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상담넷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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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집이 시청 근처라고 했니? 나 이 근처에서 강의가 있어서 왔는데, 시청이 보이네.”

 

사람이 만나려면 이렇게도 보게 되나 보다. 삼십년 전 그 선배와 마주 앉아 있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지금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다 해도 국문과를 나온 여학생이 취업할 곳은 그때도 없었다. 나는 그 선배를 앞에 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답함과 매번 거절 당하는 나의 이력서에 대한 분함으로 끝내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었다. 나야 카페안의 사람들이 흘깃 흘깃 쳐다보거나 말거나인 심정이었지만, 앞에 눈물을 흘리는 여자와 마주 앉은 선배는 좌불안석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결국 그 선배는,

 

“정은아, 내가 네 취업을 도와줄 순 없지만, 너한테 남자는, 될 때까지 소개팅을 해줄께!” 라는 보험팅(당시 취업이 안되면 취집이라도 가능하도록 될 때까지 밀어주겠다는 소개팅을 이름)을 약속하고 말았다.

 

이후 나도 어찌 어찌 취직을 했고, 그 선배도 그때의 약속을 착실히 지켜 내 수많은 소개팅 지분의 70프로 이상을 기여했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은 것도 많은 나에게 성격 파탄이 아니냐며 그 선배가 해준 마지막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지금 우리집 소파에서 졸고 있는 내 남편이다. 그러니 집 근처에 들른 선배를 식사 대접도 하지 않고 보낼 수는 없었다.

 

학교 다닐 때 둘이 좋아하는 사이 아니냐는 소문이 났을 정도로, 낯가림이 심한 내가 유독 따라다닌 선배였다. 얼마 전 병석에 오래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병간호하는 엄마를 뵈러 친정에 들렀다가 며칠 전 그 선배를 보았노라 얘기가 나왔다. 아는 이름이 나와선지 엄마는 물으셨다. “너 걔 좋아했니?”

 

나는 대답했다.

“엄마, 나는 내가 얘기를 하면, 그 선배가 응 그러니~ 그랬구나~ 라고 받아주는 게 좋더라.”

 

엄마는 “그래. 네가 그 때 집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었지. 엄마 아빠가 너무 많이 싸우고 해서... 미안하다.” 라며 눈물을 보이셨다. 나도 덩달아 엄마에게 미안해져서 늙고 주름진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아니야 엄마, 날 이렇게 예쁘게 낳아줘서 고마워.”라고 말했고 엄마는 현실 웃음이 빵 터진 듯 한참을 깔깔 웃어 대셨다. 낳아준 친엄마인데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시 선배와 만난 이야기를 해야겠다. 사실 그 선배는 내 친구를 몹시 마음에 들어했는데, 내 친구는 그렇게 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예민하고 섬세해서 사람의 마음을 곧잘 읽어주는 다정함이 있는 만큼, 그의 예민함과 섬세함은 거절 당하는 상황을 몹시 불편해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깔끔하게 좋은 이미지로 남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삼십년이 지나 다시 만난 자리에서도 여전히 그때 내 친구의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내가 선배에게 “계속 그 때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고 정리하고 싶은 것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 아니야?” 라고 말하니,

그 선배가 멈칫하며 불교대학을 졸업하고 매일 108배를 하는 자신보다 깨우친 것 같다며 너도 불교 대학 다녔냐고 물었다.

 

나는 불교 대학 안가도, 아들이 속을 썩이기 시작하면 얼마나 번뇌의 지옥에서 뒹굴며 처절하게 자기 탐색을 하게 되는지, 그 고난의 수행 기간은 끝도 없는 것 같이 길었고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비로소 얻어지게 되는 것인지를 말했다.

 

내가 그래 그랬구나~ 라고 말하는 선배를 무의식적으로 아빠처럼 오빠처럼 따라 다녔으면서도 막상 내가 낳은 아이에게는 그래 그랬구나~ 라고 따뜻하게 말하지 못한 것도 생각났다. 그저 어떻게 하면 아이가 똑똑하고 공부를 잘하고 남의 눈에 엇나지 않을지가 우선이었던 미숙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이가 마음의 병이 생기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원시적인 분노를 터뜨릴 때에도 나는 아이의 치료를 하나의 과제처럼 여겼던 것은 아닌가 후회하게 된다.

 

이제는 옛일처럼 이야기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미성숙함이 아이를 외롭고 결핍되게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보았다.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원가족으로부터의 사랑이 내가 느끼기에는 다소 부족했어도 좋은 친구들이 있었고 언니 오빠 역할을 해주던 선배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내가 받아야 할 몫만 갈증을 냈었던 것 같다.

 

고3인 아들이 입시를 앞두고 있다. 아이는 벌써 재수 계획부터 세우고 있다. 늦게나마 공부를 하기로 작정한 듯 보였는데, 나름 열심히 하느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수시 원서를 쓸 곳이 마땅치 않다.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에 몰래 눈물도 났다. 생각해보면 그 옛날 그 선배도 나보다 아주 조금 어른이었을 뿐이었는데 ‘왜 넌 더 열심히 잘 준비하지 못했냐’는 질책 대신에 엉뚱한 제안으로 나를 달래주었다. 피식 웃고 나도 어떻게든 취직할 궁리를 다시 모색했던 것 같다. 내가 받은 사랑만큼이라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인 내 아들에게 베풀어 주어야겠다.

 

문득,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고마움이 느껴진다.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자원이 되어 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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