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지기학교] 좋은 일자리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 임운택 교수님 인터뷰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당면한 과제이다. 12년 내내 입시경쟁교육에 발목이 묶여서 맘껏 놀지도 못하는 내 아이에게 바라는 실상은 적정한 일자리를 갖고 경제적으로 제 몫을 하는 것 정도이다. 뿐인가, 출산과 양육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재취업을 원하는 여성들, 충분히 더 일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퇴직해야 하는 시니어들까지 일자리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등대지기학교 ‘공생공존하는 미래 일자리 안내서’라는 강의 주제에 눈길이 가는 이유이다. 전세계에 도래한 일자리 변화를 가늠하는 이번 강의와 함께 보면 좋을 임운택 교수(계명대학교 사회학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채송아(이하 채) :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사회학을 가르치시는데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취업을 위한 수단이 되다보니, 사회학은 전공생들에게조차 소외될 것 같아요.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을 위해서는 필요한 공부일 텐데요.

임운택(이하 임) : 우리나라 대학교육을 들여다보면 교수들도 학생들도 현실을 몰라요. 인문사회대 학생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영어공부하고 취업준비를 하잖아요. 제가 만나는 인문사회분야 교수들 가운데 상당 수가 너무 고색창연한 이론 세계에 갇혀 있어요. 철학수업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주제로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나라는 한 학기 동안 10페이지 진도 안에서 맨날 똑같은 얘기 하다 끝나요. 제가 처음 독일 갔을 때 수업에서는 칸트를 소재로 곧바로 현대 윤리 문제를 분석해요. 광고를 예로 들면서 ‘넌 어떻게 생각하냐?’고 토론에 붙이고요.


채 : 철학을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바로 접목시킨다는 거군요.

임 : 그렇죠. 과거의 이론을 가지고 바로 현실 문제를 분석하는데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하니까 철학을 하든, 사회학을 하든 현실적인 문제에 대안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거죠. 우리나라는 교수로 임용됐을 때 전공이 죽을 때까지 안바뀌거든요.

교수들은 대학이 무슨 직업 양성소냐라고 반문하지만, 교수들 본인이 배운 이론을 가지고 10년, 20년 지나도 똑같은 렌즈로 세상을 보니까 학생들이 새로운 걸 못배우는 거죠. 대학에 오면 논문만 쓰고 현실적 통찰은 오히려 줄어들고 그런 교육을 하니까 대학무용론이 나오죠. 한국에서 왜 대학 다녀야 하냐고 비판하면 할 말이 없어요.

채 :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문화는 차이가 너무 커서 비교 자체가 어려운 거 같아요.

임 : 해외사례는 필요한 만큼만 보고 가급적 우리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등대지기학교 강의에서도 독일 얘기는 일부러 덜하려고 애 썼어요. 4차산업혁명 선진 사례를 탐방한다면서 한국사람만 기백명이 독일로 견학을 다녀왔어요. 누군가 갔다왔으면 보고서 쓰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토론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우리는 뭐가 유행이면 다 일단 외국에 가요.


작년에 우리나라 산업정책연구원한테 독일에서 공문이 왔어요. 한국 정치인들, 기업인들 탐방 좀 그만 오게 해달라고요. 독일 통일 이슈가 한참이었을 땐 한국 정부에 공문을 보낸 적도 있어요. 수백 부가 넘는 자료를 보냈는데, 한국에서는 복사도 안해보고 또 달라는 거냐면서요. 우리 걸 잘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너무 안한다고 생각해요. 하버드대 교수든 학생이든 한국에 오면 하버드라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화될 거예요. 외국 시스템을 벤치마킹하는 게 불필요한 건 아니지만, 우리가 했던 고민들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관점 키워야


채 : 학생들에게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터 주려 노력한다고 하셨어요. 좀더 구체적으로 어디에 주안점을 두시는지,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계발하길 원하시는지요.

임 : 기본적으로 세상은 권력관계가 중심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은 권력자라기보다 권력에 영향을 받는 위치에 놓이죠.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꼭 권력자가 돼야 할 이유는 없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하게 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도 모르는 삶은 너무 갑갑하잖아요. 세상의 논리를 학생들이 알고 있어야죠. 권력구조는 비단 정치뿐 아니라 기업이나 일반 조직,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존재해요. 학생들이 밖에 나가서 굴종적인 삶을 사는 건 원치 않거든요. 모두 다 정치운동을 하자는 논리는 아니구요.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해요. 일자리 관련해서는 기술의 권력, 정보의 권력도 있고요.


예를 들면, 기업에 노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측과 종업원 관계가 굉장히 달라지잖아요. 권력의 영향 아래 변화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죠. 실제로 몇 년 전에 참여연대에서 청년들 6,7명과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기업에 취업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대다수가 ’노조있는 곳이오’라고 대답했어요. 첨엔 ‘얘네가 노동운동을 하려고 하나’ 싶었어요. 그게 아니라 노조가 있어야 내 인권을 보호받는다는 걸 간접 경험으로나마 느낀 거예요. 일종의 정보력이죠.


대학에서는 이론을 바탕으로 훨씬 더 현실적인 공부를 해야 하는데, 너무 추상적인 얘기를 해요. 이론은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만 유리해요.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그 추상성 속에서 현실을 더 못보게 되거든요. 학생들에게 현실의 어둡고, 차가운 부분을 더 잘 보여줘야 분노하고, 저항도 하죠.

채 : 교수님은 정부의 자문위원 역할을 많이 하셨고,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실행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계신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주세요.

참여연대 노동실행위원 역할은 말 그대로 노동권 보장에 관한 일을 주로 하죠. 아쉽지만 요즘은 시민단체가 운동성이 많이 약화됐고 입법활동에 주력하는 거 같아요. 입법활동은 궁극적으로 타협의 산물이잖아요. 본질적인 논리가 법제화되기는 쉽지 않고, 절충점을 찾다보면 문제의 해법으로는 항상 부족하죠.

또, 의제 자체가 정치화되는 경향이 있어요. 운동성이 강할 때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서 사람들을 동원하고 교육과 계몽에 방점이 찍힌다면, 사람 수가 적어지고 법제화에 주력하게 되면 큰 문제를 요만큼 줄여서 하게 돼요. 스스로 범위를 제한하게 되죠.


정부와 관련된 일은 노동과 고용 분야인데요. 지역사회에서 직업훈련의 수요를 어떻게 개발하고 누가 여기에 결합해서,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하죠. 사실 잘 되지는 않아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고용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자리 VS 기본소득


채 : 얼마 전에 경향신문에 기고하신 칼럼이 인상적이었어요.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좀더 설명해주세요.

임 : 4차산업혁명, 디지털 혁명 등 어떤 변화가 도래해서 익숙한 방식의 노동은 없어진다 해도, 인간은 일을 해서 벌이를 함으로 존엄성을 유지하잖아요. 그런데 일자리가 더이상 안생길 거 같다는 우울한 전망 때문에 기본소득 논의가 요즘 활발하죠. 삶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소득, 최저생계비를 훨씬 넘어가는 수준이 되면 기본소득에 동의하겠는데, 지금 얘기하는 건 몇 십만원씩 ‘수당’ 수준이에요. 그 몇십 만원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을까요.


결국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알아서 소득을 챙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 보장받아야 된다는 논리인데, 그럼 일자리의 양극화 문제를 내버려두는 셈이거든요. 누군가는 여전히 양질의 일자리를 갖고, 그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걷자는 얘기예요.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를 대체하는 건 사회의 요구에 따라 달라져요. 온라인 뱅킹으로 은행원이 사라지는 게 한국적 특색인 것처럼요. 미국은 온라인뱅킹이 대세가 아니라 그 일자리가 유지되잖아요.


실직한 사람들은 직업훈련을 받아서 다른 일자리로 갈 수 있게 도와줘야죠. 소득을 얻기 위해 기본소득 논의로 가는 건, 정글화된 세상은 내버려두고 강자와 약자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가는 거예요. 이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봐요. ‘좋은 일자리’라는 개념은 사회적 합의를 갖고 만들어야 합니다. 임금도 그렇죠. 서빙하는데 최저시급을 주는 게 아니라 1만원 줄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할 수 있거든요. 독일도 노조 있는 기업이 20 몇%밖에 안돼요. 다만, 노조가 임금을 결정하면 유사업종에도 그 임금 수준이 적용돼요. 임금 수준을 비슷하게 맞추고자 하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유지되는 거죠.


70-80년대만 해도 중소기업 대기업 임금 격차가 20~30%밖에 안됐어요. 지금은 반토막이거든요. IMF와 신자유주의가 구조를 바꾼 거죠.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는 사회적 노력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산업의 내용이 바뀌었으니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안되겠죠. 좋은 일자리가 지방에도 많이 생기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겠다는 수요도 줄어들 거고요.



긴 안목으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채 : 청년들에게 직업교육 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인력들이 직업을 바꾸거나 실직자들이 이수할 수 있는 직업훈련이나 사회적 교육의 질이 너무 낮은 거 같아요.

임 : 평생교육을 위해서는 좋은 훈련기관이 있어야합니다. 당장 기업이 사람에 대한 투자를 너무 안해요. 90년대만 해도 대기업들은 연수교육도 많이 하고 신입사원들 해외연수도 보냈어요. 요즘은 지원자들이 스펙도 경력도 알아서 다 쌓아오니까 기업이 손놓고 있죠. 개인이 자기가 돈을 내서 훈련 받는 걸 막을 순 없지만 사회가 그런 투자를 아끼면 안됩니다.


재취업 훈련기관은 IMF 때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실직자들이 쏟아지니까 당시에 헬리콥터 머니라고 할 만큼 돈을 어마어마하게 뿌렸는데 그 돈이 다 훈련기관에 들어갔어요. 정부는 급하니까 돈을 막 퍼부었고 훈련내용은 허술했죠. 거기서 훈련 받고 1년 단기취업했다 도로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고요. 우리나라 훈련사업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래요. 중장기적인 프로그램이 없어요. 실업급여 받는 동안 훈련과정도 최대 3개월이고, 예외적인 과정만 6개월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이직이 아니고 전직이라면 완전히 다른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거잖아요. 3개월은 말도 안되죠.


독일 150년 전통의 브레멘 조선소가 한국에 밀려 망했을 때 일인데요. 실업자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나오니까, 그분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했어요. 컴퓨터 전원 켜고 워드 프로그램 띄우고, abc 쓰고, 저장하고 닫는 걸 일주일간 가르쳐요. 용접만 하시던 분이 컴퓨터 모니터가 눈에 들어오겠어요? 사실 그분들에게 디지털 기술 숙련시키는 건 오래 걸리거든요. 그런 노력을 사회가 감내하는 거죠. 비용도 많이 들고요. 단기간 교육하면 좁게 배우니까 실제 써먹을 수 있는 기간도 짧아요. 그럼 또 실업 상태에 들락날락하게 되고요. 제가 ‘이주여성을 위한 훈련사업’을 한 10년 평가했는데요. 프로그램을 보면 10년 내내 바리스타 아니면 네일아트예요.


채 : 맞습니다. 도시에 있는 여성인력개발센터도 문화센터 수준이거나, 교육내용도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아요.

임 : 읍 단위에 카페 가서 커피 마시는 인구가 얼마나 되겠냐, 제발 과잉공급 훈련은 하지 맙시다 라고 강조하죠. 훈련기관도 몇 곳 안돼요. 자체적으로 아이템을 개발하고 기획해야 하는데, 투자하면 돈드니까 기존 프로그램에 기생하는 거죠. 정부도 예산을 확보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으니 기존 기관에 또 배분하는 현상이 반복되고요. 새로운 직업이 나오면 거기에 맞는 훈련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교육내용이 시대에 안맞으면 버리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죠. 우리는 교육하면 학교교육만 생각하잖아요. 직업훈련도 교육과정의 중요한 축입니다.



직업에 대한 ‘선언’ 말고 구체적 탐색이 필요


채 : 현재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직무를 개발하고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의에서 강조하셨어요. 교수님께서는 본인의 직무를 어떻게 개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임 : 저희는 대학에 있으니까 티칭과 리서치가 한 묶음이잖아요. 저는 연구를 티칭에 연결시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특히 현실적인 문제를 주로 다루다 보니 프로젝트 하면서 새롭게 발굴해낸 사실을 많이 전달하려고 노력하죠.

강의에서 보여드렸다시피 한국에서는 자동화과정이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어요. 고용부나 노조에 이런 변화를 알려서 교육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고 논의하고 있어요. 학생들에게도 기업이나 현장에선 이런 변화로 인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적극적으로 알려줍니다.

학생들은 기업의 인재상을 토익은 900점이 넘어야 하고, 자격증과 스펙은 어떠해야 한다고 지레 겁 먹는 경우가 많아요.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중견기업이 꼭 그런 스펙을 요구하는 건 아니거든요. 실제 면접에서 지원자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간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보여주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요. 제가 아는 분야의 변화를 많이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단, 시류를 섣불리 이론화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AI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실 AI가 우리 삶에 정책적으로 던져주는 건 별 게 없어요. 사람이 필요하냐 안하냐, 논리는 그거밖에 안남잖아요. AI시대에 기업에서 이러이러한 도구를 활용하므로 이러이러한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야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빅데이터를 활용한다.’고 하면 빅 데이터 갖고 뭘 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빅 데이터를 활용한다’는 건 선언이죠. 기업에서 소비시장의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공정과정에 데이터가 어떻게 전달되고 과정을 바꿔내는지 설명해야죠. 이공계 학생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데이터 활용기술을 키우면 관련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까지 불어넣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저성장 시대에 일자리 부족은 전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가 ‘건물주’라는 말을 들을 때면 디스토피아가 도래한 것만 같다. 어쩌면 그 꿈은 어려서부터 경쟁에 시달려온 젊은이들 스스로, 미래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망적 표현일 것이다. 일을 통해 각자의 존엄을 실현하고자 하는 바람이 우리 마음 속에 여전히 존재한다면 임운택 교수의 조언처럼 지금 ‘나’로부터 출발하는 작은 가능성을 하나씩 탐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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