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문학 공부를 통해 배운 가치들을 전자제품 디자인에 녹여내고 있는 신영선 님
요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효자’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은 “하고 싶은 게 뭐니” 물으면 “없어요, 몰라요”, 부모들은 “뭐든 하고 싶은 거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도무지 아무 것도 안해요” 하소연한다. 오늘은 그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공과 매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신영선씨를 만났다. 지인이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회원이라 단체 소식을 자주 접한다며 선뜻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녀는 유명 대기업에서 요즘 뜨고 있는 “패밀리 냉장고”를 디자인하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다
- 전공은 불문과신데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 잠깐 예고를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취미로 하자 했어요.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니 엄청난 사교육과 표준화, 이건 못 참을 것 같더라구요.(^^)
‘이상적인(현실은 꼭 그렇진 않았지만)’ 외고 소개을 보고 외고에 왔는데... 영어는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똑같이 처음 배운 불어를 실용적인 수준까지, 빨리 해내는 애들을 봤어요. 그저 열심히 해서 잘하는 것 이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드디어 알게 된 거죠. 또 그들이 모두 외교관이나 통역처럼 외국어를 사용하는 일을 한다는 게 아니라 피디가 되고 싶다는 애도 있고 수학을 잘하는 애도 있는 거예요.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많다는 자각과 동시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당위를 알게 된 거죠....
동아리로 문예부를 했어요. 창고같은 데서 책 읽고 토론하고 우리끼리 책 만들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문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대학 중간에 뉴질랜드에 가서 어학코스를 등록했는데 IMF가 터졌어요. 학생이 2-3명으로 줄었어요. ‘나도 다른 걸 배워야겠다 영어는 덤으로 배울 수 있겠지’ 해서 전문대 카달로그를 꺼내놓고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체크하기 시작했어요. 어학은 빼고 공학 수학은 재미없으니까 빼고, 남은 게 미술. 그 때부터 3개월동안 사진 찍고 컴퓨터 작업 배우고 미술관에서 인체 드로잉과 유화도 조금 배우고... 그림들과 과정이 담긴 스케치북을 냈어요. 입학하고 학장 말이, 제가 그림을 못 그려 뽑혔더라구요.(^^) 그 전에 잘 그리는 애를 뽑았는데 학교에 적응을 못했다고. 이 나라 애들은 그림 잘한다고 뽑으면 안 되는구나. 제가 그림은 어설픈데 과정을 설명하는 게 타당해서 가르칠 수 있겠다 했대요.
1년 다니면서, 학교에 핸드 드로잉을 잘 하는 애들만 오지 않는다 또 그런 아이들만 디자이너로서 성장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그림 잘한다고 뽑으면 안 되는구나. 제가 그림은 어설픈데 과정을 설명하는 게 타당해서 가르칠 수 있겠다 했대요"
새로운 개념 새로운 직업
- ‘핸드 드로잉 잘하는 애들만 오지 않고 그런 애들만 디자이너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거기엔 저처럼 그림이 어설프지만 뽑힌 사람도 있고 정말 잘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디자이너로 성장한다는 게 그림 실력이 아니라 디자인적 사고가 성장하는 거란 걸 배웠어요.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하면 어떤 것을 시각화하는 기술을 훈련한다는 개념이 강하잖아요. 독일은 공대에 디자인학과가 많고 이태리는 건축학과에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어요. 디자인이란 게 여러 분야가 서로 융합되는 것이라 학부에서 다른 걸 했다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많아요. ‘시각적인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어떠한 사고와 프로세스로 문제의 해결방법을 구현하는 것’으로 개념이 바꿨어요. 생각을 구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 예를 들면 음성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것도 디자인이예요. 그게 제가 하는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인데요. 전통적으로 그래픽다자인이 화면에 색깔과 요소들을 배치했다면, UX 디자인은 그걸 포함해서 요소와 순서, 중요도, 알리는 방식 등 그 모든 것 기획하고 나타내는 거예요.
제가 12살 땐 이런 직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제가 대학 땐 이런 걸 가르치는 곳도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제가 일을 시작할 때쯤 세상에 이런 분야들이 생겨났고 빠르게 더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은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편이예요. 관심 있는 일(공부)을 계속 해 나가보면 지식도 쌓이고 네트워크도 생겨요"
좋아하는 것과 먹고사는 것의 경계
-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만 그게 꼭 안정적인 직장과 연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남는’ 힘을 대개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것들에 대한 에너지를 많이 유지하고 싶어요. 저에게 ‘재미’와 ‘능력’은 같은 의미예요. ‘수학은 재미없다’와 ‘수학은 잘 못한다’가 같은 말이죠.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참 어려워요. 오히려 먹고 사는 일은 내 의지보다 그 때의 상황과 우연, 제가 가진 몇 가지 자격들이 섞여서 해결돼요.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가 없어요.
IMF 때문에 영어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국에 와 보니 ‘웹’이 막 퍼지고 있어서 아르바이트가 쏟아졌어요. 활동하던 영화, 음악 동아리 사람들 일과 학과 홈페이지 일을 도와주면서 집에서 독립할 수 있었고, 그 때 만들어진 걸로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갈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편이예요. 관심 있는 일(공부)을 계속 해 나가보면 지식도 쌓이고 네트워크도 생겨요. 대학원 다니면서도 계속 했고 지금도 그런 여분의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요.
저는 ‘남는’ 힘을 대개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것들에 대한 에너지를 많이 유지하고 싶어요. 저에게 ‘재미’와 ‘능력’은 같은 의미예요. ‘수학은 재미없다’와 ‘수학은 잘 못한다’가 같은 말이죠.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참 어려워요. 오히려 먹고 사는 일은 내 의지보다 그 때의 상황과 우연, 제가 가진 몇 가지 자격들이 섞여서 해결돼요.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가 없어요.
IMF 때문에 영어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국에 와 보니 ‘웹’이 막 퍼지고 있어서 아르바이트가 ‘쏟아’졌어요. 활동하던 영화, 음악 동아리 사람들 일과 과 홈페이지 일을 도와주면서 집에서 독립할 수 있었고, 그 때 만들어진 걸로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갈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편이예요. 관심 있는 일(공부)을 계속 해 나가보면 지식도 쌓이고 네트워크도 생겨요. 대학원 다니면서도 계속 했고 지금도 그런 여분의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 오고 있다는 그녀. 좋아하는 걸 모르겠다는 우리 청소년들...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방법
-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하고 싶다는 게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무슨 미션도 아니고 찾으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거 찾으려면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주는 게.... 최근에 한 안무가 분을 만났는데 자기는 스케줄에 하루 한 시간씩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있대요. 그 시간에 가만히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주변도 관찰하게 되고 무언가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큰 애가 심심하다 하면 심심한 게 좋은 거야. 심심해야 된다 해요. 미션을 주고 찾는 것도 아니고 체험프로그램을 돌릴 필요도 없어요. 그런 방법은 오히려 아이들의 자발적 동기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신입 후배들 보면 자기 동기부여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자가발전”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해 보여요. 아무것도 없는데서,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서 스스로 움직여야 되는데 말이죠.
동영상이든 만화든 뭐든지 하다보면 그 안에 전문가는 누구고 필요한 사람의 자격은 뭐고... 내가 원하는 걸 얻는 방법도 찾게 돼요. 저도 그랬고요. 꼭 뭘 더 해주고 싶으면, 아이가 하고 있는 걸 같이 해보는 것 정도.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비디오 가게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빌려 오셨어요. 신문 스크랩도 해주시고. 그게 가장 감사해요.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는 일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두고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청소년을... 그러나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니...
직업상 ‘변화’의 앞부분에 있는데요, 당장 선택하는 특정학교나 특정 과가 성공확률이 더 높을 것 같지 않아요. 외국 학교를 나와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유행을 안 타는 인문학을 공부했고 그 때 배운 언어 이해력, 논리력을 계속 쓰고 있어요. 저랑 일하는 사람들은 학부전공이 다 달라요. 공학 심리학 문학 음악..
테슬러에서 일하는 선배 말이, 기초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고 싶은데 참 없다... 대학들도 취업란 때문에 만든 과목들을 개편하고 있어요. 기초과목을 많이 공부한 학생들이 심도 깊은 공부를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거죠.
표준화 시험을 잘 봤다는 기준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적어도 그걸 잘 보고 못 보고의 차이가 생각보다 적어질 것 같아요.
자기가 배우고 해보고 했던 것 중에 쓸데없는 게 있을까요. 그 지식이 안 쓰일 거다 장담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그걸 배우던 채널이나 관계 자체라도 ‘힘’이 될 거예요.
뭘 할지 뭘 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자기가 뭐든 해보는 게 남는 거예요. 진짜 ‘능력’을 키우다 보면 그 안에서 실용적인 목적이 해결되는 것 같아요.
현실에선 하고 싶은 거 보다 ‘대학’이라는 해야 하는 거에 매달리게 돼요.
현실은 하고 싶은 거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대학에 못 간다는 두려움이 많은데요?
전 직업상 ‘변화’의 앞부분에 있는 거잖아요? 미래 사회에 사람들이 어떤 생활양식으로 살아갈지 항상 생각해서 디자인해야 하니까요. 제가 겪은 바로는 당장 그 때 그 때 세상 흐름에 따라 선택하는 특정학교나 특정 전공의 성공확률이 그렇게 높을 것 같지 않아요. 외국 학교를 나와도 마찬가지구요.
저의 경우를 먼저 말씀드리면 유행을 안 타는 인문학을 공부했고 그 때 배운 언어 이해력, 논리력을 지금 디자이너 일을 하는 데에도 계속 쓰고 있어요. 저랑 일하는 사람들은 학부전공이 다 달라요. 공학, 심리학, 문학, 음악.... 테슬러에서 일하는 선배 말이, 기초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고 싶은데 참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공이 다양하지만 어느 전공을 하든 기초적 교양지식이 단단하면 다른 영역 일을 하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어요. 대학들도 취업난 때문에 만든 과목들을 개편하고 있어요. 기초과목을 많이 공부한 학생들이 심도 깊은 공부를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거죠.
표준화된 인간상에 얼마나 적합한 지를 묻는 시험을 잘 봐서 인정받은 시절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적어도 그걸 잘 보고 못 보고의 차이가 생각보다 적어질 것 같아요.
자기가 배우고 해보고 했던 것 중에 쓸데없는 게 있을까요. 그 지식이 안 쓰일 거다 장담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그걸 배우던 채널이나 관계 자체라도 ‘힘’이 될 거예요.
뭘 할지, 뭘 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자기가 뭐든 해보는 게 남는 거예요. 진짜 ‘능력’을 키우다 보면 그 안에서 실용적인 목적이 해결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사이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아 요사이는 가정, 직장, 학교 세 곳의 균형을 잘 맞추는데 집중하는데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못 두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공부 그리고 프로젝트를 마치면 그 자리에 자연스레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을 것 같아요. 배움에는 정말 끝이 없으니 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능력’, 그 핵심은 “아무것도 없는데서,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 아닐까.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찾는 것을 시작으로, 배우고 고민하고 좌절하며 얻어지는 것. 오늘의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하고 싶어야 하는’ 게 이미 정해져 있어서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일에 쓸 수 있는 ‘남는 힘’은, 실용적 목적이 아닌 그 자체로 어디까지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그녀는 요즘도 시를 쓰고 박사과정을 밟고 지인들을 돕는다. 회사 앞으로 이사를 해서 출근 전 시간은 아이들 몫으로 떼 놓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그녀의 시간은 명쾌하고 자유롭다. 자의로 타의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며 그 명쾌함과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해 본다.

불문학 공부를 통해 배운 가치들을 전자제품 디자인에 녹여내고 있는 신영선 님
요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효자’라는 말이 있다. 청소년은 “하고 싶은 게 뭐니” 물으면 “없어요, 몰라요”, 부모들은 “뭐든 하고 싶은 거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도무지 아무 것도 안해요” 하소연한다. 오늘은 그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전공과 매우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신영선씨를 만났다. 지인이 사교육걱정없는 세상 회원이라 단체 소식을 자주 접한다며 선뜻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녀는 유명 대기업에서 요즘 뜨고 있는 “패밀리 냉장고”를 디자인하고 있다.
- 전공은 불문과신데 디자인 분야에서 일을 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좋아해서 중학교 때 잠깐 예고를 갈까 생각하다가 그냥 취미로 하자 했어요. 준비하는 친구들을 보니 엄청난 사교육과 표준화, 이건 못 참을 것 같더라구요.(^^)
‘이상적인(현실은 꼭 그렇진 않았지만)’ 외고 소개을 보고 외고에 왔는데... 영어는 잘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똑같이 처음 배운 불어를 실용적인 수준까지, 빨리 해내는 애들을 봤어요. 그저 열심히 해서 잘하는 것 이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드디어 알게 된 거죠. 또 그들이 모두 외교관이나 통역처럼 외국어를 사용하는 일을 한다는 게 아니라 피디가 되고 싶다는 애도 있고 수학을 잘하는 애도 있는 거예요.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많다는 자각과 동시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는 당위를 알게 된 거죠....
동아리로 문예부를 했어요. 창고같은 데서 책 읽고 토론하고 우리끼리 책 만들고 재밌었어요. 그래서 문학을 전공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대학 중간에 뉴질랜드에 가서 어학코스를 등록했는데 IMF가 터졌어요. 학생이 2-3명으로 줄었어요. ‘나도 다른 걸 배워야겠다 영어는 덤으로 배울 수 있겠지’ 해서 전문대 카달로그를 꺼내놓고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체크하기 시작했어요. 어학은 빼고 공학 수학은 재미없으니까 빼고, 남은 게 미술. 그 때부터 3개월동안 사진 찍고 컴퓨터 작업 배우고 미술관에서 인체 드로잉과 유화도 조금 배우고... 그림들과 과정이 담긴 스케치북을 냈어요. 입학하고 학장 말이, 제가 그림을 못 그려 뽑혔더라구요.(^^) 그 전에 잘 그리는 애를 뽑았는데 학교에 적응을 못했다고. 이 나라 애들은 그림 잘한다고 뽑으면 안 되는구나. 제가 그림은 어설픈데 과정을 설명하는 게 타당해서 가르칠 수 있겠다 했대요.
1년 다니면서, 학교에 핸드 드로잉을 잘 하는 애들만 오지 않는다 또 그런 아이들만 디자이너로서 성장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그림 잘한다고 뽑으면 안 되는구나. 제가 그림은 어설픈데 과정을 설명하는 게 타당해서 가르칠 수 있겠다 했대요"
- ‘핸드 드로잉 잘하는 애들만 오지 않고 그런 애들만 디자이너로 성장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거기엔 저처럼 그림이 어설프지만 뽑힌 사람도 있고 정말 잘 그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디자이너로 성장한다는 게 그림 실력이 아니라 디자인적 사고가 성장하는 거란 걸 배웠어요.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하면 어떤 것을 시각화하는 기술을 훈련한다는 개념이 강하잖아요. 독일은 공대에 디자인학과가 많고 이태리는 건축학과에 산업디자인학과가 있어요. 디자인이란 게 여러 분야가 서로 융합되는 것이라 학부에서 다른 걸 했다가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경우도 많아요. ‘시각적인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어떠한 사고와 프로세스로 문제의 해결방법을 구현하는 것’으로 개념이 바꿨어요. 생각을 구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라, 예를 들면 음성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것도 디자인이예요. 그게 제가 하는 ‘사용자 경험(UX) 디자인’인데요. 전통적으로 그래픽다자인이 화면에 색깔과 요소들을 배치했다면, UX 디자인은 그걸 포함해서 요소와 순서, 중요도, 알리는 방식 등 그 모든 것 기획하고 나타내는 거예요.
제가 12살 땐 이런 직업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제가 대학 땐 이런 걸 가르치는 곳도 없었지만, ‘운이 좋게도’ 제가 일을 시작할 때쯤 세상에 이런 분야들이 생겨났고 빠르게 더 많이 생겨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은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편이예요. 관심 있는 일(공부)을 계속 해 나가보면 지식도 쌓이고 네트워크도 생겨요"
-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만 그게 꼭 안정적인 직장과 연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많은 것 같아요.
저는 ‘남는’ 힘을 대개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것들에 대한 에너지를 많이 유지하고 싶어요. 저에게 ‘재미’와 ‘능력’은 같은 의미예요. ‘수학은 재미없다’와 ‘수학은 잘 못한다’가 같은 말이죠.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참 어려워요. 오히려 먹고 사는 일은 내 의지보다 그 때의 상황과 우연, 제가 가진 몇 가지 자격들이 섞여서 해결돼요.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가 없어요.
IMF 때문에 영어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국에 와 보니 ‘웹’이 막 퍼지고 있어서 아르바이트가 쏟아졌어요. 활동하던 영화, 음악 동아리 사람들 일과 학과 홈페이지 일을 도와주면서 집에서 독립할 수 있었고, 그 때 만들어진 걸로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갈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편이예요. 관심 있는 일(공부)을 계속 해 나가보면 지식도 쌓이고 네트워크도 생겨요. 대학원 다니면서도 계속 했고 지금도 그런 여분의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요.
저는 ‘남는’ 힘을 대개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서 하는 것들에 대한 에너지를 많이 유지하고 싶어요. 저에게 ‘재미’와 ‘능력’은 같은 의미예요. ‘수학은 재미없다’와 ‘수학은 잘 못한다’가 같은 말이죠.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참 어려워요. 오히려 먹고 사는 일은 내 의지보다 그 때의 상황과 우연, 제가 가진 몇 가지 자격들이 섞여서 해결돼요. 예측하거나 계획할 수가 없어요.
IMF 때문에 영어가 아니라 미술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국에 와 보니 ‘웹’이 막 퍼지고 있어서 아르바이트가 ‘쏟아’졌어요. 활동하던 영화, 음악 동아리 사람들 일과 과 홈페이지 일을 도와주면서 집에서 독립할 수 있었고, 그 때 만들어진 걸로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갈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일은 크게 계산하지 않고 하는 편이예요. 관심 있는 일(공부)을 계속 해 나가보면 지식도 쌓이고 네트워크도 생겨요. 대학원 다니면서도 계속 했고 지금도 그런 여분의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 오고 있다는 그녀. 좋아하는 걸 모르겠다는 우리 청소년들...
-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하고 싶다는 게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무슨 미션도 아니고 찾으라는 말 자체가 모순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거 찾으려면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을 주는 게.... 최근에 한 안무가 분을 만났는데 자기는 스케줄에 하루 한 시간씩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있대요. 그 시간에 가만히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주변도 관찰하게 되고 무언가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희 큰 애가 심심하다 하면 심심한 게 좋은 거야. 심심해야 된다 해요. 미션을 주고 찾는 것도 아니고 체험프로그램을 돌릴 필요도 없어요. 그런 방법은 오히려 아이들의 자발적 동기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신입 후배들 보면 자기 동기부여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야하나 적응력이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자가발전”을 해야 하는데 그게 부족해 보여요. 아무것도 없는데서,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서 스스로 움직여야 되는데 말이죠.
동영상이든 만화든 뭐든지 하다보면 그 안에 전문가는 누구고 필요한 사람의 자격은 뭐고... 내가 원하는 걸 얻는 방법도 찾게 돼요. 저도 그랬고요. 꼭 뭘 더 해주고 싶으면, 아이가 하고 있는 걸 같이 해보는 것 정도.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비디오 가게에 가서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빌려 오셨어요. 신문 스크랩도 해주시고. 그게 가장 감사해요.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는 일에 매달려 있는 아이를 두고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청소년을... 그러나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니...
직업상 ‘변화’의 앞부분에 있는데요, 당장 선택하는 특정학교나 특정 과가 성공확률이 더 높을 것 같지 않아요. 외국 학교를 나와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유행을 안 타는 인문학을 공부했고 그 때 배운 언어 이해력, 논리력을 계속 쓰고 있어요. 저랑 일하는 사람들은 학부전공이 다 달라요. 공학 심리학 문학 음악..
테슬러에서 일하는 선배 말이, 기초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고 싶은데 참 없다... 대학들도 취업란 때문에 만든 과목들을 개편하고 있어요. 기초과목을 많이 공부한 학생들이 심도 깊은 공부를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거죠.
표준화 시험을 잘 봤다는 기준이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적어도 그걸 잘 보고 못 보고의 차이가 생각보다 적어질 것 같아요.
자기가 배우고 해보고 했던 것 중에 쓸데없는 게 있을까요. 그 지식이 안 쓰일 거다 장담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그걸 배우던 채널이나 관계 자체라도 ‘힘’이 될 거예요.
뭘 할지 뭘 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자기가 뭐든 해보는 게 남는 거예요. 진짜 ‘능력’을 키우다 보면 그 안에서 실용적인 목적이 해결되는 것 같아요.
현실은 하고 싶은 거 하면 안 된다고 그러면 대학에 못 간다는 두려움이 많은데요?
전 직업상 ‘변화’의 앞부분에 있는 거잖아요? 미래 사회에 사람들이 어떤 생활양식으로 살아갈지 항상 생각해서 디자인해야 하니까요. 제가 겪은 바로는 당장 그 때 그 때 세상 흐름에 따라 선택하는 특정학교나 특정 전공의 성공확률이 그렇게 높을 것 같지 않아요. 외국 학교를 나와도 마찬가지구요.
저의 경우를 먼저 말씀드리면 유행을 안 타는 인문학을 공부했고 그 때 배운 언어 이해력, 논리력을 지금 디자이너 일을 하는 데에도 계속 쓰고 있어요. 저랑 일하는 사람들은 학부전공이 다 달라요. 공학, 심리학, 문학, 음악.... 테슬러에서 일하는 선배 말이, 기초지식이 많은 사람을 뽑고 싶은데 참 없다고 하더라고요. 전공이 다양하지만 어느 전공을 하든 기초적 교양지식이 단단하면 다른 영역 일을 하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어요. 대학들도 취업난 때문에 만든 과목들을 개편하고 있어요. 기초과목을 많이 공부한 학생들이 심도 깊은 공부를 더 빨리 할 수 있다는 거죠.
표준화된 인간상에 얼마나 적합한 지를 묻는 시험을 잘 봐서 인정받은 시절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아요. 적어도 그걸 잘 보고 못 보고의 차이가 생각보다 적어질 것 같아요.
자기가 배우고 해보고 했던 것 중에 쓸데없는 게 있을까요. 그 지식이 안 쓰일 거다 장담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그걸 배우던 채널이나 관계 자체라도 ‘힘’이 될 거예요.
뭘 할지, 뭘 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자기가 뭐든 해보는 게 남는 거예요. 진짜 ‘능력’을 키우다 보면 그 안에서 실용적인 목적이 해결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사이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있나요?
아 요사이는 가정, 직장, 학교 세 곳의 균형을 잘 맞추는데 집중하는데 새로운 영역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못 두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공부 그리고 프로젝트를 마치면 그 자리에 자연스레 다른 것들이 들어와 있을 것 같아요. 배움에는 정말 끝이 없으니 급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능력’, 그 핵심은 “아무것도 없는데서,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서 스스로 움직이는” 것 아닐까. 무엇을 배울지 스스로 찾는 것을 시작으로, 배우고 고민하고 좌절하며 얻어지는 것. 오늘의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하고 싶어야 하는’ 게 이미 정해져 있어서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일에 쓸 수 있는 ‘남는 힘’은, 실용적 목적이 아닌 그 자체로 어디까지 존중받을 수 있을까.
그녀는 요즘도 시를 쓰고 박사과정을 밟고 지인들을 돕는다. 회사 앞으로 이사를 해서 출근 전 시간은 아이들 몫으로 떼 놓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그녀의 시간은 명쾌하고 자유롭다. 자의로 타의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가며 그 명쾌함과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