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학교 인터뷰] 교사가 된 변호사의 좌충우돌 이야기 - "하루하루 낙이 없는 아이들 곁으로" - 박종훈 선생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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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 사람이 있다. 교사이기도 하고 변호사이기도 하다. 우리가 떠올리는 ‘중학교 교사’와도 꽤 다르고, 직업인으로서 변호사와는 더욱 다르다. 정작 본인은 교사 자격증을 원한 것도, 변호사 자격증을 원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작년에 서초구 소재 중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1년, 현재 구로구에 있는 중학교에서 지난 해와 전혀 다른 1년을 보내고 있다는 박종훈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박종훈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채송아 (이하 채) : 변호사였다가 교사가 되신 게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사범대를 가셨던데, 다른 지면의 인터뷰를 보니 ‘불행한 학창시절’이란 표현이 눈에 확 띄었어요. 


박종훈 (이하 박) : 마산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죽 살았어요. 가정 형편이 넉넉하진 않았는데, 사실 이 표현도 좀 이상해요. 그 동네 애들은 사는 게 다 비슷했어요. 제가 03학번인데, 마산에는 사교육도 학원도 별로 없었어요. 중학교에 갔더니 교무실이 거의 노인정더라고요. 선생님들이 애들하고 소통이 안되고, 소통 안되면 교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체벌이거든요. 애들하고 소통이 돼서 친하게 지낼수록 말 안 듣는 애들도 이해는 돼요. 소통이 안되니까 소리 지르거나, 체벌하거나, 모욕 주고... 그 동네 중학생들은 이미 오토바이 타고, 화장실에 담배 연기 자욱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애정이 있으면 화장실에 가서 좀 보기라도 할 거 아녜요. 나이 많으신 교사들은 학생들 지도할 에너지도 없고, 복도에 피가 흥건한 걸 본 적도 있어요. 등교하는 게 즐겁지 않았어요. 오늘은 어떤 폭력이 있을까... 그런 생각 하면서 학교를 다녔죠. 그때부터 반골 기질이 있었던 거 같아요. 내가 교사라면 이렇게 학급을 이끌지 않을 텐데, 나라면 저렇게 학교를 운영하지 않을 텐데, 학교가 너무 재미없는데 겨우겨우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고등학교에 가니까, 공부를 좀 하면 기숙사에 가둬놔요. 집에 안 보냅니다. 대학생을 사감으로 두고 애들을 때리고요. 말도 안 되는 권능을 사감에게 준 거죠. 게다가 나쁜 미션 스쿨이었어요. 목사님이 신의 이름으로 ‘아멘!’하면서 때리고 그랬다니까요. 때리면 죄짓는다는 걸 아니까 기도하고 때린 거죠. 교장선생님도 하나님 이름을 얘기하긴 하지만, 목표는 오직 좋은 대학 보내는 거! 서울대 점수 낮은 과 억지로 가게 해 놓놓고 명문이라 자부하지만 학교 안에 프로그램은 너무 엉망인 거죠. 동아리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고, 학교 안에 다른 활동은 전혀 없어요. 오직 공부와 폭력적인 문화만 기억이 나요. 그런데, 고2 때 전혀 다른 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난 거예요. 그분은 누구도 소외받지 않게 학급 경영을 하셨어요. 

인터뷰 - 노워리 기자단 채송아 기자


채 : 어떻게 운영하면 누구도 소외받지 않을 수 있죠? 


박 : 다른 선생님들은 디테일이 없고, 거칠었어요. 교실에서 자리도 고정석이거나 맘대로 앉으라 하고.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골고루 앉게 하고, 청소도 되게 신경 써서 배정하고, 반목이 생길 수밖에 없는 영역을 공평하게 운영하셨어요. 별명을 재밌게 부르기도 하고, 수업도 너무 재밌었어요. 그전까지는 국어 책 펴놓고, '줄 그으세요. 직유법.' 다들 그냥 자습서 읽는 수준이었거든요. 근데, 이 분은 PPT도 준비해오시고,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새로운 질문도 하시고, 학습지 만들어오시는 선생님을 그때 처음 봤어요. 


결정적으로 학기 초에 면담을 하는데 첫 질문이 중요하잖아요. 대부분 ‘대학 어디 생각하니?’라고 묻는데 이 선생님은 ‘집에서 학교 어떻게 오니? 오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니?’ 부모님도 안 물어보는 질문을 하시는 거죠. ‘인생에서 가장 환희에 찬 순간이 언제였는지’도 물어보셨는데, 그때 제가 한 대답을 지금도 기억해요. 좋아하는 노래, 가수 이런 것도 물어봐 주시고, 그 1년이 정말 행복했어요. ‘내가 인생에서 낙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루하루 삶이 너무 재미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나도 이 사람처럼 누군가에게 낙을 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참교사 이런 건 너무 거창하고요. 제가 고1 때만 해도 ‘이런 애들을 가르쳐? 지옥이지 지옥.’ 그렇게 생각했던 나 같은 학생들한테 재미를 줄 수 있다면 너무너무 보람차겠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교사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사실 제게는 교사라는 직업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고 싶었거든요. 제가 겪은 교육이 엉망진창 개판이었기 때문에 교육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모교에 교생실습하러 갔더니, 교무실에서 접한 교사들 모습은 더 엉망이었던 거 같아요. 고2 때 은사님은 ‘너희만 해도 공부하라고 하면 그냥 했다. 요즘 애들은 공부를 왜 해요? 학교에 왜 다녀야 해요?라고 묻는 애들이다. 마술동아리도 만들고, 하루라도 즐겁게 살도록, 인생의 의미를 찾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교생 수업 평가회를 하는데, 모교가 사립이니까 교사들이 제가 다닐 때랑 똑같아서 그 선생님들이 어떻게 수업하는지 다 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분들이 ‘요즘 교생들은 너무 방법론에만 치중하고 내용이 없다’고 평가하는데, 그런 말 하는 교사는 내용도, 방법도 없는 교사거든요. 학교란 구조에 크게 실망한 거예요. 내가 학급 하나는 바꾸겠는데, 학교라는 구조는 정말 답답하다고 느끼면서 군대를 갔어요. 



삶에 낙이 없는 아이에게 행복을 주고 싶은데, 

더 좋은 길은 없을까


박 : 제가 학생운동하느라 군대를 늦게 가다 보니 더 많은 걸 보고 느낀 거 같아요. 학교의 틀을 어떻게 바꿀지, 행정고시를 봐서 교육 쪽으로 가야 하나, 시민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 중이었어요. 우연히 법무실로 배치받았는데, 내무반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법대 출신이거나 후임으로 온 사람도 변호사라 법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돼있는지 알게 된 거예요. 그때 마침 군 가산점을 헌재가 ‘위헌’이라고 판결 내리면서 없어진 거라는 걸 알게 되니까, 백날 데모해도 안되던 게 법이 바뀌면서 실제로 바뀌는 걸 보고 시야가 넓어진 거죠. 서로 존중해서 세상을 바꾸는 게 제 주된 관심이었으니까요. 


양 진영의 의견이 다를 때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를 이끄는 ’헌법‘이라는 약속이 있잖아요.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할지 그 약속을 기준으로 방향과 과정을 도출할 수 있고, 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매력을 느꼈어요. 전역하고 나서 진로를 바꾸고 변호사가 된 거예요. 

그래도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는 제 꿈이 아니었어요. 교육을 바꿔서 학생들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게 제 주된 꿈이고, 법을 공부해서 써먹겠다 생각한 거고요. 민변의 교육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했죠. 그러다 보니 교육청 학생인권 쪽 사무관 자리로 가게 됐어요. 사실 그 시기에 교육감 선거가 걸려 있어서 보수 쪽 교육감이 오면 없어질지도 모르는 자리라 하실 만한 분들이 지원을 안 하시는 거예요. 결국 제가 변호사 사무실 접고, 맡은 사건들 다 남 주고 했으니까 경제적으로 타격이 컸죠.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 젊을 때라, 보수 교육감 와서 학생인권센터 없앤다고 하면 기자회견하고 사표 쓸 거라 계획하고 들어갔어요. 


2015년부터 학생인권 담당하는 부서에 팀장으로 들어가서 3년 동안 학생인권센터를 키우고, 성 평등 전문관도 뽑고. 학생인권 옹호관을 보좌하면서 성 평등 정책도 수립했어요. 성인권 정책 전문관, 노동인권 전문관 등 센터 인력도 늘리고, 제가 발로 뛰어다니면서 안정화시킨 거죠. 소송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을 때 교육청 학생인권센터를 많이 찾으셔요. 



규칙이 왜 있는 걸까


채 : 교육청에서 수립하신 학생인권 종합 계획의 성과를 소개해주신다면요? 


박 : 학생 인권과 관련된 다양한 연수, 교육 등을 하도록 만든 건 처음이에요. 학생인권 옹호관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역할도 수립하고, 인권조사관도 몇 명 계셔서 신고도 받고, 상담도 해요. ‘학생인권’이라는 게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큰 틀에서 이뤄지는 거거든요. ‘시민’의 핵심은 자기 인권에 대한 자각, 주권이 국민에게 있잖아요. 그걸 ‘행사할 수 있음’에서 시작해요. 북유럽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이 'Rule vs Value'였어요. ‘규칙이냐, 가치냐’ 제가 항상 고민하던 게 거기 담겨있었어요. 


학교에서 맨날 얘기하는 것도 ‘선생님도 네 마음 알아, 그런데 학칙 있으면 지켜야지’거든요. 근데, 학칙은 학칙이 다가 아니에요. 그 가치를 실행할 수 있게 조문화해놓은 것뿐이죠. 살인죄가 있는 건, 사람 죽이면 안 된다는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지, 살인죄가 있어서 사람을 안 죽이는 게 아녜요. 학교라는 곳에서 가치를 가르치려는 고민, 학칙이 왜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사라져버렸어요. 물론 저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압니다. 학생들이 내 앞에서 욕하면서 지나가고 선을 안 지킬 때가 많지만, 이건 비단 학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생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정책을 만들려다 보니 현실과의 충돌이 많아요. 


인권침해하지 말자는 정신 자체를 뿌리내리려고 하는데, 그 과정 중에 교권 침해가 일어나거든요. 교사들 만나면 '학생인권' 말만 들어도 조소해요. ‘너희 아니어도 학교는 학생인권 천국이야. 학교 힘들어죽겠는데 교권 얘기 안 해?’라면서요. 학생인권센터가 자리 잡았다 생각되니 제가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없었어요. 내가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것도 아니고, 원래 교사가 되고 싶었던 거니까 더 나이 들면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것도 힘들잖아요. 하루하루 낙이 없는 아이들 곁으로 가고 싶었어요. 

" 하루하루 낙이 없는 아이들 곁으로 가고 싶었어요."


자기가 보는 세계가 다인 줄 아는 아이들,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힐까 


박 : 전 낙후된 지역 혁신학교로 가고 싶었어요. 초등은 자리가 많은데, 혁신 중학교 국어교사 자리는 많지 않거든요. 변호사 온다면 좋아할 줄 알았는데, 교육청 팀장이라는 게 교장보다 높은 급이어서 불편한지 안 뽑아주는 거예요. 자존심 버리고 여기저기 다 썼죠. 한 60군데 썼어요. 딱 한 군데 연락 온 곳이 자사고, 특목고 많이 보내는 서초구 소재 중학교였어요. 돌아보니 거기에서 있었던 1년이 정말 소중해요. 제가 언제 그런 강남 한가운데 문화를 접해보겠어요. 소송도 하나 하고, 법정도 몇 번이나 가고. 거기 부모님들 대부분 전문직이거든요. 학폭 사건 하나에 변호사가 10명 가까이 온 적도 있어요. 학폭법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1년 동안 절감했죠. 강남 애들이 어떤 면에서 행복하고 불행한지도 느꼈고요. 


게다가 1, 3학년 수업 태도가 완전 달라요. 1학년들은 초등학교 마친지 얼마 안 됐으니까 모둠수업 같은 거 잘 해요. 1학년 성적은 내신에도 안 들어가고, 학년 말 즈음 교원평가할 때 1학년들은 제가 담임이 아니니까 의무적으로 할 필요도 없는데, 국어 수업 재밌다고 평가해준 학생들이 많았어요. 3학년 평가는 달라요. ‘진도 좀 빨리 나가달라. 모둠수업이 이래서 안 좋다’ 이런 내용이 쓰여있죠. 그 학교에서 3학년 모둠수업하는 선생님들이 거의 없었거든요. 자사고 특목고 가는 애들은 입시 준비해야 하는데, 제 수업이 안 맞을 수 있죠. 


강남 아이들은 정말 다재다능해요. 활동지에 빈칸 채우는 건 잘 하는데, 자기 생각 쓰라고 하면 익숙하지 않아요. 논술 시험은 또 잘 봐요. 무슨 책 읽고 있는지 보면 논술학원 숙제예요. 게다가 혁신학교로 바로 갔으면 몰랐을 일반학교 행정의 고질적인 병폐도 많이 느꼈어요. 젊은 선생님들 특히, 기간제 교사한테 일이 많이 몰려 있죠.

저는 혁신학교에 꼭 근무해보고 싶어서 올해 구로에 있는 학교로 옮겼는데, 학폭 담당 교사에게는 담임을 안 맡겨요. 담임은 자기 반에 집중하게 돼 있거든요. 전 꼭 담임을 하고 싶어서 둘 다 하겠다고 했는데, 전례가 없어서 면접 볼 때도 1시간이나 줄다리기했어요. 겨우 승인이 나서 현재 2학년 담임을 맡고 있어요. 


학업 스트레스를 거의 안 받으니까 아이들은 해맑아요. 시험 전 날 시험 범위 물어보는 아이도 있고, 그래도 혁신학교라 예산 받으면 무늬만 그럴싸한 사업을 하는 게 아니에요. 교사의 자발성을 고무시키는 내실 있는 수업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죠. 모둠수업이 기본이고, 행정적으로도 실무사님들이 일을 많이 덜어줘요. 학교폭력도 회복적으로 접근하려 노력하고요. 



학교는 이 사회에 종속되어 있어


박 : 양극단에 있는 두 학교를 경험하다 보니 다른 고민들이 늘어났어요. 강남 아이들은 자기 주변의 사회가 다인 줄 알고 일반적인 삶과 점점 유리될 텐데 이걸 어떻게 좁히지? 사실 어떻게 보면 강남이 너무 특이하고 지방 가면 구로의 학교 모습이 평범할 수도 있어요. 서울에만 있으면 똑같이 불안해지는 거예요. 잘하는 아이 부모들이 더 불안해하죠. 자녀가 공부를 좋아하는데 강남으로 이사할까 고민하는 변호사 선배한테, 강남에서 살아남는 애들은 스트레스에 진짜 강한 애들이라고 일러줬어요. 


저희 반에 일본 애니메이션 덕후가 있는데, 성적은 바닥이지만 일본어는 곧잘 하거든요. 수능제도 아래에서 얘는 수능의 들러리밖에 안되잖아요. 일본어 잘 하는 걸 발전시켜서 진학이든 진로든 연결되면 좋을 텐데 기성세대는 공부 못하는 애들에게 ‘대학 가서 뭐해, 특성화고 가서 빨리 직업 찾아.’ 이런 말 하죠. 그럼 계급도 빨리 결정될 텐데, 노동시장이 튼튼하고 노조가 튼튼하면 문제없지만, 구의역 김 군 사건처럼 특성화고와 연결되는 산업현장이 굉장히 열악하잖아요. 사회가 특성화고 나온 애들을 존중하냔 말이에요. 그런 것도 아니면서 특성화고 가서 취업하라고 하는 건 학생들을 기만하는 거죠. 


우리나라 중고등학교는 유급도 없고, 학생들이 대부분 인문계 고등학교 가잖아요. 북유럽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도 생각보다 많이 안 가요. 우리로 치면 특성화고가 되게 다양하게 있어요. 우리나라는 사회나 부모님들이 대학 서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니까 수능을 서술형으로 바꾸든 그 어떤 제도를 가져와도 더 좋은 대학 가려고 경쟁할 거예요. 


결국 여기 애들은 좋은 어른을 실제로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인성적이든 직업적이든 보고 배울 수 있는 상상의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마산은 다 비슷했어요. 박탈감이고 뭐고 문화자본이 거의 없으니까요. 그때는 외제차 한 대 보기 힘든 사회였는데, 지금은 아파트도 엄청나게 차이 나 보이고, 금수저란 말이 생겼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노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못 주면 그 사회가 당연히 망가지지 않겠어요. 사회를 안 바꾸고 학교만 바꿔서는 아무것도 안되는 거 같아요. 학교는 사회에 종속돼 있으니까요. 

"삶의 실천에서 완벽하게 일관성을 추구할 수는 없더라도 궁극적인 지향점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채 : 그래도 부모들은 전통적으로 공교육에 거는 기대가 있어요.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공교육에 실망이 커지다 보니 우리 단체 회원들 중에서도 흔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선생님 같은 분으로부터 학교에 아직 희망이 있다라는 말을 듣고 싶으실 거 같아요.


박 : 저는 고등학생을 둔 부모님이시라면 공교육 사교육을 이분법적으로 나눠놓고 사교육으로 투항한다 생각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노동운동하던 사람이 삼성에 최종 면접 남겨두고 ‘노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고 저에게 물었어요. 전 노조 반대한다고 얘기하고 들어간 뒤에 다시 노동운동하면 된다고 말해요. 


삶의 실천에서 완벽하게 일관성을 추구할 수는 없더라도 궁극적인 지향점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내면에 불안을 기만하고 참으라는 게 아니라, 해보고, 잘 되든 안되든,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 되니까요. 사교육에 대한 방향과 인식만 공유해도 되지 않을까요? 환경운동한다고 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요. 공교육에 실망했다고 회의에 빠져서 ‘입시해 보니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다 허상이야. 소용없어.’ 이렇게 되면 정말 가슴 아플 거 같아요. 

"우리는 10대, 20대를 ‘애’로 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도 더 애 같아지는 거 같아요."


채 : 전에 우리 단체 교사 간담회에 오셔서 북유럽 교육현장 보고 오신 경험 얘기해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교사 수준이나 교육과정은 한국이랑 크게 다르지 않더라, 그보다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주체로 키우는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짧은 체류 기간 동안 그 사회의 양육 태도를 어떻게 체감하셨는지요. 


박 : 스웨덴에서 고위 관료까지 역임하신 황선준 박사가 한국에서 교육연구원장으로 일하시는 동안 여행사랑 연계해서 교육기행을 기획하셨어요. 주변에 같이 가신 선생님들, 특히 초등 선생님들이 수업참관하시면서 ‘어, 저거 나도 하는 수업이다.’ 하시더라고요. 우리도 초등학교 수업은 많이 바뀌었잖아요. 


제가 그 나라 선생님들께 ‘애들이 말 안 들으면 어떻게 하느냐, 학교에서 휴대폰 어떻게 지도하느냐’ 이런 질문을 했는데, 황 박사님이 통역해주시다가 “그런 것 좀 묻지 마, 창피해!”하시는 거예요. 제 질문의 수준이 너무 낮은 거죠. 


전 애들이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너무 많이 해서 “휴대폰 쓰지 마세요.”라고 5번 정도 주의를 줘요. 계속하면 “잠시 보관하고 있을 테니 주세요.”라고 말하는데 제일 속 썩이는 애들은 “싫어요!”라고 받아쳐요. 학생들이 너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부모님을 부른다, 선생님과 같이 상담을 한다.’ 그런데, 우린 그런 풍토가 아니잖아요. 부모님도 잘 안 오시고요. 거기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해주고, 이 사회 전체가 학생, 아동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이 ‘존중해주되, 존중받으려면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하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10대, 20대를 ‘애’로 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이는 모습도 더 애 같아지는 거 같아요. 교육청에서는 민주시민으로 대하라 하고, 학교에선 말로 해도 안 듣는다, 허용해줘선 안된다 하거든요. 학생을 주체로 만들어야 성장한다고 해도, 그렇게 부단히 노력하는 교사도 있고 안 그런 교사들도 있잖아요. 교사 개인에 따라 다르니까 애들이 볼 때 장단이 안 맞는 거예요. 부모는 입시 때문에 과잉 케어하면서 자녀가 주인 된 삶을 살게 하지 않고 학교로 보내고요. 준비물 같은 것도 부모가 다 챙겨주잖아요. 아이들도 자기 생각 없이 자라고 이렇게 성인이 됐을 때 민주시민으로서 역할도 안 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저희 학교 학칙 상으로는 핸드폰을 학교에 가지고는 와도 끄게 돼 있어요. 3학년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핸드폰 하는 걸 보는 족족 다 뺐어요. 저는 우리 반 학생들과 약속했어요. “수업 시간에 휴대폰 하거나, 화장하는 건 옆 사람의 학습권 침해니까 안됩니다. 단 쉬는 시간에 하는 건 제제 안 하겠습니다.”라고 규칙을 정했는데. 학생들은 실제 잘 지키지 못하니까 저한테 와서 “00가 핸드폰 해요!” 얘기하고, 이런 게 학교의 풍경이에요. 


저에게 ‘2학년들은 화장해도 돼요?’ 하고 묻는 교사도 있어요. 학생들 화장에 반대하는 교사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냥 꼴 보기 싫을 수도 있어요. 인간을 하나의 인격체로 봤을 때, 모든 인격체는 ‘00을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안 하는 건 왜 안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내면적, 외면적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교육자와 부모의 몫 아닐까요. 어려운 문제지만 그만큼 실체를 인정하는 고민이 필요하고, 민주적으로 해결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아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요.


지면으로 미처 다 옮기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3시간 가까이 나누는 동안 준비한 질문의 절반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질문이 필요 없기도 했다. 선생님의 머릿속에는 지금 만나는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선뜻 답해 줄 수 없는 그 해답을 찾는 여정, 

이번 등대지기학교에서 시작될 것이다. 

등대지기학교 신청하기 

http://bit.ly/2JK2l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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