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외롭게 싸우는 마음은 서로 연결돼 있다 - 정지현·홍민정 前공동대표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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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송인수 윤지희 전 대표님들이 12년간 이끌어왔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정지현, 홍민정 젊은 두 여성 대표가 이어 받았다. 약속했던 4년의 임기를 마쳤다. 취임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음에도 정지현, 홍민정 두 사람은 킬러문항 방지법 발의, 경쟁교육제로캠페인, 만5세 조기취학 저지, 대입상대평가 헌법소원, 요즘부모연구소 출범 등 여러 굵직한 사업과 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직을 내려 놓는 두 사람의 마지막 근무일에 인터뷰를 청했다. 


채송아(이하 채) : 요즘 심경이 어떠신가요?

홍민정(이하 홍) : 사람이 큰 일을 겪으면 여러 가지 단계의 감정을 겪는다고 하잖아요. 처음에 대표직을 내려놓으면 홀가분할 거라 생각했어요. 근데, 12월이 되어가니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신임대표는 물론이고 상근자 선생님들한테도 죄송하고 회원들께도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신기한 꿈을 꿨어요. 우리 단체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데 저만 빼고 다들 너무 재밌게 하는 꿈이었거든요. 그 꿈을 꾸고 나서 ‘아, 내가 이 조직을 살아있는 생명처럼 애정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정지현(이하 정) : 전 아직 실감이 잘 안 나요. 2010년 3월에 입사했으니 육아휴직 빼고 13년을 일했는데, 출근을 안 하는 날이 와야 달라진 마음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 임기가 4년이란 걸 많은 분들이 이제야 아셨을 거 같아요. 두 분은 연임할 계획이 처음부터 없으셨어요? 

홍 : 저도 2014년부터 일했으니, 저희 둘 다 오래 일 했잖아요. 대표 시작할 때는 일단, 4년 동안 최선을 다하자, 주어진 책임을 끝까지 해내자라는 각오로 시작했어요. 그렇게 3년이 흘러 가는 시점이 됐어요. 제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회원과 시민들을 설득했는데 다시 4년을 뜨겁게 설득해낼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어요. 오히려,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색깔을 가진 사람이 나서면 우리 단체가 더 잘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정 : 송인수 윤지희 두 대표님께서 12년의 임기 동안 정말 남다른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어 오셨잖아요. 두 분이 임기를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새 대표를 찾을 때는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이 운동을 일으켜야 하고, 그 뒤에 또다른 새 대표들이 이어갈 텐데, 우리의 역할은 그 사이의 적절한 마중물이라고 생각했어요. 4년이 결코 짧지 않은데 이 4년을 충실히 잘 해내는 게 우리의 과제라 생각하면서 집중한 거죠. 


채 : 단순하게 말하긴 어렵겠지만, 나성훈 홍보국장과 신소영 정책팀장 두 분을 대표 후보로 추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 : 한 조직의 리더가 되려면 여러 가지 필요조건이 있을 텐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의식 같아요. 이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진심 어린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자발적으로 일해 왔나 중요하게 봤어요. 좋은 성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동안 동료와 회원들에게 보여준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했어요. 홍민정 선생님과 제가 성향은 물론이고, 갖고 있는 장점이나 역량도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협업해 왔어요. 이 많은 과제를 감당하려면 서로 다른 영역에서 일해온 분이되, 각자 다른 장점을 발휘할 분이면 좋겠다 생각하고 조직 내부를 꼼꼼히 살펴봤죠.

홍 : 제가 이 자리에 있어 보니, 가장 중요한 건 책임질 수 있는 역량 같아요. 운영이 잘 될 때는 구성원이 다같이 이뤄낸 거라 생각하지만, 큰 구멍이 나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리더십의 책임이 부각되는 게 조직의 생리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떠나도 끝까지 책임질 분들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면서 추천하게 됐죠. 


채송아 : 새로운 대표를 세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무사히 마무리가 됐네요. 두 분의 4년을 돌아보면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정말 이 일만큼은 잘했다 자부하시는 사업은 무엇인가요?

홍 : 입시경쟁 당사자인 학생들의 목소리, 당사자의 고통을 드러내 우리 단체의 핵심 아젠다로 정하고 널리 알린 일은 정말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자부해요. 입시경쟁이 심각한 우리 사회에서는 사교육비를 얼마나 쓰는지 넘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압박이 매우 크잖아요. 잠 잘 권리,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서 무한 경쟁 속에 살아야 하는 학생들 삶에 실존하는 고통을 확인한 거죠. 이를 구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학생고통지수 조사라든가, 경쟁교육제로 캠페인을 펼치고, 학생 당사자가 나서야만 가능했던 대입 상대평가 위헌 청구에 나섰고요. 

정 : 경쟁교육제로 캠페인을 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전국에 5천 명이 넘는 초중고 학생 설문조사예요. 그 결과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자해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어요. 지난 2년 동안 이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한 게 거의 수백 번은 되는 것 같아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핵심가치 중에 첫 번째가 ‘학생 유익 중심’이잖아요. 다른 무엇보다 저희가 지난 4년 동안 그 원칙을 잘 붙들고 일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채 : 반면에 아쉬운 지점도 있으실 텐데요. 

홍민정 : 학생들의 고통을 널리 알리고 사회적 의제로 만드는 일에 저희가 일정 부분 기여한 건 분명하죠. 교육부나 국회, 정책 입안자들도 저희 보도자료를 다 보고 계셔요. 거기서 만드는 문서에 저희가 연구 조사하고 발표한 자료를 근거 자료로 다 넣고 있거든요. 결코 헛되지는 않았지만, 최근 확정된 2028 대입개편안에서 결국 대입 상대평가가 유지되었어요. 

물론 5등급으로 완화된 점, 심화수학이 신설될 뻔하다 폐기된 점, 사회와 과학 내신 선택과목은 절대평가로 전환된 것 등이 우리가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상대평가가 유지되어 학생들이 여전히 무한 경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대표님들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계속해서 운동을 해 나갈 거니까요. 힘을 내야죠. 


정 : 저희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잖아요. 당초에는 임기 첫 해에 각 지역을 다니면서 회원을 만나는 게 저희 목표였어요. 지역에 계신 회원을 만나서 직접 고민을 듣고 우리 과제를 같이 발굴해 나가면서 멤버십을 탄탄히 하는 시간을 가지려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점이 많이 아쉽습니다. 등대지기학교 끝나면 졸업 여행도 가고, 여름마다 신규회원들과 가족을 초대해서 여름 캠프도 1박 2일로 갔는데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시작하려니 에너지를 모아 회복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다행인 것은 2023년, 요즘부모연구소가 출범하면서 요즘 부모들의 요즘 고민을 연구하고 해결하겠다는 슬로건을 걸었어요. 회원들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관심을 갖고 거의 100여 명 정도가 한 자리에 모였을 때 정말 즐겁고 기쁘더라고요. 우리 운동의 동력은 시민과 회원들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다행히 새 대표님들께서는 회원들을 직접 만날 채비를 하고 계십니다.


채 : 작년 여름에 새 대표 후보가 발표되고 리더십 인수인계하는 과정을 거치셨는데요. 임기를 마치면서 이것만큼은 꼭 전해주겠노라 염두에 두신 게 있으셨나요? 

홍 : 임기 초기에 어떤 이사님이 ‘처음 대표가 됐을 때는 인기가 있어야 되는데.’라고 하셨어요. 저는 ‘인기 있는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은데요.’라고 대답했어요.

정 : 전 그게 겸손의 표현인 줄 알았어요.

홍 : 그게 제1의 목표는 아닌 거죠. 인기 있는 리더가 된다는 건 핵심가치와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니까 인기 있는 리더라는 게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어떤 일을 목표로 설정하면 구성원이 합심해서 으쌰으쌰 가야 되잖아요. 그것을 위한 토대가 ‘인기 있는 리더’라는 뜻이었어요

저희도 좌충우돌 하면서 이제야 깨달은 건데 사람의 마음을 모으고, 얻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3년 차쯤 돼서 많이 느꼈어요. 높은 이상과 포부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잘 실현하려면 토대가 가꾸어져야 한다는 걸 기억하시면 좋겠어요. 

채 :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꼽는다면요?

홍 : 하나만 꼽기 어려운데, 정지현 선생님이 육아휴직 하시고, 나홀로 대표 시절이던 2021년에 재정 관련해서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어요. 아무리 모금 요청을 해도 기대만큼 리액션이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혼자 이걸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이런 고민은 상근자들과도 터놓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매일 생각했어요. 길이 보이지 않으니 암울하고 깜깜하기만 했죠. 혼자 해결해야 한다 생각하니까 외롭고요. 

그 무렵에 저희가 온라인으로 지역대표자 회의를 했었는데요. 모두 다 사교육하고 대치동으로 애들 실어 나르는 게 솔루션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운동의 가치를 지키고, 아이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부천에서 안동에서 대구에서 애쓰고 있는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어떤 분은 속상하고 안타까워서 눈물 섞인 이야기를 하실 때, 저 혼자 이 운동을 지키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이 와서 갑자기 제가 엄청 울었어요.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고군분투하고 있다, 다같이 외롭게 싸우는데, 이 외로운 마음들이 정말 외롭게 혼자 있는 게 아니고 서로 연결돼 있다는 깨달음이 지난 4년간 저를 버티게 해줬어요.

정 : 이 운동의 필요를 가슴 깊이 공감하고 저희를 격려하는 회원들 말씀을 들을 때 가장 큰 힘이 돼요. 작년 12월에 저희 상근자들 몇 명이 회원들께 증액요청 전화를 드렸어요. 1만 원이라도 후원금을 올려주실 수 있는지 갑작스럽게 느껴지실 수도 있는 전화로 여쭤 봤을 때,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수고하는 것 알고 있다. 기운 잃지 않으면 좋겠다'고 흔쾌히 후원금을 올려 주실 때 그것은 1,2만 원의 가치를 넘어서는 지지를 확인하는 일이었어요. 정말 많은 회원들께서 저희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작년 12월을 감동 가득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치고 외롭다고 느낄 때 기댈 수 있는 것은 회원들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느끼는 순간이었어요.


홍 : 정말 훌륭한 회원들과 또 상근자 선생님을 만나다 보니까 제가 그 안에서 많이 물들고 많이 성장했어요. 제가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마음 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 그리고 이 외롭지만 서로를 지키는 마음이 더 퍼뜨려 나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 : 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지 않았다면 부모가 되는 일이 훨씬 더 두려운 일이었을 것 같아요. 많은 회원을 만나면서 부모로 살아가는 삶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아이들과 함께 행복의 길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때마다 나도 부모로서의 삶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두 아이의 엄마로 살게 될 텐데 계속해서 사교육 걱정없는세상이 나에게 안전한 공동체가 되어 주면 좋겠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지역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나뵙고 싶습니다. 여름 MT를 열리면 꼭 참석할 거고요. 회원들과 저희는 이 미션 안에서 함께 연결된 삶을 살아가면서 결국 어디에선가 또 만나고 뜻이 이어지는 삶을 살아갈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오늘 마지막 퇴근도 그렇게 외롭지 않을 거 같아요.

 

이제 한 사람의 회원으로 학부모로, 또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두 사람.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는 늘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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