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간 까닭은? - 시민운동가 이원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1-04-21
조회수 235

서울 용산. 내가 12년째 세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지역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알게 된 후, 내 아이뿐 아니라 함께 자라는 주변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생겼고, 그 마음은 나를 마을의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만들었다. 지역에서 일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종횡무진 활약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용산시민연대의 이원영 선생님. 그가 마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이라고 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지역 공동체를 넘어 교육공동체로 연결된 기분이랄까. 노워리기자단 인터뷰에서 누구를 만날까 고민하다 곧바로 이원영 선생님이 떠올랐다. 지난 3월, 용산시민연대 사무실에서 이원영 연대사무처장님을 만났다 . 

용은중(이하 용)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초창기부터 회원이셨다고 들었어요.

이원영(이하 이) : 벌써 오래 되었네요. 윤지희, 송인수 대표님이 단체를 만들었을 때 제 아이들은 초등학교 들어갈 즈음이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결국 경쟁하는 환경에 적응하더라고요. 교육에 한해서는 신념을 지켜내는 일이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입시경쟁을 해결하는 운동을 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합류했어요. 초기에는 용산중구종로 지역모임도 참석했었고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는 것이 좋았어요.


용 : 아이들은 지금 몇 살인가요?

이 : 고등학교 1, 2학년이에요. 학원을 거의 안다녔지만, 공부한 만큼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힘들어 해요. 학원을 안가도 스스로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 저도 있어요. 하지만 다른 욕심 버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을 최대한 해주고 싶어요.


용 : 선생님 같이 탁월한 시민활동가도 자녀교육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신다니 어쩐지 위로가 돼요.(웃음) 지금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해 오신 일이 많은데,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릴게요.

이 : 저는 1989년도에 대학에 들어가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했어요. 학교 다닐 때 노동, 언론, 정치, 분단 문제 등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알게 되면서 졸업 후에는 일반 직장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학교신문사 활동을 하다보니, 기자가 되어 정의로운 사회를 밝히겠다는 꿈을 키웠죠. 졸업 후에는 전교조에서 7년 동안 상근자로 일을 했고, 이후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 보좌관 활동을 4년간 했어요. 특히, 학교 급식운동,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을 했어요. 지역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용산시민연대 활동을 하고 있고요.


용 : 여러 분야에서 시민운동을 해오셨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를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 : 교육 쪽에서는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이 생각나요. 전국적으로 농민단체, 학부모단체, 생협과 같은 많은 분들이 힘써주셔서 이루어진 것 같아요. 급식운동 초기에는 내 아이들이 수혜자가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지역 활동으로는 용산화상경마장 추방운동이 기억나죠. 1,705일의 긴 시간 동안 지루한 싸움이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학교 앞 도박장을 막아낸 것이 큰 보람이었어요. 기습개장을 막기 위해 천막을 치고 24시간 돌아가면서 지키기도 했었어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이 만주로 간 이유


용 : 학부모로서 친환경 무상급식의 씨앗을 심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도박경마장 추방운동은 천막까지 치고 24시간씩 돌아가면서 저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도 당시 인근 주민이었지만 특별한 행동 없이 마음으로만 응원하는데 그쳤거든요. 얼마나 고되게 싸웠는지 나중에 알고 난 후에 '나는 왜 이렇게 몰랐지?' 부끄러워지더라고요.


이 : 함께 운동하는 조직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일반 주민이 개인적으로 하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가 시민단체에 가입해서 회비를 내야 소식도 듣고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시민운동의 기본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시민운동은 시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에 가입한 회원이 하는 거예요. 여성운동도 마찬가지고, 노동운동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히 생각하면 노동운동은 노동자들이 할 것 같지만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이 하는 것이지 개인이 하기에는 어려워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만주로 간 이유도 비슷해요. 만주에서 조직화된 단체가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간 거죠. 화상도박경마장 추방운동도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개인이 요구하면 민원으로 그치잖아요. 집단이 요구하면 소위 사회적 이슈나 정책이 될 확률이 높아지죠.


용 : 아, 그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말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이 : 뛰어난 사람들이 일당백으로 독보적인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일반 시민이 그러기는 쉽지 않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은 세상은 도대체 언제 오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질문에는 이런 답을 하고 싶어요. 생각에만 머물지 말고 ‘바로 당신부터 직접 행동으로 옮겨야 세상이 바뀌는 거’라고요.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중 하나가 시민단체에 가입하는 일이에요. 회비로 함께하는 것부터 시작해 지역단위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에요.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부족한 게 있기 마련이고 모이면 서로 보완되니까요. 교육, 회의, 실천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미래는 이런 거야'라고 이야기할 때 정책이 되는 거지요.

용 : 정책제안을 만들어서 보편적인 정의로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네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중에서도 때로는 그 끝이 보이지 않거나 오히려 상황이 나빠져서 지쳐버리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이 : 그렇지요. 교육 문제는 더욱 그런 것 같아요. 어떤 답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벌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어느 숲 속에 불이 나서 모든 동물이 도망칠 때 작은 벌새 한 마리가 불을 끄기 위해 입에 물을 물고 호수와 불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대요. 그 모습을 보고 다른 동물들은 바보짓이라고 했다죠. 그러자 벌새는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데 지켜만 보고 있을 것인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무엇이라도 실천할 것인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68혁명처럼 사회적, 시대적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집단 각성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봐요. 지금 당장 변화가 보이지 않더라도 다시 타오를 수 있는 불씨를 가진 귀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데 그것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함께 서로를 지켜 나가야죠. 용산도박경마장 추방운동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어요.


용산화상경마장 추방운동은 2013년 5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진행한 교육환경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었다. 학교보건법에 따라 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 200m 이내에 도박시설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근소한 거리 차를 두고 용산의 한 학교 근처에 화상경마장이 들어오려 했다. 지역주민 의견 등 많은 절차가 무시하고 설치하려는 시도를 학교와 학부모, 지역사회가 함께 막아낸 운동이다.


운동을 지속하게 하는 힘, 존중


용 : 용산도박경마장 추방운동은 학교,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 지역주민이 함께 이뤄냈기에 교육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학생들의 안전한 환경을 지킨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5년 이상 힘을 합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으니까요. 이 운동을 하는 동안 세월호 사건도 있어서 안전에 대한 걱정이 많을 때였어요. 우리나라 도박중독 유병률이 6%예요. 선진국이 2~3%인 것에 비해 높은 편이죠. 대전 월평동의 경우 IMF때 지역발전을 위한다며 화상경마장을 유치했는데 1년도 안돼서 학원이 있던 자리에 유흥업소가 들어서고 열악해진 환경에 주민들이 떠나면서 한 학년 10개 학급이었던 초등학교는 2개 학급으로 줄어들었어요. 용산 화상경마장이 잠시 개장했을 때도 동네에 전에 없던 취객들이 생겨나고 사채 전단지가 뿌려졌고요. 막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죠.


용 : 입시경쟁과 같은 교육환경도 그렇게 막아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좋은 취지를 갖고 모였어도 같이 활동하는 동안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 : 많았죠. 워낙 운동이 길어지니까 나는 열심히 하는데 저 사람들은 왜 이리 무심할까 서운함도 있고요. 시민단체가 결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있었어요. 순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시민단체는 끼지 말라고도 하고요. 화상경마장이 기습적으로 개장하려 했을 때 건물 앞에 천막 치고 24시간을 지키는데 그것을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었죠. 기존의 정당이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고요. 결국 시간이 증명해준 것 같아요. 지역 아이들을 위한다는 순수함과 꾸준함에서 진정성을 발견했어요.


용 : 관련 자료집 보고, 다같이 협력한 줄로만 알았는데, 여러 갈등이 있었네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서운한 감정과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구심점을 지켜갔는지 궁금해요.


이 : 우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결정을 하더라도 이견이 있을 수 있잖아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왜냐하면, 목적은 같은데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농성을 해야 하지 않냐, 계란을 던져야 하지 않냐, 그렇게 해서 싸움을 이길 수 있겠냐 의견이 분분했어요. 그럴 때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힘들죠.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핵심활동가들이 중심을 잡아주는 게 중요해요.

용 : 용산도박경마장 추방운동은 학교,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 지역주민이 함께 이뤄냈기에 교육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학생들의 안전한 환경을 지킨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5년 이상 힘을 합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 아이들을 먼저 생각했으니까요. 이 운동을 하는 동안 세월호 사건도 있어서 안전에 대한 걱정이 많을 때였어요. 우리나라 도박중독 유병률이 6%예요. 선진국이 2~3%인 것에 비해 높은 편이죠. 대전 월평동의 경우 IMF때 지역발전을 위한다며 화상경마장을 유치했는데 1년도 안돼서 학원이 있던 자리에 유흥업소가 들어서고 열악해진 환경에 주민들이 떠나면서 한 학년 10개 학급이었던 초등학교는 2개 학급으로 줄어들었어요. 용산 화상경마장이 잠시 개장했을 때도 동네에 전에 없던 취객들이 생겨나고 사채 전단지가 뿌려졌고요. 막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죠.


용 : 입시경쟁과 같은 교육환경도 그렇게 막아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좋은 취지를 갖고 모였어도 같이 활동하는 동안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이 : 많았죠. 워낙 운동이 길어지니까 나는 열심히 하는데 저 사람들은 왜 이리 무심할까 서운함도 있고요. 시민단체가 결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있었어요. 순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시민단체는 끼지 말라고도 하고요. 화상경마장이 기습적으로 개장하려 했을 때 건물 앞에 천막 치고 24시간을 지키는데 그것을 누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갈등들이 있었죠. 기존의 정당이 함께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많았고요. 결국 시간이 증명해준 것 같아요. 지역 아이들을 위한다는 순수함과 꾸준함에서 진정성을 발견했어요.


용 : 관련 자료집 보고, 다같이 협력한 줄로만 알았는데, 여러 갈등이 있었네요. 그렇게 서로에 대해 서운한 감정과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구심점을 지켜갔는지 궁금해요.


이 : 우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결정을 하더라도 이견이 있을 수 있잖아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왜냐하면, 목적은 같은데 방법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농성을 해야 하지 않냐, 계란을 던져야 하지 않냐, 그렇게 해서 싸움을 이길 수 있겠냐 의견이 분분했어요. 그럴 때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유지되기 힘들죠. 서로 다른 의견 사이에서 핵심활동가들이 중심을 잡아주는 게 중요해요.


화상경마장 이용객에게 밀려 나가는 성심여고 교장 수녀님 ©용산화상경마장 추방운동 백서


용 : 서로를 연결하는 허브 같은 사람이 필요하겠네요.


이 : 용산화상경마장 추방운동에서는 성심여고의 김율옥 교장수녀님이 그 역할을 감당해주셨어요. 작은 일들에 대해서도 '잘 하셨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항상 표현하시고 존중해주셨어요. 교장선생님이라고 하면 권위적이기 쉬운데 그런 걸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앞장 서셨어요. 마사회에서 임시개장을 강행하려고 용역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김율옥 교장수녀님이 맨 앞에서 저지하다가 무리하게 밀고 들어오는 경마장 이용객들에게 깔리기도 하셨어요. 그 때 교장수녀님을 보호하려했던 성심여고 선생님도 허리를 다쳐서 구급차에 실려 갔었어요. 아이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서는 선생님들 모습이 정말 큰 감동을 주었어요.


: 교장 선생님 스스로 앞장서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시니까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교육 문제에서도 학교가 먼저 나서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보게 돼요.

용 : 서로를 연결하는 허브 같은 사람이 필요하겠네요.

이 : 용산화상경마장 추방운동에서는 성심여고의 김율옥 교장수녀님이 그 역할을 감당해주셨어요. 작은 일들에 대해서도 '잘 하셨어요. 고맙습니다.'라고 항상 표현하시고 존중해주셨어요. 교장선생님이라고 하면 권위적이기 쉬운데 그런 걸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앞장 서셨어요. 마사회에서 임시개장을 강행하려고 용역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김율옥 교장수녀님이 맨 앞에서 저지하다가 무리하게 밀고 들어오는 경마장 이용객들에게 깔리기도 하셨어요. 그 때 교장수녀님을 보호하려했던 성심여고 선생님도 허리를 다쳐서 구급차에 실려 갔었어요. 아이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서는 선생님들 모습이 정말 큰 감동을 주었어요.


용 : 교장 선생님 스스로 앞장서서 많은 것들을 보여주시니까 더욱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교육 문제에서도 학교가 먼저 나서주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해보게 돼요.


교육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이 최소화되는 그 날까지


용 : 친환경 무상급식이 이제는 안착되어 더 이상 할 일이 없겠다 싶었는데, 지금도 친환경 무상급식운동을 지속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 작년에 코로나를 겪으며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매우 어려워졌어요. 3개월 단위로 납품하려고 열심히 경작했는데 등교 중지가 되면서 판로가 없어졌죠. 학생이 있는 가정에 꾸러미가 제공되기도 했지만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어떤 지역에서는 현금 10만원으로 지급된 곳도 있더라고요. 학교는 아이들이 교육을 받으러 오는 곳이지 밥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식자재를 조달하는 친환경 농가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거든요. 어떤 사람이라도 고통을 받는다면 그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해요.


용 : 그렇다면 교육으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고통이 최소한으로 줄어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 경쟁을 없애는 거죠. 건강한 경쟁도 있지만 지금 교육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쟁은 단지 점수 경쟁을 하는 거잖아요. 우리는 그런 상대적인 경쟁 구도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진 거 같아요. 경쟁을 완화한다고 하면 수시냐 정시냐 같은 논쟁에 갇히게 만드는 거죠. 기존 경쟁체제로 이익을 누리던 사람들이 노리는 전략 아닐까요? 그들은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인지 생각하기 전에 약점 있는 개인을 공격해서 내로남불이라며 공격하니까요. 체제와 시스템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지만, 상대평가 폐지, 대학 평준화 같은 큰 그림에서 움직여야죠.

"정의가 승리하였습니다" 화상경마장이던 건물 앞 인도에 설치된 조형물

용 :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지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하는 활동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와요. 개인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것, 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대학서열해소를 위한 활동, 이 모든 것들이 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이 : 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것으로부터 혁명이 시작한다고 봐요.


이원영 선생님이 뿌려준 씨앗들 덕분에 같은 시공간에 사는 내가 많은 것을 누리게 된 것 같다. 이런 시민운동가야말로 건강하게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주길 바라게 된다. 겉에서 보는 모습과 내면이 다르지 않은 순수한 시민활동가의 깊은 생각, 귀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교육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없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글. 노워리기자단 용은중

스스로를 눈물도 많고 약하다 생각하며 살았는데, 세 아이를 키우며 누구보다 고집도 세고 강단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후원회원과 지역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이 엄마의 발자국을 보며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용 :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지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하는 활동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와요. 개인으로 머물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크고 작은 모임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것, 제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대학서열해소를 위한 활동, 이 모든 것들이 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이 : 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하는 것으로부터 혁명이 시작한다고 봐요.



이원영 선생님이 뿌려준 씨앗들 덕분에 같은 시공간에 사는 내가 많은 것을 누리게 된 것 같다. 이런 시민운동가야말로 건강하게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주길 바라게 된다. 겉에서 보는 모습과 내면이 다르지 않은 순수한 시민활동가의 깊은 생각, 귀한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교육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이 없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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