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우리는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들이 나의 이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든든하게 채워지곤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써내려갈 것이다.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고픈 선생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지역등대 모임과 노워리스쿨 강의를 신청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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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속도가 느린 아이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다가 첫째가 유독 장난을 치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밥 먹는 속도가 너무 느려 참다 참다 결국 한마디 했다.
“오늘은 엄마가 밥 먹는 거 1등 해야지! 이거 봐라! 엄마 다 먹었지?”
그때 첫째가 말했다.
“엄마,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맛있게 꼭꼭 씹어먹는 게 중요해. 그거 몰라?”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평소 첫째에게 “1등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재밌게 하는 게 중요해.”라고 말해주곤 했는데, 그것을 이렇게 나에게 되돌려주다니. 내 말을 기억하고 있는 첫째가 기특하고 예뻤다.
내가 1등 해야 하는데
2025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첫째는 놀이를 할 때 부쩍 1등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와 놀다가도, 동생과 놀다가도, 경쟁심을 보이며 1등을 해야 한다고 외쳐댔다. 어떤 날은 둘이서 게임을 하다가 일부러 내가 이겨버렸다. 첫째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내가 1등 해야 하는데… 엄마! 엄마가 왜? 엉엉!”
여러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고민이 깊어졌다. 이 나이대 아이들에게 흔히 보이는 모습이라곤 하지만, 그대로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성장해갈 시간 동안 아이가 느낄 경쟁의 압력과 부담을 생각하니, 다른 관점을 지금부터라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등보다 중요한 것
마침,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영유아 부모들과 함께 읽던 책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주세요”라는 내용을 여러번 접하던 차였다.
‘그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부터 알려주자.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금부터 바로잡아 주어야지.’
다섯 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해줄 수 있는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1등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재미있게 하는 거야. 게임에서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리가 게임을 즐겁게 했다면 그걸로 충분해. 좀 지면 어때? 엄마는 너랑 함께해서 너무 재미있었어.”
처음 이 말을 해주었을 때 첫째는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후 몇 번 반복해서 이 말을 해주자, 어느 날은 첫째가 동생과 놀다가 똑같은 말을 해주는 것을 보았다.
“1등 하는 것보다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한 거야. 알았지?”
얄팍하고 부끄러운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고, 적절한 상황에서 이 말을 동생에게 해주고 있었다. 그 뒤로 굳이 내가 이 말을 반복하지 않아도, 우리 집에서는 이제 놀이를 하다가 1등을 하지 못해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그러다가 내가 저녁 밥상 앞에서 실수를 한 것이었다. 밥 먹는 데 한 시간이 걸리다 보니 답답하던 차에 내뱉은 말이었다. 밥을 빨리 먹게 하겠다는 나의 의도와 방식이 얼마나 얄팍했는지, 조금 부끄러웠다.
이 경험은 사소하지만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가 변화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은 부모로서 나의 경험과 내면이 변화되고 확장되어 가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좀 더 단단한 부모가 되고 싶다.
만 네 살과 두 살을 키우며
단단한 부모가 되어가는 데 있어 요즘 몇 가지 고민이 있다.
첫째, 만 네 살과 만 두 살이 된 두 딸을 키우며 나는 육아 효능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낀다. 첫째가 자라면서 부모의 말을 곧이곧대로 수용하며 자신의 세계를 형성해가는 것을 보니, 부모의 영향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부모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 듯하다. 부모가 심어준 가치관과 세계관은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것 같다. 나의 말 한마디, 생각 한 조각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1등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계속 말해줄 수 있을까
둘째, 나는 앞으로 아이에게 계속해서 “1등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초등학생이 되고,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도 나는 똑같이 말해줄 수 있을까.
때론 노력과 열정과 재능이 시험 성적에 반영되지 않을 때, 그래도 너의 노력과 열정과 재능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해가는 시간, 네가 실패와 실수를 통해서 성장해가는 시간, 그 시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라고 말해줄 수 있을까.
현실과 정신승리 사이
셋째, 오늘 이 순간 아이와 나는 영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과업을 수행하며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다. 만 네 살, 만 두 살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놀이’를 매일 충실히 하고 있다. 여름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워져서 이른 저녁을 먹은 후에, 해가 건너편 아파트 뒤로 숨으면 놀이터로 나간다. 놀이 외에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는 우리 아이들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지극히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과연 먼 훗날 후회할 일은 없을까. 초등학교 부모들로부터 듣게 되는 공포 괴담-선행교육을 받은 학생들에 비해 학습 속도가 느려 1학기 말 즈음 선생님에게 연락을 받는 일이라든지-이 현실인 지금, 과연 나는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 파악일까, 아니면 현실 파악을 뛰어넘는 정신승리일까. 자기 속도대로 자란 아이들이 비정상이라고 평가받는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이 속도의 삶을 계속해서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소신을 지킬 수 있나요?
넷째, 나의 신념과 가치관을 잘 붙들고 살아가기 위해서 정신승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학구열이 높은 대전 서구다. 만 3세부터 ‘자기 속도’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가정어린이집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수학이나 영어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다. 유아가 스마트 러닝으로 가정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흔하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특별활동/특성화프로그램은 그 가짓수가 최소 다섯 개는 된다. 사립 기관의 경우 일곱여덟 가지를 한다. 이 동네에서 “저는 특성화 활동을 많이 안 하는 유치원을 찾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가 단절된다는 것을 경험했다. 상대방을 비난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의 소신을 밝히는 순간 대화는 단절되었다. 나의 소신을 밝히든 밝히지 않든 나는 앞으로 소신 있는 삶을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정신승리가 곧 고립인 것은 아닐까.
미래를 가장 잘 아는 건, 아이 자신
이런 고민들 속에서 그래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붙들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입시 경쟁의 압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부모는 없다. 크든 작든 그 압력을 모두가 느낀다. 문제는 부모가 느끼는 압력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는 것이다. 영유아 시기에 입시 경쟁의 압력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줄 수 있는 길은, 부모들의 눈을 현재로 돌려 지금의 내 아이를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내 아이의 발달 상황, 현재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 현재 내 아이가 잘 해나가고 있는 것, 현재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것이 그나마 가능한 시기가 영유아 시기다.
부모로서 첫 번째 나의 결심은 “이 시기만큼은 ‘오늘’을 살아내자”는 것이다. 미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 미래를 살아갈 아이 자신일테니,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부모의 걱정일랑 접어두고 내가 오늘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을 주자고. 그 선물은 발달 과업에 맞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집 아이들은 매일 ‘놀이’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둘러 아이의 놀이를, 정상적인 발달을 훼방놓지 말자는 결심을 마음에 되새기며 영유아 부모로 살아가고 있다.
당신들의 고군분투 덕분에
이 모든 생각이 가능한 것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덕분이다. 내가 만나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 앞서 부모 역할을 감당해온 선배님들의 삶이 이러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선배님들의 삶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롤모델이자 레퍼런스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오늘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우리 회원들의 삶의 이야기는 나에게 북극성과 같다. 옳다고 믿는 것을 붙들고 초중고 12년을 살아낸 그들의 삶이 결코 단순하거나 쉽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떤 양육서보다도 나에게 필요한 현실 인식이 이들의 이야기 안에 담겨 있다.
또한, 지금 나와 함께 양육자로서의 고민을 나누고 있는 ‘영유아 부모 모임’이 나의 정신승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우리는 모임에서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하고 있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변화와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이들이 나의 이웃이라는 생각에 마음 한 켠이 든든하게 채워지곤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써내려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