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언어

상담넷
2020-07-01
조회수 643

고2가 되어서야 공부하겠다고 날밤을 새기 시작한(낮에는 잔다) 아들에게 말했다.

'엄마는 성적보다 네가 건강하고 행복한 게 중요해''

'일생에 도움 안되는 소리 하지좀 마요.''

이래서야 얘가 서울대를 간다 하더라도 아무도 나의 교육철학이나 방침을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영향력이란건 사소하다 못해 미약하다

아들이 크기 전까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고
믿는 대로 크리라는 환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아주 일찍, 크고 심하게 그리고 아프게 깨진 환상이었다. 그 환상이 깨질때 같이 깨진 것이 하나 더 있다. 가족의 언어안에 갇힌 나의 무의식.

'아들은 내가 못다한 무언가를 대신 이루어줄 존재'

아들이 내내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
게임으로 날밤을 새고 일어나지 않았을 때,
엄마 등에 빨대 꽂고 편히 살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속을 긁을때, 내 마음 속에선

'저 쓸모없는 놈'

이라는 속삭임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었다. 왜인지 익숙한 그 문장.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그 환상을 깰때마다 저! 저! 쓸모없는 놈'' 이라고 끌탕을 하곤 하셨다.
딸은 큰 쓸모가 없어도 되는 존재였기에 내게는 너그러우셨지만, 그렇게 자란 나도

'나는 스페어타이어가 아니야'

라며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몸부림쳤다.

어리다라는 말은 어리석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어리다는 것은 어리석은게 당연한 시기이고
부족하고 모자람이 자연스런 시기이다.
성장을 위한 시간을 수용하지 못하고 아이가 얼마나 좋은 결실을 낼지 성마른 테스트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한다.

요즘 남편이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을 한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초기 디스크 증상같다.
물리치료도 받고 침도 맞자고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를 않는다.

''그래 맘대로 해! 언제는 자기가 내 말 들었냐.
내 말 들은 건 결혼하자고 한 거 하나밖에 없네.

'' 그럼 성공했구먼''

내 대답은 '' 그래서 고맙다고 했잖아.''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과 결혼해서 살면서 고마운 이유는 한가지다. 남편 가족의 언어때문이다.

명절에 시댁에 식구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는
매번 이 테마 일색이다.

'나는 바보다. 그래도 괜찮다'

애 학교 시험감독하러 갔다가 다른반으로 들어가놓고 난 제대로 들어왔다며 우긴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 괜찮다.
시골사람으로 베스킨라빈스 처음 먹어 본 얘기가 나오면 다같이 시골뜨기가 되어 자신의 어리숙함을 앞다투어 폭로한다.

애 시험지에 비가 내려도, 애가 맞고 들어와도 때리고 들어와도 흉이 되지 않는다. 괜찮다 괜찮다.

나이도 학력도 재산도 사는 곳도 천차만별이지만 비교는 없다. 동서들도 다 자기가 결혼 잘했다고 한다.

물론 인생이 만만한 것은 아니어서 언제나 동화같기만 하지는 않다. 동화는 짧고 아름답지만
현실은 길고 잔인하다. 즐거운 명절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은 간절히 반갑고 마음이 바쁘다.

그럼에도 짧은 동화의 시간동안, 내면아이들이 어리석고 바보같고 실수투성이인 자신을 실컷 수용받으며 만족감을 느낀다.

잘나지 않아도 되는 주제와 그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화의 시간은 숨을 쉬게하고 위로의 순간이 되어준다.

결혼전 명절마다 '너는 반에서 몇등하니'
삼촌은 전교 7등으로 입학해서 2등으로 졸업했다' 는 레퍼토리를 듣고자란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들이 길고 긴 방황과 고난을 헤매일 때나 지금이나 남편은 한 번도 아들의 성적을 물은 적이 없다.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불운한 인생을 아들의 성적표로 보상받고자 하는 언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머님의 마음은 보상 이상의 것이 있다하더라도)

어머님의 세아들은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신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했다. 특히 장남인 남편은 어머니와 각별하지도, 어머니의 삶을 대리 효도로 보상해주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시어머님이 이점을 후회하시지는 않는지 가끔 궁금해진다. 시어머니 역시 아들로부터 독립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어머님이 전수받은 가족의 언어가
대대로 파탄으로 귀결될 수 있는 가족사를 구해낸 것이라는 것만큼은 믿음이 간다.

대단한 교육이나 기술을 쌓은 것이 아니다.
장남 만능주의 남존여비 사상을 극복한 것도 아니다.
그저 전해내려온 가족의 언어가 수용적이고 비교우위를 표현하는 화법이 없다.

아들에게 나는 훌륭한 어머니도 살뜰한 엄마도 되지 못한다. 아이는 내 교육철학에 관심도 없다.
그래도 이 가족의 언어만 물려주어도,
그것만 제대로 해도 나는 어머니의 몫을 했다고 자부해도 되지않을까 믿고싶다.

가족의 언어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별것도 없이 삶의 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2020.06.25. 헬로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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