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80년대 생 여성 리더쉽 시대를 연다 (정지현, 홍민정 신임 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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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수, 윤지희 공동대표 없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상상하기 힘들었다. 대표가 바뀔 거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80년대 생 젊은 리더십에 시민들이 신뢰를 가질까 염려부터 앞섰다. 핀란드의 34세 여성 총리를 부러워하면서 왜 우리는 젊은 여성 리더를 걱정할까.

(2020년 2월 7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새로운 공동대표를 선출했다)


새 대표로 취임한 정지현, 홍민정 대표는 각각 82년, 83년생으로 우리 단체에서 오랫동안 상근자로 일해 왔다. 정지현 대표는 2010년 3월을 시작으로 회원사업과 조직 살림을 맡아왔고, 홍민정 대표는 2014년 1월부터 상임변호사로 일하며 정책운동의 법률 영역을 도맡아왔다. 두 사람은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 2019년 대표 후보로 지명됐고, 지난 2월 7일 회원 총회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끝없는 회의와 잦은 외근으로 바쁜 두 사람을 어렵게 모아 인터뷰를 청했다.


채송아 (이하 채) : 정식으로 대표에 취임하셨는데, 일상에서 달라진 점이 있으신가요?

정지현 (이하 정) : 회의가 많아지고 바빠졌어요. 책임감 때문에 어깨가 더 무거워졌죠.

홍민정 (이하 홍) : 회의는 예전부터 많았어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난 주에 악마를 쫓으면서 소리 지르는 꿈을 꿨어요. 겉으로는 똑같이 밝게 살고 있는데 의식하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있나 봐요.(웃음)


채 : 정지현 대표님은 2010년 3월에, 홍민정 대표님은 2014년 1월에 입사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일하게 되셨어요?

정 : 제가 대학 때 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시민단체에서 일해야겠다고 진로를 정했어요. 대구에 있는 여성단체에 3년 정도 일하면서 몰랐던 세계를 많이 배웠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아야겠다 싶어 서울로 왔는데, 아는 분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추천해주셨어요. 단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 급하게 검색을 해봤어요. 송인수, 윤지희 대표님 인터뷰 기사가 나오더라고요. 금요일에 면접을 봤는데, 월요일부터 나오라고 하셔서 바로 출근했더니 다들 청소를 하고 계셨어요. 저도 오자마자 청소를 했죠. 제가 교사나 학부모는 아니지만 저 역시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경험했잖아요. 전 중학교 때 암기식 교육이 너무 싫었어요. 대학에 가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회의를 느꼈고요. 우리나라에서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운동은 정말 중요하겠다 생각했죠.

(좌:고향 부산에서 어린시절, 우:2019년 결혼 직후 회원MT에서)


그만두고 싶을 만큼 싫었던 암기식 학교교육


홍 : 정지현 선생님은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려고 하셨대요.

정 : 암기식, 객관식 교육이 너무 싫어서 중3 때 자퇴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몇 개월을 고민하면서 혼자 공부할 계획을 세웠어요. 하루 생활 계획, 과목별 계획을 다 세웠죠. 예를 들면 음악공부는 음악회에 가서, 미술공부는 미술관을 다니면서 공부하겠다, 살아있는 공부를 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거죠. 어느 날 밤 10시에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님 방에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어요. ‘드리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 이렇게 외우듯 하는 공부가 공부인지 모르겠다. 대학 진학 계획을 세우고 검정고시 칠 테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두 분이 30분이 지나도록 제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안하시면서 각자 할 일을 하시는 거예요.


홍 : 중학생 딸이 무릎 꿇고 앉아 있는데 완전히 투명인간 취급하신 거네요.

정 : 그래서 조용히 방을 나왔죠. 이건 씨알도 안 먹히겠다 깨닫고 바로 포기했어요. 나머지 학창시절은 다른 길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입시제도에 맞춰 순응하면서 지냈어요. 만약 그때 학교를 다니지 않았으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겠죠.


채 : 정지현 대표님은 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으셨어요?

정 : 제가 사회학을 선택한 이유도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는 학문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거든요. 만약에 직업을 가진다면 우리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일에 기여하고 싶었어요. 이타적인 삶을 살고 싶은데, 시민단체에서 일하면 자연스럽게 그런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민단체 가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니까 얼굴이 사색이 되시는 거예요. 반대는 하지 않으셨지만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고생할까봐 걱정하신 거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부모님한테 지지받지 못하니 가시방석 같아서 한 달을 아침도 못먹고 일찍 나왔어요. 불안정한 직업이라는 이유로 지지해주지 않으면 자식은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받는 거 같아요. 우리 회원님들께도 불법적인 일이 아닌 이상 자녀의 앞길을 응원해주면 더 적극적으로 개척해나갈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좌: 어린시절 서울 집에서, 우: 2018년 가족사진- 올해로 6살이 되는 아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을 깨닫고 갖게 된 소망


채 : 홍민정 대표님은 어떻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오게 되셨어요?

홍 : 저는 문사철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국문학을 전공했어요. 정작 부모님은 교사가 되기를 원하셔서 교육대학원으로 진학했죠. 친구들이 열심히 임용고시 준비할 때 전 스스로 원한 진로가 아니니까 자신이 없었어요. 뭘 하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갑자기 변호사가 반짝이면서 그 공부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20대 초반부터 어떤 직업이든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어요. 주변에 다 비슷비슷한 아이들끼리 자라서 몰랐는데,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이 있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회의 모순을 작게나마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2013년까지 우리 단체에서 일했던 변호사가 제 선배라 후임으로 일할 의향을 물어봤어요. 제가 교육을 전공하기도 했고 청소년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활동가 정체성보다 변호사로서 교육 쪽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채 : 봉사활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었나요?

홍 : 교회 대학부 다니면서 섬에 가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어요. 말라비틀어진 플라스틱 그릇이 방에 널려 있고, 독거노인이 많으신데 치료비는커녕 밥도 굶으니까 옆집 아저씨가 도시락을 놓고 가다 어느 날은 농약을 놓고 가기도 한다는 거예요. 자살을 유도하는 거죠. 실제 자살률도 높고 가족을 학대하는 집도 많아요. 염전노예도 있고요. 너무 비참해서 말로 다 전하기도 어려워요.


로스쿨 가기 직전까지 했던 봉사는 독거노인 댁에 가서 같이 있어드리는 건데, 상도시장에서 얼음집을 했던 할머니 단칸방이었어요. 아드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혼자 남아 사시는데, 주차장 화장실에 가서 볼 일 보고 거기서 씻으시고요. 우리가 가면 구부정한 허리로 어딘가 나갔다 오시더니 만두를 쪄 오신 거예요. 따뜻한데 누워있으라고 해서 할머니 방에서 자다온 적도 있어요. 더 사랑 받고 온 느낌이었죠. 할머니 집 뒤에 이마트가 생기면서 시장이 없어지면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하셨어요. 로스쿨 가는데 그런 활동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던 거 같아요.


채 : 로스쿨 졸업 후에 교도소에서 근무하셨다면서요.

홍 : 단체 오기 전에 8개월 동안 일했어요. 대학 때부터 청소년 문제나 청소년 범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 안 된 상태에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나쁜 짓을 하고, 그게 반복돼서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는 가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어요. 교정시스템이나 교화에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교도소에서 변호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난 거예요. 변호사 시험 보고 합격 발표도 아직 나기 전이었어요. 다들 여행 다니고 쉬던 시절이었는데, 제가 성격이 급해요. 관심 있는 분야니까 바로 면접을 보러 갔죠.


채 : 교도소에서 변호사는 어떤 일을 하죠?

홍 : 제가 근무했을 때 관사에서 지냈었는데 교도소가 외진 곳에 있는 만큼 이동이 쉽지 않았어요. 거의 청과 관사에 머물면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죠, 그 교도소가 국내 유일의 민간교도소였는데 소년원을 세우려는 계획이 있었어요. 다른 소년원에 출장 가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조사 연구도 하고요. 교도소에도 봉사활동이 다양하고 상담하는 교화프로그램이 많아요. 수용자를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도관 한 사람의 진심이 수용자의 마음을 변화시켜서 재범률을 낮춘다고 해요. 하지만, 남성교도소인데 제가 젊은 여자다보니 수용자들을 직접 만나거나, 변호사로서 역할을 하기엔 제한이 많았어요. 출소 전에 필요한 법률 지식을 1대 다수로 교육하거나, 정보 전달하는 역할에 국한됐죠. 언젠가 소년원이나 범죄 이력이 있는 청소년을 위한 비영리단체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어요.

(사교육걱정에서 일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변화했다는 정지현 대표)

여자 송인수 같은 홍민정 대표, 사교육걱정과 결혼한 줄 알았던 정지현 대표


채 : 두 분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일하면서 자신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나요?

정 : 제가 원래 굉장히 내성적인 사람이거든요. 초중고대학 때까지 3월 한 달 동안 말을 먼저 걸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한 달 내내 혼자 가만히 있으면 주변 친구들이 불쌍해 하면서 말 걸어주고 밥 먹자고도 했어요. 첫 직장에서도 회의할 때 제 생각을 묻기 전까지는 말이 없었어요. 우리 단체에 와보니 동료들이나 회원들이 밝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았어요. 여기에 적응해가면서 열린 마음으로 관계를 맺다보니 내성적인 성격을 이겨낸 거 같아요. 저 스스로에게는 놀라운 변화이자 발견이에요.

(사교육걱정 상근자들은 각종 행사마다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홍 : 전 원래 알고 있던 기질이긴 한데, 다른 기관이나 송무를 하는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변호사였다면 지금처럼 재밌게 일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이벤트 기획사처럼 대중 캠페인을 만들어야 할 때도 있고, 회원 대상 사업도 있고 다양한 일을 해볼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참, 제가 가끔 ‘여자 송인수다’라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송인수 선생님 스스로도 저랑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씀하셔요.

(2017년 여름, '특권학교 폐지 촛불 시민문화제' MC전문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 : 홍민정 선생님은 송인수 선생님처럼 집념이 있어요.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목표한 바를 향해서 집중하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있어요. 장애물은 얼마든지 생기는 법인데, 저는 쉬어가거나 가끔은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꼭 필요한 일이다 생각하면 극복하고 해낼 사람이에요.


채 : 이전 대표님들께서 본인들에게 대표직을 제안하셨을 때 심경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요. 수락할 때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을 텐데요

정 : 2018년 하반기에 10년플랜 TF 시작하고 나서 초겨울이었을 거예요. 차 한 잔 하자시면서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이 시점에서 두 분은 임기를 끝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듣는 순간 마음이 울컥했어요. 회원들, 상근자들과 한 몸처럼 이끌어 오셨던 운동이 앞으로 더 나아가 새로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새 사람이 필요하다 말씀하시는 무게에 압도돼서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려웠어요. 두 분이 물러나야 이 운동이 새롭게 도약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누군가는 이어받아야 계승이 되는 거고요. 나의 부족함을 잘 앎에도 조직에서 ‘당신의 역할이 있다’고 하면 해야겠다 생각한 거죠.


그때 신랑을 소개받아 한두 차례 만나던 때인데 본격적으로 사귈 때는 아니었어요. 제가 어쩌면 결혼을 할 거고, 결혼하면 나이가 많으니 1-2년 안에 임신, 출산을 해서 일을 못할 수도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대표님들이 사람이나 데려오라고 콧방귀를 뀌시더라고요. 제가 영원히 결혼안할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무엇보다 제가 상근자들 중에 연차가 가장 높고 우리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아는 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이 자리가 제 그릇에 맞을지 고민할 시간을 달라 말씀드렸고 홍민정 선생님과 같이 고민하면서 3개월 뒤에 답을 드렸죠.


홍 : 두 대표님들이 그만 두시면 정지현 선생님이 대표가 될 거라는 생각을 상근자들은 다 갖고 있었을 거예요. 반면, 저를 신뢰하셔서 제안하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도 있었지만, 의아한 부분도 있어서 ‘제가요? 왜요?’라고 여러 번 여쭤봤는데, 두 대표님들이 ‘좋은 판단력을 가졌다’고 하셨어요. ‘자신을 못 믿겠으면 우리의 판단력을 믿어라. 더 물을 필요도 없다’고 확신을 주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감사한데… 고민해보겠습니다.’ 하면서 일단 돌아섰죠.


처음엔 변호사로서 교육 영역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에 온 건데 우리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연차가 더할수록 전이가 됐다고 할까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저 자신에게 강한 영향력을 준다고 느꼈어요. 하자센터 10대연구소에서 청소년들 인터뷰한 걸 보니까, ‘나는 공부를 못하니까 밥 먹을 자격도 없다’고 비관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았어요. 학생들이 자신을 비하하고 자해하는 현실 앞에서 눈물이 나요. 제가 대표가 돼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유쾌하고 발랄한 변호사, 따스하고 지혜로운 정장군


채 : 송인수, 윤지희 대표님을 뛰어넘으실 필요는 없지만, 이전 대표님들과 다른 자신만의 차별점, 장점은 어떤 게 있을까요?


홍 : 우리 서로의 장점을 얘기해줄까요?

정 : 아, 좋네요. 홍민정 선생님은 유쾌하고 즐겁다! 운동가로서 필요한 집념도 있고, 한 가지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고, 그걸 해낼 수 있는 지식도 있고, 교육을 전공하고 변호사로서의 전문적 역량이 있잖아요. 법 제정 운동을 많이 하고 있는데, 우리로서는 훌륭한 전문가를 데리고 있는 거죠. 상근자들, 회원들과 발랄하게 어울리시고, 저에게 없는 점이라 매우 큰 장점 같아요.


홍 : 정지현 선생님은 따스하게 지혜로운 사람이에요. 소녀 같은 감수성도 있는 반면 정장군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대범한 면이 있어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저는 ‘어, 이거 어떡하지?’하고 당황하는데, 정지현 선생님은 ‘좀 고민해보고 월요일에 다시 얘기해요.’라고 말해요. 일관된 안정감이 있어서 매사에 현명하게 대처해요. 상근자들과 어떤 결정을 할 때 주변 상황을 따뜻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빈틈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에요.


이전 대표님들은 100가지의 문제가 있다면 100가지의 답이 다 있는 분들이었거든요. 저희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지혜를 구하고, 힘을 합쳐서 답을 찾아나가야 해요. 상근자, 회원분들과 같이 소통하고 함께 만들어 나가야하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9월, 선행교육금지법 제정운동 거리문화제)

채 : 우리 단체가 해결해야 할 의제가 너무 많지만, 내가 대표로서 이 문제만큼은 꼭 해결하고 싶다고 꼽는다면요?

정 : 선행교육금지법 제정 운동할 때 아무도 이 문제를 얘기하는 단체가 없었어요. 법으로 금지할 수 있냐고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학부모나 교사같은 당사자들에게나 큰 문제였지, ‘선행? 착한 일 하는 걸 왜 금지해?’ 라고 물을 만큼 일반 대중들에게 인지도 자체가 없었어요. 안될 거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만만찮았는데, 법이 제정돼서 보람 있었죠. 하지만 사교육을 규제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법으로 제정돼서 많이 아쉬워요. 학원 선행교육 규제를 엄격하게 하는 운동을 다시 한 번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 : 2014년부터 연구했고, 2016년에 최초로 입법 발의가 된 출신학교차별금지법을 제 임기 내에 꼭 통과시켜서 환영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하고 싶어요. 조금 더 욕심을 내면 사교육걱정 없이 학교 교육만으로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뭘 하든 회원님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2019년 11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연내 통과를 촉구하는 국회 기자회견)


우리가 열심히 하는 만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앞당겨질 거예요


채 : 정지현 선생님은 사업국에서 오래 활동하시면서 회원들과의 접점이 많으신데, 기억에 남는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으세요? 사람에게서 힘을 얻어 일한다고 자주 이야기하셨는데요.

정 : 학원 관계자들이 후원자로 참여하고 실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모습을 뵐 때 우리 운동이 좋은 운동이라고 다시금 깨달았어요. 사교육에 몸담고 있지만, 사교육의 건강한 변화와 공교육의 회복을 위해 고민하는 분들이 계셨거든요. 그래서 우리 운동이 사교육과 대립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학생을 이윤 창출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고, 직업적인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서 대의와 가치에 참여하시는 모습이 제게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이 운동이 언젠가는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죠.


채 : 회원 감소 추세에 접어든 지 2년째인데, 어려운 시기에 대표에 취임하셔서 책임이 더 막중하실 거 같아요.

홍 : 송인수 이사장님 보면 어떤 목표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안 되는 일인데, 왜 저렇게 희망의 끈을 잡고 계시지? 의문을 품을 때가 있어요.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여쭸더니 ‘된다고 믿고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실패의 경험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믿음을 갖고 계획을 세우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할 때 길이 열린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믿게 되신 거 같아요. 저도 목격했고요. 회원 수가 줄고 후원금이 적어지더라도 아직 우리를 아직 모르는 시민들도 많고, 시도하지 않은 방법도 많잖아요. 가능성, 잠재력을 활용할 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 있겠습니까. 열심히 해야죠.

(좌 : 팟캐스트 녹음 중, 우 : 2018년 7월 회원MT)

채 : 새로운 세대는 사교육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나와요. 대중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낼 새로운 구상이 있으신가요?

홍 : 고통에 대한 체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거 같아요. 무조건 고통이라고 말하는 건 시대에 맞지 않겠죠. 지역마다 양상도 다양하잖아요. 과거처럼 운동이 계몽적으로 나갈 순 없다고 생각해요. 사교육이 고통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시민들과 함께 문제를 밝혀내는 소통을 해나가야 해요.


정 : 그동안 우리 운동이 사회에 잘못되어 있는 제도와 관습을 덜어내는 일에 집중했고, ‘금지’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갔어요. 선행교육 금지, 출신학교 차별 금지가 그 실례죠. 똑같은 내용을 긍정적으로 표현했다면 ‘제 속도에 맞는 공부하기’, ‘능력만 보고 사람 뽑기’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표현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어려우니까, 실제 운동에서는 ‘잘못된 것을 금지’하자고 지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어떤 분들에게는 우리 운동이 너무 공격적이고 날카로워 보였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잘못된 것은 하지 말자고 금지 운동을 펼쳐나가겠지만,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쌓아가면서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지켜내는 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특히 청년과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갈 예정이에요. 기대해주세요.

(회원과 상근자들의 헌신으로 150일간 이어진 2019년 1인시위)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과연 올까요?

홍 : 온다는 확신이 있는데, 그게 언제일지를 가늠하는 건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오늘과 내일, 일주일, 한 달을 사는 것, 이 일을 위해서 노력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기 안에 반드시 온다기보다, 우리가 열심히 하는 만큼 앞당겨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오늘 심는 나무다’라고 생각하면서 오늘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이 운동의 성공 여부가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삶 속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살기 위해애쓰시는 분들이, 그 삶을 이미 사는 분들이 대한민국에 많을 거예요. 우리 단체의 후원자가 아니더라도 함께 연대하면서 잘 꾸려 가면 좋겠습니다.


대표가 되고 나서 악마를 쫓는 꿈을 꾸며 소리를 지르느라 잠을 설친다는 홍민정 대표님께 단꿈을 주고 싶다. 우리가 오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살기로 결심하고 함께 소리치면 불가능한 소망은 아니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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