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2가 된 조카는 수학을 좋아한다. 혼자 교과서도 복습하고, 매일같이 개념원리 문제집을 풀었다. 지난 5월,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많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서울 반포에 있는 조카네 학교 같은 반에는 수학을 잘 하는 애들이 너무너무 많다고 한다. 자기도 수학을 열심히 하니까 B를 맞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69점, D였다.
“이 학교는 수학을 엄청나게 공부하는 애들이 몰려 있어서 그래. 선생님이 학생들 점수를 굳이 벌려 놓으려고 문제를 너무 어렵게 낸 거야.” 조카에게 말했지만 위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수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2마저 좌절감에 빠뜨리는 학교 시험, 어디에서부터 바꿔야 할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수학 평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작년 10월 <모두의 수학>이 공개됐다. <모두의 수학>이 과연 우리나라 수학교육 평가를 바꿀 수 있을지 이를 제작한 수학교육혁신센터 실무자 3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수학교육혁신센터 (좌로부터) 김상우, 국중석, 최수일 선생님
채송아 (이하 송) : <모두의 수학>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국중석 (이하 국) : <모두의 수학>에서 ’모두‘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의미해요. 가장 큰 특징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평가기준’을 근거로 만들어진 수학 문제 플랫폼이라는 거예요. 현직 교사들이 직접 문제를 만들었고, 또 누구나 추가로 문제를 만들어서 올릴 수 있으니 기존 문제은행과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현직교사 7명, 수학교육혁신센터 3명이 1년 6개월 동안 매주 모여서 토론하고, 평가기준에 가장 적합한 문제들로 구성했어요. 회원 가입하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요.
송 : 현직 교사들이 매주 모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분들이 모이신 건가요?
국 : 수학 시험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는 걸 절감한 분들이죠. 본인도 문제 낼 때마다 이건 아닌데 하는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고요. 본업인 학교 수업과 행정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하면 육아 때문에 힘든데도 매주 두세 시간 동안 참여하셨어요.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문제에 대해 평가기준에 맞는지 토론을 시작하면 정해진 2시간을 넘기기가 일쑤거든요. 내가 만든 문제와 다른 사람이 만든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평가해 주면서 오히려 기쁨을 느꼈다 하더라고요.
송 : 평가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국 : 좋은 평가란 시중에 있는 문제를 숫자만 바꿔서 내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의 성장을 확인할 있는 문제, 수학을 잘 하거나 못하거나 각자 도전할 수 있는 문제가 있어야 해요. 그런 문항을 혼자 힘으로 만들긴 어렵죠.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같이 연구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낸 거죠.
송 : <모두의 수학>에 실린 문제들은 시중에 없는 문제들이에요?
국 : 시중에 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평가기준에 맞게 가공돼 있어요.
<모두의 수학>의 실무 전반을 책임진 국중석 선생님
모두의 수학 탄생 배경, ‘평가기준’이 뭐길래
송 : 평가기준이 계속 언급되는데요, 수업목표로 삼는 성취기준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평가기준은 처음 들어봐요.
국 : 교육 현장에서 수업과 평가가 있잖아요. 이 둘이 일치해야 이상적이라고 봐요. 수업에 관계된 기준이 성취기준이고, 평가에 관계된 기준이 평가기준이에요.
최수일 (이하 최) : 성취기준은 학생이 ‘수업을 통해서 도달해야 될 기준‘이고, 평가기준은 ‘잘 배웠는지 평가할 때 문제를 내는 수준’을 정한 거예요.
송 : 그게 달라요?
최 : 다르죠. 성취 기준은 하나의 문장으로 돼 있어요. 예를 들어, “인수분해를 할 수 있다.” 이게 성취 기준이에요. 평가기준은 도달 정도에 따라 상중하로 나뉘어 있어요. 성취 기준만 가지고 평가하면 도달했다. 안 도달했다밖에 없어요. 도달 못했으면 어느 정도로 못한 건지, 그걸 세분화한 거죠.
인수분해도 두 문자로 된 걸 할 수 있으면 ‘상 수준’의 평가기준이고 한 문자로 된 걸 할 수 있으면 ‘중 수준’이에요. ‘하 수준’은 한 문자도 못하죠. 그런데 못한다는 게 평가기준이 아니에요. 뭘 할 수 있는가 찾아봤더니 인수분해의 예시를 들어서 맞는 걸 찾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렇게 평가 문항의 속성을 구분해 놓은 거죠.
수학교육혁신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수일 선생님
송 : 학생들이 잘 배웠는지 평가기준 상, 중, 하에 맞춰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데요.
최 : 평가기준이 강조된 건 한 10년 정도 된 것 같고요. 교육 과정은 대부분 선진국을 따라가요. 국제기구가 있으니까 벤치마킹하는 거죠. 과거에도 평가기준이 있었지만 국가에서 강조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평가문화로 자리잡는데는 시간이 걸리고요.
중요한 건, 지금 교육과정의 특징이 과정 중심의 평가라는 거예요. 2014년에 선행교육 규제법이 생기면서 교육과정의 수준과 범위에 맞게 출제하라고 명시가 됐죠.수준과 범위가 뭐냐? 기준이 있어야 하니까, 평가기준을 국가에서 구체적으로 만든 거죠.
송 : 작년에 사교육걱정이 경기인천의 사교육 과열지구 중학교 시험 문제를 분석했잖아요. 그 결과로 기자회견도 하고요. 그때 지적 받은 한 학교 선생님이 “평가기준에 맞게 시험 문제를 내야 한다는 것조차 금시초문”이라고 하셨다면서요.
김상우(이하 김) : 사실, 현장 교사들에게 평가기준 연수가 전무해요. 국가에서 나오는 평가기준 문서에 보면 초중등 학년별로 평가기준이 제시돼 있고, 평가 예시 문항이 나와 있지만, 그 문항의 질과 양도 현저히 낮아요. 설령 평가기준이 있다는 걸 알더라도 기준에 맞는 문제를 만들기가 교사 혼자 힘으로는 되게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가 같이 만든 거죠.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수학토론회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이 예시 문항 만드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몇 문제 만드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기준에 근거한 예시 문항이 더 많이 개발돼야죠.
몇 등이냐 vs 뭘 성취했냐
송 : 교사들에게 평가기준대로 시험문항을 구성하는게 왜 필요한지 설득할 수 있을까요?
최 : 평가기준은 절대평가를 기반으로 한 개념이에요. 그런데 수능과 고등학교 내신은 여전히 상대평가잖아요. 학교교육에선 수능 영향력이 가장 크니까 중학교 상 수준이라고 해봐야, 상에 도달한 애들이 많으면 고등학교에서 5등급밖에 안 돼, 라고 해요. 그러면 평가기준의 의미가 깨지는 거죠. 중학교 교사마저 수능의 출제 경향에 부응하고 있는 거예요.
수능은 ‘학생이 뭘 성취했냐?’가 아니라 한 줄로 세워서 ‘너 몇 등이냐?’를 물으니까 중학교 성취평가제의 취지가 안 먹히는 거죠. 선생님들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아요. 실질적으로는 제도가 안 바뀐 거라 생각해요.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도 기출 문제, 문제집에 있는 걸 비슷하게 출제하는데 그 사이에 교육 과정은 엄청 변했어요. 교육과정이 줄었어도 시험은 그대로 출제해요.
송 : 현실적으로 초중등교육의 종착지처럼 수능이 버티고 있고, 교육과정과 평가가 따로 노는데 <모두의 수학>이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최 : 우리가 이걸 안하고, 수능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큰일 나죠. 학교에서 평가기준대로 평가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수능도 언젠가 바뀔 거예요. 너는 몇 등짜리, 너는 몇 등짜리, 학생은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요. 교사들이 평가기준을 기초로 해서 문제를 내야 한다고 훈련받은 적이 없어요. 많은 수학 교사는 문제를 보면 자기가 풀 줄 아냐 모르냐, 그래서 풀면 학생도 풀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풀 줄 안다는 게 기준이에요. 물론 성취평가제의 의미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교사들도 있어요.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내면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꺾는다는 걸 아니까요.
왜 그런지 발견해야 수학의 가치 깨달아
김 :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잘 푸는 것이 수학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능숙한 문제 풀이 자체를 수학 공부의 꽃이라고 생각하죠. 현실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수학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력을 길러야 하는데, 교사들은 계속 진도 나가고, 입시 때문에 어려운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은 따라가기 바쁘고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하잖아요. 근데 그럴 시간은 주지 않고 무조건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하니까 학생들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본 경험도 없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해요. 그걸 못따라가면 수포자가 되고요.
"문제풀이가 수학공부의 꽃이 아니에요."- 김상우 선생님
최 : 예를 들어 볼게요. 삼각형은 각 3개가 항상 180도예요. 문제에서 삼각형을 주고, 각 2개의 값을 준 뒤에 제3의 각이 몇 도냐고 물어요. 학생들은 180도에서 두 개를 빼는 문제만 풀어요.
삼각형이 180도라는 사실을 그냥 도구적으로 써먹는 거예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거는 “삼각형의 합이 왜 180냐?”예요. 실제로 이게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서 나와요. 교과서는 왜 180도인가 가르치려고 애를 써요.
근데 그걸 가르치고 나면, 평가에서 삼각형이 왜 180도냐고 묻지 않아요. 왜 180도인지 몰라도 삼각형이 180도라는 사실만 외우고 그냥 풀어요. 이걸 ‘공식을 외워서 푼다’고 하는 거예요. 문제풀이는 다 이런 식이에요. 원리와 개념이 왜 그런지 몰라도 공식을 알면 그냥 푸는 거죠. 이런 거를 100번 풀어봐야 그건 사고(思考)가 아니에요. 사고력은 “자기 손바닥만한 넓이의 사각형을 구할 때, 왜 가로에 세로를 곱해서 구하는가?”를 아는 거죠. 이런 철학적인 사고를 구체화시킨 게 수학이거든요. 이걸 설명할 줄 알아야 사고력이 자라죠. 우리나라 시험에서는 이게 안 나와요.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교과서 © 교육부
송 : 대안교과서 <수학의 발견> 공부법과 통하네요.
최 : <수학의 발견>으로 공부하는 학교의 수업을 관찰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써요. 삼각형 모양이 크거나 작거나 비틀어져도 각이 항상 180도라는 게 ‘정말 신기하다!’ 감정적으로 좋은 거에 신기하다고 하지, 별 볼일 없는 게 신기하다고 하지 않아요. 이상하고 호기심이 생겨야 값진 거잖아요. 가치를 인정하는 거죠. 우리나라 아이들은 수학공부가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학을 공부할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의 답변은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에요.
송 : 그런 개념을 발견하고 사고하게 하는 문제들이 <모두의 수학> 안에 있는 건가요?
국 : 그렇죠. 예를 들면 ‘n각형의 대각선 개수를 구하는 과정을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있어요. 아까 삼각형 예시처럼, 대각선의 개수를 구하는 공식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설명하는 게 풀이 과정이에요. 학생이 설명하는 과정을 보면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피드백 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시중의 문제들은 1,2,3,4,5번 중에 찍으면 되니까 얘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이로서는 그런 원리를 알아야 될 필요가 없고요. 공식만 외우면 풀리니까요. 점점 암기식으로 가면 수학이 싫어지고, 암기를 못하는 아이들은 수학을 포기하게 돼요.
평가기준의 렌즈로 새롭게 평가하다
송 : 교사들이 <모두의 수학> 문제를 보면 문제가 다르다고 느끼겠네요.
최 : 평가기준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못 보죠. 기출 문제에 익숙한 사람 눈에는 ‘이거 뭐 간단한데 이런 게 문제야?’ 그럴 수도 있어요. 하 수준의 문제는 아주 간단하거든요. 애들도 어려운 문제를 좋아하죠. 하 수준의 문제는 우리가 개발했지만 그 자체가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에요. 상 수준이나 중 수준에 있는 문제들은 기출 문제와 형태가 다른 것들이 들어가 있죠. 기출 문제 중에 좋은 것도 있으니까 그런 걸 끌어온 것도 있고요. 과거의 문제는 다 객관식이기 때문에 ‘설명하시오’라는 표현이 없어요. ‘값을 구하시오’라고 하죠. ‘설명할 수 있다’ 이게 평가기준이에요.
국 : 기존의 평가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의 수학>이 좋은지 모를 것이고, 아이들마다 다른 성취를 평가기준에 맞게 문제 내려고 고민한다면 알아보시겠죠.
최 : 작년 12월에 교사 20명 정도가 <모두의 수학> 첫 연수를 신청했어요.
기존에도 평가에 대한 연수는 있어요.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서술형과 객관식을 몇 퍼센트 내야 된다, 수행평가에서는 점수 차이를 몇 점 내야 한다 같은 제도와 형식에 관련된 거예요. 평가 ‘내용’에 대한 게 아녜요. 좋은 문제라는 기준도 평가기준으로 만든 게 아니에요. 학생이 정말 개념적으로 이해했는가 평가하라고 교육과정에는 기준을 제시했어요. 하지만, 시중 문제집이나 학교 기출 문제에 평가기준에 맞는 문항이 별로 없어요. 지금 시험 문제는 교사가 개별적으로 내거든요. 그러다 보니 평가에 발전이 없죠.
국 : 연수를 신청하신 20여 명 교사들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고,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학생들을 잘못 평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연수를 신청하셨죠. 이후에 경기도 교육청에서도 연수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고요.
쓸모없는 문제에 매달리게 하는 수학교육
송 : 이해력이 좋고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어하는 학생도 있잖아요. 심화 문제를 공부하려는 학생들 입장에선 국가가 정한 평가기준을 넘는 경우도 발생할 것 같아요.
최 : 우리나라에서 수학 잘하는 학생들의 공부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냐면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경시대회 문제는 공식을 막 섞어요. 그걸 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시간 내에 풀 수 있어요. 질적으로 왜 그런지 묻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교수들도 못 푸는 신기한 문제를 풀잖아요. ‘내가 옛날에 이 비슷한 거 해봤는데 1523 넣었더니 맞았어.’ 그래서 맞는 거예요. 논리적 개연성이 전혀 없어요. 그런 특이한 문제에 시행착오를 겪어서 도달했다? 그런 걸 저는 수학이라고 보지 않아요.
송 : 수학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거네요.
최 : 전 세계적으로 이런 건 수학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올림피아드에 관심있는 나라는 우리나라하고 러시아뿐이에요. 미국에 소수의 영재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 남는 학생들은 한국인들이에요. 미국 학생들은 ‘내가 왜 이런 쓸모없는 수학을 하고 있냐?’고 다 빠져 나가요. 요즘 세계적인 기업에 수학 전공자들이 환영받는다고 하잖아요? 미국에 유명한 기업은 영재학교 졸업한 한국 학생을 받지 않아요.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기업에서 통해요. 벌써 수십 년간 실제 현실에서 필요한 수학의 관점으로 봤을 때, 한국 학생의 수학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걸 기업에서 이미 알고 있어요.
송 : 대학입시가 절대평가로 바뀌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최 : 일단 수능이 바뀌지 않으면 힘들죠. 그래도 수능이 바뀔 걸 미리 대비해야죠. 만약 갑자기 수능의 상대평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거 기출 문제야. 똑바로 들어.” 이게 현재 교실의 언어란 말이에요. 애들도 내가 원하는 대학은 수학 안 하면 안 되니까 하잖아요. 대학 측에서 사람을 문제 풀이 기술로 안 뽑고 뛰어난 학생을 뽑는다고 할 때,상대평가를 배제하면 뭐가 남을까요?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준비가 하나도 안돼 있어요. 결국 평가 문화를 바꿔야 해요. 입시 제도의 변화와 같이 준비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수능이 안 바뀐다고 우리가 영원히 기출 문제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는 없어요.
수포자도 해볼 만한 공부가 되도록
송 : 평가기준에 맞는 문제를 개발하는 게 수포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국 : 도움이 되죠. 예를 들어 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대표가 됐다고 가정해 볼게요. 상근자들의 역량을 길러주고 싶어서 엑셀과 파워포인트 연수를 했어요. 연습도 하고 그걸로 테스트를 봐요. 근데, 상근자 평가를 목적으로 계속 엑셀과 파워포인트 기술만 갖고 응용 문제를 내면 상근자들 업무 역량이 길러질까요? 스트레스만 받겠죠. 평가의 목적이 전도된 거에요. 기존의 수학 평가가 가르치지도 않은 문제를 암기식으로 공부하게 하고, 줄 세우기 위한 문제만 내니까 사교육으로 문제풀이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예요. 결국 수포자만 늘려왔어요.
<모두의 수학>에는 꼭 필요한 개념,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어요. 수포자 아이들도 해볼 만한 거죠. 예전에는 불필요한 것들을 훈련해서 풀어야 했다면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충실히 공부해도 풀 수 있는 문제로 평가하니까 수포자들도 해볼 만할 거예요.
송 : <모두의 수학>에 있는 문제들이 너무 쉬워서 관심을 못받는 거 아닐까요?
국 : 쉽지 않아요. 원리를 설명하라고 서술형 문제를 낸 교사들 얘기를 들어 보면 100점 맞은 학생이 많지 않아요. 설명하는 과정에 모순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거든요, 개념과 원리를 설명하는 서술형으로 문제 내도 변별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써먹을 일도 없는 수학 문제를 학원에서 엄청 풀어서 외울 지경이에요.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그렇게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나라에서 제시한 평가기준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외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죠.
송 : 국중석 선생님이 <모두의 수학>개발 업무를 전담하셨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국 : <모두의 수학>을 수학 교사들께 홍보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시험 문제를 만드셨어요. 한번 검토해 달라고 하면서 작년 시험지하고 올해 시험지를 둘 다 보내 주셨는데, 너무 달라진 거죠. 작년에는 문제집 같은 데서 문제를 골라 적당히 변형시켜서 내고 성취기준을 거기에 적용시켰대요. 순서가 뒤바뀐 거죠. 올해는 평가기준대로 내겠다는 원칙을 갖고 보니 안성맞춤인 문제들이 <모두의 수학>에 실려 있잖아요. 그걸 조금씩 가공해서 출제하셨더라고요. 기쁜 마음으로 검토해드렸죠.
송 : 이전 문제와 매우 다른 문제를 받아든 학생들 반응도 궁금하네요.
국 : 중3 학생들이었는데요, 수포자들은 객관식 번호 하나 골라서 OMR 카드에 한 줄로 쭉 찍어서 제출하잖아요. 근데 그 시험엔 객관식이 하나도 없으니까 수학을 포기한 애들도 자기가 알고 있는 선에서 적어 냈다고 하더라고요. 교사가 그 결과를 피드백 해줬고요. 시험이 바뀌니까 아무래도 아이들이 좀 더 적극적이 된 것 같고, 포기한 아이들도 관심을 갖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세요. 대신 예전에는 한두 시간이면 끝날 채점이 며칠이나 걸려서 힘들었다 하시더라고요.
최 : 아마 그 동네 학원 피드백이 나올 거예요. ‘너희 학교 시험은 대비할 수가 없다.’면서요.
국 : 그 학교 학생들 중에 30% 정도만 알았던 아이가 그 이상을 썼더래요. 모범답안에 비하면 50%밖에 못 쓴 거죠. 이런 아이들을 점수화한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하시더라고요. 점수를 더 주고 싶은 성취가 있는데 깎아야 하니까요.
학생들도 제대로 평가 받을 권리가 있다
송 : 그런 사례가 점점 더 쌓이면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이 결코 과장이 아니네요. 혹시 <모두의수학>이 교사들의 평가권을 너무 제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최 : 우리 나라 교사들에게 수행평가를 몇 % 내라, 배점은 어떻게 하라는 규제가 있으니까, 자유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평가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그 권리는 100% 교사에게 있어요. 평가받는 학생들도 내가 뭘로 평가받을지 알 권리가 있어요. 현재의 평가에서는 문제가 어디에서 나올까 추측하는 것이 학생의 최대 관심사예요. 족보닷컴에서 기출문제 다운 받고, 학원 가서 기출문제를 완벽히 풀도록 연습하죠. <모두의 수학>은 평가권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걸 전제로 해요.
김 : 평가가 바뀌면 수업이 바뀌고, 수업이 바뀌면 공부 방법도 바뀔 거예요. 내가 이걸 공부했을 때 어떻게 평가받는지 알면 공부에 동기 부여도 될 거고요. 학생들 고생시키려고 수학을 공부하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들도 <모두의 수학>에 들어와서 새로운 문제를 경험하고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송 : 평가가 바뀐다면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경험이 바뀔 수 있겠네요. 앞으로 <모두의 수학> 고등 과정도 개발하실 계획이라고요?
국 : 수능과 학교 내신이 엄연히 상대평가로 존재하는데 고등과정 개발할 걸 생각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물이 바위를 뚫잖아요. 약하지만 계속, 계속해서 한 곳을 파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무모한 일을 왜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솔직히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제가 수학을 가르쳐왔지만 잘하건 못하건 수학에 자신감 있는 애들이 거의 없어요. 그저 경쟁에서 이기려고 평가기준을 넘어서는 문제,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도 필요 없는 문제들을 수도 없이 풀어야 해요.
그런 현실에 처한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에게 수학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고 평가기준대로 공부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어요.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평가기준을 알려줌으로써 아이들과 선생님 간의 신뢰가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신뢰가 많이 깨진 상태 같아요.
송 : 학생들과 교사 사이의 믿음, 수학 공부의 내적 동기를 회복하는 길이 <모두의 수학>에 있는 거군요. 평가권을 모두에게 돌려주고 문제풀이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구하자는 말씀,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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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2가 된 조카는 수학을 좋아한다. 혼자 교과서도 복습하고, 매일같이 개념원리 문제집을 풀었다. 지난 5월,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많이 긴장하는 눈치였다. 서울 반포에 있는 조카네 학교 같은 반에는 수학을 잘 하는 애들이 너무너무 많다고 한다. 자기도 수학을 열심히 하니까 B를 맞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결과는 69점, D였다.
“이 학교는 수학을 엄청나게 공부하는 애들이 몰려 있어서 그래. 선생님이 학생들 점수를 굳이 벌려 놓으려고 문제를 너무 어렵게 낸 거야.” 조카에게 말했지만 위로가 되는 것 같지 않았다. 수학을 좋아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2마저 좌절감에 빠뜨리는 학교 시험, 어디에서부터 바꿔야 할까.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수학 평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작년 10월 <모두의 수학>이 공개됐다. <모두의 수학>이 과연 우리나라 수학교육 평가를 바꿀 수 있을지 이를 제작한 수학교육혁신센터 실무자 3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수학교육혁신센터 (좌로부터) 김상우, 국중석, 최수일 선생님
채송아 (이하 송) : <모두의 수학>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국중석 (이하 국) : <모두의 수학>에서 ’모두‘는 학생, 학부모, 교사를 의미해요. 가장 큰 특징은 교육과정의 ‘성취기준’과 ‘평가기준’을 근거로 만들어진 수학 문제 플랫폼이라는 거예요. 현직 교사들이 직접 문제를 만들었고, 또 누구나 추가로 문제를 만들어서 올릴 수 있으니 기존 문제은행과는 차별성이 있습니다. 현직교사 7명, 수학교육혁신센터 3명이 1년 6개월 동안 매주 모여서 토론하고, 평가기준에 가장 적합한 문제들로 구성했어요. 회원 가입하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요.
송 : 현직 교사들이 매주 모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분들이 모이신 건가요?
국 : 수학 시험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받는 걸 절감한 분들이죠. 본인도 문제 낼 때마다 이건 아닌데 하는 목마름이 있는 분들이고요. 본업인 학교 수업과 행정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퇴근하면 육아 때문에 힘든데도 매주 두세 시간 동안 참여하셨어요. 정말 애 많이 쓰셨어요. 문제에 대해 평가기준에 맞는지 토론을 시작하면 정해진 2시간을 넘기기가 일쑤거든요. 내가 만든 문제와 다른 사람이 만든 문제를 서로 토론하고 평가해 주면서 오히려 기쁨을 느꼈다 하더라고요.
송 : 평가에 대한 ’목마름‘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겠어요?
국 : 좋은 평가란 시중에 있는 문제를 숫자만 바꿔서 내는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의 성장을 확인할 있는 문제, 수학을 잘 하거나 못하거나 각자 도전할 수 있는 문제가 있어야 해요. 그런 문항을 혼자 힘으로 만들긴 어렵죠.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교사들이 같이 연구하면서 결과를 만들어낸 거죠.
송 : <모두의 수학>에 실린 문제들은 시중에 없는 문제들이에요?
국 : 시중에 있는 문제라 하더라도 평가기준에 맞게 가공돼 있어요.
<모두의 수학>의 실무 전반을 책임진 국중석 선생님
모두의 수학 탄생 배경, ‘평가기준’이 뭐길래
송 : 평가기준이 계속 언급되는데요, 수업목표로 삼는 성취기준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평가기준은 처음 들어봐요.
국 : 교육 현장에서 수업과 평가가 있잖아요. 이 둘이 일치해야 이상적이라고 봐요. 수업에 관계된 기준이 성취기준이고, 평가에 관계된 기준이 평가기준이에요.
최수일 (이하 최) : 성취기준은 학생이 ‘수업을 통해서 도달해야 될 기준‘이고, 평가기준은 ‘잘 배웠는지 평가할 때 문제를 내는 수준’을 정한 거예요.
송 : 그게 달라요?
최 : 다르죠. 성취 기준은 하나의 문장으로 돼 있어요. 예를 들어, “인수분해를 할 수 있다.” 이게 성취 기준이에요. 평가기준은 도달 정도에 따라 상중하로 나뉘어 있어요. 성취 기준만 가지고 평가하면 도달했다. 안 도달했다밖에 없어요. 도달 못했으면 어느 정도로 못한 건지, 그걸 세분화한 거죠.
인수분해도 두 문자로 된 걸 할 수 있으면 ‘상 수준’의 평가기준이고 한 문자로 된 걸 할 수 있으면 ‘중 수준’이에요. ‘하 수준’은 한 문자도 못하죠. 그런데 못한다는 게 평가기준이 아니에요. 뭘 할 수 있는가 찾아봤더니 인수분해의 예시를 들어서 맞는 걸 찾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렇게 평가 문항의 속성을 구분해 놓은 거죠.
수학교육혁신센터를 이끌고 있는 최수일 선생님
송 : 학생들이 잘 배웠는지 평가기준 상, 중, 하에 맞춰 평가해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데요.
최 : 평가기준이 강조된 건 한 10년 정도 된 것 같고요. 교육 과정은 대부분 선진국을 따라가요. 국제기구가 있으니까 벤치마킹하는 거죠. 과거에도 평가기준이 있었지만 국가에서 강조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 평가문화로 자리잡는데는 시간이 걸리고요.
중요한 건, 지금 교육과정의 특징이 과정 중심의 평가라는 거예요. 2014년에 선행교육 규제법이 생기면서 교육과정의 수준과 범위에 맞게 출제하라고 명시가 됐죠.수준과 범위가 뭐냐? 기준이 있어야 하니까, 평가기준을 국가에서 구체적으로 만든 거죠.
송 : 작년에 사교육걱정이 경기인천의 사교육 과열지구 중학교 시험 문제를 분석했잖아요. 그 결과로 기자회견도 하고요. 그때 지적 받은 한 학교 선생님이 “평가기준에 맞게 시험 문제를 내야 한다는 것조차 금시초문”이라고 하셨다면서요.
김상우(이하 김) : 사실, 현장 교사들에게 평가기준 연수가 전무해요. 국가에서 나오는 평가기준 문서에 보면 초중등 학년별로 평가기준이 제시돼 있고, 평가 예시 문항이 나와 있지만, 그 문항의 질과 양도 현저히 낮아요. 설령 평가기준이 있다는 걸 알더라도 기준에 맞는 문제를 만들기가 교사 혼자 힘으로는 되게 어려워요. 그래서 저희가 같이 만든 거죠.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수학토론회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이 예시 문항 만드는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몇 문제 만드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기준에 근거한 예시 문항이 더 많이 개발돼야죠.
몇 등이냐 vs 뭘 성취했냐
송 : 교사들에게 평가기준대로 시험문항을 구성하는게 왜 필요한지 설득할 수 있을까요?
최 : 평가기준은 절대평가를 기반으로 한 개념이에요. 그런데 수능과 고등학교 내신은 여전히 상대평가잖아요. 학교교육에선 수능 영향력이 가장 크니까 중학교 상 수준이라고 해봐야, 상에 도달한 애들이 많으면 고등학교에서 5등급밖에 안 돼, 라고 해요. 그러면 평가기준의 의미가 깨지는 거죠. 중학교 교사마저 수능의 출제 경향에 부응하고 있는 거예요.
수능은 ‘학생이 뭘 성취했냐?’가 아니라 한 줄로 세워서 ‘너 몇 등이냐?’를 물으니까 중학교 성취평가제의 취지가 안 먹히는 거죠. 선생님들도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아요. 실질적으로는 제도가 안 바뀐 거라 생각해요. 시험 문제를 출제할 때도 기출 문제, 문제집에 있는 걸 비슷하게 출제하는데 그 사이에 교육 과정은 엄청 변했어요. 교육과정이 줄었어도 시험은 그대로 출제해요.
송 : 현실적으로 초중등교육의 종착지처럼 수능이 버티고 있고, 교육과정과 평가가 따로 노는데 <모두의 수학>이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최 : 우리가 이걸 안하고, 수능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큰일 나죠. 학교에서 평가기준대로 평가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요.수능도 언젠가 바뀔 거예요. 너는 몇 등짜리, 너는 몇 등짜리, 학생은 그런 존재가 아니잖아요. 교사들이 평가기준을 기초로 해서 문제를 내야 한다고 훈련받은 적이 없어요. 많은 수학 교사는 문제를 보면 자기가 풀 줄 아냐 모르냐, 그래서 풀면 학생도 풀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풀 줄 안다는 게 기준이에요. 물론 성취평가제의 의미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교사들도 있어요.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를 내면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꺾는다는 걸 아니까요.
왜 그런지 발견해야 수학의 가치 깨달아
김 :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잘 푸는 것이 수학을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능숙한 문제 풀이 자체를 수학 공부의 꽃이라고 생각하죠. 현실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그걸 수학적으로 해결하는 사고력을 길러야 하는데, 교사들은 계속 진도 나가고, 입시 때문에 어려운 문제 풀이 중심의 수업을 할 수밖에 없고, 학생들은 따라가기 바쁘고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하잖아요. 근데 그럴 시간은 주지 않고 무조건 수학을 잘해야 한다고 하니까 학생들은 내가 스스로 생각해 본 경험도 없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해요. 그걸 못따라가면 수포자가 되고요.
"문제풀이가 수학공부의 꽃이 아니에요."- 김상우 선생님
최 : 예를 들어 볼게요. 삼각형은 각 3개가 항상 180도예요. 문제에서 삼각형을 주고, 각 2개의 값을 준 뒤에 제3의 각이 몇 도냐고 물어요. 학생들은 180도에서 두 개를 빼는 문제만 풀어요.
삼각형이 180도라는 사실을 그냥 도구적으로 써먹는 거예요. 그보다 더 중요한 거는 “삼각형의 합이 왜 180냐?”예요. 실제로 이게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서 나와요. 교과서는 왜 180도인가 가르치려고 애를 써요.
근데 그걸 가르치고 나면, 평가에서 삼각형이 왜 180도냐고 묻지 않아요. 왜 180도인지 몰라도 삼각형이 180도라는 사실만 외우고 그냥 풀어요. 이걸 ‘공식을 외워서 푼다’고 하는 거예요. 문제풀이는 다 이런 식이에요. 원리와 개념이 왜 그런지 몰라도 공식을 알면 그냥 푸는 거죠. 이런 거를 100번 풀어봐야 그건 사고(思考)가 아니에요. 사고력은 “자기 손바닥만한 넓이의 사각형을 구할 때, 왜 가로에 세로를 곱해서 구하는가?”를 아는 거죠. 이런 철학적인 사고를 구체화시킨 게 수학이거든요. 이걸 설명할 줄 알아야 사고력이 자라죠. 우리나라 시험에서는 이게 안 나와요.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교과서 © 교육부
송 : 대안교과서 <수학의 발견> 공부법과 통하네요.
최 : <수학의 발견>으로 공부하는 학교의 수업을 관찰하면 아이들이 이렇게 써요. 삼각형 모양이 크거나 작거나 비틀어져도 각이 항상 180도라는 게 ‘정말 신기하다!’ 감정적으로 좋은 거에 신기하다고 하지, 별 볼일 없는 게 신기하다고 하지 않아요. 이상하고 호기심이 생겨야 값진 거잖아요. 가치를 인정하는 거죠. 우리나라 아이들은 수학공부가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수학을 공부할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학생들의 답변은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에요.
송 : 그런 개념을 발견하고 사고하게 하는 문제들이 <모두의 수학> 안에 있는 건가요?
국 : 그렇죠. 예를 들면 ‘n각형의 대각선 개수를 구하는 과정을 설명하시오’라는 문제가 있어요. 아까 삼각형 예시처럼, 대각선의 개수를 구하는 공식이 왜 그렇게 나오는지 설명하는 게 풀이 과정이에요. 학생이 설명하는 과정을 보면 어느 부분을 모르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피드백 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시중의 문제들은 1,2,3,4,5번 중에 찍으면 되니까 얘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아이로서는 그런 원리를 알아야 될 필요가 없고요. 공식만 외우면 풀리니까요. 점점 암기식으로 가면 수학이 싫어지고, 암기를 못하는 아이들은 수학을 포기하게 돼요.
평가기준의 렌즈로 새롭게 평가하다
송 : 교사들이 <모두의 수학> 문제를 보면 문제가 다르다고 느끼겠네요.
최 : 평가기준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못 보죠. 기출 문제에 익숙한 사람 눈에는 ‘이거 뭐 간단한데 이런 게 문제야?’ 그럴 수도 있어요. 하 수준의 문제는 아주 간단하거든요. 애들도 어려운 문제를 좋아하죠. 하 수준의 문제는 우리가 개발했지만 그 자체가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에요. 상 수준이나 중 수준에 있는 문제들은 기출 문제와 형태가 다른 것들이 들어가 있죠. 기출 문제 중에 좋은 것도 있으니까 그런 걸 끌어온 것도 있고요. 과거의 문제는 다 객관식이기 때문에 ‘설명하시오’라는 표현이 없어요. ‘값을 구하시오’라고 하죠. ‘설명할 수 있다’ 이게 평가기준이에요.
국 : 기존의 평가가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의 수학>이 좋은지 모를 것이고, 아이들마다 다른 성취를 평가기준에 맞게 문제 내려고 고민한다면 알아보시겠죠.
최 : 작년 12월에 교사 20명 정도가 <모두의 수학> 첫 연수를 신청했어요.
기존에도 평가에 대한 연수는 있어요. 내용을 들여다 보면 서술형과 객관식을 몇 퍼센트 내야 된다, 수행평가에서는 점수 차이를 몇 점 내야 한다 같은 제도와 형식에 관련된 거예요. 평가 ‘내용’에 대한 게 아녜요. 좋은 문제라는 기준도 평가기준으로 만든 게 아니에요. 학생이 정말 개념적으로 이해했는가 평가하라고 교육과정에는 기준을 제시했어요. 하지만, 시중 문제집이나 학교 기출 문제에 평가기준에 맞는 문항이 별로 없어요. 지금 시험 문제는 교사가 개별적으로 내거든요. 그러다 보니 평가에 발전이 없죠.
국 : 연수를 신청하신 20여 명 교사들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고, 공부 모임을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가 지금 학생들을 잘못 평가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연수를 신청하셨죠. 이후에 경기도 교육청에서도 연수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가 들어왔고요.
쓸모없는 문제에 매달리게 하는 수학교육
송 : 이해력이 좋고 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싶어하는 학생도 있잖아요. 심화 문제를 공부하려는 학생들 입장에선 국가가 정한 평가기준을 넘는 경우도 발생할 것 같아요.
최 : 우리나라에서 수학 잘하는 학생들의 공부 방향이 어디로 흘러가냐면 올림피아드나 경시대회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경시대회 문제는 공식을 막 섞어요. 그걸 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시간 내에 풀 수 있어요. 질적으로 왜 그런지 묻지 않아요. 우리나라 학생들이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교수들도 못 푸는 신기한 문제를 풀잖아요. ‘내가 옛날에 이 비슷한 거 해봤는데 1523 넣었더니 맞았어.’ 그래서 맞는 거예요. 논리적 개연성이 전혀 없어요. 그런 특이한 문제에 시행착오를 겪어서 도달했다? 그런 걸 저는 수학이라고 보지 않아요.
송 : 수학에 대한 철학과 방향성이 완전히 다른 거네요.
최 : 전 세계적으로 이런 건 수학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올림피아드에 관심있는 나라는 우리나라하고 러시아뿐이에요. 미국에 소수의 영재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 남는 학생들은 한국인들이에요. 미국 학생들은 ‘내가 왜 이런 쓸모없는 수학을 하고 있냐?’고 다 빠져 나가요. 요즘 세계적인 기업에 수학 전공자들이 환영받는다고 하잖아요? 미국에 유명한 기업은 영재학교 졸업한 한국 학생을 받지 않아요. 어떤 문제가 주어졌을 때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기업에서 통해요. 벌써 수십 년간 실제 현실에서 필요한 수학의 관점으로 봤을 때, 한국 학생의 수학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는 걸 기업에서 이미 알고 있어요.
송 : 대학입시가 절대평가로 바뀌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최 : 일단 수능이 바뀌지 않으면 힘들죠. 그래도 수능이 바뀔 걸 미리 대비해야죠. 만약 갑자기 수능의 상대평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거 기출 문제야. 똑바로 들어.” 이게 현재 교실의 언어란 말이에요. 애들도 내가 원하는 대학은 수학 안 하면 안 되니까 하잖아요. 대학 측에서 사람을 문제 풀이 기술로 안 뽑고 뛰어난 학생을 뽑는다고 할 때,상대평가를 배제하면 뭐가 남을까요?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도 준비가 하나도 안돼 있어요. 결국 평가 문화를 바꿔야 해요. 입시 제도의 변화와 같이 준비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수능이 안 바뀐다고 우리가 영원히 기출 문제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는 없어요.
수포자도 해볼 만한 공부가 되도록
송 : 평가기준에 맞는 문제를 개발하는 게 수포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요?
국 : 도움이 되죠. 예를 들어 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대표가 됐다고 가정해 볼게요. 상근자들의 역량을 길러주고 싶어서 엑셀과 파워포인트 연수를 했어요. 연습도 하고 그걸로 테스트를 봐요. 근데, 상근자 평가를 목적으로 계속 엑셀과 파워포인트 기술만 갖고 응용 문제를 내면 상근자들 업무 역량이 길러질까요? 스트레스만 받겠죠. 평가의 목적이 전도된 거에요. 기존의 수학 평가가 가르치지도 않은 문제를 암기식으로 공부하게 하고, 줄 세우기 위한 문제만 내니까 사교육으로 문제풀이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예요. 결국 수포자만 늘려왔어요.
<모두의 수학>에는 꼭 필요한 개념,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어요. 수포자 아이들도 해볼 만한 거죠. 예전에는 불필요한 것들을 훈련해서 풀어야 했다면 교과서에 있는 내용만 충실히 공부해도 풀 수 있는 문제로 평가하니까 수포자들도 해볼 만할 거예요.
송 : <모두의 수학>에 있는 문제들이 너무 쉬워서 관심을 못받는 거 아닐까요?
국 : 쉽지 않아요. 원리를 설명하라고 서술형 문제를 낸 교사들 얘기를 들어 보면 100점 맞은 학생이 많지 않아요. 설명하는 과정에 모순이 굉장히 많이 발생하거든요, 개념과 원리를 설명하는 서술형으로 문제 내도 변별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써먹을 일도 없는 수학 문제를 학원에서 엄청 풀어서 외울 지경이에요. 초등학교부터 고3까지 그렇게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나라에서 제시한 평가기준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외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열어줘야죠.
송 : 국중석 선생님이 <모두의 수학>개발 업무를 전담하셨는데,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국 : <모두의 수학>을 수학 교사들께 홍보했더니, 어떤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시험 문제를 만드셨어요. 한번 검토해 달라고 하면서 작년 시험지하고 올해 시험지를 둘 다 보내 주셨는데, 너무 달라진 거죠. 작년에는 문제집 같은 데서 문제를 골라 적당히 변형시켜서 내고 성취기준을 거기에 적용시켰대요. 순서가 뒤바뀐 거죠. 올해는 평가기준대로 내겠다는 원칙을 갖고 보니 안성맞춤인 문제들이 <모두의 수학>에 실려 있잖아요. 그걸 조금씩 가공해서 출제하셨더라고요. 기쁜 마음으로 검토해드렸죠.
송 : 이전 문제와 매우 다른 문제를 받아든 학생들 반응도 궁금하네요.
국 : 중3 학생들이었는데요, 수포자들은 객관식 번호 하나 골라서 OMR 카드에 한 줄로 쭉 찍어서 제출하잖아요. 근데 그 시험엔 객관식이 하나도 없으니까 수학을 포기한 애들도 자기가 알고 있는 선에서 적어 냈다고 하더라고요. 교사가 그 결과를 피드백 해줬고요. 시험이 바뀌니까 아무래도 아이들이 좀 더 적극적이 된 것 같고, 포기한 아이들도 관심을 갖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하세요. 대신 예전에는 한두 시간이면 끝날 채점이 며칠이나 걸려서 힘들었다 하시더라고요.
최 : 아마 그 동네 학원 피드백이 나올 거예요. ‘너희 학교 시험은 대비할 수가 없다.’면서요.
국 : 그 학교 학생들 중에 30% 정도만 알았던 아이가 그 이상을 썼더래요. 모범답안에 비하면 50%밖에 못 쓴 거죠. 이런 아이들을 점수화한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하시더라고요. 점수를 더 주고 싶은 성취가 있는데 깎아야 하니까요.
학생들도 제대로 평가 받을 권리가 있다
송 : 그런 사례가 점점 더 쌓이면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이 결코 과장이 아니네요. 혹시 <모두의수학>이 교사들의 평가권을 너무 제한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최 : 우리 나라 교사들에게 수행평가를 몇 % 내라, 배점은 어떻게 하라는 규제가 있으니까, 자유롭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평가 내용을 어떻게 구성할지 그 권리는 100% 교사에게 있어요. 평가받는 학생들도 내가 뭘로 평가받을지 알 권리가 있어요. 현재의 평가에서는 문제가 어디에서 나올까 추측하는 것이 학생의 최대 관심사예요. 족보닷컴에서 기출문제 다운 받고, 학원 가서 기출문제를 완벽히 풀도록 연습하죠. <모두의 수학>은 평가권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걸 전제로 해요.
김 : 평가가 바뀌면 수업이 바뀌고, 수업이 바뀌면 공부 방법도 바뀔 거예요. 내가 이걸 공부했을 때 어떻게 평가받는지 알면 공부에 동기 부여도 될 거고요. 학생들 고생시키려고 수학을 공부하게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학생들도 <모두의 수학>에 들어와서 새로운 문제를 경험하고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송 : 평가가 바뀐다면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경험이 바뀔 수 있겠네요. 앞으로 <모두의 수학> 고등 과정도 개발하실 계획이라고요?
국 : 수능과 학교 내신이 엄연히 상대평가로 존재하는데 고등과정 개발할 걸 생각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물이 바위를 뚫잖아요. 약하지만 계속, 계속해서 한 곳을 파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무모한 일을 왜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솔직히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제가 수학을 가르쳐왔지만 잘하건 못하건 수학에 자신감 있는 애들이 거의 없어요. 그저 경쟁에서 이기려고 평가기준을 넘어서는 문제, 세상 살아가면서 하나도 필요 없는 문제들을 수도 없이 풀어야 해요.
그런 현실에 처한 아이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에게 수학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수학의 원리를 깨우치고 평가기준대로 공부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어요.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평가기준을 알려줌으로써 아이들과 선생님 간의 신뢰가 회복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신뢰가 많이 깨진 상태 같아요.
송 : 학생들과 교사 사이의 믿음, 수학 공부의 내적 동기를 회복하는 길이 <모두의 수학>에 있는 거군요. 평가권을 모두에게 돌려주고 문제풀이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구하자는 말씀, 꼭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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