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는 교육에 관심이 없어요 - 변진경 기자

2022-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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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2019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한 위원이 노키즈존을 비롯, 우리 사회의 아동 청소년 인권 실태를 파악한 뒤에 남긴 말이다. 우리는 아이들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라고 추어 올리면서 정작 그들의 눈높이로, 그들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에 한없이 게으르고 무지하다. 그런데, 여기 꾸준히 아이들의 삶에 몸을 낮춰 들여다보고, 마음을 쓰는 사람이 있다. 스쿨존 안팎의 교통사고, 먹어도 먹는 게 아닌 아동 흙밥(흙수저의 밥), 코로나19 교육공백으로 피폐해진 아이들의 삶과 아동학대 현장까지 꼼꼼히 취재해서 알리고 있는 시사인의 변진경 기자이다. 2022년 등대지기학교에서도 만나게 될 변진경 기자에게 강의 녹화 후 인터뷰를 청해 보았다.

 

채송아(이하 채) : 아이들 문제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변진경(이하 변) : 여러 사건을 취재하면서 그 사건에 포함돼 있는 아이들의 인생을 조금씩 접하게 됐어요. 예를 들면 어떤 범죄를 취재하잖아요. 근데 이 범죄자에게는 아이가 있어요. 범죄자는 구속되었는데, 이 집에는 이미 아이 엄마가 없어요. 그러면 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마음에 남잖아요. 재소자 자녀가 부수적으로 취급되고 조명받지 못하는데, 그런 경험들이 제 안에서 쌓인 거죠. 어른들이 애들 문제에 신경을 안 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채 : 아이들을 취재할 때 성인과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변 : 애들한테는 좀더 자세히 묻고 싶어도 안 묻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마음이 어땠는지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밥 먹었어? 오늘 뭐 했어?” 이렇게 말을 거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어요. 취재를 위해, 기사의 재료로 쓰일 내용 위주로 질문하면 이 친구는 지금 당장은 어려서 그 정황을 잘 모를 수 있어요. 하지만, 나중에 이 일을 기억했을 때 ‘내 상황이 이러이러해서 나한테 그런 질문을 던졌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사실 아이에게는 굉장히 질문을 자제하는 편이에요.

 

아이의 상황이 좀더 구체적으로 필요하다면 주변에 부모라든가, 지역아동센터 선생님이라든가 간접적으로 전달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분들에게 묻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한테도 모든 걸 다 알아내서 기사를 쓰면 문제가 더 잘 드러나고, 결과적으로 그 친구한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리화할 수 있어요. 사람들의 상처를 다 드러내야 기사가 되는 거니까요. 이도 저도 아닌 착한 기사는 주목을 못 받잖아요. 그래도 저는 이 아이의 인생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거예요. 미래를 생각했을 때 조금이라도 상처가 되지 않게 조심하는 편이에요. 좋은 기자로서는 결격사유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하고 싶어요.

한 명의 어른이라도 있었더라면


채 : 저는 제가 좋은 어른이라는 자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 저자 싸인하실 때도 ‘좋은 어른이 되길 포기하지 말아요’라는 문구를 적으셨는데, 좋은 어른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변 : 사실 ‘좋은 어른’을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분명한 건, 제가 취재했던 아이 주변에 좋은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냐 없냐에 따라서 애들 인생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좋은 어른이 많은 아이와 좋은 어른이 한 명밖에 없는 아이의 차이보다, 좋은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것과 아무도 없는 것의 차이가 너무 큰 거 같아요. 근데 좋은 어른이 한 명도 없는 애들이 많아요. 아이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어른이 한 명만 있어도 벼랑 끝까지 가지는 않거든요. 근데 그 한 사람이 없어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걸 볼 때가 있어요. 좋은 어른이라는 게 물심양면으로 훌륭하게 지원해주는 사람이 아니어도 돼요. 예를 들면 애가 집에서 아빠한테 얻어맞고 집을 나왔을 때 애한테 해를 끼치지 않고 며칠만이라도 돌봐준다거나, 어디 안전한 기관에 소개시켜주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그런 어른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애들이 범죄에 빠지거든요. 어른 한 사람이 그 아이의 결정적인 순간에 삶을 전환 시킬 수 있는 존재가 돼요.

 

채 : 재소자 자녀가 엄마를 면회하려고 인천에서 대전까지 왔는데, 발급일이 3개월 지난 등본 가져왔다고 못 만나게 하는 일화에서는 너무 속상해서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 교도관이 정말 원망스럽고요.

 변 : 그 사람이 규정을 어길 수 없다면 하다못해 애한테 밥 한 끼라도 사주고 보내는 여유가 있으면 어땠을까, 또는 그 아이가 엄마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 한 사람이라도 뭘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얼마나 상황이 달라졌겠어요. 제가 취재하는 애들은 보통 기관을 통해 알게 되니까 그 선생님들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계시지만 그런 어른마저 없는 아이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 아이들은 제 눈에조차 띄지 않을 거고요.

 

우리는 교육에 관심이 없다

 

’한국인들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교육의 가치를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았다. 방역을 위해 등교 제한을 감수했고 입시 학년에 가까워질수록 그 원칙을 풀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축적된 과학적 데이터들에 따르면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전 세계 보편적인 흐름도 아니었다. 이 선택으로 감수한 비용은 국가적으로는 남은 세기 동안 GDP 1.5% 감소, 개인적으로는 평생 임금 3% 하락이라는 추정치가 나왔다. 학생들의 사회성 손실과 정서적 피해는 계산조차 불가능하고 원격수업으로 대체하기도 힘들다.’(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283쪽)

 

채 : 2020년 11월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81.8%는 방역이 우선이니까 등교 제한을 감수한다고 했는데, 같은 해 8월 독일 국민들은 76%가 정상 등교에 찬성했어요. 우리와 그들 사이에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변 :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시 외의 교육에 정말 관심이 없어요. 삶의 우선순위에서 교육은 정말 저 아래로 밀려 있어요. 우리에게 급박한 건 일단 먹고 사는 거예요. 첫째도 경제, 둘째도 경제죠. 자영업의 위기가 제일 많이 거론되잖아요. 독일이라고 먹고사는 문제가 안 중요해서 학교를 열었겠어요. 프랑스는 코로나 시국에도 미술관을 거의 안 닫았대요. 인도에서는 갠지스 강물을 마시는 종교 행위만큼은 안 멈췄고요. 각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걸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 코로나가 정말 심각할 때도 헬스장에 꼭 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퇴근길에 사람 만나서 맥주 한 잔은 마시고 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죽어도 영화관에는 가고요. 그렇게 각자가 중시하는 게 있듯이 나라마다, 공동체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코로나 시국에서 확연히 증명된 거죠.

OECD국가 중에서 고3부터 학교에 나가기 시작한 건 우리나라랑 그리스밖에 없어요. 교육은 당장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도 아니고 당장 어디가 아파지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뒤로 미뤄놓는 거죠. 우리는 이걸 미루면 나중에 큰 빚으로 돌아온다는 걸 모르는 거 같아요.


우리의 노력은 문제 해결의 증거

 

채 : ‘팬데믹 교육 공백’뿐 아니라 ‘목숨 건 등굣길’ 등 그간 쓰신 기사들이 정말 우리에게 아동청소년 문제를 크게 환기시킬 때가 많았잖아요. 기사화를 계기로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났거나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 경험도 있으신가요?

변 : 스쿨존 기사 썼을 때 이재명 캠프에 공약으로 반영되었고요. 흙밥보고서가 기사로 나갔을 때는 지자체 같은 데서 어린이 식사나 간식꾸러미 사업, 과일간식 지원사업할 때 자문을 요청하기도 해요. 시민단체 활동할 때 기사를 많이 활용하기도 하고요. 원래 이 문제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기사를 계기로 더 구체적으로 움직이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 이게 문제야! 우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었어!’하는 각성이 일어나니까 토론회도 열고 취재원들끼리 네트워킹해서 발전시켜 나가고요. 그럼 움직임들이 보일 때 보람있고요.


채 : 저도 ‘선한 영향력 네트워크(결식아동급식 카드 가맹점을 운영하는 행정절차가 너무 까다롭다는데 문제의식을 갖고, 결식아동들에게 무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연합)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우리 동네에는 어떤 식당이 있나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변 : 제도가 바뀌는 건 당연히 중요한데, 공감하시는 분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것도 중요해요. 이 문제를 나만 생각했던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거죠. 다들 속으로 찝찝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지점이 언어화되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뤄보자는 움직임에 초석이 될 때 뿌듯하죠.

 

채 : 아동학대나 아이들 교통사고 기사들은 읽기조차 힘이 들던데, 취재하면서 심리적으로 힘들진 않으신가요?

변 : 아동학대 사례는 진짜 입에 담지 못할 사례들도 많아요. 근데 취재하는 걸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미안하고 사치스럽게 느껴져요. 아이들은 이걸 지금 겪고 있는데 내가 힘들다고 외면해 버리면 더 많이 알려지는 기회가 사라지잖아요. 그런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꾹 참고 해야죠.


채 : 기자로서 어떤 문제를 정확히 보도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만, 다루시는 문제마다 쉽게 개선되기 어려운 문제다 보니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진 않으세요? 그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으시는지 궁금합니다.

변 : 회의감 들 때 많죠. 내가 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알렸는데, 수십 년 지나도 똑같을 때가 있고요. 한편으로는 근거 없이 희망을 갖는 긍정적인 사람들이 이 일을 하는 거 같아요.
다만 저는 제가 이 문제를 다루고, 이만큼 알렸다는 거를 항상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에요. 내가 관심 있고 걱정되고 슬픈 일은 이 세상 많은 사람들도 똑같이 그렇게 느낄 거예요. 제가 그걸 고민할 정도면 사람들 마음 속에도 이미 그 문제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 거고요. 그 씨앗을 감지할 때 취재하고 기사를 쓰기 때문에 그 기사가 세상에 나오면 우리 사회의 인식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 같아요. 아동학대든 스쿨존 문제든 우리 사회의 고민거리로 올라올 때가 돼서 제가 쓰게 된 거예요.

 긴 시점으로 보면 어떤 추세라는 게 있잖아요. 당장은 지지부진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사를 쓴다는 건 이 문제가 풀리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사교육 문제가 정말 심각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이런 활동을 펼치는 것 역시 이 문제의식에 공감대가 있다는 증거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실천은 아무리 크건 작건 문제 해결의 증거예요.


 ***


변진경 기자는 <울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면> 책의 맺음말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머리말 중 한 구절을 인용한다

 

“예전에는 세상을 바꾸지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누군가와 동무가 된다”


세상에 재미있는 볼거리가 널려 있는데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찾아와 등대지기학교를 찾아보고 답 없는 미로에 갇힌 듯한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역시 우리가 해결하려는 입시 경쟁 문제 해결의 증거일까. 우리는 적어도 해결로 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몸을 낮춰 함께 울어주자. 도울 것이 있는지 말을 걸어 보자. 그리고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소망을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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