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탈출] “원시적이지만 버티는 힘이라도 시험해 보는 거죠” - 심민기 학생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조회수 83

엄친아를 만나러 가는 마음속은 복잡하다소문대로 훌륭한 점이 드러날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빛과 같은 속도로
내 아이와 비교하고 있는 마음을 추스르다 보면 결국 나까지 초라해지기 때문이다그런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면 될 게 아니냐고?
그러기엔 너무 궁금했다왜 이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등대지기학교 졸업여행에 참여해서 동생들과 함께 노는 걸까.
엄마(서울 중랑구 지역모임 등대장 백선숙 회원님)의 활약 못지않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자식연합을 만들기도 했던 심민기 군
(서울 원묵고등학교 1학년),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한 번은 만나서 얘기를 듣고 가야 할 바로 그 회원 친구 아들.

"안녕하세요. 원묵고등학교 1학년 심민기입니다."


민기를 만난 곳은 공릉동에 있는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이하 센터)’ 1층 북 카페였다. 민기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이곳 도서관을 드나들며 어린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그 해 10영상제작 워크숍에 참여한 친구들과 의기투합해서
삶겹살(삶을 겹겹이 살다)’이라는 동아리를 만들고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회원 친구 아들을 만나다!

채송아 (이하 채) : 삶겹살 간단히 소개해줄래?
심민기 (이하 심) : 영상제작을 주로 하고센터에서 하는 행사 촬영도 하고 있어요. 2년 전 워크숍에서 영상 제작에 대해 배운 건
물론이고 직접 기획하고 촬영해서 소소한 상영회까지 했어요머릿속에서 그린 대로 찍는 게 되게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힘든 일도 있었지만촬영하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이대로 헤어지기 아쉽다는 친구들하고 만든 동아리예요제가 원래 영화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채 영상을 제작하려면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니까 계획만큼 진도가 못 나가거나다른 해야 할 일들과
균형이 안 맞아서 힘들지 않아?
심 지금은 총 6명인데최대한 각자의 사정에 맞추려고 해요토요일 오후 2시에 만나는 것도 오전에 학원 가는 친구들이 많아서
그렇거든요시험 기간도 최대한 빼고 저도 여유롭지 않아요그러다 보니 작년보다 활동이 줄었죠지금도 작년 이맘때 생각하면
정말 즐거웠는데.’ 하고 많이 그리워요.

채 작년 이맘때면 중말이잖아고등학교 갈 생각하면 마음이 분주했을 텐데?
처음엔 고등학교 가기 진짜 싫었어요누가 압박을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느끼는 거죠그래서 중겨울방학 때
철저히 놀았어요.(와우!) 기말고사 끝나자마자 완전 놀자!” 체제로요학교 끝나자마자 여기 센터에 와서 매일같이 놀았어요.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인생에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달까시간이 그렇게 빨리 흐르는 거 같지도 않았고... 자유로우니까요.

채 주로 뭘 하고 놀았는데?
자전거 타고 놀기도 하고요겨울 자전거가 재밌어요춥긴 한데간식 챙겨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거죠.
2시간 달리면 뚝섬까지 가요도착한 곳에서 라면을 사 먹는데정말 맛있었어요언젠가는 남산까지 간 적도 있고요.

"머릿속에서 그린 대로 찍는 게 되게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촬영하면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 자체가 재밌었어요."


이럴 수가내 딸아이는 이과 수학하려면 진도 빼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엄포에 떠밀려 중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수학을 4개월 만에 떼는 학원을 다녔다매일같이 수십 장의 숙제에 치여 울다가 화내다가 나중에는 답을 베껴 가기도 했다.
그 시절의 민기는 자전거로 겨울 공기를 가르며 친구들과 한강변에서 라면을 먹었다니.

아니면 센터에서 친구들하고 게임하거나 탁구 치면서 노는 거죠친한 친구들이 그렇게 게임에 흥미가 많은 애들이 아니라서요저도 게임을 매일같이 하고 싶은 정도는 아녜요게임 좋아하는 애랑 흥미 없는 애랑 큰 차이는 없는 거 같아요.
제 관심사는 영화예요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마블 시리즈스타워즈 시리즈 아주 좋아해요.
그러다 보니 영상제작 동아리를 만든 거죠.

채 영상 제작할 때 어떤 점에 매력을 느껴?
무엇보다 완성된 작품을 친구들이 보면서 즐거워하는 게 제일 뿌듯해요이걸 기획할 때의 ‘설렘’이랄까. 그 의미를 생각해서
완성해내고 싶은 거 같아요같이 할 때 내가 기획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게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아요.
뜻대로 안될 때는 기획안을 수정하죠여러 명이 할 때 그런 과정이 상당히 고된 작업이긴 해요.

채 그 과정은 어른들도 제일 힘들어하는 지점인데?
졸업 UCC 제작할 때만 봐도촬영을 맡은 친구도 고생을 많이 했고주연 3인방도 고생해서 저 혼자만 잘했다고 할 수 없을 거 같아요어쨌든 다 찍고 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편집 끝나기 전까지는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인간인 건 아니고요.”

영상제작 결과물이 안겨주는 성취감이 남다르다는 건 짐작되지만고된 협동과 소통의 과정이 해볼 만 하다니, 점점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긴다이 대목에서 결국 떠오르고야 마는 질문연극배우이신 아빠와 과학자 엄마 사이에 태어난 민기는 누구를 더 닮았을까?

전체적으로 엄마를 더 닮은 거 같은데크면서 아빠 닮은 것도 느껴져요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다른 사람에 비해서
섬세한 거 같아요우리 반 아이들을 생각하면 뭐랄까착하지만 인간이 되기에는 좀 더 교육이 필요한 것 같거든요.(웃음)

채 너랑 말이 통하는 친구도 있어?
저도 아직 인간인 건 아니고요.(더 큰 웃음엄마도 학교 다닐 때다른 친구들과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으셨대요.
우리 학교는 남녀공학인데도 난생처음으로 남자만 있는 반이 됐는데수위가 25금은 되는 거 같아요친구들이 바보 같기도 했다가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거 같기도 했다가가끔은 도와주고 싶기도 해요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고민이 보일 때가 있거든요.
폼으로 살고 폼으로 죽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래도 서로 친구니까 잘 지내죠.

채 엄마가 교육 운동하시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느껴?
다른 엄마와 달리 특별하시다고 생각해요사회에 굉장히 관심이 많으셔서 그게 저한테도 영향을 주는 거 같아요.
보통 어른들과 달리(!) 진취적이시고어떤 문제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셔요.
작은 일 하나에도 탐구하는 철학적인 면도 있으시고요.

채 엄마와 교육문제에 대해 같이 얘기 나누기도 해?
최근에 학교에서 하는 입시설명회를 들었는데요일단 재미도 없지만사람을 다루는 게 아니라 기계 다루듯 얘기하는 게
싫었어요뭘 하려면 어떤 점수에 들어가야 하고무슨 상을 타야 하고, 그렇게 학교생활해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엄마가 많이 공감하시죠.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꿈꾸는 우리집 4호 (2010년)

 

다양한 교육 운동에 참여하며....


채 그럼 현재 입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일단하는 데까지 해 보자는 생각이에요. 1학기 초까지는 남들과 비교하려 했는데지금은 나 자신을 좀 더 낮은 위치에서
보고 조금만 더 앞서 나가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시험을 쳐보니까 남들과 비교하는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괜히 작아진 거 같고요실제로는 내가 나아지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자꾸 비교하면 무기력해지는 거 같아요그래도 비교를 아예 안 할 수 없어서 갈등해요.

채 엄마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전혀 안 하셔?
공부하는 양이나 방식에 대해선 잔소리하진 않으셔요대신 네가 정말로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면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라고 하시죠제가 가끔씩 늘어질 때가 있거든요티브이를 보거나 페이스북하면 시간이 금방 가니까요.

채 스마트폰 하다 보면 시간이 홀라당 사라지지.
페이스북이 특히 그런 거 같아요그래서 일부러 휴대폰을 집에 두고 학교에 안 가지고 가요정작 필요할 때는 빌려 쓰기도 하고애들이 휴대폰 두고 다닐 거면 왜 샀냐고 해요사실주말 말고는 평일엔 필요가 없어요계속 안 쓰고 버티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와서 친구들하고 일일이 연락하기가 너무 번거로워서 올해 8월에 샀어요.

채 그전까지는 핸드폰이 갖고 싶거나 필요하다고 느끼지 않았어?
예전부터 없었으니까 필요를 몰랐죠나중엔 핸드폰 없는 게 나만의 자부심이 된 거 같아요핸드폰 없다고 친구들이 무시하거나 하진 않았고요대단하다고 많이 놀라죠주로 어른들이.(웃음남들과 다른 나만의 개성이랄까.
그래도 남들이 불편할까 봐 좀 의식되긴 했어요.


학교는 이 사회의 축소판

"남들 시선대로 산다는 게, 그걸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게 요즘 고민이에요."

채 또래의 압박 때문에 하고 싶은데 못하거나안 하고 싶은데 하는 건 없어?
... 동년배랑 얘기하다 보면 언행이 좀 거칠어질 때가 있거든요특히나 패드립이나 일베 용어 같은 거 할 때요.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내가 나서면 애들이 이상하게 볼 테니까 용기 있게 말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러워요.
말했다가는 친구들과 관계가 틀어질 거 같아서요괜히 내 앞에서 민기 앞에선 엄마 얘기하면 안 되지~.’하면서
이상한 시선으로 볼 것 같거든요남들 시선대로 산다는 게그걸 무시할 수가 없다는 게 요즘 고민이에요.
학교도 사회의 축소판인데내가 나중에 커서도 사람들의 잘못된 점을 말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고요.

어른이 돼서도 불의 앞에서 당당히 맞서 싸우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민기 앞에서 나는 뭐라고 말했던가.
불의를 지적한다고 바로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그 문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조금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했던가어른이 된 나도 여전히 똑같은 고민 중이라고 시인했던가.

이걸 엄마랑 얘기했는데침묵하는 것은 암암리에 동조하는 거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바로 나서서 말하는 게 힘들다는 건
이해하시죠제 내면에서 갈등이 있어요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안 좋다고 말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대부분 다 쓰고 있으니까 잘못됐다는 걸 못 느끼는 거 같기도 하고저도 동화되는 거 같고요.
어느 누구도 잘못됐다는 얘기를 안 하니까 다들 무뎌지고요.

지역모임 천마산 생태답사 (2016년)


채 민기 생각을 공감해주는 친구도 있어?
많은 건 아니지만있죠이 문제는 다뤄야 할 범위가 넒은 거 같아요우리 반우리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는 거 같아요애들이 무조건 꼭 나쁜 건 아니거든요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죠.
자기감정을 그렇게 거침없이 드러낼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다 착해요.

과장된 혐오 표현의 남발이 사춘기에 완성되지 않은 뇌 문제라 치부하기엔불과 10, 20년 전의 사회상과 비교해도
현격하게 다르게 느껴진다아이들을 점점 더 거칠게 만드는 이 사회의 폭압을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부터 걷어낼 수 있을까.
 

공학을 하더라도 스타워즈를 잊지 말아야죠

채 커서도 영상 쪽 일을 하고 싶어?
연기도 관심 있고영상 제작이나 촬영도 재밌는데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환경공학자가 돼서 지구온난화 문제에 힘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환경 문제도 흑백논리로 나뉘는 게 아니라다른 분야랑 밀접하게 융합되는 추세인 거 같아요. 4차 산업혁명 강조하면서 학교 교육은 단순 계산이나 암기에 몰두하는 게 아주 원시적이긴 하지만과학이 재밌을 때가 있어요이과도 없어지거나 아예
세분화시키면 좋겠어요인간을 이과형과 문과형으로 나누는 건 말도 안 되는 거 같아요사람이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잖아요.

민기의 꿈 (2010년), 지금과는 다르다. 하지만 귀여운 꿈!

채 학원을 한 번도 안 다녔는데 공부는 혼자 할 만 해수학은 어렵지 않고?
심 수학시험에서 빛을 발하는 정도는 아니고요당장 높은 성적을 바라지 않기로 하고조금씩 차근차근히 하고 있어요.
영어는 중학교 때 문법 때문에 좀 고생했는데계속하다 보니까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제가 마블 시리즈나 스타워즈를 좋아하니까
해외 사이트에 댓글 남길 때가 있거든요그런 댓글 주고받으면서도 영어가 좀 늘어요영화 ‘어벤저스’는 봐도 봐도 좋아요.

채 마블 시리즈의 매력이 뭐야?
심 캐릭터가 매력적이에요. 게다가 연출을 잘 해서 캐릭터를 잘 살렸어요서사적 완성도도 높고요보다 보면 어떤 캐릭터나
다음 편에 대한 암시를 던져주는데그 내용을 추측하는 것도 재밌어요지금 생각대로 공학을 전공한다면 딱딱한 세계에 머물지
않고모험을 해보고 싶어요마블과 스타워즈를 잊지 말아야죠태양광 전지 비행기로 세계 일주에 도전한 사람처럼,
저도 제 분야를 전공하면서 누구도 해보지 못한 모험을 해보고 싶어요.

채 획일적인 교육방식에 어떻게 적응하며 지내는지 궁금했는데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돌파구가 있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끊임없이 정리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힘들기는 한데 적응되는 점도 있고... 즐거운 일을 하거나,
친구들과 놀면서 버텨내는 거 같아요내가 좋아하는 일을 힘으로 삼아서 참는다고 해야 하나.

"힘들긴 해도 하는 데까지는 한 번 해보라고 말해보고 싶어요."


채 끊임없이 경쟁하고 평가받는 학교에 못 다니겠다는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 힘들긴 해도 하는 데까지는 한 번 해보라고 말해보고 싶어요끝까지 해보지 않고서 힘들다고 하는 건 포기하는 걸지도
모르잖아요저는 그냥 그게의미 있다고 봐요시도를 한 번 해보고내가 정말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이 길은 정말 너무
아니구나그러면 버티는 힘이라도 시험해본 거니까요학교 시험이 가치 있는 건 아니지만인내하는 과정은 가치 있다고 느껴져요쉽지 않지만요.

열일곱 살의 눈에도 이런 방식은 아닌 것 같은데내가 가지고 있는 끈기만이라도 시험해보겠노라며 의미를 찾아준 민기에게
고마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남자아이들은 여전히 무리 지어 껄렁대며 추운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그 속내에 친구들의 압력에 못 이겨
괜히 더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아이가 숨어있다니때로는 딱하게 여기고 답답하게 쳐다보았던 내 무지한 시선도 이제 거두어야겠다내가 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불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어른들이 여기에 있으니 아직 실망하지 말라고,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비록 작은 목소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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