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우리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막내가 오늘 열이 난다고 학교에서 전화가 와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독감이래요. 독감이면 학교 못 가는 거 맞아요? 어떡하죠. 일이 많아서 출근해야 하는데."
"독감이면 열 내리고 48시간 지나면 등교할 수 있어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주사로 맞는 항바이러스제를 맞추고 지켜보세요. 열이 빨리 내리면 주말 지나고 등교할 수 있을 거예요."
온 식구가 독감에 걸려서 힘들었던 작년 우리 집 상황을 떠올리며 조언해 주었다. 다행히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들은 방학 때 독감에 걸렸던 터라 등교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병원에서 권하는 비싼 마늘 주사까지 맞았다. 확실히 먹는 약보다 효과가 좋아 주사를 맞은 오후부터는 조금 살 것 같았다.
방학 때 석면 공사를 해야 해서 준비도 해야 하고, 1월에는 다른 학교로 전근해야 해서 인수인계도 해야 하는 직원은 마음이 초조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 셋을 키우고 있어 아이들과 관련한 자잘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을 터였다. 나만 해도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가 낙엽을 밟고 넘어져 발목 골절이 되어 일상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아이 셋을 키우는 직장맘으로 행정실 직원의 상황이 크게 공감되었다.

보건교사로 근무하며 이런 상황은 수없이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 감염병이 교내에 퍼지지 않도록 방역 총괄을 하는 나는 원칙적으로 감염병에 걸린 학생을 등교중지 시킬 수밖에 없다. 감염병 발생 대비 시나리오에 따르면 감염병이 의심되는 학생은 즉시 교실에서 분리하고 마스크를 쓰고 일시적 관찰실에서 기다리다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는 일시적 관찰실을 지키고 있을 인력도 없고 아픈 아이를 침대도 없는 일시적 관찰실에 앉혀둘 수도 없어 보호자가 오기 전까지 보건실에서 침상 안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들은 대개 바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대부분은 아이를 양육하며 집에서 지내던 엄마들도 일을 하러 나간다. 가정 상황을 봐줘 가면서 일을 시키는 직장은 드물다. 법에 따라 육아시간이며 돌봄 휴가를 쓰는 것이 합당하게 여겨지는 학교에서조차 학교 일이 먼저라 가정사로 조퇴를 쓰는 일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돈을 받고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은 돈을 받지 않고 해야 하는 보호자로서의 의무감보다 무겁다.
아이를 키울 때 격리 기간이 정해져 있는 감염병이 제일 문제다. 보통은 하루 이틀 정도 휴가를 쓰고 아픈 아이를 돌본다고 해도 감염병의 경우는 격리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대로 학교로 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보호자 중에는 아이의 감염병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 실제 며칠 전에도 직업이 약사인 엄마가 아이가 열이 나니 독감을 예상하고 병원 진단은 안 받고 약만 먹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왜 병원 진단을 안 받느냐고 부모를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아플 때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있으면 아이를 맡길 수 있을 테지만 주변에 도와줄 지인이 아무도 없으면 곤란하다. 나 역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친정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를 맡길 수 없다. 특히 감염병의 경우는 아이보다 더 취약한 노인이 된 엄마도 보호해야 한다. 나는 아이의 보호자이면서 엄마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학교에는 학교 돌봄 기능을 강화하는 늘봄학교를 운영 중이다. 아침 일찍 아이를 맡아주기도 하고, 오후 늦게까지 봐주고 밥도 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가 아플 경우나 사고를 당할 경우 아이를 돌보는 책임은 온전히 보호자의 몫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기쁜 일도 많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때때로 절망한다. 온전히 내 몫으로만 돌아오는 책임감의 무게에 숨쉬기 힘들 만큼 짓눌린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다 이런 일들을 겪고, 이런 무게감을 느끼며 아이를 키운다.
날씨가 추워지니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로 오는 아이들이 줄줄이 있다. 감염병 숫자는 줄어들지를 않는다. 오늘도 나는 보건교사로서의 책임감과 부모로 느끼는 공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보호자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독하게 하지 못하고 모른 척 눈감아 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아프지 않은 많은 아이도 질병으로부터 지켜야 하고, 아픈 아이를 돌볼 여건이 되지 않는 가정 상황도 이해한다. 아파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언제쯤 아프면 마음 편히 부모님의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때가 올지 생각한다.
행정실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출근한 직원을 보고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좀 어때요? 괜찮아졌어요?"
"월요일에도 열이 좀 났는데 해열제 먹여서 학교 그냥 보냈어요. 제 상황이 도무지 안 돼서요. 좀 아파도 참고 보건실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
하고 멋쩍은 웃음을 웃는다.
나는 아이가 얼른 낫길 바란다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아이는 자랄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 부모가 될 때는 적어도 이런 일로 마음이 힘든 일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이명옥
초,중,고에 다니는 세 딸의 엄마이자 초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금요일 오후 우리 학교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우리 막내가 오늘 열이 난다고 학교에서 전화가 와서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독감이래요. 독감이면 학교 못 가는 거 맞아요? 어떡하죠. 일이 많아서 출근해야 하는데."
"독감이면 열 내리고 48시간 지나면 등교할 수 있어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주사로 맞는 항바이러스제를 맞추고 지켜보세요. 열이 빨리 내리면 주말 지나고 등교할 수 있을 거예요."
온 식구가 독감에 걸려서 힘들었던 작년 우리 집 상황을 떠올리며 조언해 주었다. 다행히 나도 그렇고 우리 가족들은 방학 때 독감에 걸렸던 터라 등교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몸을 가누기가 힘들어 병원에서 권하는 비싼 마늘 주사까지 맞았다. 확실히 먹는 약보다 효과가 좋아 주사를 맞은 오후부터는 조금 살 것 같았다.
방학 때 석면 공사를 해야 해서 준비도 해야 하고, 1월에는 다른 학교로 전근해야 해서 인수인계도 해야 하는 직원은 마음이 초조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만 셋을 키우고 있어 아이들과 관련한 자잘한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을 터였다. 나만 해도 얼마 전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가 낙엽을 밟고 넘어져 발목 골절이 되어 일상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아이 셋을 키우는 직장맘으로 행정실 직원의 상황이 크게 공감되었다.
보건교사로 근무하며 이런 상황은 수없이 많이 맞닥뜨리게 된다. 감염병이 교내에 퍼지지 않도록 방역 총괄을 하는 나는 원칙적으로 감염병에 걸린 학생을 등교중지 시킬 수밖에 없다. 감염병 발생 대비 시나리오에 따르면 감염병이 의심되는 학생은 즉시 교실에서 분리하고 마스크를 쓰고 일시적 관찰실에서 기다리다 보호자와 함께 병원을 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학교에는 일시적 관찰실을 지키고 있을 인력도 없고 아픈 아이를 침대도 없는 일시적 관찰실에 앉혀둘 수도 없어 보호자가 오기 전까지 보건실에서 침상 안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들은 대개 바쁘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 대부분은 아이를 양육하며 집에서 지내던 엄마들도 일을 하러 나간다. 가정 상황을 봐줘 가면서 일을 시키는 직장은 드물다. 법에 따라 육아시간이며 돌봄 휴가를 쓰는 것이 합당하게 여겨지는 학교에서조차 학교 일이 먼저라 가정사로 조퇴를 쓰는 일은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돈을 받고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은 돈을 받지 않고 해야 하는 보호자로서의 의무감보다 무겁다.
아이를 키울 때 격리 기간이 정해져 있는 감염병이 제일 문제다. 보통은 하루 이틀 정도 휴가를 쓰고 아픈 아이를 돌본다고 해도 감염병의 경우는 격리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마음대로 학교로 보낼 수가 없다. 그래서 보호자 중에는 아이의 감염병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많다. 실제 며칠 전에도 직업이 약사인 엄마가 아이가 열이 나니 독감을 예상하고 병원 진단은 안 받고 약만 먹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왜 병원 진단을 안 받느냐고 부모를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이가 아플 때 할아버지, 할머니라도 있으면 아이를 맡길 수 있을 테지만 주변에 도와줄 지인이 아무도 없으면 곤란하다. 나 역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친정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를 맡길 수 없다. 특히 감염병의 경우는 아이보다 더 취약한 노인이 된 엄마도 보호해야 한다. 나는 아이의 보호자이면서 엄마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학교에는 학교 돌봄 기능을 강화하는 늘봄학교를 운영 중이다. 아침 일찍 아이를 맡아주기도 하고, 오후 늦게까지 봐주고 밥도 준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아이가 아플 경우나 사고를 당할 경우 아이를 돌보는 책임은 온전히 보호자의 몫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기쁜 일도 많지만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때때로 절망한다. 온전히 내 몫으로만 돌아오는 책임감의 무게에 숨쉬기 힘들 만큼 짓눌린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다 이런 일들을 겪고, 이런 무게감을 느끼며 아이를 키운다.
날씨가 추워지니 머리가 아프다며 보건실로 오는 아이들이 줄줄이 있다. 감염병 숫자는 줄어들지를 않는다. 오늘도 나는 보건교사로서의 책임감과 부모로 느끼는 공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다 보니 보호자들의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독하게 하지 못하고 모른 척 눈감아 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아프지 않은 많은 아이도 질병으로부터 지켜야 하고, 아픈 아이를 돌볼 여건이 되지 않는 가정 상황도 이해한다. 아파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언제쯤 아프면 마음 편히 부모님의 돌봄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때가 올지 생각한다.
행정실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출근한 직원을 보고 아이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는 좀 어때요? 괜찮아졌어요?"
"월요일에도 열이 좀 났는데 해열제 먹여서 학교 그냥 보냈어요. 제 상황이 도무지 안 돼서요. 좀 아파도 참고 보건실에 가지 말라고 했어요. "
하고 멋쩍은 웃음을 웃는다.
나는 아이가 얼른 낫길 바란다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아이는 자랄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 부모가 될 때는 적어도 이런 일로 마음이 힘든 일은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이명옥
초,중,고에 다니는 세 딸의 엄마이자 초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