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 예술은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니에요 -김경래 선생님 인터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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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로고는 '엉켜진 실타래와 같은 교육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형상화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다. 이 로고 기획뿐 아니라 '아깝다 학원비' 등 소책자 출판 편집 자문을 도맡아주신 김경래 선생님을 지난 6월, 한겨레신문 사옥에서 만났다


채송아 (이하 채) : 명함에 ‘출판국/섹션매거진부/디자인팀장’이라고 써 있는데, 하고 계신 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김경래 (이하 김) :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독일에 가서 신문디자인으로 학부 전공을 다시 했어요. 신문사만 4-5군데 거치면서 디자인했죠. 지금 하고 있는 ‘서울&’은 제가 만든 섹션이에요. 본사랑 같은 회사지만 지역만 타깃으로 한 신문이에요. 회사에서 디자인 총괄하는 직책을 맡기도 했다가, 지금은 후배들이 총괄하고 전 밑으로 가고요. 한겨레신문사는 그런 선순환을 지향해요.


잘 살고 싶어서 선택한 디자인


채 : 어떻게 신문디자인을 선택하게 되셨는지 궁금한데요.

김 : 사실 대학교 4년 동안 별로 한 게 없어요. 제가 충주상고를 나왔는데, 미술부가 특화된 고등학교라 상업미술을 배웠어요. 대학교에 갔더니 이미 고등학교에서 다 배운 걸 가르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서양화, 수채화, 디자인 등 미술 기초부터 전반적인 영역을 다 배웠거든요, 테크닉만 배운 게 아니라, 인성부터 시작해서 동양화, 서양화 전 영역을요. 고등학교 선생님께서는 도예를 배우면 직업도 될 수 있고, 제품도 만들 수 있다고 진로를 안내해주셔서 도예나 조소하는 선배를 직접 찾아가봤어요. 그런데 정말 가난한 거예요. 소주에 새우깡 먹으면서 작업실에서 신세한탄하고 있더라고요.

서울에 올라간 선배들도 만나봤는데, 이분들은 디자인과 나와서 대기업 홍보팀 같은데 취직하셔서 잘 사시더라고요. 저희 집이 너무 가난해서 ‘아, 나는 잘 살고 싶다.’ 그랬죠. 고등학교 막바지에 전공을 디자인으로 바꿨어요. 상경해서 대학에 왔는데 87년도니까 데모도 많이 하고, 수업은 거의 안하시다시피 한 채 과제만 내주는 수준이었어요. 군대 갈 즈음 되니까 정신이 들어서 독일로 유학을 간 거죠.

채 : 독일을 선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김 : 디자인의 시조가 독일 바우하우스잖아요. 제대로 그림 좀 그려보려고 간 건데, 못그려요. 대학 때 도제식으로 배운 그림, 비슷한 그림들로는 유럽 학교에서 경쟁이 안돼요. 가보니까 표현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요. 큰 일 났죠.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한국에 없는 더 좋은 걸 배워가야 차별화 시킬 수 있을 거 같아 커리큘럼을 비교해 봤는데, 마침 프레스 디자인이 있었어요. 전공수업에 들어가 보니 디자인은 안하고, 맨날 수다만 떠는 거예요. 신문 읽고 ‘니 생각은 어떠냐, 니 생각은 어떠냐?’ 그리고 매 학기 기말마다 나만의 신문을 과제로 제출하고요. 손재주가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정말 좋은 환경이었죠. 다행히 제 판단이 옳았던 게 그 당시까지 낙후돼 있던 우리나라 신문시장에서도 체계적인 디자인을 원하던 시점이었어요.


채 : 90년대 초중반이었겠네요. 신문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가 거의 없었을 거 같아요.

김 : 95년도였죠. 출판사에서 단행본 디자인 잠깐 했고, 지금까지 계속 신문만 했으니까 저 같은 이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죠.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중간중간 교재 같은 거 만들어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송인수 선생님을 만난 거예요. 나중에 좋은교사운동 깨미동(깨끗한미디어를위한교사운동) 책도 만들고 했죠.


채 : 외부 활동에 재능기부를 하신 건가요?

김 : 그때는 제 재능이 뭔지도 잘 몰랐고요(웃음). 교육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거의 무지였죠. 제가 지금 애가 셋이거든요. 첫째가 대학교 1학년, 둘째가 고등학교 2학년, 막내가 초등학교 5학년. 애가 생기니까 달라졌죠. 게다가 송인수 선생님이 남다르시잖아요. 선생님께 배울 게 엄청 많겠다, 어떻게 같이 할까 하다 디자인 재능이 발탁된 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거예요.



아이를 이렇게 키우니 괜찮더라


채 : 송인수 선생님의 어떤 점에 끌리셨어요?

김 : 제가 교육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거든요. 저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행복했어요. 근데 중학교 올라가니 지옥이 되더라고요. 관심 없는 거 맨날 하라 하고, 단어 틀렸다고 때리기만 하고. 수학은 기초지식이 없는데 진도만 나가고, 고등학교 때는 그나마 미술이라는 특성을 찾으니까 좋았죠. 근데, 대학교 가니까 또 불행했어요. 대학 때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남는 게 없었어요. 송인수 선생님 얘기를 듣고 교육에 대한 제 불만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문제는 자식을 키워야 되잖아요. 제 경험을 답습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 가면 저는 다 배워요. 선행학습이 뭔지도 몰랐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예습복습 열심히 해서 점수가 높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돈 없으면 안되니까, 어떻게 보면 반칙이죠. 교육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 배우면서 정리된 상태예요. 애들한테도 좋은 대학 가면 좋겠다 소리는 안하죠.

직업이나 사회생활은 학교에서 시키는대로 했다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 경쟁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마음가짐도 잘 먹어야하고. 아이들이 슬슬 따라오게 해줘야 해요. 저는 나름대로 행복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니 괜찮더라’ 말해주고 있어요.



그림은 마음으로 그리는 것


채 : 대학교 1학년이 된 딸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의 철학을 잘 이해했나요?

김 : 이 아이는 배우는 게 이해 안되면 거의 지옥에 빠져요. 그 스트레스가 온전히 몸으로 오더라고요. 마음이 없는데 암기한다는 건 정말 쉬운 게 아니거든요. 빵점 맞아도 좋으니까 억지로 공부하지 말라고 확실히 정리했어요. 큰 아이는 아빠를 믿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하고 안되는 건 털어내서 굉장히 행복해진 케이스예요.

일산에 미술부가 특화된 고등학교에 시험 보고 들어갔어요. 저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그림 그릴 때 ‘잘 그리는 거, 예쁘게 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네 마음껏 그리는 게 좋아. 네 생각대로 편하게 그리는 게 좋다’라고 했어요. 미술부 선생님하고 면접볼 때도 ‘미술학원 보냈냐?’ ‘안보냈다’ ‘왜 안보냈냐?’고 물으셔서 ‘도제식으로 가르치는 방식에 길들여지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그리는 거다’라고 말하니까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채 : 큰 따님이 입시미술 학원을 안다녔어요?

김 : 입시미술학원 다니면 더 손해라고 생각했어요. 학원에 다니면 자기가 없어져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도 제일 싫었던 게 자기를 없애고 어떤 기준에 맞춰서 그린 걸 잘 그렸다 하고 점수를 매겨 버리니까, 아이들은 진짜 그게 잘하는 건 줄 알고 열심히 해요. 근데 사회에 나오면 그런 사람 안뽑아요. 교육과 사회가 연결될 때 미스매칭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아이들한테는 그런 방식으로 안하고 싶었어요. 편하게 그리라고 하죠. 큰 딸은 지금 한국화 전공인데, 한국화는 기본기거든요. 붓에 내공이 쌓여야 해요. 개칠(改漆)은 누구나 정교하게 해요. 한국화는 먹을 갈 때부터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고, 뭘 그릴지 하얀 백지에서부터 고민하면서 기본기를 닦을 수 있어요.


채 : 로고 제작 과정 이야기도 궁금해요.

김 : 장병인이라고 제 대학동기가 만든 건데, 공익단체 일을 많이 했어요. 아름다운 가게 로고도 만들고 제가 되레 도움을 많이 받았죠. 어떤 개념을 잡아내서 브랜드화하고, 로고화 시키는 건 디자인 쪽에서 가장 내공이 센 영역이거든요. 가치와 철학에서부터 이게 어떻게 성장할 거라는 감을 잡아야 표현이 또렷이 나와요. 저와 송인수, 윤지희 선생님하고 그 친구하고 모여서 대화도 하고, 같이 밥도 먹으면서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 스터디를 해요. 그러다 이해가 되면서 ‘아,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그림으로 나온 거예요.


채 : 회원들에게 사랑받는 로고예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잘 표현되어있어요.

김 : 혼자만의 힘으로 만든 거 아니고, 대화하면서 은연중에 키워드가 들어있어요. 그걸 잘 빼내는 게 선수예요. 잘 못 빼내면 이게 뭔지 모르는 추상물이 나올 수 있고, 너무 구체적이면 스쳐지나갈 수 있고요.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활동을 창립 때부터 계속 지켜보셨는데, 어떤 일이 가장 인상적이셨어요?

김 : 등대지기학교 운영한 거죠. 이름도 진짜 잘 지었어요. 학부모들이 갈 길을 잃었는데 등대지기학교에서 답답한 속을 삭 풀어주는 거예요. 사교육시장 논리 중에 뭐가 잘못됐는지 오해도 풀어주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입시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으니까 그런 강의를 듣고 나면 마음에 치유가 돼요.

강의를 발전시켜서 단행본으로 엮기도 하고, 소책자도 만들었잖아요. ‘아깝다 학원비!’가 첫 시작이었죠. 아내도 ‘이거 내 남편이 디자인한 거야.’ 하면서 주변 학부모들께 나눠주기도 하고. 그런 일들이 뜻깊었어요. 선행학습규제법처럼 법제화 시키는 일도 중요하죠. 저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학원에 가고 싶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보내요. 대신 갔는데 효과 없으면 바로 그만두게 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지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회계감사 받은 내용 보면 방울토마토 산 것까지 다 적어놓고 철저히 운영하니까요. 탈 날 일이 없어요. 이건 아니다 싶은 것도 있지만 저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강력한 팬클럽이에요.


채 : ‘이건 아니다’ 싶은 게 뭔지도 들려주세요.

김 : 종교 색채가 나면 안된다는 거예요. 종교와 정파를 떠나야하고… 송인수 선생님이 강의하다 자꾸 우시고, 기도 식으로 하셔가지고… 사실, 그것도 좋아요. 힘은 거기에서 나오니까. 더 큰 그릇을 그리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공동대표 교체는 시대정신에 맞는 거 같아요. 홍민정 대표가 CBS라디오(‘CBS광장’ 2020.5.10일 출연)에 나와서 대담하는 거 들어보니까, 와, 막힘이 없으시더라고요! 젊은 학부모들이니 지금 세대하고 코드가 맞는 거 같아요. 제가 신문사 편집국 총괄하다 지금 내려와 있듯이 새로운 물이 들어오고 확장될 수 있는 구조예요.


아이의 좋은 점만 보려고 해요


채 : 전에 ‘아이를 키우면서 포기한 것도 있다‘라고 하셨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포기하셨을까 궁금했어요.

김 : 제가 살면서 겪은 시행착오는 안겪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컸어요. 집이 가난했고, 시골에서 올라오다보니 성공에 대한 가치가 물질적인 것도 있었어요.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지만요. 그 집착이 결국 스트레스로 오더라고요. 사회생활 하면서 뒤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았어요. 첫 애에게는 부모로서 욕심이 생길 법한데, ‘내가 지금 아이 입장이라면…’하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공부에 대한 욕심은 초장부터 접었어요. 너 하고 싶은 거 행복하게 하라고 했죠. 둘째한테도 스트레스 받으면 공부하지 말아라 대놓고 말했어요. 다른 쪽에 달란트가 생기더라고요. 자녀에 대한 공부 욕심을 과감히 포기한 거죠. 저는 지금도 암기형 공부가 공부인지 모르겠어요.

큰 아이는 제가 아는 분야를 전공하니까 뭘 고민하는지 보여요. 그렇다고 붓을 잡아주는 건 말도 안되고. 대화로 접근하죠. ’생각을 먼저 하고 그림 그리는 거지? 주제가 나왔니? 야, 이번엔 괜찮네.’ 칭찬해주고. 말로 할 수 있는 건 하죠.


채 : 아이가 한 작업 중에 잘못했다 싶은 건 어떻게 하세요?

김 : 좋은 것만 보려고 해요. 구도가 안맞았는데, 컬러가 괜찮잖아요? 그러면 ‘이번에 컬러 잘 나왔네.’ 하고 말해주면 자신감이 생겨요. 한두 번 그리고 말 게 아니니까. 자신감이 있을 때는 그림에서 바로 효과가 나요. 지적하면 움츠러들어서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못하더라고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고등학교에서 선생님들한테 너어어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난 못해’하고 부정적인 말만 나왔어요. 근데 요즘 대학 가더니 긍정적인 단어가 조금씩 조금씩 나오기 시작해요.



예술가 되려면 예술대학 안가도 돼요


채 :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일반 고등학교 다니면서 예술대학에 진학하려면 입시학원을 다녀야 하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요. 근데 입시학원 외에 다른 길을 모르겠어요. 이런 학생들한테 어떤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 : 제가 이런 말하면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는데, 누구한테 배우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해야 돼요. 인터넷이 발달돼서 관심 있으면 입시미술에서 배운 거보다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도 있어요. 입시학원에서 실기는 책임진다고 하면서 상업적으로 접근하잖아요. 그런데 현혹되면 안돼요. 일기 쓰듯이 그림 그리면 돼요. 재료 불문이죠,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거를 끄적끄적하면서 끝까지 계속 그리는 습관을 들여놓으면 입시미술이 두렵지 않죠. 할 수 있어요. 표현이나 컬러에 대한 고민, 구도에 관한 부분, 본인이 관심을 갖고 눈에 보이는 대로 사물을 표현해보는 거예요. 그냥 집에서 해도 돼요. 대신 꾸준히 계속 하다보면 아, 내가 이쪽에 대가였네 느낄 수 있어요. 이미 몸에 배어 있어요. 저도 평생 이것만 했으니까요.

예술은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아녜요. 진짜 좋은 사람만 스스로 하는 거죠. 좋아하는데 그 일을 혼자 계속할 수 없다면 달란트가 없는 거예요. 제품을 보면 좋은 게 눈에 막 들어오는 사람들이 디자인을 하는 거예요. 여행 가도 그런 거만 보여요. 그러면 조형적인 소양이 자꾸 쌓이고, 대학 나온 사람보다 훨씬 잘해요. 지금은 온라인으로 자기가 작업한 거 다 올리거든요. 대학 교육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채 : 예술대학을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김 : 안가도 돼요. 안가도 돼요. 글을 써야 작가가 되는 거지 등단했다고 작가가 되는 게 아니거든요. 의학이나 기술처럼 지식이 필요한 영역은 다르죠. 예술은 커리큘럼 자체를 따라갈지 말지 고민이 크거든요. 그걸 빨리 판단해야 해요. 희소가치 있는 예술가가 되려면 미술학원 다니고 대학을 가려고 하기보다, 평생 난 이 그림을 그릴래 하고 스스로 작업하면 외려 도달이 빠를 거예요. 지금 대학 강의는 온라인에서 찾아 봐도 충분히 습득할 수 있어요.


채 : 게다가 아이들 세상은 스마트폰 안에 다 있으니까요.

김 : 근데 또 스마트폰만 보다보면 찾으려고 하는 것만 보게 되니까 편협해지죠. 기술적인 개념보다 생각하고 방향을 볼 수 있는 내용을 아는 게 필요해요. 그래서 제 아이에게도 서양미술사 같은 방대한 역사책을 꼭 읽게 해요. 아이러닉하게도 스마트폰 사주겠다고 하는 조건을 걸었지만요. 언제쯤 무슨 맥락으로 이게 흘러왔는지, 자기에 대한 고민이 어디쯤인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찾을 수 있어요.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는다


채 : 단체 회원들 대부분 선생님처럼 자녀가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을 위한 공부를 하기 바래요. 그러다, 자녀가 중고생이 되면 결국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거쳐야 하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나 하는 고뇌에 빠지게 돼요.

김 : 저도 늘 조심하고 있지만, 부모가 그런 고민을 하며 사는 모습 자체가 자녀에게 롤 모델이 돼요. 예를 들어, 전 아침마다 신문을 읽으니까 도움 되는 내용이 있겠다 싶으면 그 면을 펴놓고 나가요. 아이가 보든 안보든 상관없어요. 또 온가족이 아침밥을 같이 먹어요. 제가 은연 중에 사회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아침 밥상머리에서 얘기해요. 팀장이 어땠고, 이번엔 좋았던 거 뭐가 있었고, 스트레스 받는 얘기까지 다 해요.

부모가 목적의식이 있고, 행복한 무언가를 가지면 아이들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내에게도 ‘당신이 행복하면 아이들도 행복하다.’라고 말해요. 전 요즘 그림을 다시 그려요. 디자인은 그림이 아니거든요.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시사하는 바를 찾아내는 작업이죠. 그림을 다시 그리다보니 제 삶에 행복한 치유가 일어나요. 그런 모습을 아이가 보고 느끼겠죠.


(출처 : 한겨레신문 '서울&' 섹션 삽화, 2018.11.1)



채 : 마지막으로 신문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제 주변에는 종이 신문을 습관처럼 읽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전통적인 매체인 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김 : 신문에는 활자가 촥 펼쳐져 있죠. 사진도 있고요. 활자의 배열이나 크기에 따라 조형적인 강약이 있고, 여백이 있어요. 그 맛이 사라질까? 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디오나 TV 같은 올드 미디어가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스마트폰으론 기사의 경중과 뉘앙스에 대한 비교분석이 안돼요. 페이지네이션이라고 하잖아요. 신문을 통해서만 가능해요. 구독률은 이제 바닥을 치지 않았나 싶은데, 신문 본연의 특성을 더 발전시켜야 하는 숙제가 남았죠.

제가 만약 희소가치가 있는 일을 찾지 않고 입시미술학원을 차렸으면 서울대 출신 몇 명, 홍대 출신 몇 명 강사 뽑아서 남들처럼 똑같이 살았을 거예요. 그런 게 ‘판단’이에요. 세상 돌아가는 시류에 자기를 내맡기면 안돼요. 완벽하진 않아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훑어볼 수 있는 유일한 미디어가 신문이에요. 그런 미디어의 균형이 잡히면 바이러스에도 강해집니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포기할 것과 끝까지 지켜야 할 것, 좋아하는 일을 혼자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하는 길, 김경래 선생님과 불과 한 시간 남짓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이 모든 질문에 시야가 열린 듯 하다. 우리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위해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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