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 네 멋대로 해라! – 장전수 선생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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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오랜 친구 장전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단체의 여러 일에 기꺼이 참여하는 든든한 벗, 2017년 총회에서 속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장전수 선생님은 어떤 사연을 품고 있을까요? 전천후 교육 운동가로 살고 있는 장전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장전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나성훈 (이하 ‘나’) :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장전수 (이하 ‘장’) : 저는 장전수라 하고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랑 인연을 맺은지 7년 정도 되었네요. 12살, 9살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나: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요?

장: 내성적이었어요. 저를 감췄던 느낌? 사춘기 특유의 부끄러움이 있었고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 종류가 ‘특수지(地)’ 고등학교라고 외딴곳에 있었어요. 그때 평준화 시기였는데 일부 기간만 비평준화를 한 적이 있어요. 외딴 이 학교로 공부한다는 친구들이 몰린 거죠. 저도 어쩌다 보니 가게 되었고요. 그런데 중간고사를 봤더니 전교 400등을 한 거예요. 그때 알았죠. ‘아, 공부가 재능이구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 후로 공부를 접고 놀았어요. 축구하고 당구 치러 가고요. 두 가지 종목을 꾸준히….


나: 교육 문제에 대한 관심은 보통 학창 시절 경험에서 생기잖아요. 학생일 때 선생님은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장: 그런 게 없었어요. 의식을 갖고, 책을 읽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어른이 되고 나서 다른 기회로 성찰할 기회가 생겼어요. 어떤 책을 만나면서 삶의 목적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요.


나: 어떤 책이요?

장: 이나모리 가즈오 선생의 ‘카르마 경영’이에요. 그분 삶의 목적이 ‘내가 태어났을 때 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영혼을 갖자’라는 거예요.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큰 충격이었어요. 제 삶의 목적은 그분과 같아요. 그런데 아름다운 영혼을 만들려면 방법이 필요하잖아요. 제가 택한 건 ‘교육’이었어요. 죽기 전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처럼 비록 내 삶은 뜻대로 되지 않고 힘들었지만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줘야겠다, 울타리를 낮춰야겠다 생각했어요.


나: 어릴 때 꿈이 있었나요?

장: 서른다섯까지 제 삶을 살지 못했어요. 평범한 대학 전자공학과를 나왔고, 대기업에 들어갔어요. 아버지가 원하는 삶이었거든요. 수학에는 관심이 많았는데, 딱히 꿈도 없고 오락만 좋아해서 가라는 대로 전자공학과 갔어요. 직장은 대기업으로 쉽게 갔어요. 저희 동기들도 쉽게 갔어요. 졸업식 때 진짜 말도 안 되는 애들이 삼성 뱃지 달고 왔어요. ‘야, 너도야?’ 그랬다니까요. 저희 때만 하더라도 그런 친구가 많았어요. 그때 아무튼 꿈은 없었고요. 서른다섯 살에 어떤 계기로 제 삶을 살게 되면서 저는 지금 8살이라고 생각해요.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 페이스북 프로필에 보니 ‘소명에 순종하며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겠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여있더라고요. 무슨 뜻인가요?

장: 소명에 순종한다는 건 제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고요. ‘그날’은 제가 얘기한 서른다섯 살의 어느 날이에요. 저를 깨닫게 해준 순간. 서른다섯 살에 술 때문에 병원에 입원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제 삶에 질문을 던졌어요. ‘너는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먹어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니, 왜 이러고 있니’라는 질문이었어요. 병원에 있을 때부터 집에 와서까지 계속 생각했어요. 2박 3일이었지만 병원 독방에서 크게 깨달았어요. 마치 신이 말해 주듯이 답이 떠올랐고 여러 가지 실천해 나가면서 새로운 일이 많이 생겼어요. 사람도 제대로 만나게 되었고요. 이전에 저는 사람을 몰랐어요. 비즈니스로 만나는 게 전부였어요. 지금은 사람 만나는 맛이 이런 거구나, 정말 많이 느끼고 있어요. 굉장히 충만하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고요. 


2017년 총회에서


나: ‘그날’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네요.

장: ‘그날’ 이후에 생각을 정리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책 읽고 일주일 정도였지만 케냐로 봉사활동을 다녀왔고요. 느낀 바 있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어요. 땀 흘리면서 일하고 싶었어요. 진짜 내 멋대로 해보는 도발이랄까요? 서른다섯이나 되었는데 이제 내 멋대로 해볼 수 있는 거 아니야? 앞뒤 안 보고 나왔어요.

1년 동안 세차장을 했습니다. 그때 열심히 살았는데 안되겠더라고요. 동업한 친구한테 넘겨줬어요. 이후에 좋은 먹거리 준다는 취지에서 주먹밥집도 했어요. 하지만 식당도 잘 안되었어요. 정말 괴로웠어요. 가게 문 닫아 놓고 아는 분을 만났는데 ‘막노동이라도 한 번 할래?’ 그러는 거예요. 집에 뭔가 갖다 줘야 하는데 못 갖다 주니까…. 그래서 시작했던 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요즘은 삼성전자가 고덕에 대규모 반도체 단지를 짓고 있거든요. 거기서 일하고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공사판이에요. 처음에 일했을 때보다 훨씬 높은 단가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생계로 어려운 건 없고요. 유목민처럼 사는 게 큰 변화죠. 일이 있는 곳에 가야 하기 때문에. 정착민으로 살다가 사냥하는 삶을 사니까 안주하지 않게 돼요. 긴장감도 있고요.


동료들과 함께 출신학교 차별 금지를 외치다! (2019년)


나: 2017년에 단체 총회에서 이야기 나눠 주신 적이 있잖아요. 회사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다들 궁금해했거든요. 어떤 이유가 있을까 하고요.

장: 땀 흘리면서 일하고 싶었어요, 술을 끊기 위해서 사람도 끊었고요. 모든 걸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도 나온 거예요. ‘그날’ 내가 한 질문에 답변하는 삶을 살자, 약속을 지키자는 생각으로 뛰쳐나왔어요. 그 이후로 삶이 바뀌었죠. 재미있어요. 제가 이런 길을 걷을거라고는 상상 못했거든요. 아이들한테도 자기 삶을 살아보라고 하고 싶어요.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늦은 나이에 기술자들 있는 곳에 가서 살아남았잖아요.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책 제목처럼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 주위에서 도와줘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신, 교육이란 무엇인가.


나: 교육 영역 중 가장 관심 있는 건 무엇인가요?

장: 제가 관심 있는 부분은 평가였어요. 많은 게 평가에 종속되잖아요. 그런데 상대평가할 거냐, 절대 평가할 거냐, 수능 몇 퍼센트로 올릴 거냐…. 너무 미시적인 논의가 많아서 힘들더라고요. 예를 들어 이혜정 소장님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IB처럼 혁신적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상대평가는 없어지는 게 맞아요. 내가 연산을 지도하는데 학생이 연산 능력을 충분히 획득했다고 판단하면 PASS를 주는 게 맞고, 아니면 FAIL이어야 하잖아요. 우리 교육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어요. 단지 몇 등인지 줄 세우기만 하고, A 학점, B 학점으로 나누고. 너무 폭력적이고 교육자만을 위한 거예요. 피교육자를 위한 게 전혀 아니에요. 교육하는 분들이 내가 왜 교육하고, 나의 존재 이유는 뭔지 고민하다면 과연 상대평가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나: 지금은 경기 매탄, 영통 등대 모임에 참여하시죠? 어떻게 진행되나요?

장: 제가 정기적으로 출퇴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등대 모임을 가지 않은 지 좀 되었어요. 원래는 용인 등대에서 모임 했고요. 등대 모임은 세 네 군데 정도 간 것 같아요. 이런저런 일이 많았죠. 좋은 분도 많이 만났고요. 지금은 아내가 등대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교육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친구가 아내라서 고마워요. 집에 들어가면 아내 활동 얘기, 등대 모임에서 만난 분 도와주고 왔던 이야기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감사하죠.

나: 황혜진 선생님께서 등대 모임에서 신문을 만들었다고 들었어요. (장전수 선생님과 황혜진 선생님은 부부다.)

장: 깜짝 놀랐어요. 같이 하는 분 중에 신석남 선생님이라고 계시는 데 신문사에서 편집 일을 하셨나 봐요. 그분의 조언을 받아서 4면짜리 신문을 만들었어요. 좋더라고요. 또 하지 않을까….


등대모임에서 발행한 신문 (2019년)


등대모임에서 발행한 신문 (2019년)


나: 올해 단체 행사 중에 ‘평등 선언문 낭독의 날’에 참여하신 게 기억나네요. 그날 분위기가 어땠나요?

장: 그때 준비도 안 했는데 발언하라고 하셔서 버벅거렸어요. 고맙게도 아들이 같이 가줬고요. 함께 한다는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지 않았을까…..광화문 간다, 하니까 갈까 말까 하더라고요. 맛있는 거 사준다고 해서 같이 갔어요.

우리가 출신학교라는 가면을 쓸 이유는 없어요. 제가 그때 복면 가왕 비유를 들었어요. 복면 속 사람이 개그맨이기 때문에 놀라긴 하지만 결국에 그 사람은 실력 있는 뮤지션인 거잖아요. 그런 거에 반전이 있는 거잖아요. 배경만 보는 건 옳은 게 아니에요. 그런데 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할까. 불신사회라서 ‘출신학교 보지 않는 건 좋아. 능력으로만 봐야 하는데 그걸 누가 봐? 그 사람은 어떻게 선택되고, 심사를 공정하게 할까?’ 이런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신이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 것 같아요.


평등 선언문 낭독의 날에 아들 경훈이와 함께 (2019년)


“출신학교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은 이미 80% 찬성으로 보여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행동뿐이고, 국회의원들은 법을 제정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복면가왕을 보면 가면 뒤에 누군가는 가수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입니다. 학벌이라는 가면을 버리면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라는 가면을 버리고 있는 이제 그 능력을 그대로 봐야 할 때입니다.” - 평등 선언문 낭독의 날 장전수 선생님 발언 내용 중


평등 선언문 낭독의 날 (2019년)


이런 이야기는 처음 해본다며 선뜻 꺼내기 힘든 속내를 나눠준 장전수 선생님. 쉽지 않은 길을 지나 자신이 태어났을 때보다 ‘조금 더 아름다운 영혼’을 갖기 위해 ‘교육’이라는 방법에 집중하는 한 사람. 요즘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과 더불어 ‘일상에서 행복찾기 프로젝트’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주말마다 3시간 넘게 웃고, 뛰고, 행복하다고 한다.


손흥민이랑 비교할 필요는 없잖아요?


나: ‘일상에서 행복찾기 프로젝트 - 주말 운동장’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장: 작년에 아이가 학교에서 가정 통신문을 가져왔는데 학부모를 포함해서 자율동아리를 만들어보라 하더라고요.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니까 상의해서 계획서를 냈어요. 그랬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안되는 쪽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선생님이 아버님께서 그냥 해보시면 어떻겠냐 해서 작년 4월부터 일요일마다 축구를 했어요. 저희가 전교생이 240명 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예요. ‘주말 운동장’축구 모임에 참여한 학생들이 남자아이들 중 40%는 될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교감 선생님께서 ‘꿈의 학교’가 있으니까 지원해보겠냐 하더라고요. 제가 축구 선수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뛰게 하는 것 밖에 없거든요. 기술도 몰라요. 가르쳐 주는 것도 없고요. 고민하다가 의미가 좋아서 원서를 내봤는데 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축구만 하려니까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같이 뛰기에 무리가 있어서 1,2학년은 놀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엄마 아빠들이 모여서 같이 하고요. 화려하진 않지만 좋아요. 아이들 노는데 어른 끼워주는 경우 별로 없는데 저는 끼워 주잖아요. 3시간씩 놀고 뛰고 제가 또 소리 엄청 지르거든요. 행복해요.


일상에서 행복찾기 - 주말 운동장 (2019년) - 출처 장전수 선생님 페이스북 계정


나: 1,2학년 놀이와 축구 시간이 다른가요?

장: 같아요. 저는 축구를 하고 놀이는 아내가 맡아주고요. (웃음) 주도하는 분이 세 분 정도 계세요. 아내한테 전가한 면이 없지 않은데 무리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정도로 하려 해요. 5월부터 시작해서 11월까지인데 7부 능선까지 온 것 같아요. (인터뷰 당시 9월 말)

‘주말 운동장’의 취지는 학교 운동장이 열려 있는 거예요. 제가 교감, 교장 선생님과 독대도 여러 번 해서 체육관을 열어 놨거든요. 비 와도 뛰어놀 수 있어요. 이런 학교가 여기만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아이들에게 공이랑 줄 주잖아요? 자기들끼리 묶어서 돌려가면서 막 놀아요. 열어 놓으면 뭔가 만들어 낸다는 거죠. 놀이 전문가는 아이예요. 치명적인 안전에서만 벗어날 수 있게 어른들이 도와준다면 되지 않을까 해요. 

나: 운동장이 열려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안 되는 게 이상하네요.

장: 요즘에 운동장 가보면 개미 새끼 하나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운동장에서 엄청 오래 놀았거든요. 그래도 저희 학교에서는 뛰놀고 하니까 옛날 생각나더라고요. 그런 거 보면 ‘좋다, 잘 하고 있구나’, 생각도 하고요. 아이들과 함께할 때 꼭 실력이 좋을 필요는 없어요. 축구를 잘했다면 조기 축구회에 갔겠죠. 제 실력이 중학교 2학년 수준이에요 딱 맞더라고요. 축구 실력이 초등학생 정도면 더 어린아이들 가르치면 돼요.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는 거죠. 손흥민이랑 비교할 이유는 없잖아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1인 시위 참여 (2019년)


나: 바쁜 삶 속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이나 일상에서 행복찾기 프로젝트 같은 일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장: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 생각해요. 그런데 보통 일탈을 통해서 행복을 찾잖아요. 지금을 이겨내는 거죠. 나중에 나는 여행 갈 거니까 하면서. 우리는 일상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일탈해서 행복을 찾으려면 매일매일 많이 힘들지 않을까요?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단체가 도움을 주고 있고요. 활동에 참여하는 자체가 저를 행복하게 해요.


네 멋대로 해라!


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앞으로 어떤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나요?

장: 대중과 친해져야 해요. 송인수, 윤지희 대표님을 포함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방향성은 잘 되어 있어요. 가치관도 좋고. 비유하자면 마라톤의 선두그룹 같아요. 그런데 선두그룹이 막 치고 나가니 중간이 없어요. 눈에 보여야 해요. 눈에 보이면 쫓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요. 대중과 친해지기 전에 회원과 먼저 친해져야 하고요.

또 하나가 청소년이랑 어떻게 연대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해요. 청소년이 얘기하면 피부에 와닿는 게 달라요. 연결 고리를 찾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우리 단체 특징으로 제도와 의식의 양쪽의 면에서 일한다는 걸 강조하잖아요. 제가 봤을 때는 8:2 정도로 제도 쪽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의식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지에 대해 조금 더 투자해야 할 것 같아요.


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면 하시나요?

장: 저희 집 가훈이 ‘네 멋대로 해라.’예요. 자기 멋을 찾아가는 아이들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한테 얽매이지 말고 각자 가진 것에 대한 신뢰를 가졌으면 해요. 그런 신뢰가 있으면 어디선가 분명히 도와주거든요. 아빠 말대로 내 멋대로 했는데 문제없더라, 그런 얘기를 10년, 15년쯤 후에 듣게 되면 그보다 기분 좋을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아이들과 교육 문제에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가. 노워리의 오랜 벗 장전수 선생님, 그리고 많은 회원들과 함께 더 많이 고민하며 이 길을 가야겠다. 기억에 오래 남는 인터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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