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수 세계 1위, 덴마크인 상사와 일을 하게 되면

상담넷
2021-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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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식 열풍이 뜨겁다. 반가운 사실은 세계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그 신성장 산업에 대한민국 기업들이 주요한 벨류 체인을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은 미래의 성장을 선반영하기 때문에 주식 투자자들은 아무래도 해당 기업의 내부 종사자들에게 최신 동향을 귀동냥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막상 해당 기업의 직원들에게

 “야 너네 회사 어떠냐? 잘될 것 같냐?”

 라고 물어보면 다들 고개를 젓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사주를 받아도 오래 들고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잘나가는 기업의 내부 직원이 정작 회사의 미래를 믿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우리 회사 대표를 아는데, 내가 우리 회사 임원들 상사들을 아주 잘 아는데…,’ 다!!!! 또라이들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말들은 주식 투자자들 사이의 우스개 소리이기는 하다.

 

기업의 가장 큰 복지는 좋은 상사라고 한다. 나는 리더십만큼 팔로우십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순서를 매기자면 단연코 리더십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만난 리더십들 즉 상사들의 뒷담화를 하고 싶어서다.

 

 나는 수많은 한국 상사들, 소수의 미국인, (홍콩계) 캐나다인, 몇몇 독일인 그리고 단 한 명의 덴마크인 상사와 일을 해 보았다. 뒷담화를 하기에 앞서 내가 겪은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그렇게 편협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직장인이었다면, 나의 경험과 너의 경험이 묘한 교집합을 이루면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급의 공감대를 형성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행복지수 세계 1위 덴마크인 상사를 만난 나의 행운에 끝없이 공감할 것이다.

 

 내가 덴마크인 상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내 커리어 인생의 최대 암흑기였다. 이전에 내가 다니던 회사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명제의 직장판처럼 인간 악화가 인간 양화를 하나씩 둘씩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인간 악화들이 일제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게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한다.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단연코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얼마나 많은 무고한 동포들을 거리낌없이 짓밟았을 것 인가! 고작 당장의!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결국에는 비대해 졌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능력을 잃어버린 공룡처럼 그들이 주축이 된 회사는 한국 시장에서 고사하게 되었다.

 

 이제 덴마크인 상사의 이야기를 하겠다. 그는 내가 어렵사리 취업한 새 회사의 대표였다. 라인을 타야 하고 정치적 감각?을 갖추어야 하는 큰 기업보다 작은 기업에서는 인정받을 자신이 있었다. 나는 야근 불사하는 성실함에 일머리도 꽤나 있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덴마크인 상사는 더 빨리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야근하는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너 집에 안 가고 뭐하고 있니?’

나는 속으로 뿌듯해 하며 이러저러한 업무를 마치고 가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전의 한국 상사들과는 달리, 아니 심지어 홍콩계 캐나다인 상사와도 달리 덴마크인 상사는 나의 성실성에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아니 관심도 없었다. 대신 네가 일을 하는 근원적인 목적이 뭔 지, 네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과 그 아이들 과의 시간으로 빨리 복귀하라는 짧은 경고를 날리더니 부리나케 퇴근해 버렸다. 

‘뭐 지? 멋짐 코스프레인가? 충성도 테스트인가?’

 

이후 나는 덴마크인 상사의 직원 운영 노하우를 점차 알게 되었다. 먼저 실력 있어 보이는 직원을(매우 충동적으로) 선택한다. 그리고 나이나 성별을 따지지 않고 책임자급 자리를 맡긴다. 그리고 그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실 덴마크인 상사는 산타 할아버지 같은 미소와 인품을 갖춘 반면 치밀하지 않고 허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그 상사는 일본 지사와 한국 지사를 동시에 맡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방식,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재량권을 허용하는 방식은 한국에서 유달리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심리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지금 돌아보면 각 영업 팀장, 기술 팀장 마케팅 팀장 할 것 없이 덴마크 상사는 그들의 정신적 아버지 역할을 했고 각 팀장들은 나를 믿어주고 북돋아 주는 그 정신적 아버지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아까 덴마크인 상사가 실력 있어 보이는 직원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래 실력 있는 사람들이니까 믿고 맡길 수 있지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회사는 규모가 큰 것도 급여가 높은 곳도 아니었고 인력 구성원들 스펙이 좋은 회사도 아니었다. 게다가 덴마크인 상사는 즉흥적인 성격이어서 금방 사람을 믿고 금방 사람을 좋아하는 허술한 관리자였다. 조금만 겪어보면 알 수 있는 그러한 허점 들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인 상사는 대표로서 정신적 아버지로 서의 위엄과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표의 감정적이거나 선심성 결정을 아래 담당 책임자가 거부하더라도 그 결정이 합당하면 담당 책임자의 결정대로 회사는 굴러갔다. 그의 권위는 그가 절대선이거나 절대 정의 여야 하는 지질한 성질이 아니었다. 담당자의 업무 재량을 우선 인정해주었고 대표를(아버지를) 꺽을 수 있음을 격려해 주었기 때문에 존경으로 유지되었다. 아래 직원의 공을 빼앗아 자기 실적으로 어필하는 상사들, 내가 웃 사람이니 난 가르치는 역할만을, 내 말만이 정답 이어야만 하는 상황극으로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상사들만 보아온 나에게 덴마크인 상사는 새로운 인간형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덴마크인 상사와 일한 회사와 업계에는 큰 파고가 닥쳤다. 특히 우리가 임차해 있는 건물은 우리 업계의 부품 쪽 회사였는데 그쪽의 타격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다급해진 건물주는 우리 회사에 터무니없는 임대료 인상과 보증금 인상을 요구했다. 우리 회사가 건물 1층에 엔지니어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그 안의 기계 장비들은 하중 문제로 기준치 이상의 지반을 필요로 하며 특성상 이전의 어려움이 있다는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덴마크 상사는 독일 본사에서 자금을 차입해서 건물주의 요구를 허용하겠다는 결정을 했다. 내가 판단하기에 단순한 비용 문제를 떠나 리스크가 너무 큰 결정으로 보였다.

 

‘가만 보자. 전에도 대표가 결정한 사안을 담당 팀장이 뒤집었는데도 아무 문제없었다며…’

이전 직장에서도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나는 말했다.  ‘아니요.’

그래서 나는 항상 성격 드센 여자, 아웃 사이더, 저만 잘난 애 소리를 듣고 승진에서 밀렸었다. 든든한 스펙도 없이 맞는 소리를 했다 가는 성질 더럽고 이상한 여자가 된다는 선험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요.’

라고 말해보았다. 수줍게.

 

그리고 몇몇 담당자끼리 모여 머리를 짜낸 다음, 우리가 업황의 타격으로 트레이닝 센터를 폐쇄하기로 하고 사무실을 이전하겠다는 헛소문을 흘렸다. 그리고 당장 유동성이 마른 건물주에게 임대차 계약 조항에 명시된 바 대로 이전 요구 시 보증금의 일부 반환을 이행하라는 ‘쇼’를 했다. 건물주는 알면서도 속아줄 수 밖에 없었고 보증금 현행 유지와 약간의 임대료 인상으로 그 건은 마무리를 했다. 이후 인건비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업 운영으로 건물을 올렸다던 전형적 코리안 스타일 건물주이자 사장은 끝까지 거래처와 직원들에게 무책임하게 응하다 결국 파산했고 건물은 경매 진행되었다. 다행히, (순전히 내 덕분에!), 우리 회사는 보증금을 떼이지 않고 경매 조정 기간에 임대료와 보증금을 상쇄한 뒤 안전 탈출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나의 덴마크 상사는 금융위기로 삭막해진 본사의 자금을 헛되이 날리는 우를 범하지 않았기에 그 불경기에 그의 자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학벌도 영어실력도 별로인 재무팀장을 믿고 모든 일에 재량권을 주었다. 내가 업무적으로 어이없는 실수를 했을 때 그의 꾸중은 짧고 간결했다. 덴마크인 상사는 성숙한 어른처럼 나의 업무 역량이 자라도록 믿고 기다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자질 중 가장 최고치를 발휘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진 보잘것 없었던 자질들은 그를 만나 영양분을 공급받듯 제대로 자라났나 보다.  그것은 인간적으로도, 십여 년이 지난 아직도 울컥할 만큼 감동적인 교류였다.

 

아쉽게도 내가 그와 근무한 기간은 2년이었다. 그렇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 졌지만 나의 아들에겐 너무 늦은 시기였고 어느 날 아이가 학교를 가지 못하면서 나도 회사를 나갈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두려울 만큼 어두운 시기였다.  인생의 암흑기에서 울부짖는 아이를 보듬을 때, 도저히 어쩔줄을 모를 때, 그때 나는 문득 덴마크인 상사를 떠올렸다.

 

믿고, 기다려 주고 자율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해주기.

 

2021.01.30. 헬로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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