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몬드』를 읽고 – 나는 이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었을까

상담넷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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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와 ‘곤’이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윤재는 어려서 ‘알렉시티미아’, 우리 말로 ‘감정 표현 불능증’을 진단받은 아이입니다. 표현 불능이라고 하지만 표현을 못 한다기보다는 잘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꼭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의 크기가 작아서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를 잘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윤재도 남들이 왜 웃는지 왜 우는지를 모릅니다. 윤재 엄마는 아이에게 ‘교육’을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짓는 표정과 하는 행동들의 의미에 대해서, 보통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습득할 규범들을 하나하나 암기하며 윤재는 학교생활을 시작합니다.


‘친구들이 새로운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보여주며 설명할 때 그 애들이 진짜로 하고 있는 건 설명이 아니라 ‘자랑’이라고 했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그럴 때 모범답안은 “좋겠다.”였고, 그게 뜻하는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엄마가 알려주는, 아이들의 말 속에 담긴 ‘참 의미’와 그에 대한 ‘바람직한’ 대답들을 외우며 ‘튀지’ 않는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던 17살 생일날, 윤재는 뜻밖의 사고로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와 엄마를 잃게 됩니다. 장례를 지내는 동안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윤재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수근거립니다. 그리고 윤재 앞에 나타난 아이, 곤이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와 헤어져 소년원까지 갔다가 교수인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만 아이는 아버지가 ‘꿈꾸었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 힘든 아이 윤재,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보살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랐던 아이 곤, 이 두 아이가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소설은 이어집니다.


작가는 아이를 낳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 그 질문에서 출발해서 ‘과연 나라면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의심할 만한 두 아이, 윤재와 곤을 만들어냈다고 말입니다.


저는 소설을 읽을 때보다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더 많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 하나의 노력으론 어찌해볼 수 없을 것 같은 병명을 진단받은 아이, 어려서 잃어버렸다가 십몇 년 만에 겨우 찾았지만, 세상의 규율에서 이미 너무 많이 벗어난 것 같은 아이가 내 아이라면 나는 그 아이들을 무조건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처음 윤재의 캐릭터를 보고서는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인가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 윤재는 타인의 감정을 ‘알기’ 위해 엄마가 가르치는 내용을 충실히 외웠고, 곤을 만나면서부터는 타인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윤재가 이렇게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옆을 지키던 엄마와 그를 ‘예쁜 괴물’이라고 부르던 할머니 덕분이었습니다.


윤재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그에 반해 곤에게는 끝까지 손을 잡아준 부모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인 윤 교수는 수학여행에서 도둑 누명을 쓴 곤의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학교에 찾아와 바로 없어진 돈을 갚아줍니다. 곤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 남자는 말이야.....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그 사람은 내 인생에 시멘트를 쫙 들이붓고 그 위에 자기가 설계한 새 건물을 지을 생각만 해. 난 그런 애가 아닌데.....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사니지.’


곤 뿐만 아니라 소설 속 다른 등장인물인 ‘도라’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달리기를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뛰어서 뭐하냐고. 어차피 어른 되면 신호등 바뀌기 전에 뛰는 거 말곤 평생 달릴 일 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모에 관해서지요. 어쩌면 저도 소설 속 아이들의 부모처럼 아이를, 아이라는 ‘존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꿈꾸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고개를 젓기도 했습니다.


윤재는 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곤이가 대체 어떤 앤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단지 아무도 곤이를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한 인간으로, 다른 존재에 대해 가지는 편견 없는 시선은 어쩌면 기본적인 예의일 텐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부모로서 아이를 바라볼 땐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내’ 자식이라는 안경을 먼저 쓰게 되곤 합니다. 그 안경을 쓰고서는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세상밖에는 볼 수 없는데 말이죠.


작가의 말에서처럼, ‘성장기에 받는 응원과 사랑, 무조건적인 지지’가 ‘한 인간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세상을 겁 없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주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바로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깁니다. 그렇게 손을 잡고서 내가 ‘꿈꾸는’ 모습을 덧씌우지 않고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도록 노력하는 것,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께,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들께, 이웃집 아이와 함께 살아갈 모든 어른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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