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독서'란 내 취향에 맞는 책으로 책덕후가 되는 일 - 최승필 선생님

봄꽃이 흐드러지는 4월, 베스트셀러 <공부머리 독서법>의 저자 최승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기 위한 독서법을 알아보려고 읽은 책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나의 독서생활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울림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독서운동가'라는 이름이 어울릴 정도로 제대로 된 독서방법을 알리는데 열정을 쏟아 붓고 계십니다. 선생님이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독서 세계에 나도 한번 깊이 빠져보고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이혜승(이하 혜) : 안녕하세요. 최승필 선생님, 저는 노워리기자단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 이혜승입니다. 새 책 쓰시느라 굉장히 바쁘다고 하셨는데 시간 내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최승필(이하 최) : 예, 안녕하세요. 지난번 책 후속으로 독서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책을 집필 중이라 좀 바쁘지요. 하지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단체라고 예전부터 생각한 터라, 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한달음에 나왔습니다.(웃음)

혜 :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독서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독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최 : 독서는 재미있게 해야죠! 우리 사회의 이상한 현상 중 하나가 독서에 대해 이중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독서는 지적이고 우아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흔히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독서를 해야 생각이 깊어진다고 하죠.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독서를 권장하죠.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굉장히 가치절하를 해요.판타지 동화를 많이 읽는 아이에게 부모들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학교 공부에 도움이나 되겠니? 마법부리는 거 읽어서 마음의 양식이 쌓이겠어?”라는 반응을 보이죠. 반대로 어른들은 매우 고상하고 우아해 보이는 책, 어려운 책을 골라 읽으려고 해요. 읽히지도 않고 이해도 안 되면서요.


독서는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최 : 저는 이런 현상이 독서를 ‘문화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거라고 봐요. 영화 매니아가 영화를 좋아하듯, 등산가가 산을 좋아하듯, 독서가는 책을 좋아하는 책덕후예요. 그러니 자기가 좋아하는,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책을 찾아서 즐겨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독서를 고상한 것이라고 인식하니까, 아이든 나든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거예요. 덕질 하듯 좋아서 하는 활동인데, 나의 취향, 읽기능력과 괴리된 고상한 책들을 골라 읽으면 재미가 있겠어요? 재미가 있어야 이해도 되고 지속가능하고, 비로소 독서를 하게 되는 건데요.

 

숙련된 독서가들이 일부러 수준 높고 고상해보이려고 어려운 책을 읽는 게 아니에요. 그런 책을 읽을 줄 알고, 읽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읽는 거죠. 그들도 처음에는 자기 언어수준에 맞는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시작했어요. 객관적으로 고상하지 않다고 여겨진 책들을 그동안 읽었기 때문에 언어능력이 성장하고 취향이 생겨서 수준 높은 책을 읽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수준 높은 책을 읽었던 건 아니거든요. 이런 과정을 모르고, ‘아, 처음부터 저렇게 고상한 책을 읽나보다’라고 생각하면서 내 취향과 상관없는 책을 읽어요, 어떻게 되겠어요? 독서를 할 수 없게 돼요. 너무 어려워져서요.

 


창의력은 나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요

 

최 :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학년별 추천도서, 권장도서 목록을 나누어주고 책을 읽고 와서 독서록을 제출하라고 하죠. 추천도서, 권장도서의 적정성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요. 이런 방법으로 독서를 하게 하면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아,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좋다고 판단된 어떤 것을 읽는 것이다’라고요. 내가 스스로 하는 문화활동인데 나의 취향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 채 독서를 하면서 나를 소외시키게 돼요.

 

좋아하는 판타지 동화를 못읽게 하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책을 강요하는 식으로 책 읽는 이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면, 나의 문화활동에서 나란 존재는 없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자신을 소외시키면 창의력을 키우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죠. 창의력은 나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요. 내 생각, 내 판단이 있어야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하죠.

 

아쉽게도 우리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책을 자유롭게 읽도록 두질 못하세요. 조급한 마음이 있어서요. 아이가 책을 좀 읽는 것 같다 하면, 수준을 높이거나 종류를 바꿔줘요. 책 수준이 높아지면 읽기가 어려워지고 종류를 자꾸 바꾸면 아이의 선호를 반영할 수 없어서 재미가 반감되죠. 아이가 관심을 가지는 책이 있다면 가급적 개입하지 말고 내버려 두길 바라요.

 

혜 : 독서교육 할 때 부모님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얘기군요.

최 : 사실 저는 가급적 집에서는 독서교육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은 아이가 독서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독서의 중요성을 얘기해주고 재미있는 책을 읽도록 해주는 거죠.

 

혜 : 독서문화를 향유하게 해준다고요?

최 : 네, 책 읽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고, 독서 시간을 확보해주는 거에요. 요즘 아이들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쉽게 빠지는데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끊고 책과 대면할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어요. 스마트폰 프리 존(free zone)을 만들어줘야 해요.


예를 들면, 가정에서 독서시간을 마련해 놓고 책을 읽는 거죠. “우리집은 저녁 먹고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독서하는 거야.”라고 정해놓고 같이 책을 읽어요. 처음에는 아이가 10분, 20분 읽다가 일어나기도 하다가, 어느날 우연히 재밌는 책을 만나면 한 시간을 읽게 되죠.

 


아이의 '책 이야기'를 듣는 시간

 

혜 : 매일 부모가 한 시간씩 책을 읽게 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최 : 그렇죠. 사실, 저도 강의하고 책 쓰고 하는 제 생활이 있어서 매일 그렇게 하지는 못하죠. 저희 집 같은 경우는  1주일 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 하고 매주 수요일마다 그동안 읽은 책을 아빠에게 얘기해 달라고 해요. 아이의 말을 듣다가 설명이 안 되거나 말이 안 되면 제가 물어보면서요.

 

혜 : 부모가 아이에게 내용을 묻는 게 아니라 아이가 부모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거네요? 이게 ‘책 대화’인가요?

최 : 그렇죠. 부모가 물어보면 안돼요. 의욕이 넘치는 분들은 토론 거리를 만들어서 애들을 붙잡고 얘기를 시키려 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애들이 질려요.

 

그냥 아이가 이야기를 재밌게, 계속 하도록 잘 들어줘요. 정말 재밌는 책을 만난 날에는 제가 말을 안 해도 먼저 달려와서 이야기를 술술 늘어놓기도 해요. 평소에 학원숙제 검사하고, 뭐하지 마라, 이것저것 해라 하고 잔소리만 하던 부모가 자기가 읽은 책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익숙해지면 아이가 아빠와의 대화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죠. 독서습관을 기르는 것은 아이가 재미있는 책을 만날 때까지 견디는 힘을 만들어주는 과정입니다.

 

혜 : 독서습관을 기르는 과정 자체를 꾸려가도 되겠군요.

최 : 그렇죠. 독서습관을 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해요. 독서에 푹 빠지는 일은 나에게 딱 맞는 책을 만날 때 발생해요. 재미있는 책, 딱 꽂히는 책을 만나려고 낚싯대를 계속 드리우는 과정이죠.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독서량도 늘고 독서시간도 늘고 독서에 대한 강도도 세지죠. 그러다가 또 다른 책을 만나면 한 단계 더 성장하게 돼요. 성장하는 기점에서 재밌는 책, 충격을 받게 하는 책이 등장하죠. 그게 바로 ‘인생책’이에요. 대박인 책을 만날 때까지 기다린다는 마음으로 독서를 해야 해요. 가능하면 아이가 스스로 고르게 해주세요. 서점이든 도서관이든 어딜 가든 책을 혼자 고르게 해주세요.

 

재미없는 책을 읽는다면 이 과정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겠어요? 재미없는 책으로는 매일 2시간을 읽어도 독서가가 될 수 없어요. 숙련된 독서가가 되는 열쇠는 내가 재미있어 하는 어떤 책을 만나는 거예요.

 

혜 : 아까 잠깐 스마트폰 프리 존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미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줘 버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최 : 안 주는 게 맞죠. 이미 줬으면 어떻게든 회수하면 좋겠어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스마트폰은 가지고 있어야지 하는 생각들이 있는데 현실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에요. 가상공간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면 커서 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정반대에요. 어릴 때부터 한 아이들은 크면 더 많이 해요.

 

오히려 중2, 중3 때부터 스마트폰을 갖는 경우에는 고등학교 가서 스마트폰을 스스로 반납하는 경우가 생기죠. 자기가 봐도 스마트폰이 내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을 확 느껴서 안 되겠다 싶으니까요.

 

교과서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

 

혜 : 초등학교까지 잘 하다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교과서 이해하는 것조차도 힘들어 하고 성적이 뚝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책에 쓰셨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최 : 초등학교 때까지는 선생님이 교과서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면서 가르쳐줘요.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해도 성적을 유지하고 수업을 따라갈 수 있지요.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 교과목도 늘어나고 선생님이 초등학교처럼 다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리고 많은 지식을 압축적으로 넣어 놓은 고등학교 교과서는 문장 이면에 있는 뜻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만 이해할 수 있죠. 어렸을 때 그 훈련이 된 친구들은 고등학교 교과서 문장 이면의 내용을 스스로 이해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공부를 할 수가 없죠. 성적은 당연히 떨어지고요.

 

초등학교 5, 6학년 수준에 맞는 초등 동화를 많이 읽은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었을 때 교과서를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한답니다. 경험적으로 그래요. 초 5, 6학년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많이 읽도록 해야 해요.

부모님들은 영어, 수학, 과학 사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은 별 볼일 없는 거라고 생각하세요. ‘초등학교 때 동화책 읽는 걸로 뭐가 되겠어?’ 라고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답니다.

 

혜 : 독서를 하려면 시간 확보가 가장 큰 문제인 거 같아요. 공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중고등학생에게 과감하게 책을 읽으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최 : 독서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큰 착각이에요. 책 읽는 시간은 그 아이의 집중력이 유지되는 시간이에요. 언어능력이 떨어지면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짧아요. 보통 청소년들이 자기 또래의 책을 읽는 시간은 한 번에 30분이면 족해요. 한두 시간씩 읽을 수 있는 아이라면 수능도 잘 보겠죠. 이번에 수능 만점 받은 학생이 아침에 1시간씩 학교에 일찍 가서 문학작품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일주일에 세 시간만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충분해요. 일주일에 3시간만 책을 잘 읽으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것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어요. 제가 논술강사 하면서 아이들의 언어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수능국어를 변형해서 초중등용 언어능력 테스트를 만들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6개월 단위로 테스트해 본 뒤 내린 명백한 결론이에요.

 

낮은 수준의 언어능력은 혐오문화와도 연결

 

혜 : 어른의 독서가 잘 되어야 아이들 독서도 잘 될 것 같은데, 어른의 독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나요?

최 : 본질은 같아요. 자신의 언어 수준에 맞거나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의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요.

어른의 독서가 중요한 이유는 언어능력이 사회통합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단계에서 책을 읽는다는 건 텍스트 이면을 깊이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에요. 드러난 현상의 뒷면이 헤아려지지 않으면, 나와 다른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아요.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름과 다양성을 서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상대에 대한 혐오가 늘어나고 갈등이 증폭되어 사회 문제가 되죠. 인지과학자 메리언 울프는 <다시 책으로>라는 책에서 언어능력과 사회통합의 상관관계를 심각하게 설명하고 있죠.

 

혜 : 제 아이도 인생책을 만나도록 힘을 길러주고 싶은데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실천하다보면 계기를 만날 수 있겠죠?

최 : 아이와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고, 아이가 원하는 만큼 책을 읽게 해주세요. 책 내용을 잘 들어주는 일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학원 한 군데만이라도 덜 보내고 책을 읽게 해주세요.


혜 : 학원 한 군데를 보내지 않는다. 아,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노력해 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최 : 독서가 지적이고 고매한 행위라는 우리사회의 선입견이 빨리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목표를 ‘내가 한번 책을 좋아해야겠다.’로 잡으세요. 영화 매니아가 영화를 좋아하듯이 독서가는 ‘책덕후’입니다. 그래서 나로부터 거리가 먼 책, 어렵고 수준 높은 책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재미있는 책을 찾는 것이 우선이에요. 내 쾌락과 재미를 쫒아가다 보면 그때 비로소 독서가 독자에게 힘을 주어요.

 


  노워리 기자단 이혜승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를 외치며 치열하게 사는 열정 직장맘. 아이 키우면서 아이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는,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 더 행복하길 바라는 초보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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