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토록 기다렸던 선선함이 마음을 한껏 시원케 하는 9월의 한날, 효창동 작은 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용은중 선생님을 만났다. 용은중 선생님은 2013년부터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한 오랜 벗이자 활동가이다.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첫째, 고등학교 1학년인 둘째,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교 6학년 셋째와 함께 지금도 쑥쑥 자라는 중이라며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선생님의 미소가 가을의 선선함만큼이나 반가웠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저의 근간이죠!
김혜화(이하 김) : 선생님, 반갑습니다. 노워리 기자단 활동도 5년째 하고 계시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에 여러모로 힘을 보태고 계시는데 단체와 어떻게 만나셨나요?
용은중(이하 용)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3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세계관 강의가 열렸는데, 그때 전 대표이신 송인수 선생님을 뵈었어요. 경쟁교육으로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교육의 변화를 위해 애쓰는 단체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 막내가 제 뱃속에 있었고, 큰아이는 초등 1학년이었을 때라 교육에 한참 관심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이들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는 거였어요. 강의를 듣고 바로 후원 회원이 되었고, 이후에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좌들이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도움을 넘어서 저의 근간이 되었죠.
김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의들이 ‘근간’이 되었다니 더 궁금해져요.
용 : 네. 말 그대로 ‘근간’요. ‘아이들은 각자 다양한 모습이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메시지가 저에게 꾸준하게 영향을 주었어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고유함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마음이 저에게 있었는데, 단체의 강좌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더 분명해지고 확장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학업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그것의 성공 여부에 따라 사회에서 평가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렇죠.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받으며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겠죠.
김 :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받으며 사는 사회’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세 자녀와 함께 지내시면서 아이 개인의 고유함, 다양함을 매일 경험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용 : 맞아요. 첫째, 둘째, 셋째 정말 다 달라요. 첫째를 키우면서 저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자꾸 주려 하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어요. 아이의 마음을 살필 줄 몰랐죠.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제가 직장을 다녔는데, 주변 도움 없이 맞벌이를 하려니 체력은 바닥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많이 힘들어했고요. 그때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의들이 아이와 관계를 돌아보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마음의 주머니를 먼저 채워야 학습도 할 수 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는 활동도 좋지만, 아이와 눈을 맞추고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아이가 정말 잘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요. 아이도 잘 해내고 싶구나. 그 마음을 믿어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 마음을 살피고 내적 동기를 믿으면서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있어요. 올해 대학교 1학년 된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학교 공부도 잘하고 싶고 칭찬도 받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때가 첫째에게는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했던 시기였는데, 그런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아이가 해볼 수 있도록 믿고 도와주려고 했어요. ‘너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네 마음을 알겠어. 천천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이가 잘 못해도 정말 괜찮다. 그때는 아이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아이의 일상을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도 감사했죠. 첫째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첫째는, 바른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올해 고1이 된 둘째는 고교학점제가 시작되면서, 제가 보기에도 진짜 힘든 부분이 많은데 열심히 해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둘째는 불안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최대한 그런 상황을 대비하는 쪽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첫째와 달리 둘째는 마음을 살피는 과정에서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정해진 학습 환경이나 일정이 아이의 불안함을 줄여주더라고요. 그래서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카페도 가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희 막내는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참 예뻐요. 학교에서 선생님은 수업 기초가 안 되어 있다고 걱정하시기도 하는데, 아이는 자기는 자전거를 잘 탄다면서. 자기 삶에 대해 참 긍정적이에요. 첫째 둘째랑은 또 다르죠. 요즘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은데, 아직은 마냥 귀엽습니다.

아이를 진짜 믿는다는 건
김 :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생생하게 와 닿는 부분들이 많네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데 각각을 그대로 인정하시니까요.
용 :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제가 활동하는 마을 도서관에서도 받았고요. 아이들 덕분에 이런저런 공부도 하고요. 교육이나 심리 관련된 책은 다 아이들 덕분에 보기 시작했죠.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저를 키웠어요. 아이들이 모두 다르고 그래서 믿어주고 지켜봐야 할 부분도 미세하게 다른 것들이 있지만, 셋 모두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믿음은 같았어요.
김 : 아이를 제대로 바라봐 주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순간순간 불안하고 걱정이 앞서기가 쉬운 것 같아요. 아이의 내적 동기를 믿고 기다리다 아이가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는 않을까.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급해지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그런 시간을 어떻게 지나 오셨어요?
용 : 맞아요. 알면서도 어렵죠. 아이를 믿어준다는 것은 ‘아이를 믿어주면 결과도 좋을 거야’라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 같아요. 아이가 결과적으로 좋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니까 그걸 내려놓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하죠. 저의 경우에는 종교적인 신념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내가 아이의 삶 모두를 알 수 없고, 책임질 수도 없잖아요. 아이가 만나는 세상, 아이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인연을 통해 아이는 배우고 성장하기도 했어요. 큰아이가 고등학교 때 코스튬플레이를 열심히 참여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부산까지 가서 며칠 동안 행사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혹시 나쁜 어른을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밤중에 기차 타고 쫓아가 봐야 하나 고민도 했죠. 그런데 그때 첫째가 만났던 사람 중에 학습이나 진로에 대한 자극을 준 분도 있더라고요. 아이가 좋은 사람들만 만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아이는 그때도 마음 안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기준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어른들 사이에 생긴 갈등을 지켜보다 ‘그건 엄마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라고 팩트를 날리기도 하거든요. 부모가 생각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자라고 있어요.
또 저희 아이들을 보니까 누군가 말 한마디가 참 큰 것 같아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마을 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 있는데요. 이 모임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 바라보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넨 칭찬 하나에 아이들이 부쩍 크기도 하더라고요. 아이의 부모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했는데, 서로의 아이에 대해 같이 걱정하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어요. 그냥 바라봐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피드백도 해 주고요. ‘너한테는 이런 좋은 면이 있어.’ 그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죠.
저희 첫째가 중학생 때 고래이야기에서 하는 역사 기행을 제주도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어른들을 잘 따라다니고 질문도 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들이 어쩜 이렇게 잘 따라다니냐고 대견하다고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 짧은 순간에 아이는 쑥 하고 올라오더라고요. 저도 내가 보는 내 아이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아이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아이의 강점을 발견하고, 북돋아주는 경험들이 있었어요. 저에게도 힘이 되는 만남이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김 :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지속되는 안정적인 만남이 있고, 모두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셨다는 말씀이군요. 선생님께서 지금 활동하고 계신 고래이야기는 어떤 곳인가요?
용 : 고래이야기는 마을 작은 도서관이고요. 2009년에 만들어졌는데 저는 2016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전부터 마을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학교 밖도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큰 울타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교육청 공모사업에도 참여하고, 초장기에는 놀이터 활동에도 참여했어요.
고래이야기에서 활동하면서 마을 아이를 만나고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죠. 어린이나 청소년 말고도 어른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공동 밥상, 공동육아, 합창 모임, 글쓰기, 독서 모임… 작은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건 논의해서 다 해본 것 같아요. 지금은 ‘교육후견인제’라고 학교와 연계해서 위기 학생을 일대일로 지원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어요. 학교 밖 청소년도 연계하고 있고요. 오늘도 오후에 한 아이와 처음 만나는 날이에요.

김 :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네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그렇고 고래이야기도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선생님께서 이런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용 : 음, 동력이라면,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타성인 것 같아요. 내 문제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함께하면서 저도 더 단단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굉장히 유약한 사람이거든요.
김 : 누구보다 선생님이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신 거 같아요.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이미 살고 계시다고 한 선생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용 : 지금 우리나라 교육 현장은 불안이 지배하고 있어요. 좋은 경쟁은 건강한 거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경쟁은 나와 너를 깎아 먹는 경쟁이자 야만이잖아요. 그런 환경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그 마음 안에 있는 선한 의지까지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어떤 대학생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학업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져서 자기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자기가 타고난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부정당하고 오히려 패배감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 그런 경험을 학교에서 한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워요.
제가 꿈꾸는 미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곳이에요. 물론 이런 모습이 타인과의 소통을 뒤로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미래를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오히려 서로 도와 함께 성장하는 곳. 저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 그런 미래를 꿈꿉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 :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집에서도, 많은 활동을 통해서도 다양한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계신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용 : 근사한 프로그램도 운영해 보고 다양한 활동들도 참여해 봤지만, 시간이 지나니 남는 건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래이야기가 이제 10년 차가 되다 보니 처음에 엄마한테 업혀 왔던 아이가 키가 쑥 커서 오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놀이터만 오면 싸우고 지지고 볶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집에 틀어박혀 우울했던 선배가 자기 모습을 찾고 활발하게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래요. 저와 제 아이는 물론이고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 사람들을 마을에서 계속 볼 수 있는 게 가장 기쁘고 즐거워요.
고래이야기뿐만 아니라 쪽방촌에서 생활하시던 분이 자립하여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주하시는 것도 본 적이 있네요.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사회의 다양한 면을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전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도 하고.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러면서 저도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받는 사회’에 대해 더 알아가고 고민하면서 성장하는 중이고 많이 단단해졌죠.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과 배움이 있어요. 저는 아이들도 공부를 통해 그런 배움, 지식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
개인의 고유함과 다양함을 인정하면서도 더불어 함께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살고 있다는 용은중 선생님의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저마다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선생님이 그들에게 전했을 따스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이미 한 세상을 바꾸고 있음을 엿볼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한 만남이었다.
■ 인터뷰. 노워리기자단 김혜화
그토록 기다렸던 선선함이 마음을 한껏 시원케 하는 9월의 한날, 효창동 작은 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용은중 선생님을 만났다. 용은중 선생님은 2013년부터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함께한 오랜 벗이자 활동가이다. 올해 대학 새내기가 된 첫째, 고등학교 1학년인 둘째,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초등학교 6학년 셋째와 함께 지금도 쑥쑥 자라는 중이라며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선생님의 미소가 가을의 선선함만큼이나 반가웠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저의 근간이죠!
김혜화(이하 김) : 선생님, 반갑습니다. 노워리 기자단 활동도 5년째 하고 계시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에 여러모로 힘을 보태고 계시는데 단체와 어떻게 만나셨나요?
용은중(이하 용)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3년에 알게 되었어요. 제가 다니던 교회에서 세계관 강의가 열렸는데, 그때 전 대표이신 송인수 선생님을 뵈었어요. 경쟁교육으로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교육의 변화를 위해 애쓰는 단체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때 막내가 제 뱃속에 있었고, 큰아이는 초등 1학년이었을 때라 교육에 한참 관심이 많았거든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아이들이 태어난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는 거였어요. 강의를 듣고 바로 후원 회원이 되었고, 이후에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좌들이 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도움을 넘어서 저의 근간이 되었죠.
김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의들이 ‘근간’이 되었다니 더 궁금해져요.
용 : 네. 말 그대로 ‘근간’요. ‘아이들은 각자 다양한 모습이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 이런 메시지가 저에게 꾸준하게 영향을 주었어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고유함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마음이 저에게 있었는데, 단체의 강좌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들이 더 분명해지고 확장되는 부분도 있었어요. 학업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그것의 성공 여부에 따라 사회에서 평가를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렇죠.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받으며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겠죠.
김 :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받으며 사는 사회’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세 자녀와 함께 지내시면서 아이 개인의 고유함, 다양함을 매일 경험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아이들과의 관계는 어떠세요?
용 : 맞아요. 첫째, 둘째, 셋째 정말 다 달라요. 첫째를 키우면서 저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자꾸 주려 하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어요. 아이의 마음을 살필 줄 몰랐죠.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제가 직장을 다녔는데, 주변 도움 없이 맞벌이를 하려니 체력은 바닥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많이 힘들어했고요. 그때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들었던 강의들이 아이와 관계를 돌아보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면, 마음의 주머니를 먼저 채워야 학습도 할 수 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책을 읽는 활동도 좋지만, 아이와 눈을 맞추고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그렇게 아이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아이가 정말 잘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고요. 아이도 잘 해내고 싶구나. 그 마음을 믿어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들 마음을 살피고 내적 동기를 믿으면서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고 있어요. 올해 대학교 1학년 된 첫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학교 공부도 잘하고 싶고 칭찬도 받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때가 첫째에게는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했던 시기였는데, 그런 아이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아이가 해볼 수 있도록 믿고 도와주려고 했어요. ‘너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네 마음을 알겠어. 천천히 해보자.’는 마음으로 아이가 잘 못해도 정말 괜찮다. 그때는 아이의 마음을 채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아이의 일상을 함께 바라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도 감사했죠. 첫째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첫째는, 바른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했어요.
올해 고1이 된 둘째는 고교학점제가 시작되면서, 제가 보기에도 진짜 힘든 부분이 많은데 열심히 해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둘째는 불안함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충분히 이야기하면서 최대한 그런 상황을 대비하는 쪽으로 도와주고 있어요. 첫째와 달리 둘째는 마음을 살피는 과정에서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정해진 학습 환경이나 일정이 아이의 불안함을 줄여주더라고요. 그래서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카페도 가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희 막내는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참 예뻐요. 학교에서 선생님은 수업 기초가 안 되어 있다고 걱정하시기도 하는데, 아이는 자기는 자전거를 잘 탄다면서. 자기 삶에 대해 참 긍정적이에요. 첫째 둘째랑은 또 다르죠. 요즘 사춘기가 시작된 것 같은데, 아직은 마냥 귀엽습니다.
아이를 진짜 믿는다는 건
김 :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생생하게 와 닿는 부분들이 많네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데 각각을 그대로 인정하시니까요.
용 : 저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제가 활동하는 마을 도서관에서도 받았고요. 아이들 덕분에 이런저런 공부도 하고요. 교육이나 심리 관련된 책은 다 아이들 덕분에 보기 시작했죠.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저를 키웠어요. 아이들이 모두 다르고 그래서 믿어주고 지켜봐야 할 부분도 미세하게 다른 것들이 있지만, 셋 모두에게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믿음은 같았어요.
김 : 아이를 제대로 바라봐 주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순간순간 불안하고 걱정이 앞서기가 쉬운 것 같아요. 아이의 내적 동기를 믿고 기다리다 아이가 적절한 시기에 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는 않을까.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급해지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그런 시간을 어떻게 지나 오셨어요?
용 : 맞아요. 알면서도 어렵죠. 아이를 믿어준다는 것은 ‘아이를 믿어주면 결과도 좋을 거야’라는 기대를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 같아요. 아이가 결과적으로 좋길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니까 그걸 내려놓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하죠. 저의 경우에는 종교적인 신념도 작용했던 것 같아요. 내가 아이의 삶 모두를 알 수 없고, 책임질 수도 없잖아요. 아이가 만나는 세상, 아이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제가 생각하지 못한 인연을 통해 아이는 배우고 성장하기도 했어요. 큰아이가 고등학교 때 코스튬플레이를 열심히 참여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부산까지 가서 며칠 동안 행사를 하고 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거기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 혹시 나쁜 어른을 만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밤중에 기차 타고 쫓아가 봐야 하나 고민도 했죠. 그런데 그때 첫째가 만났던 사람 중에 학습이나 진로에 대한 자극을 준 분도 있더라고요. 아이가 좋은 사람들만 만나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아마도 아이는 그때도 마음 안에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기준을 가지고 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가끔 어른들 사이에 생긴 갈등을 지켜보다 ‘그건 엄마가 잘못 생각하는 거야’라고 팩트를 날리기도 하거든요. 부모가 생각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자라고 있어요.
또 저희 아이들을 보니까 누군가 말 한마디가 참 큰 것 같아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마을 도서관 고래이야기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이 있는데요. 이 모임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함께 바라보는 어른들이 많아지고, 그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넨 칭찬 하나에 아이들이 부쩍 크기도 하더라고요. 아이의 부모들도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했는데, 서로의 아이에 대해 같이 걱정하고 세심하게 바라보는 게 느껴졌어요. 그냥 바라봐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피드백도 해 주고요. ‘너한테는 이런 좋은 면이 있어.’ 그럼 아이들은 어른들의 그 말 한마디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죠.
저희 첫째가 중학생 때 고래이야기에서 하는 역사 기행을 제주도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어른들을 잘 따라다니고 질문도 하는 모습을 보고 어른들이 어쩜 이렇게 잘 따라다니냐고 대견하다고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그 짧은 순간에 아이는 쑥 하고 올라오더라고요. 저도 내가 보는 내 아이의 모습과 다른 사람이 보는 아이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아이의 강점을 발견하고, 북돋아주는 경험들이 있었어요. 저에게도 힘이 되는 만남이죠.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김 : 선생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지속되는 안정적인 만남이 있고, 모두의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되셨다는 말씀이군요. 선생님께서 지금 활동하고 계신 고래이야기는 어떤 곳인가요?
용 : 고래이야기는 마을 작은 도서관이고요. 2009년에 만들어졌는데 저는 2016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전부터 마을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학교 밖도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큰 울타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교육청 공모사업에도 참여하고, 초장기에는 놀이터 활동에도 참여했어요.
고래이야기에서 활동하면서 마을 아이를 만나고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죠. 어린이나 청소년 말고도 어른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운영했어요. 공동 밥상, 공동육아, 합창 모임, 글쓰기, 독서 모임… 작은 도서관에서 할 수 있는 건 논의해서 다 해본 것 같아요. 지금은 ‘교육후견인제’라고 학교와 연계해서 위기 학생을 일대일로 지원하는 활동에 주력하고 있어요. 학교 밖 청소년도 연계하고 있고요. 오늘도 오후에 한 아이와 처음 만나는 날이에요.
김 :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네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그렇고 고래이야기도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선생님께서 이런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용 : 음, 동력이라면,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타성인 것 같아요. 내 문제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함께하면서 저도 더 단단한 사람,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굉장히 유약한 사람이거든요.
김 : 누구보다 선생님이 ‘사회의 변화를 꿈꾸며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신 거 같아요.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이미 살고 계시다고 한 선생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용 : 지금 우리나라 교육 현장은 불안이 지배하고 있어요. 좋은 경쟁은 건강한 거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경쟁은 나와 너를 깎아 먹는 경쟁이자 야만이잖아요. 그런 환경이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그 마음 안에 있는 선한 의지까지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언젠가 어떤 대학생이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학업성취도가 높은 아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져서 자기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자기가 타고난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부정당하고 오히려 패배감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것. 그런 경험을 학교에서 한다는 것이 정말 안타까워요.
제가 꿈꾸는 미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곳이에요. 물론 이런 모습이 타인과의 소통을 뒤로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미래를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고 오히려 서로 도와 함께 성장하는 곳. 저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어요. 그런 미래를 꿈꿉니다. 지금도 어느 정도 그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 : 마지막으로, 선생님께서는 집에서도, 많은 활동을 통해서도 다양한 아이들을 꾸준히 만나고 계신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활동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이야기해 주세요.
용 : 근사한 프로그램도 운영해 보고 다양한 활동들도 참여해 봤지만, 시간이 지나니 남는 건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고래이야기가 이제 10년 차가 되다 보니 처음에 엄마한테 업혀 왔던 아이가 키가 쑥 커서 오고, 초등학교 1학년 때 놀이터만 오면 싸우고 지지고 볶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집에 틀어박혀 우울했던 선배가 자기 모습을 찾고 활발하게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래요. 저와 제 아이는 물론이고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 사람들을 마을에서 계속 볼 수 있는 게 가장 기쁘고 즐거워요.
고래이야기뿐만 아니라 쪽방촌에서 생활하시던 분이 자립하여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이주하시는 것도 본 적이 있네요.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사회의 다양한 면을 알게 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전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도 하고. 그런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그러면서 저도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받는 사회’에 대해 더 알아가고 고민하면서 성장하는 중이고 많이 단단해졌죠. 세상을 알아가는 기쁨과 배움이 있어요. 저는 아이들도 공부를 통해 그런 배움, 지식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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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고유함과 다양함을 인정하면서도 더불어 함께 성장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살고 있다는 용은중 선생님의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 저마다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선생님이 그들에게 전했을 따스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이미 한 세상을 바꾸고 있음을 엿볼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한 만남이었다.
■ 인터뷰. 노워리기자단 김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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