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작지역 등대모임과 관악지역 등대모임에서 활동하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오랜 후원회원으로 함께하고 계신 조혜영 선생님을 만났다. 세 자녀를 성인으로 키우는 동안 가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자, 지역 등대모임의 든든한 일원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다. 경쟁교육 속에서 겪었던 개인적인 좌절과 깨달음, 그 속에서 피어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실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9월 조혜영 선생님을 만났다.
송미소(이하 송) : 선생님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조혜영(이하 조) :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그게 완전히 무너졌어요. 특히 수학, 과학은 너무 어려웠고 모르는데 억지로 외워서 점수를 겨우 받았는데 잘하는 친구들 보면서 열등감이 점점 커졌죠.
송 : 그 시절이 꽤 힘드셨나봐요?
조 : 간신히 버티는 날들이었어요. 점점 ‘나는 공부 못하는 애’라는 생각에 갇혀서 친구들을 경쟁자로만 보고 학교에서는 누가 나보다 더 잘할까 경계했어요. 친구도 경쟁자일 뿐인 거예요. 그러니까 친구에 대해 아무 애정도 없이 경쟁의식으로 꽉 찼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보상이 점수 잘 나오고 등수가 높고 이런 거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했던 거죠. 공부를 잘하는 게 내 지상과제라 생각하고 거기에 매달렸어요. 쉬는 시간에도 단어 외우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요새 학교 다녔으면 완전 왕따였겠지. 그래도 애들이 순진해서 공부 잘하면 쟤는 그냥 원래 그런 애인가 보다 했고. 착한 애들 몇 명이랑 이야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지냈어요. 집에서도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 아무도 말을 안 걸어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말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날도 있었죠.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송 : 의대에 진학하게 되신 건 어떤 동기였나요?
조 : 어릴 때 TV 다큐멘터리에서 한 여성 의사를 본 적이 있어요. 장애가 있는 분이었는데,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위해 진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죠. 그게 마음속에 남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가 너무 어려워 자신이 없었어요.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인데, 의사가 될 수 있을까 계속 의심했죠.
송 : 의대 생활은 어떠셨나요?
조 : 정말 쉽지 않았어요. 처음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대인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버거웠고, 거의 대인 공포 수준이었죠. 그러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돌아보게 되었어요. 저는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고, 그게 결국 경쟁 중심 교육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받은 교육이 점수 중심 교육이었고, 친구들은 전부 경쟁자였어요. 애정도, 대화도 없이 살아온 거죠. 경쟁교육의 결과가 바로 저였던 거예요.
송: 그러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조: 내가 경쟁교육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새로운 교육이 시작될 거라 기대했어요. 막상 애를 낳아서 키워보니까 원래 제가 갖고 있는 경쟁심이 있더라구요. 우리 엄마들 모두에게 내 자식이 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같은 해에 태어난 조카들까지 서로 비교하게 되니까 그게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기쁜 것보다도 늘 뭔가 불만스럽고 우울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교육이 진짜 문제인 건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방법도 없고 그렇게 막막하던 차에 라디오에서 송인수 선생님 인터뷰를 들었는데 귀가 번쩍 뜨였어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그 말 자체도 너무 좋았고요.

후원회원이 되고 보니, 단체에서 ‘등대지기학교’라는 부모교육이 있다는 거예요. 제가 그동안 살아온 삶은 굉장히 폐쇄적이었어요. 의과대학 나와서 트레이닝 받고 병원 생활하다 개원하고 진료실에 앉아 있다가 끝나면 집에 가고 그 사이에 애 셋 낳고 키우면서 집과 병원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했죠. 가끔 몇 명 안 되는 친구 만나는 게 사회생활의 전부고요. 이런 생활만 하던 내향적인 제가 등대지기학교에서 열리는 대면모임에 나가려니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교육을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교육을 바꾸려면 다같이 힘을 합쳐야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 만나야 되는구나 싶었어요. ‘혼자 댓글 다는 걸로는 안돼. 이제는 나가야 돼. 어떻게든 한번 부딪혀보자!’ 생각하고 등대지기학교 졸업 여행에 나선 거죠.
송 : 졸업여행에 막상 가 보니 어떠셨어요?
조 : 등대지기학교와 이어지는 여러 강의들, 그리고 지역등대모임에서 책 같이 읽고 토론하고 이런 게 다 교육이잖아요. 내가 받고 싶었던 교육을 정작 학교에서는 제대로 못 받았던 게 항상 허전하고 억울했는데 사교육걱정에 오니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여기에서는 배운 걸 평가하고 탈락시키고 그러지도 않고요. 내가 배우고 싶은 걸 선택해서 듣고 그 속에서 사람 사이에 관계 맺는 경험도 연습했어요.
처음에는 모임 전날, 긴장 돼서 아프기도 했어요. 제2의 학교 같은 느낌이랄까요. 애들 교육 고민 때문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 속에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드니까 만족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제 회원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모임을 오래 하다 보니 교육 관련 책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책들을 같이 읽고요. 그러다 보면 아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 시야가 점점 넓어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삶의 동반자인 좋은 친구들을 만났어요.
송 : 가족들과 갈등은 없으셨나요?
조 : 많았죠. 저는 ‘공교육을 지키자’, ‘입시보다 아이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족 안에서는 늘 소수의견이었어요. 아이들도 “엄마는 너무 이상적이야”라며 제 의견을 부담스러워했고요. 10년 전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가 위기였어요. 당시에는 일반고 진학이 대학입시에는 다소 불리할 수 있지만 아이의 성장에는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자사고가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가정 아이들이 모이니 다 비슷비슷하더라고요.
고민거리도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서 선민의식도 생길 수 있겠다. 어려운 거 모르고 애가 클 수도 있겠고. 대학 서열 높은 데 안 가더라도 일반고 가서 다양한 경험하고 친구 넓게 사귀는 게 아이의 인격 형성에는 훨씬 좋다고 생각했는데 남편하고 뜻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그래서 한참 싸웠어요.

"나, 일반고 안 갈 건데?"
송 : 가족 내 위기였네요?
정 : 그때가 우리 단체에서 자사고 외고 등 특권학교 폐지 운동을 할 시기였어요. 만약에 우리 애가 자사고에 진학하면 나의 사회생활은 끝이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우리 지역모임 회원들을 볼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근데 남편과는 도저히 의견이 좁혀지질 않아서 애한테 물어봤어요. 아들도 “나, 일반고 안 갈 건데?” 그러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고등학교 교실 수업 시간에 애들이 자고 몇몇 애들만 일어나서 수업하는 사진을 보여주셨대요. 그러면서 ‘이게 일반고의 현실이야. 일반고 가면 인생 끝나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죠. 큰애가 지금 27살이니까 딱 10년 전 일이에요. 아이부터 일반고 갈 생각이 없더라고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 말씀 잘 들었듯 우리 애도 그런 성향이고, 제가 사교육을 안 시키니까 ‘얘야 너는 학원도 안 다니니 선생님 말씀 열심히 잘 들어야 된다’고 했더니 비판 의식 하나 없이 결국 자사고로 갔어요. 저에게 정말 위기였어요. 지역모임 갈 때마다 면목이 없어서 한동안 힘들었고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 고백하고 말았죠. 근데 모임원들이 다 포용해 주더라고요. ‘자식 일이 마음대로 되나요?’하면서요.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모임도 다 탈퇴하려고 했어요. 단체 활동을 하면서 겪은 유일한 위기였죠.
송 : 그럼에도 오랜기간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동력이 뭘까요?
조 : 교육이 곧 나의 문제였기 때문이에요. 단지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내가 받은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컸죠. 이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사회 자체가 둘로 나뉘어져서 서로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어요. 이렇게 생각이 갈리는 문제를 내 가정 안에서라도 화합하려고 노력하면 이것도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견뎠어요. 가정 안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뜻 맞는 사람들이 저를 붙잡아줬죠.


송 : 지금 우리 단체에는 어린아이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함께하고 있잖아요.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아이를 키우는 후배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조: 저는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보다, 아이가 잘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성장의 핵심은 자기주도성이에요. 아이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어려서부터 자꾸 해봐야,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아이를 존중해주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결정권을 조금씩 넘겨주는 것이 중요해요. ‘이게 좋다, 저건 하지 마!’ 이렇게 일방적으로 막기보다는, “그 길을 가고 싶구나. 그럼 어떻게 해보고 싶어?” 이렇게 아이에게 묻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실패 역시 아이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진짜 자기 힘이 되는 거잖아요. 부모는 그저 조력자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요.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어떤 대학을 갔는지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결과라고 믿어요.
송: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조: 의사로서 보람 있게 산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요. 지금의 의료 시스템은 ‘얼마나 환자를 많이 보느냐’가 수입과 직결되는 구조예요. 간단히 증상 애기하고 약 처방하는 건데 이게 보람이 있을까요?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는데도 그동안 하던 방식에 젖어 있다 보니 환자와 영양가 있는 애기를 못 나눠요. 언젠가는 의료 시스템 개혁에도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지만요. 교육운동처럼, 의료계에서도 본질을 회복하는 움직임,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조혜영 선생님은 경쟁 중심 교육의 상처를 끌어안고, 아이를 키우며 다시 마주한 현실 속에서 질문을 던졌다.
"이게 정말 교육이 맞을까?"
그 질문은 곧 실천이 되었고, 공동체와의 만남이 되었으며, 자신을 다시 성장시키는 여정이 되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만난 조혜영 선생님의 삶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ㅁ 인터뷰. 노워리기자단 송미소
😊 조혜영 선생님의 성장담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성장 story> ''극I 성향 의사 선생님의 인생 2막 도전"
동작지역 등대모임과 관악지역 등대모임에서 활동하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오랜 후원회원으로 함께하고 계신 조혜영 선생님을 만났다. 세 자녀를 성인으로 키우는 동안 가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이자, 지역 등대모임의 든든한 일원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다. 경쟁교육 속에서 겪었던 개인적인 좌절과 깨달음, 그 속에서 피어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실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9월 조혜영 선생님을 만났다.
송미소(이하 송) : 선생님은 학창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조혜영(이하 조) :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하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그게 완전히 무너졌어요. 특히 수학, 과학은 너무 어려웠고 모르는데 억지로 외워서 점수를 겨우 받았는데 잘하는 친구들 보면서 열등감이 점점 커졌죠.
송 : 그 시절이 꽤 힘드셨나봐요?
조 : 간신히 버티는 날들이었어요. 점점 ‘나는 공부 못하는 애’라는 생각에 갇혀서 친구들을 경쟁자로만 보고 학교에서는 누가 나보다 더 잘할까 경계했어요. 친구도 경쟁자일 뿐인 거예요. 그러니까 친구에 대해 아무 애정도 없이 경쟁의식으로 꽉 찼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보상이 점수 잘 나오고 등수가 높고 이런 거잖아요. 그게 가장 중요했던 거죠. 공부를 잘하는 게 내 지상과제라 생각하고 거기에 매달렸어요. 쉬는 시간에도 단어 외우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요새 학교 다녔으면 완전 왕따였겠지. 그래도 애들이 순진해서 공부 잘하면 쟤는 그냥 원래 그런 애인가 보다 했고. 착한 애들 몇 명이랑 이야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지냈어요. 집에서도 책상 앞에만 앉아 있으면 아무도 말을 안 걸어요. 그러니까 하루 종일 말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날도 있었죠.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송 : 의대에 진학하게 되신 건 어떤 동기였나요?
조 : 어릴 때 TV 다큐멘터리에서 한 여성 의사를 본 적이 있어요. 장애가 있는 분이었는데, 자신과 같은 장애인을 위해 진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죠. 그게 마음속에 남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의 권유도 있었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가 너무 어려워 자신이 없었어요.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인데, 의사가 될 수 있을까 계속 의심했죠.
송 : 의대 생활은 어떠셨나요?
조 : 정말 쉽지 않았어요. 처음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대인관계에서도 큰 어려움을 겪었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버거웠고, 거의 대인 공포 수준이었죠. 그러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돌아보게 되었어요. 저는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공부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지?’라는 질문이 계속 들었고, 그게 결국 경쟁 중심 교육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받은 교육이 점수 중심 교육이었고, 친구들은 전부 경쟁자였어요. 애정도, 대화도 없이 살아온 거죠. 경쟁교육의 결과가 바로 저였던 거예요.
송: 그러면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조: 내가 경쟁교육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이제 시대가 바뀌어서 새로운 교육이 시작될 거라 기대했어요. 막상 애를 낳아서 키워보니까 원래 제가 갖고 있는 경쟁심이 있더라구요. 우리 엄마들 모두에게 내 자식이 좀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데 같은 해에 태어난 조카들까지 서로 비교하게 되니까 그게 너무 피곤한 거예요.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기쁜 것보다도 늘 뭔가 불만스럽고 우울해지기까지 하더라고요. 교육이 진짜 문제인 건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방법도 없고 그렇게 막막하던 차에 라디오에서 송인수 선생님 인터뷰를 들었는데 귀가 번쩍 뜨였어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라는 그 말 자체도 너무 좋았고요.
후원회원이 되고 보니, 단체에서 ‘등대지기학교’라는 부모교육이 있다는 거예요. 제가 그동안 살아온 삶은 굉장히 폐쇄적이었어요. 의과대학 나와서 트레이닝 받고 병원 생활하다 개원하고 진료실에 앉아 있다가 끝나면 집에 가고 그 사이에 애 셋 낳고 키우면서 집과 병원만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했죠. 가끔 몇 명 안 되는 친구 만나는 게 사회생활의 전부고요. 이런 생활만 하던 내향적인 제가 등대지기학교에서 열리는 대면모임에 나가려니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런데 교육을 들으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교육을 바꾸려면 다같이 힘을 합쳐야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람들 만나야 되는구나 싶었어요. ‘혼자 댓글 다는 걸로는 안돼. 이제는 나가야 돼. 어떻게든 한번 부딪혀보자!’ 생각하고 등대지기학교 졸업 여행에 나선 거죠.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아 늘 억울했는데
송 : 졸업여행에 막상 가 보니 어떠셨어요?
조 : 등대지기학교와 이어지는 여러 강의들, 그리고 지역등대모임에서 책 같이 읽고 토론하고 이런 게 다 교육이잖아요. 내가 받고 싶었던 교육을 정작 학교에서는 제대로 못 받았던 게 항상 허전하고 억울했는데 사교육걱정에 오니 비로소 채워지는 느낌이었어요. 특히 여기에서는 배운 걸 평가하고 탈락시키고 그러지도 않고요. 내가 배우고 싶은 걸 선택해서 듣고 그 속에서 사람 사이에 관계 맺는 경험도 연습했어요.
처음에는 모임 전날, 긴장 돼서 아프기도 했어요. 제2의 학교 같은 느낌이랄까요. 애들 교육 고민 때문에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 속에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드니까 만족감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제 회원 자녀들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모임을 오래 하다 보니 교육 관련 책만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책들을 같이 읽고요. 그러다 보면 아이 생각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성찰하게 되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 시야가 점점 넓어지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삶의 동반자인 좋은 친구들을 만났어요.
송 : 가족들과 갈등은 없으셨나요?
조 : 많았죠. 저는 ‘공교육을 지키자’, ‘입시보다 아이의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족 안에서는 늘 소수의견이었어요. 아이들도 “엄마는 너무 이상적이야”라며 제 의견을 부담스러워했고요. 10년 전 큰 아들이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가 위기였어요. 당시에는 일반고 진학이 대학입시에는 다소 불리할 수 있지만 아이의 성장에는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자사고가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가정 아이들이 모이니 다 비슷비슷하더라고요.
고민거리도 비슷한 애들끼리 모여서 선민의식도 생길 수 있겠다. 어려운 거 모르고 애가 클 수도 있겠고. 대학 서열 높은 데 안 가더라도 일반고 가서 다양한 경험하고 친구 넓게 사귀는 게 아이의 인격 형성에는 훨씬 좋다고 생각했는데 남편하고 뜻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그래서 한참 싸웠어요.
"나, 일반고 안 갈 건데?"
송 : 가족 내 위기였네요?
정 : 그때가 우리 단체에서 자사고 외고 등 특권학교 폐지 운동을 할 시기였어요. 만약에 우리 애가 자사고에 진학하면 나의 사회생활은 끝이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우리 지역모임 회원들을 볼 수 있을지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근데 남편과는 도저히 의견이 좁혀지질 않아서 애한테 물어봤어요. 아들도 “나, 일반고 안 갈 건데?” 그러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고등학교 교실 수업 시간에 애들이 자고 몇몇 애들만 일어나서 수업하는 사진을 보여주셨대요. 그러면서 ‘이게 일반고의 현실이야. 일반고 가면 인생 끝나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는 거죠. 큰애가 지금 27살이니까 딱 10년 전 일이에요. 아이부터 일반고 갈 생각이 없더라고요.
저도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 말씀 잘 들었듯 우리 애도 그런 성향이고, 제가 사교육을 안 시키니까 ‘얘야 너는 학원도 안 다니니 선생님 말씀 열심히 잘 들어야 된다’고 했더니 비판 의식 하나 없이 결국 자사고로 갔어요. 저에게 정말 위기였어요. 지역모임 갈 때마다 면목이 없어서 한동안 힘들었고요. 한참을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 고백하고 말았죠. 근데 모임원들이 다 포용해 주더라고요. ‘자식 일이 마음대로 되나요?’하면서요. 사람들이 받아주지 않았다면 모임도 다 탈퇴하려고 했어요. 단체 활동을 하면서 겪은 유일한 위기였죠.
송 : 그럼에도 오랜기간 회원으로 활동하시는 동력이 뭘까요?
조 : 교육이 곧 나의 문제였기 때문이에요. 단지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내가 받은 잘못된 교육을 바로잡고 싶은 마음이 컸죠. 이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우리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사회 자체가 둘로 나뉘어져서 서로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어요. 이렇게 생각이 갈리는 문제를 내 가정 안에서라도 화합하려고 노력하면 이것도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는 목표 의식을 갖고 견뎠어요. 가정 안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뜻 맞는 사람들이 저를 붙잡아줬죠.
송 : 지금 우리 단체에는 어린아이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함께하고 있잖아요. 선생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아이를 키우는 후배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조: 저는 아이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보다, 아이가 잘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성장의 핵심은 자기주도성이에요. 아이가 자기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어려서부터 자꾸 해봐야,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삶을 주도할 수 있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아이를 존중해주고, 대화를 많이 나누고, 결정권을 조금씩 넘겨주는 것이 중요해요. ‘이게 좋다, 저건 하지 마!’ 이렇게 일방적으로 막기보다는, “그 길을 가고 싶구나. 그럼 어떻게 해보고 싶어?” 이렇게 아이에게 묻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그 과정에서 실패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실패 역시 아이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진짜 자기 힘이 되는 거잖아요. 부모는 그저 조력자 역할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요. 결국 아이가 스스로 자기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어떤 대학을 갔는지보다 훨씬 더 의미 있는 결과라고 믿어요.
송: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조: 의사로서 보람 있게 산다는 느낌을 갖고 싶어요. 지금의 의료 시스템은 ‘얼마나 환자를 많이 보느냐’가 수입과 직결되는 구조예요. 간단히 증상 애기하고 약 처방하는 건데 이게 보람이 있을까요? 지금은 여유가 좀 생겼는데도 그동안 하던 방식에 젖어 있다 보니 환자와 영양가 있는 애기를 못 나눠요. 언젠가는 의료 시스템 개혁에도 목소리를 내고 싶어요.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지만요. 교육운동처럼, 의료계에서도 본질을 회복하는 움직임, 의미있는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조혜영 선생님은 경쟁 중심 교육의 상처를 끌어안고, 아이를 키우며 다시 마주한 현실 속에서 질문을 던졌다.
"이게 정말 교육이 맞을까?"
그 질문은 곧 실천이 되었고, 공동체와의 만남이 되었으며, 자신을 다시 성장시키는 여정이 되었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내가 만난 조혜영 선생님의 삶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ㅁ 인터뷰. 노워리기자단 송미소
😊 조혜영 선생님의 성장담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성장 story> ''극I 성향 의사 선생님의 인생 2막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