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이들 삶에 작은 변화라도 만들고 싶어요 - 정지연 선생님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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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선생님은 현직 중학교 영어교사이다. 송파지역 등대모임에서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방학 특강을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교육과 비교해 경쟁력 있는 수업을 만들지 고민하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절대! 길게 말하면 안 된다’는 이미 알고 있는 양육법도 선생님의 입을 통해서는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당시 중학생이던 딸아이가 영어문법 때문에 늘 고전하던 터라, 선생님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몇 년 전 중학교로 옮기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말 한 마디 건네기 어색한 남자 중학생들과는 어떻게 소통하며 생활하실지 궁금한 마음에 인터뷰를 청해보았다.

 

채송아 (이하 채) : 고등학교에서 오래 재직하시다가 2019년부터 남자 중학교로 옮기셨는데, 중학생을 지도하는 건 전과 많이 다를 거 같아요.

정지연 (이하 정) : 너무 다르죠. 너무 달라요. 제가 전에 있던 학교가 자사고이다보니 거기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중학생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게다가 제가 부진학생들을 맡았는데, 한 반에 6명이에요. 일주일에 4시간 수업이 다른 수업하고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요. 알파벳도 잘 못 쓰고, 지능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있어서 암기를 정말 힘들어해요.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안 되는 친구들은 정말 안타깝죠.(*실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의 5~10%는 난독, 난산 등 경계성 학습 장애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친구들 겉으로 보기엔 다른 학생들과 다를 게 없어요.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운동도 잘하거든요. 이 친구들에게 영어를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 번은 교장 선생님께서 제게 밥을 사주시면서 ‘아이들을 너무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아도 된다, 잘 놀아주고, 학교에 다니는 의미를 느낄 수 있게만 해줘도 된다’고 하시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채 : 말씀만 들어도 선생님도 학생들도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돼요. 지금은 부진 학생 수업을 운영하시면서 마음가짐이랄까, 어떤 목표가 있으신가요?

정 : 어떤 책에서 봤는데 학교 다니는 걸 너무 힘들어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감옥처럼 느낀대요. 그래서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학생이 있을까봐 걱정이 돼요. 그래서 제 모토는 ‘착한 간수가 되자’입니다. ‘저 선생님 수업에 가면 기분이 좋아, 따뜻해져, 엄마 같아.’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채 : 남자 중학생들과 소통하는 노하우가 터득되셨는지도 궁금해요.

정 : 3년쯤 되니까 중학생 지도하는데 적응이 돼 가요. 무엇보다 제 쌍둥이 아들이 6학년이 되니까 남학생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죠. 자기 물건 잘 못 챙기는 것,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것, 책상에 앉아 있기 힘들어 하는 것, 수업시간 45분 집중이 힘든 것 등등 학생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요.

 

제가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 아침부터 종례할 때까지 계속 잠을 자는 학생이 있었어요. 처음엔 며칠 저러다 좋아지겠지 했는데 일 년 동안 계속 그러더라고요, 어르고 달래도 보았지만 고쳐지지 않아 학생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집에서 잘 좀 지도해달라고 부탁도 드리고요. ‘이 엄마는 왜 자기 아들 하나 통제를 못하고 밤에 안자고 게임하도록 놔두지?’ 하면서 속으로 비난했어요.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 어머니 사정을 제가 똑같이 겪고 있답니다. 저희 집 막내도 게임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새벽 2시가 되도록 잠을 안 자려고 해요. 컴퓨터로 무슨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기도 하고, 게임 캐릭터를 만든다고 잠을 안자요. 새벽까지 안자니까 학교에 가면 자연히 졸리겠죠. 아들을 보면서 제가 그 동안 수많은 부모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구나 생각했어요. 그 아들의 문제는 엄마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였던 거죠. 마음 아프지만 아이의 삶을 엄마가 완벽히 통제할 수 없다는 것도 절감하고요. 제 아이를 키우면서 좀 더 관대하고 여유로운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양질의 교육, 안전한 돌봄, 충분한 진로 탐색

 

채 : 전에 재직하시던 고등학교가 자사고였는데, 그 학교 생활은 어떠셨나요?

정 : 자사고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잘 해요. 영어 스피킹이나 에세이 경연대회에 나오는 학생들 실력도 높고요. 가정교육도 잘 받아서 예의 있고 매너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교사로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이에요.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 3배의 등록금을 냈으니 요구 수준이 높거든요. 특히, 1학년부터 좋은 입시 결과를 위해 성적 관리에 대한 엄중한 책임이 주어지죠, 수업의 질, 특별한 창의적 체험활동, 보충수업지도 등등 교사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저는 특히 수업에서 많은 갈등을 느꼈어요. 영어 수업이라면 영어로 작문도 하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런 활동보다는 수능과 관련된 문제풀이 수업이 많거든요. 학생들의 생각도 들어보고 상호작용이 많은 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문제 풀이로 당장 성적 끌어 올리는 수업을 원하는 학생들과 동료 선생님을 만나면 좌절감이 들더라고요.

 

채 : 그럼 선생님도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신가요?

정 : 2025년이면 자사고가 일반고로 모두 전환된다고 알고 있어요. 학교에 대한 제 기본적인 신념은 학생 누구나 자기 집 가까운 학교에 가서 양질의 교육, 안전한 돌봄, 진로에 대한 충분한 탐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교육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충분히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면 공교육에 더 바랄 게 없겠죠.

 

 


학교교육만으로도 충분한 세상을 꿈꾼다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정 : 대학원에서 상담심리를 공부할 때였어요. 부진학생 지도 과목를 강의하신 분이 신을진 교수님이셨는데, 교수님 남편께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교육시민운동 단체를 만드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궁금한 마음에 홈페이지를 찾아봤죠.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하면서 단체 후원회원이 됐고요.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어떤 점이 선생님 마음에 가 닿았던 걸까요?

정 : 저와 같은 영어 과목을 가르치시던 송인수 선생님께서 교육 문제를 해결해보시고자 소위 철밥통이라 인식되는 교직을 버리고 시민단체 대표가 된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마침 듣게 된 등대지기학교 강의도 아주 유익했고요.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노워리상담넷 상담위원으로 3년간 활동하셨어요.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정 : 제가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했으니까, 학교 학생들과 상담을 하지만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상담을 해보고 싶어서 상담위원에 신청을 했죠. 제가 잘 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리니까, 담당하시는 최승연 선생님께서 “선생님이 와주시면 저희는 너무 감사하죠.”라고 반겨주셔서 귀한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이었어요.

 

온라인 상담글은 한 편의 답변 글 안에 공감과 위로, 격려, 조언이 모두 들어가야 해서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제가 쓴 상담 글이 도움이 되었다거나, 가뭄에 단비 같았다는 피드백을 받기을 때는 보람 있죠.

* 정지연 선생님의 온라인상담 보기
Re : 영어학원 계속 보낼까요?

- Re: 개성을 살릴 수 있는 교육을 하는 학교는 없을까요?

 


채 : 단체에 처음 후원회원으로 가입했을 당시와 지금 느끼는 변화가 있으신가요?

정 : 가입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저는 당연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꿈꾸고 바라요. 정확히는 사교육이 없어도 되는 세상을 원하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사람들에게 사교육 안 해도 괜찮다고 여유 있게 말했기도 했어요. 근데, 그게 정말 실현되려면 우선 학교 현장의 평가부터 바뀌어야 해요. 아이 중학교 시험만 봐도 교과과정에 없는 내용,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은 내용을 시험에 내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한 적도 있어요. 공교육만으로 충분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으로선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거 같아요.

 

채 :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키고 싶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 : 사교육은 제 노후자금부터 빼앗아가요. 학생들의 저녁이 있는 삶을 빼앗고요. 무엇보다 돈이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이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요. 달리기를 하는데 어떤 학생은 고무신을 신고 뛰고 어떤 학생은 모터 달린 운동화를 신고 뛰게 한 다음 그 결과를 당연하다고 말하는 경주 같다고 할까요. 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나이키 운동화 정도는 신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라요. 제가 부진학생 지도에 힘을 쏟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채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펼친 운동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느끼시는 변화가 있나요?

정 : 아, 많죠. 제일 눈에 띄는 건 대학 합격 현수막이 없어진 거예요. 선행교육규제법 덕분에 학교 시험이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하도록 규제했고요. 근데,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지속적으로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데, 잘 이뤄지지 않을 때도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어요.

 

 

학생의 삶에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

 

채 : 선생님은 어릴 때부터 교사가 꿈이셨나요?

정 : 네,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익산 이리고등학교의 수학교사셨거든요.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학교에 데려가셨는데, 언니오빠들이 저를 정말 귀여워해줘서 그때 기억이 특별하게 남아 있어요. 수업하시는 아버지도 정말 멋있어 보였고요. 집에 와서 들려주시는 학교 이야기들도 다 재미있었어요. 어느 날은 아버지가 집으로 만화책을 잔뜩 가져오셨어요. 자습 시간에 만화책 보던 학생들 만화책이라 일단 가져온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만화책을 읽으면서 만화의 세계에 눈을 떴죠. 속으로 언니 오빠들이 만화책을 계속 읽어서 아버지가 더 많이 갖고 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앞으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아이들과 수업하는 건 교사 역할의 절반뿐이에요. 나머지 절반은 행정가예요. 제 업무가 중3학생들 학교생활을 조율하고 진로진학을 담당하는 것인데 진학 관련 공문이 하루에도 수십 개가 들어와요. 이 공문을 읽고 필요한 학생들에게 연결시켜주는 일을 해야 하고요. 오늘도 교육청에서 거주지 실태조사가 필요하다고 해서 작업하다가 왔어요. 수업 외에 비는 시간이 3시간인데, 그 시간에 이 일을 다 할 수가 없을 때가 더 많아요. 행정실무 역할을 해 줄 인력이 지금의 2배 이상 필요하죠.

 

채 : 학교에서 하나만 바꿀 수 있다면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정 : (망설임 없이) 시설이오! 고등학교 학생들은 자율학습 하느라 밤10시까지 학교에 있는데, 학교 시설이 너무 삭막해요. 놀 곳도 없고, 쉴 곳도 없어요. 근데, 학교에서는 예산 문제로 시설 개보수를 하기도 어렵고요. 학생들이 학교에서 좀 더 편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채 : 교직에 계시면서 특별히 보람 있었던 일을 들려주신다면요?

정 : 우리 반에 학기 초부터 우울감이 높은 아이가 있었어요. 학년 초에 학생들의 정서발달검사를 하면 상담 선생님과 보건 선생님이 담임들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시거든요. 그 학생은 이전에 자살 시도도 해봤고 우울 정도가 높다고 걱정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뒤로부터 제가 이 아이와 꾸준히 상담을 하면서 지금은 우울감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싶다면서 미술학원에도 다니기 시작했고요. 주변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결정도 할 수 있게 됐어요. 아이와 상담하면서 변화가 느껴질 때, 함께 진로를 모색하고 그 길을 찾아갈 때 교사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상담은 주로 점심시간에 하고요. 사실 학교에서 아이와 있는 시간 전체가 다 상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정지연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그 학생의 일상에는 전에 없던 생기가 돌았을 것이다. 아이가 학교 가는 길, 쉬는 시간에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뭉클해졌다. 포탈 사이트에 교사와 학생에 관한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 창은 교사 욕으로 뒤덮히기 일쑤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과거 학창시절에 경험한 체벌과 차별의 기억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지난 십수 년 동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만난 교사들은 고정관념 속 교사들과 달랐다. 주말에도 수업을 연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고민하는 이들이 많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성을 다하는 선생님들을 응원하며 우리 교육에 여전히 희망은 있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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