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 년 전 다섯 살이던 아들은 쑥쑥 자라는 외형과는 달리 내면은 조금 천천히 영글어 갔다. 아이를 위해 조금은 다른 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곳의 모든 어른은 천천히 자라는 아들을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었다. 그곳은 부모가 다 같이 ‘나만의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다. 둘째 애까지 6년간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의 공동체 경험들이 부모인 나에게도 조금은 천천히, 때로는 다르게 가도 된다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천천히 그러면서도 다르게 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2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나오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은,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되는 것과 불편한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퇴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정장 치마와 셔츠들을 정리하여 버린 일이었다. 작년 가을, 연사 자격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화장을 해야 할지에 대해 잠깐 고민을 했었지만, 어차피 마스크를 쓰니 눈만 보일 텐데 싶어 평소대로 화장품은 바르지 않았다. 다만 평소 잘 입지 않는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었다. 책방에 강연하러 오시는 작가님들을 보면 마치 평소 복장대로 그대로 오셨나 싶은 분들을 가끔 뵙게 된다. 그런 분들일수록 왠지 더 호감이 가고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을지 궁금해진다. 강연에서 중요한 것은, 강연의 내용이지 강연자의 외모 치장이 아니지 않을까. 언젠가 나도 다시 강연 자리에 서게 되면 편안한 운동화와 청바지 차림으로 강연을 하고 싶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외모를 꾸미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지만, 나는 사실 화장품 냄새에 민감해서 화장품을 아무거나 쓰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화장품 냄새나 향수 냄새만 맡아도 두통이 생긴다.
지난달에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기차로 이동 시에는 항상 백팩 속에 텀블러, 손수건, 읽을 책을 챙겨 다닌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인데, 그때마다 손을 씻고 일회용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날 모임은 겨울 동안 온라인에서 함께 글쓰기를 했던 분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날이라 작정하고 카페에 모여 종일 수다만 떨었다. 강남역 근처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많은 카페 중, 처음 들어가 주문한 곳에서는 음료가 모두 일회용 컵에 담겨 나왔다. 카페 겸 책방을 하다 보니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실 일이 거의 없는데 엊그제 친한 동생들이 가보자고 해서 간 카페도 음료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왔다. 코로나가 가져온 수많은 일회용 포장 용기로 인해 우리의 삶의 모습에 많은 변화를 주는듯해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환경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면서 불편해도 좀 다르게 살고자 선택한 이후 일회용 사용을 최소화하려고 일상 속에서 노력하는 편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행동이 때로는 사업주분들이 꺼리는 느낌이 들어 용기를 못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한번 용기를 내서 그릇에 담아 달라고 했을 때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시면 다음에도 다시 이용하고 싶어진다. 책방 근처 횟집에 그릇을 가져가서 연어 초밥을 담아 달라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항상 한 개씩 더 담아 주신다. 엊그제는 처음으로 돈까스 가게에 그릇을 미리 드리고 몇 시간 뒤에 찾으러 간다고 했는데 그릇을 담아갔던 보냉가방까지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포장 음식 한번 먹으면 다양한 크기의 꽤 많은 플라스틱 용기들이 나와서 그것을 씻어 분리하는 것도 하나의 일처럼 느껴지고, 플라스틱이 썩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불편하고 힘들어도 용기를 내보게 된다. 냉면을 포장해오면서 바쁜 식당의 풍경을 보니 이런 때 그릇을 가져가 담아 달라고 하는 것은 민폐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냉면, 두 종류의 김치, 국, 와사비 각각의 음식들이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 커졌다. 나와 가게의 모든 상황이 가능할 때만이라도 그릇에 담아 와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다.
꽤 오래전부터 일회용 생리대 사용을 줄이면서 천 생리대를 사용해 오다가 5년 전쯤부터는 생리컵과 천 생리대를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당시에는 같이 일하던 동생이 추천해주고 구매를 해줘서 쓰기 시작했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했지만, 적응하고 나니 세상 편할 수 없었다. 월경혈 냄새를 없애기 위해 화학약품 처리가 되어있는 일회용 생리대 대신 생리컵과 천 생리대로 바꾸고 나서는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탁월한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생리 중에도 수영은 물론 모든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생리혈이 나오는 느낌이 안 들어서 뒤척이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는 친환경 용품들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매장에 생리컵과 천 생리대, 손수건, 대나무 칫솔 등의 제품들을 들여놓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최대한 옷을 얻어 입히거나, 중고 구매나 이월상품을 주로 사서 입혔다. 지금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기에 본인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 보니 최소한의 수량만 구매해준다. 아이들이 키가 커져서 작아진 옷들은 내가 입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입던 옷과 작년까지 딸이 입던 옷들이 모두 내 차지이다. 키가 아빠보다 커진 아들의 옷은 신랑이 입고 있다. 신발도 하나를 사서 떨어질 때까지 신는다. 지금은 아이가 작아진 신발을 신고 있다. 퇴사 이후 내 신발은 아직 산 적이 없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소비를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올해는 마당 있는 주택을 선택하여 사는 삶에 관심을 더 두려 한다. 흙을 만지고 밟으며 자연을 통해 배우고 깨치는 생활을 천천히 해보기 위해서다. 이맘때면 우리 집 마당 한 편의 작은 텃밭의 땅을 일구고 쌓여 있는 낙엽들을 정리해서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작년에는 관리를 잘 못 했던지라 올해는 어떤 작물들을 심어 볼지 고민을 해본다. 남편에게 미뤄뒀던 풀베기부터 실천해야겠다 싶어 오늘 아침에 도전했으나, 첫 풀 뽑기부터 실패다. 그래도 마음을 먹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천천히 도전할 생각이다.
십일 년 전 다섯 살이던 아들은 쑥쑥 자라는 외형과는 달리 내면은 조금 천천히 영글어 갔다. 아이를 위해 조금은 다른 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곳의 모든 어른은 천천히 자라는 아들을 기다려주고 응원해주었다. 그곳은 부모가 다 같이 ‘나만의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었다. 둘째 애까지 6년간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의 공동체 경험들이 부모인 나에게도 조금은 천천히, 때로는 다르게 가도 된다는 용기를 심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천천히 그러면서도 다르게 가는 삶이 시작되었다. 20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나오고 나서 가장 좋았던 것은, 얼굴에 화장품을 바르지 않아도 되는 것과 불편한 옷을 입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퇴사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정장 치마와 셔츠들을 정리하여 버린 일이었다. 작년 가을, 연사 자격으로 강연을 하게 되었을 때 화장을 해야 할지에 대해 잠깐 고민을 했었지만, 어차피 마스크를 쓰니 눈만 보일 텐데 싶어 평소대로 화장품은 바르지 않았다. 다만 평소 잘 입지 않는 재킷을 걸치고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었다. 책방에 강연하러 오시는 작가님들을 보면 마치 평소 복장대로 그대로 오셨나 싶은 분들을 가끔 뵙게 된다. 그런 분들일수록 왠지 더 호감이 가고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을지 궁금해진다. 강연에서 중요한 것은, 강연의 내용이지 강연자의 외모 치장이 아니지 않을까. 언젠가 나도 다시 강연 자리에 서게 되면 편안한 운동화와 청바지 차림으로 강연을 하고 싶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외모를 꾸미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지만, 나는 사실 화장품 냄새에 민감해서 화장품을 아무거나 쓰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화장품 냄새나 향수 냄새만 맡아도 두통이 생긴다.
지난달에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기차로 이동 시에는 항상 백팩 속에 텀블러, 손수건, 읽을 책을 챙겨 다닌다. 화장실을 자주 가는 편인데, 그때마다 손을 씻고 일회용 휴지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날 모임은 겨울 동안 온라인에서 함께 글쓰기를 했던 분들이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 날이라 작정하고 카페에 모여 종일 수다만 떨었다. 강남역 근처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많은 카페 중, 처음 들어가 주문한 곳에서는 음료가 모두 일회용 컵에 담겨 나왔다. 카페 겸 책방을 하다 보니 다른 카페에 가서 커피 마실 일이 거의 없는데 엊그제 친한 동생들이 가보자고 해서 간 카페도 음료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왔다. 코로나가 가져온 수많은 일회용 포장 용기로 인해 우리의 삶의 모습에 많은 변화를 주는듯해 마음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환경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면서 불편해도 좀 다르게 살고자 선택한 이후 일회용 사용을 최소화하려고 일상 속에서 노력하는 편이다.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려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 행동이 때로는 사업주분들이 꺼리는 느낌이 들어 용기를 못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한번 용기를 내서 그릇에 담아 달라고 했을 때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시면 다음에도 다시 이용하고 싶어진다. 책방 근처 횟집에 그릇을 가져가서 연어 초밥을 담아 달라고 했는데, 사장님께서 항상 한 개씩 더 담아 주신다. 엊그제는 처음으로 돈까스 가게에 그릇을 미리 드리고 몇 시간 뒤에 찾으러 간다고 했는데 그릇을 담아갔던 보냉가방까지 깨끗하게 씻어주셨다. 포장 음식 한번 먹으면 다양한 크기의 꽤 많은 플라스틱 용기들이 나와서 그것을 씻어 분리하는 것도 하나의 일처럼 느껴지고, 플라스틱이 썩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불편하고 힘들어도 용기를 내보게 된다. 냉면을 포장해오면서 바쁜 식당의 풍경을 보니 이런 때 그릇을 가져가 담아 달라고 하는 것은 민폐가 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냉면, 두 종류의 김치, 국, 와사비 각각의 음식들이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들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 커졌다. 나와 가게의 모든 상황이 가능할 때만이라도 그릇에 담아 와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했다.
꽤 오래전부터 일회용 생리대 사용을 줄이면서 천 생리대를 사용해 오다가 5년 전쯤부터는 생리컵과 천 생리대를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당시에는 같이 일하던 동생이 추천해주고 구매를 해줘서 쓰기 시작했다.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했지만, 적응하고 나니 세상 편할 수 없었다. 월경혈 냄새를 없애기 위해 화학약품 처리가 되어있는 일회용 생리대 대신 생리컵과 천 생리대로 바꾸고 나서는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탁월한 선택이라고 자부한다. 생리 중에도 수영은 물론 모든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잠을 자는 동안에도 생리혈이 나오는 느낌이 안 들어서 뒤척이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는 친환경 용품들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매장에 생리컵과 천 생리대, 손수건, 대나무 칫솔 등의 제품들을 들여놓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최대한 옷을 얻어 입히거나, 중고 구매나 이월상품을 주로 사서 입혔다. 지금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기에 본인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있다 보니 최소한의 수량만 구매해준다. 아이들이 키가 커져서 작아진 옷들은 내가 입고 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입던 옷과 작년까지 딸이 입던 옷들이 모두 내 차지이다. 키가 아빠보다 커진 아들의 옷은 신랑이 입고 있다. 신발도 하나를 사서 떨어질 때까지 신는다. 지금은 아이가 작아진 신발을 신고 있다. 퇴사 이후 내 신발은 아직 산 적이 없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소비를 최소화하려고 애쓴다.
올해는 마당 있는 주택을 선택하여 사는 삶에 관심을 더 두려 한다. 흙을 만지고 밟으며 자연을 통해 배우고 깨치는 생활을 천천히 해보기 위해서다. 이맘때면 우리 집 마당 한 편의 작은 텃밭의 땅을 일구고 쌓여 있는 낙엽들을 정리해서 작물을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작년에는 관리를 잘 못 했던지라 올해는 어떤 작물들을 심어 볼지 고민을 해본다. 남편에게 미뤄뒀던 풀베기부터 실천해야겠다 싶어 오늘 아침에 도전했으나, 첫 풀 뽑기부터 실패다. 그래도 마음을 먹고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천천히 도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