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큰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작년 원서 접수 기간, 내가 그동안 아이를 기다려 주었던 건 가, 방목이란 이름의 방치를 했던 것인가 갈팡질팡하며 정시 전략을 검색어로 2주간 열공을 하고 이른바 빵꾸를 노리는 우주 상향 지원 대모험을 했다. 이미 재수를 결심한 아이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무 소속이 없는 아이를 보는 것이 불안했다. 추합에 추합이 돌고 100번에 가깝던 아이의 예비 번호가 1번으로 올라섰지만 아쉽게도 입학의 문은 아이 앞에서 닫혔다.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학벌보다는 아이의 적성에 맞는 참다운 공부를 외치던 나는 없었다. 이토록 성마르고 다급한 엄마의 밑에서 아이들이 그래도 매일 매일 조금씩 좋아지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지역모임인 등대모임의 덕이 컸다. 먼저 아이를 키운 엄마들과 또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서로 모여, 보고 듣고 말하며 엄마로서의 나에 대한 정체성을 키워올 수 있었다.
더할 수 없게 모범적으로 잘 다니다가 고3에 갑자기 수능을 안 보고 쉼을 선언한 아이, 이우학교를 잘 졸업하더니 탈 대학을 선언한 아이, 다들 부러워하는 대학에 입학하고도 3반수를 시도한 아이, 등대모임 안에서는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모든 집에 있다는 사정들을 터놓고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의 방황과 도전을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지켜보고 중심을 잡았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방황을 또는 진로를 꾸려 나갔는지 직접 보는 것이 내 불안을 다스리는데 가장 큰 치료제가 되었다.
내가 본 등대 모임안에서는 적어도 엄마가 어떻게 해서 좋은 대학에 아이를 넣은 경험담은 없었다. 재수하는 아이가 쉽사리 오늘은 독서실 하루 빠지겠다고 했을 때, 그래~라고 쿨하게 말해주는 엄마도 실은 마음을 잡는 게 힘들어서 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고 했다. 아이가 그때 그때 필요로 하는 입시 준비를 도와주지만 생색을 내며 해준 만큼을 내놓으라 하지 않았다. 아이의 목표는 입시이지만 엄마의 목표는 입시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을 실천하느라 그들도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무진 애를 썼다. 올 해 그 아이들의 좋은 소식들이 들렸다. 입시 결과에 대한 부러움보다 그런 엄마들과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나의 아이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 한 해 스스로 하는 공부를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 하는 공부가 처음이기에 이 공부가 재수가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수는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해당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애가 이번에 그래도 인서울을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은 조금은 있다고 하지만, 엄마와의 불안정 애착으로 오랜동안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재수기간 엄마로서의 나에게는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믿음이 잘 안가지만 믿어주고, 아이가 나름 하느라고 한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세상에 단 한 사람,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이 봄을 맞이한다.
올 초에 큰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작년 원서 접수 기간, 내가 그동안 아이를 기다려 주었던 건 가, 방목이란 이름의 방치를 했던 것인가 갈팡질팡하며 정시 전략을 검색어로 2주간 열공을 하고 이른바 빵꾸를 노리는 우주 상향 지원 대모험을 했다. 이미 재수를 결심한 아이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았고 무엇보다 아무 소속이 없는 아이를 보는 것이 불안했다. 추합에 추합이 돌고 100번에 가깝던 아이의 예비 번호가 1번으로 올라섰지만 아쉽게도 입학의 문은 아이 앞에서 닫혔다.
막상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학벌보다는 아이의 적성에 맞는 참다운 공부를 외치던 나는 없었다. 이토록 성마르고 다급한 엄마의 밑에서 아이들이 그래도 매일 매일 조금씩 좋아지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지역모임인 등대모임의 덕이 컸다. 먼저 아이를 키운 엄마들과 또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서로 모여, 보고 듣고 말하며 엄마로서의 나에 대한 정체성을 키워올 수 있었다.
더할 수 없게 모범적으로 잘 다니다가 고3에 갑자기 수능을 안 보고 쉼을 선언한 아이, 이우학교를 잘 졸업하더니 탈 대학을 선언한 아이, 다들 부러워하는 대학에 입학하고도 3반수를 시도한 아이, 등대모임 안에서는 현관문 열고 들어가면 모든 집에 있다는 사정들을 터놓고 나눌 수 있었다. 그 아이들의 방황과 도전을 다른 엄마들은 어떻게 지켜보고 중심을 잡았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방황을 또는 진로를 꾸려 나갔는지 직접 보는 것이 내 불안을 다스리는데 가장 큰 치료제가 되었다.
내가 본 등대 모임안에서는 적어도 엄마가 어떻게 해서 좋은 대학에 아이를 넣은 경험담은 없었다. 재수하는 아이가 쉽사리 오늘은 독서실 하루 빠지겠다고 했을 때, 그래~라고 쿨하게 말해주는 엄마도 실은 마음을 잡는 게 힘들어서 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고 했다. 아이가 그때 그때 필요로 하는 입시 준비를 도와주지만 생색을 내며 해준 만큼을 내놓으라 하지 않았다. 아이의 목표는 입시이지만 엄마의 목표는 입시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을 돕는 것을 실천하느라 그들도 아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무진 애를 썼다. 올 해 그 아이들의 좋은 소식들이 들렸다. 입시 결과에 대한 부러움보다 그런 엄마들과 함께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나의 아이는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 한 해 스스로 하는 공부를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 하는 공부가 처음이기에 이 공부가 재수가 아닐 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수는 아이가 아니라 나에게 해당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애가 이번에 그래도 인서울을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닌가…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은 조금은 있다고 하지만, 엄마와의 불안정 애착으로 오랜동안 힘든 유년시절을 보낸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재수기간 엄마로서의 나에게는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믿음이 잘 안가지만 믿어주고, 아이가 나름 하느라고 한다는 것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세상에 단 한 사람,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이 봄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