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 초라하게 살다 이름 없이 죽자 - 하종강 선생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조회수 115

하종강 선생님을 만났다. 웹툰 ‘송곳’ 구고신의 모델, 노동 운동의 대부. 그리고 등대지기학교 강사.
12기 등대지기학교의 부제는 ‘더불어 함께’다. 하종강 선생님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성공회대학교로 향했다.

하종강 선생님 반갑습니다!


초라하게 살다 이름 없이 죽자  

나성훈 (이하 ‘나’) : 선생님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하종강 (이하 ‘하) : 지금은 성공회대학교 노동 아카데미 주임교수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교수라 불리는 게
어색해요. 23년간 노동문제 연구소 소장으로 있었거든요. 소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노동 운동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아니에요. 한 15년은 조직 운동을 했는데, 노동 상담을 선택했을 때 너무 쉬운 선택을 했다고
비난하는 후배들도 있었어요. 당장 감옥 가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내가 노동 상담을 선택했다는 것은 운동의 중심에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노동 운동을 통해서 출세하지 않겠다는 뜻이다.’라고 후배들을 설득했어요. ‘초라하게 살다 이름 없이 죽자’, 제가 중2 때
책상 앞에 써 붙였던 좌우명이에요. 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졌는데, ‘잃을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올바른 선택을 해서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지만 유명해지길 바란 게 아니기에 두려워 말자.’ 다짐하며 삽니다.  

"내가 노동 상담을 선택했다는 것은 운동의 중심에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노동 운동을 통해서 출세하지 않겠다는 뜻에요."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강좌


40년 노동운동의 여정  

나 : 여러 매체를 통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면 된다. 첫 번째, 돈을 많이 벌지는 않겠다는 것과 두 번째,
유명해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운동권 내에서 조차 출세해야 한다는, 반드시 중심에 서겠다는 강박관념을 버린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원칙만 지키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울림이 크지만 실천이 어려운 말입니다.
하 : 다행히 저는 쉬운 편이었어요. 친구들이 ‘하종강에겐 중 2병보다 더 무서운 문학 소년병이 있다.’고 놀려요.
저도 찢어지게 가난한 건 무서워요. 떼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이지 아주 가난해지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가난은 불편할 뿐이지 불행이 아니다.’ 이런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건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교만한 말이에요.
가난을 겪어본 사람들은 가난이 계속되면 불행이라고 말하거든요. 돈에 대해서 초연하자는 것은 아니고 많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을 버리자는 거예요.  

"저도 찢어지게 가난한 건 무서워요. 떼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이지 아주 가난해지겠다는 건 아니거든요."


나 : 노동 운동을 하신 40년 중에 오랫동안 노동 상담가로 일하셨는데요. 노동 상담가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하 : 노동자 문제를 대신 처리해 주는 변호사 제도는 거의 모든 나라에 있어요. 우리나라는 공인 노무사들이 담당하고 있고요.
제가 노동 상담 시작할 때는 노무사 제도도 민주노총도 없었어요. 다른 조직이나 단체가 없을 때라
노동 상담가가 팔방미인처럼 모든 걸 다 했어요.
교육, 조직, 투쟁, 법률 상담 등등 노동상담사가 외국 노동운동의 오거나이저(organizer)같은 역할을 했어요.
한국 노동운동의 특징 중 하나가 오거나이저가 없다는 건데요. 예를 들면, <빵과 장미>라는 영화에 보면 주인공 한 명이 빌딩에
들어가서 청소 도구함에 몰래 숨어 있다가 청소 노동자 한 명을 만나요. 이 만남을 시작으로 몇 만 명의 청소 노동자들을
조직하거든요. 이게 전형적인 오거나이저예요.  
 

‘일꾼노동자문제자료연구실’ 재직 당시 만든 교육용 자료


화려하게 살고 명예를 높이는 건 인간의 오랜 소망이다. 반대 가치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살길 바랐던
문학 소년 하종강. 노동 운동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교육, 조직, 투쟁, 상담 등 많은 일을 한 하종강. 40년 가까이 노동자 교육에
힘쓴 그는 우리나라 노동 교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공부 안 하면 노동자 된다?

나: 우리나라 교육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언급조차 꺼리는 현실을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어떤가요?
하: 상황은 많이 변하지 않았어요. 부모가 자녀에게 한두 번쯤 해본 이야기가 길에서 고생하는 사람 보면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잖아요. 노동자라는 단어가 비참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잘못 사용된 유일한 나라에요.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노동자에 대해 이런 정서가 없어요. 다른 나라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도 노동자, worker에요.
국제노동기구 총회에 가면 전부 worker라는 용어를 사용해요. 한국 정부측, 사측 대표들만 employee (임플로이) 라고
해요. employee는 정확히 번역하면 ‘피고용자’라는 인사 노동 관리상의 개념이라서, 사회과학적으로는 노동자라고 하는 게 맞아요.  
 

이미지 출처 : 시사인


나 : 그렇다면 우리나라 교육에서 ‘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면 좋을까요?  
하: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미국 중학교 사회 교과목 교과서에는 노동 운동사라는 단원이 있어요. 미국의 실패한 파업과 성공한 파업이 분석 되어 있기도 하고, 부문별 노동조합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등 미국 노동 운동의 역사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거든요.
우리나라는 중고교 사회 교과목 교과서가 전부 63종 출판되어 있어요. 저희가 전수조사를 해봤는데요. 총 페이지가 17,000 쪽이
넘는데 우린 ‘노동운동사'라는 단어를 못 찾았어요, 교과서에서! 미국 같은 전형적인 시장경제국가의 교과서에서도 한 단원으로 존재하는데 한국 교과서에는 단어조차 없는 거죠. 기업의 중요성, 자본의 역할을 설명하는 분량과 노동의 중요성을 설명한 분량의 차이가 수십 배에요. 철저한 기업의 시각이죠. 교육에서 오히려 반 노동자 의식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어요.  

"교육에서 오히려 반 노동자 의식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어요."

하종강 선생님 수업 중 어느 중국 학생이 쓴 시험 답안


나: 이번 등대지기학교 강의 요약문에는 ‘노동에 대한 열린 생각과 노동 인권 감수성을 키워 줄 그의 강의를 들어본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교육에 부재한 ‘노동인권 감수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 노동인권 감수성은 노동인권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서에요. 노동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 노동자만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 유익하다, 노동자가 아닌 당신에게도 노동인권이 보호되는 게 유익하다, 그게 노동인권 감수성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가 장애인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잘못 생각하면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선택이거든요.  
왕도는 없어요. 여러 방면에서 노력을 해야 돼요. 교육, 언론, 시민운동, 학부모들의 생각 모두 바뀌어야 해요. 자기가 속한 곳에서
적합한 노력을 해야 되는데, ‘가장 중요한 방식이 있다’고 말하는 건 동의하지 않고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작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개혁적인 활동을 작은 일이라도,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게 사회에도
유익하고 개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12기 등대지기학교 자세히 보기
http://cafe.daum.net/no-worry/1QDs/1333


그래도 희망은 노동 운동  

나: ‘하종강’ 하면 노동 운동과 동의어로 느껴질 만큼 노동 운동에 온 생애를 바치셨습니다. 많은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노동 운동을 하시면서 겪은 가장 기쁜 순간과 슬픈 순간은 언제였나요?
하: 40년 동안 한두 명 만났겠어요?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많지……. . 대개 기쁨과 슬픔이 같이 있어요. ‘강경대 정국’이라고 부르던
시기가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있어요. 그때는 매일 집회가 있었어요. 한 번은 최루탄 직격탄을 가슴에 맞고 온몸에 화상을 입어
세브란스 병원에 실려 갔던 노동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그 사람은 웃지 않았어요. 몇 달이 되도록. 같이 밥도 먹고 그랬는데 한 번도 웃은 적이 없어요. 당연히 온몸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열심히 싸운 노동자고,
흉터가 몸에 남은 여성 노동자이고, 저는 책상머리에 앉아 뺀질대는 상담가잖아요. 신뢰 안 하는 게 맞지.
‘아, 이 사람 정말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데 연말에 카드가 왔는데, 항상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써 있더라고요. ‘내가 고맙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 땅 노동자로서 바르게 사는 게 고마움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카드는 자기가 하루 종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 굉장히 기쁘죠. 그분은 나중에 여성 노동조합을 대표하는 활동도
열심히 했고, 정부에서 보상도 받았어요.  
상담소를 할 때 원칙이 있었어요. 식사 때 온 사람은 식사를 대접한다. 도움 준 사람에게는 쓴 커피 한 잔도 얻어 마시지 않는다.
물론 얻어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도움 준 사람에게 뭐든 받으면, 반대로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게 될까 봐
처음부터 커피 한 잔 받지 않기로 했어요. 예외적인 경우에 얻어 먹는게 미풍 양속이어서 먹기도 하지만요.
해고 노동자 중에는 폭력배도 있었어요. 몸을 다쳤거나 산재 입을 수 있잖아요. 처음 왔을 때 내가 몇 마디 하니까
‘오늘부터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하면서, 한마디 할 때마다 ‘아 그렇군요 형님, 알겠습니다, 형님.’ 그러는 거예요. 그 건달 청년도
해고된 지 몇 달 되니 궁핍해졌어요. 식사 때 자주 왔는데 우리 직원들이 힘들어했어요. 왜냐하면 몸에 밴 밥맛 떨어지는 농담을
습관적으로 계속하니까요. 그 친구가 온다고 하면 직원들은 먼저 도시락 먹고, 제가 같이 짜장면을 먹었어요.
어느 해인가 12월 31일이라 직원들은 오전에 퇴근하고 저 혼자 상담소에 있는데,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자기가 그동안 얻어먹은 신세를 갚으려고 하니 퇴근하지 말고 기다리라면서요  
 
“짜장면 두 그릇 빨리 시키세요.”  
“내가 자네에게 사준 짜장면이 스무 그릇 이상 될 텐데 올해 마지막 날까지 짜장면을 먹어야겠어? 오늘은 짜장면 말고 다른 것 먹지?”  
“뭐요?”  
“최소한 볶음밥 정도는 먹어야지.”
그랬더니 ‘아, 짜장면 시키자’고 해서 결국 그 친구 것은 짜장면 시키고, 저는 끝까지 볶음밥 시켰어요. 철가방 소년이 와서 음식을
꺼내 놓더라고요. “오늘은 저 친구가 밥 값 낸대. 빨리 돈 받아." 그런데 그 친구가 백 원짜리 한 움큼을 꺼내는 거예요.
“씨발, 짜장면 두 그릇 값밖에 못 구했는데…… .” 그러면서 주더라고요. 어렵게 짜장면 두 그릇 값만 구해온 거지.
모자란 부분 채워주면서 볶음밥을 먹는데 목이 메더라고요. 12월 31일 될 때마다 생각이 나요.
 

하종강 선생님의 서재. 노동 관련 책자로 가득하다. @성공회대학교


하종강 선생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곁을 내주지 않던 사람이 마음을 여는 흔치 않은 경험,
가진 돈을 다 털어 밥 한끼 사는 사람, 무엇과 비할 수 있을까. 노동 상담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노동, 우리 아이들이 만날 미래

나 : 지난 진로 강좌에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노동자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 : 한국은 대학을 졸업해야 무시당하지 않고 살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좋은 대학 보내려고 사교육 시키잖아요. 실제로 대학 나와도 좋은 직장에 갈 수 없고 1등만 행복한 사회인데.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보람 있게 살 수 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으면
사교육은 당연히 줄어들거나 없어질 거예요. 지금 보면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일수록 사교육이 없어요. 어떤 직종을
선택해도 최소한의 삶이 보장된다는 특징이 있는 거죠. 대학에 가지 않고 노동자의 삶을 선택해도 존경 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사교육 문제는 자연히 사라지는 거죠.  
독일에 갔다 온 어느 교사가 자기가 처음으로 이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독일은 4학년 담임교사가 학생을 파악해서
인문계 학교로 진학할지 기술학교로 갈지 제시하는데, 온 가족이 그 결정을 전폭적으로 수용한다는 거예요.
한국에서 4학년 담임 선생이 너는 노동자가 되어라 하면 가만 있겠어요?
독일 교육이 그렇게 된 건 노동자가 되어도 충분히 보람있게 사는 사회니까 가능한 거죠.
노동문제 해결되지 않으면요, 절대로 사교육 문제 해결 안 돼요.  

선행교육금지법 제정 운동 참여 (2013년)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진로강좌에서 (2013년)


나 : 이번 등대지기학교에서 ‘노동, 우리 아이들이 만날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의하십니다.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어 말씀하실
계획인가요?
하 : 간단해요. 우리 아이들의 90%는 노동자가 된다. 한 반 서른 명 중에 한 명만 대기업 정규직이 된다. 1명이 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가 실패하면 삶 자체는 실패로 끝나잖아요. 아이들 중에 90% 이상은 노동자가 되고 한 반 30명 중에 29명은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은데, 1명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29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거죠.  

나 : 행복한 29명의 삶. 그런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나요?
하: 지금 이 활동을 가능한 오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꿈이에요. 한 번은 아내에게 당신 남편이라는 사람이 귀밑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평생 동안 노동 상담해도 괜찮겠냐 했더니 ‘난 다른 거 할까 봐 겁난 상태니까 하던 거나 계속 하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제 나이가 63세 거든요. 이제서야 귀밑머리가 하얗게 됐으니까 백발이 될 때까지 이 활동을 지치지 않고 했으면 좋겠어요.  
버리지 않았던 꿈 중에 하나는 시간이 생기면 좋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자식들에게도 ‘더 이상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으면 내가 좋은 소설 하나 쓰고 싶다.’ 말했는데,
허구에 가까운 꿈이지만 버리지 않고 있어요.
현실적인 꿈은 이 일을 백기완 선생님 나이 될 때까지 하는 거고요.  

더불어 함께, 노동자가 인정받는 삶. 그 길을 위해 오늘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일신의 영달만 고민하는 나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고, 다른 삶이 있다고, 온 몸으로 메시지를 던진 사람.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노동 현장에서 ‘더불어 함께’할 하종강 선생님.
큰 산을 만난 기분이다.

등대지기학교 신청하기
http://cafe.daum.net/no-worry/1QDs/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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