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절대 다수 아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존성은 아이들 앞에 펼쳐질 불투명한 세상을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굳세게 살아가도록 하는데 치명적 걸림돌입니다. 사교육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하니 그 불안은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사교육 의존성을 탈출한 후 진로는 어떻게 꾸려가야 하고, 꿈을 위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교육 탈출’, 꿈이 있는 공부’, ‘직업의 발견’, 한 달에 한 번씩 세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학점관리와 스펙쌓기에 찌든 모습으로만 2016년의 대학생을 상상하는 것 또한 고정관념이란 것을 느끼게 해 준 유지예 氏
[2016년을 사는 20대에게 공부란 무엇일까요? 태어난 뒤 한 번도 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이 없는 이네들에게 공부란 보통 노력을 점수로 바꾸는 일을 뜻합니다. 학점관리, 공인영어점수 따기, 자격증 시험 준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자신의 공부는 점수로 잴 수 없다는 청년이 있습니다. 꼭 점수로 이어지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8년차인 엄마로부터 훌륭한 유산을 물려받은 대학생 유지예, 잠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꿈이 있는 공부” 인터뷰 시리즈 첫 이야기를 풀어줄 모 대학 신문방송학과 3학년 유지예 씨. 그녀가 다니는 한적하고 작은 학교 앞 그녀를 닮은 아주 작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학교가 참 조용하네요. 주변에 가게도 별로 없고?”
“놀러온 친구들이 수도원 같대요 하하하!”
수줍은 듯 구김 없는 그녀, 작은 체구에 생기가 넘친다. TV에는 대학생들이 취업 준비에 시들어가는 모습이 연일 나오는데 그녀는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았다.
내가 선택한 것을 배우다
우선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부터 듣고 싶었다. 학창시절 생각해 오던 대학의 모습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또 어떻게 대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
- 대학 생활 어때요? 기대했던 대로 좋아요? 실망스러운 부분은 없고요?
“대학에 오니까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을 공부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배울 수 없었던 거요. 사회 문제나 영상 만드는 법 이런 것들. 1학년 때 노동과목 참 좋았어요. 덕분에 노동인권에 대한 책도 찾아 읽게 되었죠. 신문 기사배치에 대해 배우고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 배치의 차이가 눈에 들어 오더라구요. ‘실험 애니메이션’ 수업에선 조별로 5분내 만화 완성하는데 특이한 방법으로 했어요. 그런 게 상상력을 자극하죠. ‘내가 이런 걸 가르쳐 줬으니 너희가 한번 마음껏 사용해 봐라’ 이런 자세의 선생님이 좋아요. 물론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선생님도 있는데 그런 강의에서도 배울 건 있더라구요. (웃음)
작년에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팀을 꾸려서 다큐를 하나 만들었단다. 다 만들고 너무 뿌듯해 예능 피디라는 꿈을 ‘다큐 연출’로 바뀠다고. 학교 과정상 2,3학년 때부터 전공을 발전시켜 심화전공이나 복수전공 등을 선택하는데 지예씨는 ‘자기설계과정’을 선택했다고 했다.

"자기설계과정은 자기가 전공이름을 정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거에요. 이도 저도 하기 싫은 애들이 선택하기도 하는데 전 제가 공부할 수 있는 것 골라서 하니까 참 좋아요.”
“'사회다큐멘터리연출'을 자기설계과정으로 듣고 있어요. '자기설계과정'은 자기가 전공이름을 정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거예요. 지도교수님이 조언을 주시기는 하지만 자기가 세부과목과 일정들을 다 계획하는 과정이죠. 이도 저도 하기 싫은 애들이 선택하기도 하는데 전 제가 공부할 수 있는 것 골라서 하니까 참 좋아요.”
그녀는 성폭력 피해자 지지 모임도 꾸준히 나가고 주말엔 관련 집회들에 참석한다. 관심사가 확장되어 요즘은 여성학 강의와 세미나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행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집회도 가리지 않는다.
2학년까지는 영상학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대안언론 학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학내에 여러 문제에 대한 시위나 토론에도 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편이다. 수업듣고 그렇게 대외활동 하는 것 만으로도 바쁘겠다고 물으려던 찰라, 그녀가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키즈카페에서 일했어요. 바지 무릎이 구멍 날 정도로 놀이 기구를 닦았어요. 그 다음엔 빵집, 아침 6시 반 출근이었죠. 지각 안 하려고 10시면 잤어요. 제가 열심히 하니까 다른 사람을 안 붙여 주셔서 힘들었어요. 그래도 나중엔 시급도 올려주시고 사람도 붙여주긴 했어요. 요즘은 학교 총동문회 사무실에서 일해요. 이번 일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과 특성상 영화제나 촬영 알바도 들어와요. 최근에 한 사교육업체의 인강 촬영을 했는데 거기서도 ‘세상’ 공부 많이 했어요.”

전 스펙 열심히 쌓은 친구들 탓하지 않아요. 그들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애들의 미래가 지금 행동과 모순된다고 느낄 때는 있어요.
일하다 보니 1학년 때 들은 노동 인권 과목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타를 해 달라고 할 때 거절하는 법도 배웠고 가산 수당과 주휴 수당이란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노조에 가입 안해도 일하는 동안은 그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 강의에서 배웠다고 한다.
- 노동 인권 수업 듣고 느낌이 어땠어요?
“고등학교 때 이런 거 배우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노동, 인권 이런 거요. 고등학교 때 막연히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공부가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시험에 갇히지 않기
대학교에서도 시험은 있는 법, 지예 양에게 시험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 성적은 어때요? 좋아요?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어느 시험인가 암기를 열심히 해서 학점 잘 맞은 친구가 있었는데 놀라웠어요.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외우기만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런 친구들이 꽤 많아요.
전 스펙 열심히 쌓은 친구들 탓하지 않아요. 그들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애들의 미래가 지금 행동과 모순된다고 느낄 때는 있어요. 나중에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 지금 그렇게 달달 외우고 있는 걸 보면, 나중에 비판하는 기사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저도 수업 열심히 듣고 조 활동도 열심히 해요. 애들이 저랑 같은 조 하면 좋대요. 무임승차 안 해서. 근데 시험공부는 많이 하는 편 아니예요. 학점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죠. 그래도 하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 정도면 아주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 고등학교 때도 공부 잘 했을 것 같은데 어때요?(웃음)
“고등학교 때도 성적은 이정도면 대체로 괜찮다 그랬던 것 같아요. 시험 점수 받을 때는 잘 하는 친구들 부럽지요. 그래서 수학 점수 올리려고 한번 열심히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점수 좀 오른 성취감 이외 뭐가 없더라구요. 재미나 보람 이런 거요. 그래서 거기까지만 하고 다른 거 했어요. 국어 한국사 이런 건 재미있었어요. 그것도 시험공부를 ‘막’ 한 게 아니라 성적이 아주 좋은 건 아니었지만 수업도 재밌고 열심히 참여했어요. 그리고 UCC 만들고, 만화도 그리고... 중학교 때도 수행평가를 정말 열심히 해갔어요. 밤새 만들곤 했지요. 학기말엔 아무도 안 맡겠다는 반 문집을 혼자 만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림 잘 그리고 디자인도 잘 해요. 영상도 잘 만들구요. 선배들이 저한테 자기 영상 봐 달라고 많이 해요. 잡지 지면 디자인해서 돈 번 적도 있구요.
- 전공 정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정했어요?
대학 정할 때도 콘텐츠 만드는 게 꿈이어서 신방과 가겠다, 그게 안 되면 혼자 공부하거나 방통대를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대학 간 수준 차이가 크다고 생각 안 해요. 대학마다 가치관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대학 이름 올리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았어요. 혼자하든 대학을 가든 제가 배우려던 걸 배우면 되는 거니까요. 굳이 대학을 선택한 건 콘텐츠에 안에 담을 철학을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지예 양은 자기가 잘 할 것 같은 것, 꼭 해 보고 싶은 건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고 실제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 왈, 고등학교 때 만화를 너무나 잘 그리고 좋아하던 학생이 있었단다. 대학가서 그리자며 3년을 꾹 참았다. 그리고 대학에 갔다. 그런데 대학에 가고 나서 그는 더 이상 만화가 그리고 싶지도 그려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예 씨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잘한다고 믿었던 걸 지금도 잘한다고 말한다. 그 때는 비록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놓지 않고 조금이라도 계속해서 했던 일이 지금 가장 자신 있는 일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그녀는 뭔가를 ‘많이’ 배우고 있다. 그래서 너무 바쁘다. 그게 학점으로 환산은 잘 안 되는 모양이지만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꼭 점수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공부할 것은 많다.
내가 선택한 길, 오늘을 잘 채우는 것
-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어머니가 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반대를 하든지 아니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든지...
“학창시절에 저도 엄마와 갈등이 적지 않았어요. 물론 우리 엄마도 공부하라는 소리 많이 하시긴 했어요. 그래도 좀 특별했던 점이 제가 그림을 그리거나 하면 칭찬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잘 그렸다고 너무 보기 좋다고 해주시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대학도 간판보다 전공을 중심으로 고민하라고 하셨고 무엇보다 어떤 주제든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 엄마한테는 비밀이 없어요. 엄마가 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어느 길로 가다가 길이 끊어지면 옆길을 보고 또 그러다보면 또 새 길이 나오고 어떻게 어떻게 흘러가지는 게 삶이라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그런 자세로 왔는데 나름 잘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요.”
문득 학창시절 공부 잘 했던 친구들이나 같은 수업을 들어도 학점을 잘 받는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은지가 궁금해졌다. 그래도 좀 더 점수를 위한 노력을 더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약간이라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녀의 대답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부럽고 지금도 학점 잘 받는 애들 부러울 때 있지만 곧 까먹고 저 하고 싶은 거해요. 공모전 같이 하자는 애들도 많아요. 제가 맡은 건 확실히 하거든요.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로 몇날 며칠 축구공을 만들었어요 종이로. 진짜 잘 만들었어요. 대단했지요. 스스로 엄청 뿌듯했습니다. 만드는 거 좋아해서 그런 일 있으면 제가 나서서 하겠다고 해요.”
지예씨는 집 밖 활동에 드는 비용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책임진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매 학기 장학금을 탈 기회가 있는지 알아보고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모두 벌어서 쓴다. 아무래도 용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그녀는 엄마에게 들었다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터뷰 내내 자주 했다. 길은 하나라 여겨서 필연적으로 실패를 계속해야 하는 이 사회 속에서 그녀도 역시 속상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언제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그녀가 바라보는 미래가 궁금해졌다.
모두가 미래를 걱정해요
- 자신의 미래 모습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겠지요?
“글쎄요.. 몇 년 후 까지는 생각 잘 안해요. 저도 자격증 이런 거 따야 되긴 하는데... 우선 내년에는 1년 휴학 할 거예요. 6개월은 돈 벌고 그 돈으로 유럽 여행 가려구요. 거기 학생들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싶고 그래요. 거기 친구들 생각을 직접 듣고 싶어요. 그 사회는 정말 그렇게 좋은지... 복지제도도 그렇게 잘되어 있는지,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게 그렇게 잘 도와주는지, 불만은 없는지 이런 거요. 방송으로만 봤던 것 제가 직접 확인하고 싶어요. 여행경비를 잘 벌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어쨌든 되겠죠(웃음)”
당장 2-3년 뒤에 다가 올 취업 문제는 아직 걱정하지 않는 그녀. 자신의 장래에 무책임한 것 아닌가 싶은데 오히려 그녀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현재 자신이 맡은 일이나 자신의 인생 자체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다. 입시성적과 A학점에 오늘의 전부를 밀어 넣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배워가는 그녀가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유럽여행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에 생기가 넘친다. 우리 아이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싱싱했으면 좋겠다.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게 입시공부와 학점으로 한정된 요즘, 자신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넓은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그녀에겐 일상이 책상이고 하나하나 만남이 읽을 거리다.
오늘도 그녀는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중이다.

* 오늘날 절대 다수 아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존성은 아이들 앞에 펼쳐질 불투명한 세상을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굳세게 살아가도록 하는데 치명적 걸림돌입니다. 사교육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하니 그 불안은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사교육 의존성을 탈출한 후 진로는 어떻게 꾸려가야 하고, 꿈을 위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교육 탈출’, 꿈이 있는 공부’, ‘직업의 발견’, 한 달에 한 번씩 세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학점관리와 스펙쌓기에 찌든 모습으로만 2016년의 대학생을 상상하는 것 또한 고정관념이란 것을 느끼게 해 준 유지예 氏
[2016년을 사는 20대에게 공부란 무엇일까요? 태어난 뒤 한 번도 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이 없는 이네들에게 공부란 보통 노력을 점수로 바꾸는 일을 뜻합니다. 학점관리, 공인영어점수 따기, 자격증 시험 준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자신의 공부는 점수로 잴 수 없다는 청년이 있습니다. 꼭 점수로 이어지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그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8년차인 엄마로부터 훌륭한 유산을 물려받은 대학생 유지예, 잠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꿈이 있는 공부” 인터뷰 시리즈 첫 이야기를 풀어줄 모 대학 신문방송학과 3학년 유지예 씨. 그녀가 다니는 한적하고 작은 학교 앞 그녀를 닮은 아주 작은 카페에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학교가 참 조용하네요. 주변에 가게도 별로 없고?”
“놀러온 친구들이 수도원 같대요 하하하!”
수줍은 듯 구김 없는 그녀, 작은 체구에 생기가 넘친다. TV에는 대학생들이 취업 준비에 시들어가는 모습이 연일 나오는데 그녀는 다른 세상 사람인 것 같았다.
우선 대학생활에 대한 이야기부터 듣고 싶었다. 학창시절 생각해 오던 대학의 모습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 또 어떻게 대학생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
- 대학 생활 어때요? 기대했던 대로 좋아요? 실망스러운 부분은 없고요?
“대학에 오니까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을 공부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배울 수 없었던 거요. 사회 문제나 영상 만드는 법 이런 것들. 1학년 때 노동과목 참 좋았어요. 덕분에 노동인권에 대한 책도 찾아 읽게 되었죠. 신문 기사배치에 대해 배우고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 배치의 차이가 눈에 들어 오더라구요. ‘실험 애니메이션’ 수업에선 조별로 5분내 만화 완성하는데 특이한 방법으로 했어요. 그런 게 상상력을 자극하죠. ‘내가 이런 걸 가르쳐 줬으니 너희가 한번 마음껏 사용해 봐라’ 이런 자세의 선생님이 좋아요. 물론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는 선생님도 있는데 그런 강의에서도 배울 건 있더라구요. (웃음)
작년에는 다큐멘터리 만드는 팀을 꾸려서 다큐를 하나 만들었단다. 다 만들고 너무 뿌듯해 예능 피디라는 꿈을 ‘다큐 연출’로 바뀠다고. 학교 과정상 2,3학년 때부터 전공을 발전시켜 심화전공이나 복수전공 등을 선택하는데 지예씨는 ‘자기설계과정’을 선택했다고 했다.
"자기설계과정은 자기가 전공이름을 정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거에요. 이도 저도 하기 싫은 애들이 선택하기도 하는데 전 제가 공부할 수 있는 것 골라서 하니까 참 좋아요.”
“'사회다큐멘터리연출'을 자기설계과정으로 듣고 있어요. '자기설계과정'은 자기가 전공이름을 정하고 커리큘럼을 짜는 거예요. 지도교수님이 조언을 주시기는 하지만 자기가 세부과목과 일정들을 다 계획하는 과정이죠. 이도 저도 하기 싫은 애들이 선택하기도 하는데 전 제가 공부할 수 있는 것 골라서 하니까 참 좋아요.”
그녀는 성폭력 피해자 지지 모임도 꾸준히 나가고 주말엔 관련 집회들에 참석한다. 관심사가 확장되어 요즘은 여성학 강의와 세미나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교내에서 벌어지는 행사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집회도 가리지 않는다.
2학년까지는 영상학회 임원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대안언론 학회 활동을 하고 있다. 학내에 여러 문제에 대한 시위나 토론에도 늘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편이다. 수업듣고 그렇게 대외활동 하는 것 만으로도 바쁘겠다고 물으려던 찰라, 그녀가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키즈카페에서 일했어요. 바지 무릎이 구멍 날 정도로 놀이 기구를 닦았어요. 그 다음엔 빵집, 아침 6시 반 출근이었죠. 지각 안 하려고 10시면 잤어요. 제가 열심히 하니까 다른 사람을 안 붙여 주셔서 힘들었어요. 그래도 나중엔 시급도 올려주시고 사람도 붙여주긴 했어요. 요즘은 학교 총동문회 사무실에서 일해요. 이번 일은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과 특성상 영화제나 촬영 알바도 들어와요. 최근에 한 사교육업체의 인강 촬영을 했는데 거기서도 ‘세상’ 공부 많이 했어요.”
전 스펙 열심히 쌓은 친구들 탓하지 않아요. 그들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애들의 미래가 지금 행동과 모순된다고 느낄 때는 있어요.
일하다 보니 1학년 때 들은 노동 인권 과목이 큰 도움이 되었다. 대타를 해 달라고 할 때 거절하는 법도 배웠고 가산 수당과 주휴 수당이란 게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노조에 가입 안해도 일하는 동안은 그 노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그 강의에서 배웠다고 한다.
- 노동 인권 수업 듣고 느낌이 어땠어요?
“고등학교 때 이런 거 배우고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노동, 인권 이런 거요. 고등학교 때 막연히 국영수보다 더 중요한 공부가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이런 거였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서도 시험은 있는 법, 지예 양에게 시험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 성적은 어때요? 좋아요?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어느 시험인가 암기를 열심히 해서 학점 잘 맞은 친구가 있었는데 놀라웠어요.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외우기만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런 친구들이 꽤 많아요.
전 스펙 열심히 쌓은 친구들 탓하지 않아요. 그들 잘못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애들의 미래가 지금 행동과 모순된다고 느낄 때는 있어요. 나중에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 지금 그렇게 달달 외우고 있는 걸 보면, 나중에 비판하는 기사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저도 수업 열심히 듣고 조 활동도 열심히 해요. 애들이 저랑 같은 조 하면 좋대요. 무임승차 안 해서. 근데 시험공부는 많이 하는 편 아니예요. 학점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죠. 그래도 하는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 정도면 아주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 고등학교 때도 공부 잘 했을 것 같은데 어때요?(웃음)
“고등학교 때도 성적은 이정도면 대체로 괜찮다 그랬던 것 같아요. 시험 점수 받을 때는 잘 하는 친구들 부럽지요. 그래서 수학 점수 올리려고 한번 열심히 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점수 좀 오른 성취감 이외 뭐가 없더라구요. 재미나 보람 이런 거요. 그래서 거기까지만 하고 다른 거 했어요. 국어 한국사 이런 건 재미있었어요. 그것도 시험공부를 ‘막’ 한 게 아니라 성적이 아주 좋은 건 아니었지만 수업도 재밌고 열심히 참여했어요. 그리고 UCC 만들고, 만화도 그리고... 중학교 때도 수행평가를 정말 열심히 해갔어요. 밤새 만들곤 했지요. 학기말엔 아무도 안 맡겠다는 반 문집을 혼자 만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림 잘 그리고 디자인도 잘 해요. 영상도 잘 만들구요. 선배들이 저한테 자기 영상 봐 달라고 많이 해요. 잡지 지면 디자인해서 돈 번 적도 있구요.
- 전공 정할 때는 어떤 기준으로 정했어요?
대학 정할 때도 콘텐츠 만드는 게 꿈이어서 신방과 가겠다, 그게 안 되면 혼자 공부하거나 방통대를 가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대학 간 수준 차이가 크다고 생각 안 해요. 대학마다 가치관이 다를 뿐이죠. 그래서 대학 이름 올리려고 그렇게 애쓰지 않았어요. 혼자하든 대학을 가든 제가 배우려던 걸 배우면 되는 거니까요. 굳이 대학을 선택한 건 콘텐츠에 안에 담을 철학을 배우고 싶어서였어요.“
지예 양은 자기가 잘 할 것 같은 것, 꼭 해 보고 싶은 건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해보지 않고 실제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내가 아는 지인 왈, 고등학교 때 만화를 너무나 잘 그리고 좋아하던 학생이 있었단다. 대학가서 그리자며 3년을 꾹 참았다. 그리고 대학에 갔다. 그런데 대학에 가고 나서 그는 더 이상 만화가 그리고 싶지도 그려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예 씨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잘한다고 믿었던 걸 지금도 잘한다고 말한다. 그 때는 비록 쏟을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놓지 않고 조금이라도 계속해서 했던 일이 지금 가장 자신 있는 일이 되었다. 대학에서도 그녀는 뭔가를 ‘많이’ 배우고 있다. 그래서 너무 바쁘다. 그게 학점으로 환산은 잘 안 되는 모양이지만 그녀가 잘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듯하다. 꼭 점수로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공부할 것은 많다.
- 그렇게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어머니가 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반대를 하든지 아니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하든지...
“학창시절에 저도 엄마와 갈등이 적지 않았어요. 물론 우리 엄마도 공부하라는 소리 많이 하시긴 했어요. 그래도 좀 특별했던 점이 제가 그림을 그리거나 하면 칭찬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 잘 그렸다고 너무 보기 좋다고 해주시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대학도 간판보다 전공을 중심으로 고민하라고 하셨고 무엇보다 어떤 주제든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 엄마한테는 비밀이 없어요. 엄마가 인생의 길은 하나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어느 길로 가다가 길이 끊어지면 옆길을 보고 또 그러다보면 또 새 길이 나오고 어떻게 어떻게 흘러가지는 게 삶이라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그런 자세로 왔는데 나름 잘 온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요.”
문득 학창시절 공부 잘 했던 친구들이나 같은 수업을 들어도 학점을 잘 받는 친구들이 부럽지는 않은지가 궁금해졌다. 그래도 좀 더 점수를 위한 노력을 더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약간이라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녀의 대답이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부럽고 지금도 학점 잘 받는 애들 부러울 때 있지만 곧 까먹고 저 하고 싶은 거해요. 공모전 같이 하자는 애들도 많아요. 제가 맡은 건 확실히 하거든요.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로 몇날 며칠 축구공을 만들었어요 종이로. 진짜 잘 만들었어요. 대단했지요. 스스로 엄청 뿌듯했습니다. 만드는 거 좋아해서 그런 일 있으면 제가 나서서 하겠다고 해요.”
지예씨는 집 밖 활동에 드는 비용은 모두 자신이 스스로 책임진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로 해결했다. 매 학기 장학금을 탈 기회가 있는지 알아보고 용돈은 아르바이트로 모두 벌어서 쓴다. 아무래도 용돈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는다.
그녀는 엄마에게 들었다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을 인터뷰 내내 자주 했다. 길은 하나라 여겨서 필연적으로 실패를 계속해야 하는 이 사회 속에서 그녀도 역시 속상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는 혼자가 아니었기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언제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어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제 그녀가 바라보는 미래가 궁금해졌다.
- 자신의 미래 모습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 본 적이 있겠지요?
“글쎄요.. 몇 년 후 까지는 생각 잘 안해요. 저도 자격증 이런 거 따야 되긴 하는데... 우선 내년에는 1년 휴학 할 거예요. 6개월은 돈 벌고 그 돈으로 유럽 여행 가려구요. 거기 학생들 만나서 인터뷰도 해보고 싶고 그래요. 거기 친구들 생각을 직접 듣고 싶어요. 그 사회는 정말 그렇게 좋은지... 복지제도도 그렇게 잘되어 있는지,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게 그렇게 잘 도와주는지, 불만은 없는지 이런 거요. 방송으로만 봤던 것 제가 직접 확인하고 싶어요. 여행경비를 잘 벌 수 있을까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어쨌든 되겠죠(웃음)”
당장 2-3년 뒤에 다가 올 취업 문제는 아직 걱정하지 않는 그녀. 자신의 장래에 무책임한 것 아닌가 싶은데 오히려 그녀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현재 자신이 맡은 일이나 자신의 인생 자체에 성실하고 책임감 있다. 입시성적과 A학점에 오늘의 전부를 밀어 넣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배워가는 그녀가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유럽여행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눈에 생기가 넘친다. 우리 아이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 저렇게 싱싱했으면 좋겠다. ‘미래’를 위한 준비라는 게 입시공부와 학점으로 한정된 요즘, 자신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넓은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그녀에겐 일상이 책상이고 하나하나 만남이 읽을 거리다.
오늘도 그녀는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