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과 사랑

상담넷
2024-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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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조심스레 보건실 문을 열고 박 선생님이 얼굴을 내민다.

"선생님 안 바빠요?"

"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실은~내가~"하면서 하신 말씀은 팬덤싱어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포르테나’ 라는 4인조 성악 가수팀의 인기투표에 한 표를 던져달라는 부탁이었다.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회원가입 등 절차가 좀 까다로웠다. 그 까다로운 걸 내가 그 표를 던질 때까지 옆에서 조곤조곤 가르쳐 준다. 선생님은 휴대폰을 두 손으로 감싸안고, 얼굴은 발그레하고,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남편 만난 이후로 이렇게 가슴 설렌 적이 없었다며 열심히 포르테나가 어떻게 결성된 팀인지, 얼마나 감동적인 노래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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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용기를 준다.

교무실에 가니 박 선생님의 컴퓨터 바탕화면에 포르테나의 멤버 중 한 명인 서영택 님의 얼굴이 핑크빛을 내며 자리 잡고 있다.

"선생님 잘생긴 가수의 얼굴을 보니 제 눈이 다 환해집니다" 했더니 선생님의 얼굴빛이 또 빛난다.

"진짜? 나 선생님이 한 말, 팬 카페에 올려야지~그러면 또 댓글들이 쫙~달려요"

"팬들이 엄청 많은가 보네요?"

"네~그럼요. 제 또래 아줌마들도 많답니다"

 

사랑은 서로를 알아본다.

선생님은 그 뒤로도 결승전이 있는 주말에 투표를 부탁한다며 학교 온 교직원들에게 "포르테나 우승 축하"라는 글자가 박힌 떡을 돌렸다. 문자와 메신저로도 메시지가 왔다. 결승이 끝나고 출근했을 때 찾아보니 아쉽게 그 팀이 떨어졌단다. 상심이 컸을 거로 생각해서 말도 못 붙이고 있는데 의기소침한 모습은 아니었다. 원 없이 최선을 다해 응원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우승을 하면 음반을 만들어 준다고 했는데 거기서 안 만들어주면 팬들이 모여서 만들어주면 되지 뭐... 한다.

 

덕질이 평생 처음이라는 박 선생님은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볼 때마다 실실 웃음을 흘리고 다니시는 모습이 정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인다. 무언가에 빠져 있으면 저렇게 사람이 빛나는구나 싶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학교 금연의 날 행사로 인스타그램 사진틀을 들고 금연 다짐 사진찍기 행사를 했다. 전시를 끝내고 아이들에게 사진을 찾아가도록 했다. 박 선생님도 그날 사진을 찍으셨다. 박 선생님이 마침 지나가시길래 사진을 떼서 드렸다.

"선생님은 웃는 모습이 참 예쁘세요. 사진이 너무 잘 나왔어요"

"실은 내가 환하게 잘 못 웃었어요. 광대뼈 때문에"

"왜요? 광대뼈가 어때서요?"

"안 그래도 광대뼈가 툭 튀어나왔는데 웃으면 광대뼈가 더 도드라져 보여서.."

"네? 그게 선생님 웃을 때 매력인데요?"

"안 그래도 이젠 자신 있게 웃으려고요. 실은 내가 좋아하는 포르테나 영택 님이 자기도 광대뼈가 매력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사람이 광대뼈를 매력이라고 말하니까 진짜로 광대뼈가 매력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광대뼈가 닮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그동안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광대뼈가 다시 생각하니 매력으로 보이네. 참 이상하죠. 광대뼈는 그대로 있는데 생각하는 게 바뀌니 웃는 것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어요"

 

 사랑은 참 힘이 세다.

OO야..뭐 하고 있어 아직도 자는 거야? 일어날 시간이야~얼른 일어나~"

웬 남자의 목소리가 큰아이의 방에서 들려온다.

이 눔의 자식 새벽까지 남자 친구랑 전화질인가 싶어 들어가 보니 아이는 자고 있고 핸드폰만 울린다. 알고 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의 목소리다. 알람 소리도 가수 오빠의 목소리로 지정을 해 두었다. 카톡을 열어보니 온통 팬카페 회원들과 하는 오픈 채팅방이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 달력, 브로마이드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어딜 나가도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다니며 노래를 듣는다. 차 안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린다. 하루가 멀다고 굿즈 택배 상자들이 도착한다. 한심하다. 맨날 용돈 부족하다고 하면서 이런데 돈을 쓰는구나. 대놓고 말은 못 했다. 중2병이 도질까 봐서였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무언가에 푹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어떤 것을 제대로 알려면 푹 빠지지 않고서는 안된다. 사랑을 실컷 주어본 아이가 사랑받을 줄도 알겠지. 무언가에 푹 빠져 보았으니, 미련이 없겠지. 아이의 덕질을 힘껏 응원하진 못했지만 모른 척하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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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 이명옥

초,중,고에 다니는 세 딸의 엄마이자 초등학교 보건교사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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