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 “나는 노동자입니다” - 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김금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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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면세점 노동조합 위원장 김금주 회원님을 만나러 가는 날은 공교롭게도, 지난겨울 촛불로 뜨거웠던 광화문이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1만 원 보장을 외치는 민주노총 총파업 노동자들의 요구로 다시 한 번 뜨거워진 여름 한 날이었다.
약속 장소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노조 사무실 위치를 몇몇 백화점 직원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결국 김금주 위원장이
나를 직접 데리러 나왔다. 사정을 듣더니, 아마도 그분들은 백화점 정규직원이 아니라 파견직원일 거라고 일러줬다.
노조위원장을 인터뷰하러 왔지만,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 금세 드러난 거 같았다.  


전선영(이하 전): 롯데면세점에서 노조활동을 하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김금주(이하 김): 현업을 떠나 대의원 상직 간부 활동을 거쳐 전임자로 활동한 것은 10년이 됐어요.
노동조합 활동은 2000년부터 시작했으니 거의 18년이 됐네요.

전: 어떻게 이 긴 시간 동안 노조활동을 하시고 위원장까지 맡게 되셨을지 궁금합니다.
김: 노조활동은 주로 남자만 하는 것 같고 여자 노조위원장이면 색다르게 보는 시선도 많은데, 지금의 저는 파업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어요. 롯데호텔 면세점에 근무하던 2000년 6월 9일부터 8월 23일까지 74일 동안 큰 파업을 했어요.
1,200~1,300명이 매일매일 명동성당에 모여 구호 외치고 한여름 땡볕에 시내 일대를 행진하면서 걸어 다녔어요.
그때만 해도 나는 일반 회사원이지 ‘노동자’라는 의식이 없었어요.
IMF 사태로 대우 같은 대기업들이 도산할 때 우리 회사는 환율 이익을 봐서 성수기였어요.
면세점은 아무리 세일을 해도 엄청난 이익을 내는데 회사는 당시 분위기에 편승하면서 직원들 상여금 50%를 삭감하는 거예요.
상사가 한 사람씩 불러다가 사회 분위기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50프로를 반납하자고 하니 억울했던 거죠.
이익이 크게 났는데 더 주지는 못할망정 왜 삭감을 하지?
이외에도 부부 사원 중 한 쪽을 정리해고하는 등 불합리한 처우들이 계속되면서 사람들 마음속에 불만이 늘어가고 있었죠.

“이걸 밥이라고... 자장면 시켜주세요!”

전: 당시 일련의 부당함에 맞서기 위해 본격적으로 노조활동을 시작하신 건가요?
김: 당시에도 노동조합은 있었지만 제 역할을 못했죠. 그 당시에는 한국노총에 소속돼 있었거든요.
새로 선출된 집행부에서 상급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바꾸며 파업 결정을 한 거예요.
그때는 저도 이런 파업 배경을 잘 몰랐어요. 일반 직원은 몰라요. 조합비만 내지, 큰 관심이 없어요.
지하나 건물 구석 같은 곳에 있으니까 노조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죠.

"저도 처음에는 노동조합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어요."

롯데백화점 노동조합 사무실 벽면 그림.


전: 노동자 의식도 없던 회사원이 파업에 동참했다는 사건 하나로 노조 전임자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김: 당시 파업이 길어지자 도와주러 오신 하종강 선생님께 교육 받으면서 저도 노동자로 깨어나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6월 29일 공권력이 들어온 거죠. 솔개부대라고 테러 진압부대로 재편된 경찰병력이 우리를 진압하러 왔어요.
25개 자치구에 나뉘어 끌려갔는데…… 휴, 그 얘기를 하자면 정말…… 닭장차를 타고 30명씩 나뉘어 끌려갔죠.
구로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데 ‘내가 뭘 잘못해 여기에 끌려왔나.’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밥을 주는데 스티로폼 일회용 도시락에 80프로가 밥이고 단무지 몇 개 달랑 있는 거예요. 이걸 먹으라고 준 건가 기막혀서,
자장면 시켜달라고 했어요. 세월이 지나 당시 구로 경찰서에 같이 있었던 친구가 다른 경찰서에 흩어져 있던 친구들은
뭘 먹었는지 물어봤대요. 그 친구들은 그냥 주는 밥 먹었는데 우리만 자장면 먹었다면서 “위원장님, 그때부터 조짐이 보였어요.”
하더군요. 내가 반골 기질이 있구나, 나란 사람을 좀 발견한 거 같아요.
"저 진짜 얌전한 사람이거든요. 연애도 한 사람과 일편단심으로 9년을 만나다가 결혼했고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맏딸이었어요.
누구의 아내, 누구 엄마로만 살다가 74일간 파업을 하면서 처음으로 ‘나는 노동자구나’, 롯데면세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확인했어요. 그때부터 엄청나게 열심히 활동했죠.
일 끝나고 모여 공부하고, 무슨 일을 하려면 새벽에 귀가할 수밖에 없으니까 남편들이 새벽노조냐고 할 정도로요."

김금주를 재발견하다

전: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역사의 전환점에 우연히 서게 되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방향이 수정되는 영웅들이 떠올라요.  
김: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사람이 맞으면 맷집도 는다고 파업이 끝나자 의식 무장이 됐죠.
그런데 회사에서는 의식화된 직원들을 다시 말랑하게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사람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 각자 일하다 보면 그 자리가 소중해지고 승진도 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런 심리를 잘 아는 회사가 의식화된 동료들을 회유나 협박으로 기업에 충성하는 근로자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죠.
끝까지 저항하는 송곳 같은 사람들은 진급도 누락시키고, 집에서 멀거나 안 좋은 곳으로 발령하고요.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너희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 ‘나도 끝까지 해 보겠다’는 오기가 작동했더라고요.
저도 제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요. 부딪히면서 알게 된 거죠.

"회사의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너희가 어디까지 하나 보자’, ‘나도 끝까지 해 보겠다’는 오기가 작동했더라고요."


지난봄 휴대전화 액정을 만드는 일본 다국적기업 아사히글라스의 부당 해고로 2년 넘게 장기투쟁 해온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투쟁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부터 변화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그들을 정규직이 되기 위해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저 사람은 자기 생을 온전히 살고 있구나,
그 누구보다 더 충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전: 개인 김금주는 자아를 발견하고 삶의 방향을 찾았지만 이전과 달라진 딸과 아내의 모습을 보신 부모님과 남편은 어떠셨나요?
김: 엄마는 다른 부모님처럼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래도 노조 활동으로 회사에서 잘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으셨어요. 회사를 더 잘 다니기 위해 하는 거라고 말씀드리니까 그럼 너무 앞에 나서진 말라고 하시더군요.
파업에서 돌아온 제가 억울하다고, 생전 하지 않았던 정치 비판을 쏟아내며 노조활동에 나서겠다 말했을 때
남편은 “이제야 금주가 자기 인생을 발견하나 보다.” 했어요. 눈물이 나네요, 그때 생각을 하니…….

전: 남편분의 마음이 큰 지지가 되셨겠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엄마의 노조활동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이들이 크고 난 뒤라도 얘기 나눠 본 적 있으세요?
김: 보통의 일하는 엄마들에 비해서도 같이 있는 시간이 훨씬 부족하니까 분명히 결핍이 있어요.
그래도 문제없이 잘 컸다고 생각해요. 큰 애가 게임 관련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지금은 게임회사를 다녀요. .
중학교 1학년 때인가 하종강 선생님의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다’라는 책을 7번 읽었다는 거예요.
그 책에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겨 있거든요.
엄마가 노조 활동을 해서 자랑스럽다고 한 적도 있었죠. 본인도 회사 들어가고 나니 “엄마, 이럴 때는 초과근무 수당 받아야지?”
라며 물어보길래 근로계약서를 보여 달라고 했어요. 어느 날은 무슨 시위를 한다고 엄마도 동참하라고 채근하더라고요.
아들은 집에서 제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자라서인지 이제는 노동 관련 기사를 전달해줘요.
‘이제는 이놈 때문에 멈출 수도 없겠다’ 싶어요. ‘좀 물러나 쉬고 싶은데 자꾸 떠밀려가네’라는 생각도 들고. (웃음)

김금주 선생님은 다양한 표정의 소유자다.


사교육걱정과 노동아카데미를 만나다

전: 우리 사회에서는 일하는 엄마들이 죄책감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데요, 말씀하신 결핍에 대한 걱정을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김: 다른 엄마들처럼 애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시켜줄 여력이 안 되니까 아이가 안쓰러웠죠.
친정엄마가 애들을 봐 주시지만 공부까지 챙겨달라 할 수는 없었고요. 그러던 중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났어요.
박재원 소장님 강의를 듣고 사교육걱정이 어떤 단체인가 찾아보고 다른 좋은 강의도 듣게 되었죠.
6-7년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선행교육금지법 제정 운동 당시 (2013년)


전: 단체의 교육들이 자녀 교육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김: 저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의 공부나 성적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단체의 강좌를 통해 일단은,
공부에 대한 마음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어요. 바늘구멍 통과하기 같은 입시 고통의 현실을 알게 되니
사람마다 다 쓰임이 있는데 한 방향으로만 아이들을 몰아가는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제가 마음 내려놓기가 되니 주위에 자녀 교육 걱정을 하는 다른 조합원들에게 함께 듣자고 홍보도 하게 되고 조합원들을 위한
교육 강좌도 열었는데, 노조 조직 활동도 어렵지만 교육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건 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필요한 사람에게는 인연이 닿아서 채아름 선생님이 저를 통해 단체를 알게 되고 나중에는 지역대표까지 맡아서
저보다 더 열심히 활동을 하시더라고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1인 시위 참여 (2016년)


전: 성적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았다고 해도 아들이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대입이 아닌 취업을 택했을 때 흔히 대학 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현실에서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김: 아들이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 본인이 가고 싶은 학교를 소개하는 팸플릿을 보여주며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어요.
저희가 왜 그 학교에 가고 싶은지 물었더니 앞으로 게임 기획자가 되고 싶대요. 아들이 IT 업계는 학력보다 경력이 중요하다고
선배들의 조언도 들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특성화고의 IT 병역 특례를 염두에 두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스스로 고민하고 정보를 모아서 진로를 잡았다고 부모를 설득하는데, 아빠랑 제가 아이 의견에 반해 억지로 공부를 해라
대학을 가라 할 수 없었어요. 저보다는 아빠가 기대를 내려놓기 힘들었는데, 제가 단체 강좌를 들으면 그 내용을 늘 남편과
공유하고 얘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결국 아들 생각은 물론이고 엄마로서 제 생각을 존중해 주었죠.

전: 사회에서 고졸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있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이런 부분에 대한 염려가 없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김: 걱정이 전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 안에서 아이가 부딪히는 어려움은 아이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무슨 깊은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 애가 고집이 워낙 세서,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요.(웃음)
우리 부부는 고3 자녀를 둔 스트레스 없이 산다며 복이라고 하기도 했어요.
아들이 크니 아빠랑 술 한 잔 하면서 엄마 아빠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셔서 고마웠다고 하더래요.
사회에 나가보니 성적이 좋았던 친구들이 행복해지지는 않더라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면서요.

 세월호 유가족 단식장에서 회원들과 함께 (2014년)


긴 세월 동안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시련을 이겨내며 단단해진 사람, 그러나 곁에서 본 김금주 선생님은 자기 생각이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처럼 비칠까 조심하는 성정을 가졌다. 그럼에도, 조직을 이끌고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들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기준으로 일을 추진해 나가는지 궁금해졌다.

김: 힘들죠. 흔들리지 않도록 내 자신을 단단히 만드는 것도 어렵고 어떤 일을 판단할 때가 제일 고민되죠.
노사 간 싸움은 한 방향으로만 가면 돼요. 투쟁만 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안정된 조직에서 협상은 더 어렵더라고요.
투쟁은 협상의 물꼬가 트이게 되면 끝날 수 있어요. 하지만 매번 교섭을 할 때면 어디까지 들어주고 어느 정도의 판단이 맞을까
항상 고민돼요. 매 순간순간마다 고민을 하죠. 양치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이렇게 해야 되나, 아니지 그러면 안 되지,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죠.
그래서 회의를 통해 소통을 가장 중요시해요.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지만 구성원 중에 “난 몰랐는데 왜 저러지?” 하게 되면
좋은 일도 인정받기 어려워요. 결정을 할 때는 맞다 틀리다가 기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회의를 통해 논리와 명분으로 80% 이상
설득이 가능하다 싶으면, 그때 행동에 옮기는 거죠. 합의가 중요하지 혼자서는 절대 판단할 수 없어요.

"매번 교섭을 할 때면 어디까지 들어주고 어느 정도의 판단이 맞을까 항상 고민돼요."


전: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조직원들과 소통하고 설득하는 능력은 어떻게 키우셨나요?
김: 저도 배우는 거죠, 지속적으로. 그 힘을 얻기 위해 교육을 받으러 다녀요. 전임자는 현장과 괴리감이 있어서 판단할 때
실수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전임자 생활한 지 8년차인 2015년부터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매너리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요. 교육 내용이 당면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교육을 받고 나서 회사와 협상을 풀어나갈 때
배경지식이 되고 판단에 큰 도움이 됐어요. 때로는 스스로를 칭찬할 수도 있었죠.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배우게 되고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노동자다

전: 노동 현장에 계시면서 직업을 갖기 위해 쌓는 학력이나 스펙 이외에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될 태도나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 노동자로서 ‘당당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스스로 당당하고 싶어도 사회에서 그렇게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거 알죠.
예를 들면 면세점은 현장에서 고객을 맞이해 판매하는 부서와 상품을 개발하는 MD, 기획부서 등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다른 부서들도 있죠. 그런데 사무실 근무는 대우도 받고 편한데, 현장 판매직은 힘든 일로만 보는 거죠.
물론 힘들어요. 백화점 고객 갑질 사건처럼 생각지 못한 사람들과 만나야 하니까 어렵죠.
그리고 사무직이 현장직보다 스펙이 월등히 나아요. 하지만 사무직 사람들에게 현장 일을 하라면 할 수 있을까요?
현장에서 고객 응대하며 서비스 업무 하라면 못해요. 이 일을 할 수 있는 고유의 사람들이 있어요.
나도 MD 일은 못하지만 판매는 잘할 수 있으니 노동은 동등하잖아요. 그래서 임금도 차이 나면 안 된다는 게 내 주장이에요.
사회적으로 그걸 인정하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게 먼저지만, 그런 사회가 되기까지 오래 걸리니,
스스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자는 거죠.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분들을 존경하고 그에 맞춰 대우를 해야 되는 거죠.
노동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학교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해요.

인터뷰 장소 한편에는 전태일 열사 그림도 있다.

"노동은 동등하잖아요. 그래서 임금도 차이 나면 안 된다는 게 내 주장이에요."


전: 노동과 교육문제가 서로 밀접해서 떼려야 뗄 수 없는데, 어떻게 유기적으로 풀어야 될까요?
그 중요함에 비해 노조도 너무 약하고 교육도 허약하니 생각할수록 답답해져요.
김: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죠. 윤지희, 송인수 두 대표님도 너무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신 거예요.
세월은 가고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도 돌아보면 몇 발자국 못 온 거 같고… 무언가를 개혁하고 개척하는 일은 항상 어렵고
고통이 따라요. 그러나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도, 장애물이 있어 느려지기는 해도, 다시 보면 흐름은 그쪽으로 계속 가고 있어요…
그래서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고 믿어요. 제가 사회 분위기를 변화시킨 경험 하나 얘기해 볼까요?
면세점은 여성이 많은 사업장이라 파업을 겪으면서 우리가 부당하게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됐고 직장 내 만연한
성희롱들을 깨닫기 시작했어요. 직장 내 성희롱은 죄질이 나쁜 게 상사가 인사권을 가지고 하는 행위라 거부하지 못하고,
그 사람의 자존감을 송두리째 무너뜨려요. 파업 당시 대자보에 우리가 부당하게 당했던 일을 써보자 했더니 우리 사업장은
여성비하적인 발언에 대해 어마어마하게 적어낸 거예요. ‘왜 이렇게 뚱뚱하냐’, 임산부에게 ‘요새는 산란기냐’ 이런 종류의 얘기를
상사들이 흔히 하곤 했어요. 우리 대자보를 본 민주노총에서 이 문제를 직장 내 성희롱으로 보고 사회적인 이슈를 일으켰고
재판까지 갔어요. 현재는 각 기업들이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필수적으로 하고 있는데,
저희가 파업하면서 이 문제를 제기한 거예요.
주로 여성이 일하는 사업장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우리가 크게 일조했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함께가면 길이된다!


힘없는 노동자였지만 진압 부대의 억압에 끌려가도 당당히 자장면 한 끼에 내 권리를 찾았고,
사회의 시선보다 내 아이의 당당한 선택을 응원하는 엄마의 길을 걸어간 김금주 위원장. 그녀의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하종강, 2008)” 문득 책 한 권의 제목이 그녀의 목소리처럼 작지만 또렷하게 내 안에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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