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도 서툰 아이들에게 두 돌을 갓 넘긴 쌍둥이를 키우던 10년 전, 저는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집 가까운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겼습니다. 그 어린이집은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을 하셨습니다. ‘모국어도 서툰 아이들에게 영어라니?’ 의문이 생겼고, 검색 끝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체에서 받은 ‘유아기 외국어 학습에 관한 연구 자료집’은 제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처음으로 확신한 순간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서 수업료를 대신 내 주겠다고까지 하셨지만,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을 일찍 데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이 수준의 수업이었을텐데 말이지요. 거센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의 열풍 속에서도, 아이들 손을 잡고 놀이터와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
부모들이 교육을 바꾼다고? 아이들이 일곱 살쯤 되었을 무렵,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지역모임을 찾았습니다. 평소 자주 보던 아이 친구 엄마들도 있었지만, 사교육에 비판적인 태도를 ‘설명 없이’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곳에서 들은 선배 부모들의 실천 사례들, 예를 들어, 학교에 건의해 초1 교육과정을 지키도록 알림장 쓰기, 받아쓰기가 진행되지 않게 했다니, ‘부모도 교육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고, 신문을 만들고, 1박 2일 모임을 하며 마음을 나눴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부모로서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전래놀이 선생님 반송과의 인연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캠프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원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수원 화성과 칠보산을 뛰어다니며, 산에서 별과 함께 별빛 영화를 보고,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놀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 예전처럼 놀이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그 추억은 아이들과 저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
부모로서 성장하는 삶 육아의 여러 고비마다, 지역모임은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조언을 구하고 관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코로나로 인해 줌으로 모이게 되고, 어떤 분은 직장에 다니느라 참석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1년 만에 만나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의 관심도 부모로서의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체에서는 부모의 성장을 돕는 다양한 강의가 연중 내내 열렸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설거지를 하면서, 일하는 틈틈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주옥같은 강의가 많아, 전부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무엇을 중심에 두고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단체의 지원으로 지역에서 사람을 모아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
‘안다’와 ‘설명할 수 있다’의 틈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주변에서는 “이제 수학이 어려워진다”며, 학원에 다니지 않던 아이들까지 하나둘 학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최수일 선생님의 수학 개념공부 강의를 듣고, ‘선생님 놀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선생님이 되어 엄마에게 설명하고, 엄마는 학생이 되어 질문하는 방식이었지요. ‘안다’와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사이의 틈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아이는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해도를 점검하고, 막히는 지점에서 어떤 개념을 제대로 모르는지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설명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세 자릿수 덧셈을 가르치며 “학생, 그것도 몰라요?” 하고 장난치는 아들과,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짚어가며 설명하는 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저 귀엽고 기특한 장면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움의 주체로 성장해 가는 찰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힘든 순간은 찾아옵니다. 아이의 설명이 틀렸을 때,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습니다. 그럴 때 재차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기분이 나빠서 울기도 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수학 상처’를 오히려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마침 코로나 시기라 온라인 강의가 많이 열리던 때였습니다. “찜찜해도 그냥 넘어가야 합니다. 아이도 그 찜찜함을 압니다. 그런 문제는 반드시 다시 만납니다. 아이가 스스로 오류를 깨달을 때만 제대로 배웁니다.” 최수일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
친절한 엄마의 ‘흐린 눈’ 배움이란 스스로 배우려고 할 때 더 잘 이루어지며, 시행착오도 그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요. 지인은 이 말에 반발했습니다. “나는 시행착오를 겪느라 힘들었기에, 내 아이만큼은 그런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저 역시 그런 ‘친절한’ 엄마였습니다. 아이는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아이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미리 챙겨 주고, 사전에 실패를 방지하려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려는 태도’를 멈추는 일, 오류를 바로잡기보다 ‘다음을 기약하며 기다리는 유연함’. 그 흐린 눈을 기르는 데 참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주 조금, 1mm는 나아진 것 같습니다. 최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예전처럼 제안을 해도 따라주지 않고,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기도 합니다. 엄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를 볼 때, 아이의 독립을 응원하면서도, 마음 한편 서운함이 자리합니다. ‘문제가 있는 걸까? 문제가 있다면 그게 아이일까, 나일까?’ 자주 떠오르는 이 물음은, 어쩌면 아이의 독립을 지켜보는 부모의 성장통인지도 모릅니다. |
선생님 놀이는 배움의 주체가 되는 과정 다행인 건, 자기주도 수학 개념학습의 ‘선생님 놀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수일 박사님의 수학 공부 강의 후속으로 만들어진 동아리에서 벌써 3년째 귀한 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초등 2학년이던 아이들이 4학년이 되고, 6학년이던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전주, 수원, 분당, 서울, 남양주, 멀리 춘천까지. 지역은 다르지만, 함께 고민하고 배웁니다. 선생님 놀이를 통해 교과서에서 지나치는 질문들이 나옵니다.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왜 180도인가요?”, “사각형의 넓이가 왜 가로×세로인가요?”, “몰라요.”, “안 배웠어요.” 답하던 아이들이 이제 ‘왜?’라는 질문에 멈추고 생각합니다. 설명하고, 개념 노트를 씁니다. 책을 보지 않고 스스로 정리한 후, 이전에 배운 개념과 연결하며 마무리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최수일 선생님의 네이버 카페에서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이어졌습니다.
‘선생님 놀이’ 덕분에 지금 아이들은 설명하는 것과 ‘왜?’라는 질문에 익숙해졌습니다. 교실에서 친구가 이해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설명합니다. 선생님 놀이는 단순한 학습법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며, 배움의 주체가 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
불완전해도 괜찮아 이제 아이들이 중2를 앞두고 있습니다. 시기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깁니다. ‘정말 깊이 있는 개념 학습을 잘하고 있는 걸까?’, ‘다음 내신 시험에서 변별한다는 이유로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어쩌지?’, ‘진로 찾는 걸 어떻게 도와줄까?’ 아이의 고민을 제가 다 하지는 말아야겠지요. 평가와 좌절의 순간은 분명 올 것입니다. 아이도 저도 그 안에서 무언가 배우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 단단히 서길 바라고, 그 곁에서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며 나아가고자 합니다. 10년 전 그 확신, 내 아이를 위해 했던 많은 선택이 모두 좋은 선택이었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기다려 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가 헤맬 때마다 조급해했고, 실수할까 봐 미리 나서곤 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더디게 변해도,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가르쳐 준 것은 완벽한 교육법이 아니라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위로였습니다. 그리고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든든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성장 중입니다. |
*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 하고픈 선생님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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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도 서툰 아이들에게
두 돌을 갓 넘긴 쌍둥이를 키우던 10년 전, 저는 체력의 한계에 부딪혀 결국 집 가까운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겼습니다. 그 어린이집은 일주일에 두 번, 영어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을 하셨습니다. ‘모국어도 서툰 아이들에게 영어라니?’ 의문이 생겼고, 검색 끝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체에서 받은 ‘유아기 외국어 학습에 관한 연구 자료집’은 제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처음으로 확신한 순간이었습니다. 원장님께서 수업료를 대신 내 주겠다고까지 하셨지만,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을 일찍 데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놀이 수준의 수업이었을텐데 말이지요. 거센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의 열풍 속에서도, 아이들 손을 잡고 놀이터와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부모들이 교육을 바꾼다고?
아이들이 일곱 살쯤 되었을 무렵,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지역모임을 찾았습니다. 평소 자주 보던 아이 친구 엄마들도 있었지만, 사교육에 비판적인 태도를 ‘설명 없이’ 나눌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곳에서 들은 선배 부모들의 실천 사례들, 예를 들어, 학교에 건의해 초1 교육과정을 지키도록 알림장 쓰기, 받아쓰기가 진행되지 않게 했다니, ‘부모도 교육을 바꿀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소풍을 가고, 신문을 만들고, 1박 2일 모임을 하며 마음을 나눴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부모로서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전래놀이 선생님 반송과의 인연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캠프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원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수원 화성과 칠보산을 뛰어다니며, 산에서 별과 함께 별빛 영화를 보고,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마음껏 놀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 예전처럼 놀이에 참석하지는 않지만, 그 추억은 아이들과 저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부모로서 성장하는 삶
육아의 여러 고비마다, 지역모임은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조언을 구하고 관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 코로나로 인해 줌으로 모이게 되고, 어떤 분은 직장에 다니느라 참석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우리는 1년 만에 만나도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의 관심도 부모로서의 성장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단체에서는 부모의 성장을 돕는 다양한 강의가 연중 내내 열렸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설거지를 하면서, 일하는 틈틈이 강의를 들었습니다. 주옥같은 강의가 많아, 전부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무엇을 중심에 두고 부모 역할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단체의 지원으로 지역에서 사람을 모아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안다’와 ‘설명할 수 있다’의 틈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주변에서는 “이제 수학이 어려워진다”며, 학원에 다니지 않던 아이들까지 하나둘 학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최수일 선생님의 수학 개념공부 강의를 듣고, ‘선생님 놀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선생님이 되어 엄마에게 설명하고, 엄마는 학생이 되어 질문하는 방식이었지요.
‘안다’와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사이의 틈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아이는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해도를 점검하고, 막히는 지점에서 어떤 개념을 제대로 모르는지 알게 됩니다. 아이들이 설명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세 자릿수 덧셈을 가르치며 “학생, 그것도 몰라요?” 하고 장난치는 아들과, 손가락으로 또박또박 짚어가며 설명하는 딸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저 귀엽고 기특한 장면이 아니라, 아이들이 배움의 주체로 성장해 가는 찰나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힘든 순간은 찾아옵니다. 아이의 설명이 틀렸을 때,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습니다. 그럴 때 재차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기분이 나빠서 울기도 합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수학 상처’를 오히려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마침 코로나 시기라 온라인 강의가 많이 열리던 때였습니다. “찜찜해도 그냥 넘어가야 합니다. 아이도 그 찜찜함을 압니다. 그런 문제는 반드시 다시 만납니다. 아이가 스스로 오류를 깨달을 때만 제대로 배웁니다.” 최수일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친절한 엄마의 ‘흐린 눈’
배움이란 스스로 배우려고 할 때 더 잘 이루어지며, 시행착오도 그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고요. 지인은 이 말에 반발했습니다. “나는 시행착오를 겪느라 힘들었기에, 내 아이만큼은 그런 과정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
저 역시 그런 ‘친절한’ 엄마였습니다. 아이는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아이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전에 미리 챙겨 주고, 사전에 실패를 방지하려고 했습니다. 부모가 아이 문제를 ‘즉시 해결하려는 태도’를 멈추는 일, 오류를 바로잡기보다 ‘다음을 기약하며 기다리는 유연함’. 그 흐린 눈을 기르는 데 참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아주 조금, 1mm는 나아진 것 같습니다.
최근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라는 말을 종종 합니다. 예전처럼 제안을 해도 따라주지 않고, 엄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기도 합니다. 엄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를 볼 때, 아이의 독립을 응원하면서도, 마음 한편 서운함이 자리합니다. ‘문제가 있는 걸까? 문제가 있다면 그게 아이일까, 나일까?’ 자주 떠오르는 이 물음은, 어쩌면 아이의 독립을 지켜보는 부모의 성장통인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놀이는 배움의 주체가 되는 과정
다행인 건, 자기주도 수학 개념학습의 ‘선생님 놀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수일 박사님의 수학 공부 강의 후속으로 만들어진 동아리에서 벌써 3년째 귀한 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초등 2학년이던 아이들이 4학년이 되고, 6학년이던 아이들은 중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전주, 수원, 분당, 서울, 남양주, 멀리 춘천까지. 지역은 다르지만, 함께 고민하고 배웁니다.
선생님 놀이를 통해 교과서에서 지나치는 질문들이 나옵니다.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왜 180도인가요?”, “사각형의 넓이가 왜 가로×세로인가요?”, “몰라요.”, “안 배웠어요.” 답하던 아이들이 이제 ‘왜?’라는 질문에 멈추고 생각합니다. 설명하고, 개념 노트를 씁니다. 책을 보지 않고 스스로 정리한 후, 이전에 배운 개념과 연결하며 마무리합니다. 그 모든 과정은 최수일 선생님의 네이버 카페에서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이어졌습니다.
‘선생님 놀이’ 덕분에 지금 아이들은 설명하는 것과 ‘왜?’라는 질문에 익숙해졌습니다. 교실에서 친구가 이해하지 못할 때 자연스럽게 친구에게 설명합니다. 선생님 놀이는 단순한 학습법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이해를 점검하며, 배움의 주체가 되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불완전해도 괜찮아
이제 아이들이 중2를 앞두고 있습니다. 시기마다 새로운 고민이 생깁니다. ‘정말 깊이 있는 개념 학습을 잘하고 있는 걸까?’, ‘다음 내신 시험에서 변별한다는 이유로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어쩌지?’, ‘진로 찾는 걸 어떻게 도와줄까?’ 아이의 고민을 제가 다 하지는 말아야겠지요. 평가와 좌절의 순간은 분명 올 것입니다. 아이도 저도 그 안에서 무언가 배우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스스로 단단히 서길 바라고, 그 곁에서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며 나아가고자 합니다.
10년 전 그 확신, 내 아이를 위해 했던 많은 선택이 모두 좋은 선택이었을까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기다려 주는 부모가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가 헤맬 때마다 조급해했고, 실수할까 봐 미리 나서곤 했습니다. 지금도 완전히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더디게 변해도,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가르쳐 준 것은 완벽한 교육법이 아니라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위로였습니다. 그리고 함께할 사람들이 있다는 든든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성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