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공부] 나, 억새풀, 등대지기학교 전설의 1기를 아셔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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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라는 말이 갖는 힘은 한 공동체 안에서 그 일원들이 시간과 공간을 나누어야만 알 수 있다.
단순한 기억과는 다른 ‘교감’이 있다.
오랜 교감을 바탕으로, 회원끼리 공감할 수 있는 걱정과 고민을 풀어보자는 취지에서
‘사교육 걱정 없이 건강한 자녀 키워내기’ 프로젝트가 작년부터 진행 중이다.

올해로 12기를 맞게 될 교육 강좌 ‘등대지기학교’의 첫 졸업생인 ‘전설의 1기’, 곽은주 회원님과 최성순 회원님이
동기인 김관순 간사님과 함께 등대지역모임을 찾아가 후배 맘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며 선후배가 교류하는 프로젝트다.
회원들 사이에는 홈스쿨링으로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간 곽은주 선생님 자녀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지만,
내심으로는 그 엄마의 이력이 더 궁금해졌다.

등대지기학교 전설의 1기, 곽은주 회원님을 만났습니다.


전선영 (이하 전) : 선생님은 사교육걱정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당시에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있었나요?
곽은주 (이하 곽) : 2008년 한겨례 신문에서 등대지기학교 모집을 보고 직접 전화를 한 뒤 찾아오게 되었어요. 
제가 전화했더니 송인수 대표님이 받았어요. 아주 친절하게. (웃음) 그렇게 해서 첫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하게 됐어요. 
그 때 큰 애가 열일곱 살이었고, 이미 학교는 그만 둔 상태였어요.

송인수, 윤지희 공동대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과 함께 (2014년)

지역모임에서 회원들과 함께 (2010년)


학교를 꼭 다니지 않아도 괜찮아

전: 그러면 큰 따님이 몇 학년 때, 어떤 일로 홈스쿨링을 선택하게 되셨나요?
곽: 제 교육관과 학교 교육 사이에 너무 괴리가 있었죠. 저는 초등학교 때 아이들한테 문제집도 한번 안 사줬어요. 
아이도 학교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전혀 없었죠. 저도 강요를 안 하니까, 초등학교에서는 잘 지냈어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서 애가 달라지더라고요. 학교에서 수행평가 등 매일매일이 평가이고 모든 게 점수로 나오니까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큰 아이는 책을 읽는 아이였어요.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에 대한 인식도 있었고,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였어요.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진정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
‘학교는 안다녀도 된다.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어요. 
아이는 시간을 달라며 고민하더니 자기도 90%는 정말 그렇게 살고 싶다 하더군요.  
제가 바로 학교로 갔죠. 중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쳤을 때였어요.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전: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선생님 세대의 교육환경은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분위기였는데,
어떻게 어린 딸이 학교를 그만두도록 제안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예요.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게 길을 열어주셨다고 하기에,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크셨을까 궁금했거든요.
곽: 아이에게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데 힘들어했어요. 엄마니까 알죠, 아이가 힘들어 하는 걸. 
큰 아이는 자유로운 성향을타고난 부분도 있었어요. 제 기질도 닮았고요. 
제가 어렸을 때도 학교라는 공간이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 느꼈는데, 큰 아이도 그랬어요. 
예술적인 성향이 강해서 음악, 미술 등 예술에 재능이 있고 뭔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할 때 큰 에너지를 발휘했어요. 교육 환경이 내 딸 같은 아이들과 잘 안 맞는 걸 제가 안거죠. 
저도 어렸을 때 굉장히 기대하고 학교를 갔거든요. 
그런데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부터 학교가 제 생각과 달라 많이 실망했었어요.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저도 타고난 성격 자체가 반골 기질이었나 봐요.

"저도 타고난 성격 자체가 반골 기질이었나 봐요."


전: 혹시 선생님 부모님은 어떠셨나요? 다른 부모님들과 남다른 교육관이 있으셨나요?
곽: 저희 엄마가 그런 부분이 있었어요. 시골에 살았어도 굉장히 깨어 있는 분이셨죠. 
그래서 그 지역에서는 저희 엄마를 다 아셨어요. 여장부 같으셨죠. 

전: 본인은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만한 의지가 강하더라도 엄마로서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걸 봤을 때,
학교에서 떼어낸다는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었을 것 같아요.
아이가 적응하도록 회유를 하든 강제를 하든 복잡한 과정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곽: 사실 제 딸은 굉장히 모범생이었어요. 너무나 성실하니까 더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자기와 맞지 않은데 책임은 다 하려고 하는모습이 더 안쓰러웠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엉뚱한 데 쓰니 힘들고,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책임감 때문에 성실하게 다녀야 된다는 틀 안에 갇혀 있으니 더 안타깝더라고요. 

교육이란, 자기를 성장시키고 꿈을 찾아가는 과정

전: 학교를 그만두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나요?
곽: 아뇨. 전 아이에게 대학은 안가도 된다는 전제하에 그만두라고 했어요. 그 이후에 일체의 학교 공부는 안 했고요.

"교육은 자기를 성장시키고 꿈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요?"


전: 그럼 학교를 그만두고 무엇을 했나요?
곽: 그 때 알게 된 공간이 청소년 인문학 공간 ‘나다’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하자센터’ 였어요. 
그 곳에서 기타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했죠. 하지만 아이들이 없었어요. 모두 학원에 가는 거죠. 
아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환경에, 학교에서 보던 사람들과 다른 세상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였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당시 학교를 벗어난 것이 제 큰 딸에게는 잘한 선택이었어요. 
학교를 다녔으면 불행해졌을 거라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전: 대학을 안가도 된다 했는데 한국예술종합대학교를 입학한 것도 모자라 수석 졸업했다고 들었는데요.
곽: 수석은 의미가 없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교육이라는 것이 자기를 성장시키고 자기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큰 아이는 잘 찾아간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를 그만두면서 대학은 안가도 된다고 했는데 아이는 자기가 가고 싶은 
대학을  찾다가, 한국 대학 중에도 한예종은 가볼 만한 학교라고 생각해서 도전하기로 결심했고 공부를 시작했죠. 
본인이 필요하니 짧은 시간에 굉장히 집중해서 해내더라고요.

전: 아이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었다는 얘기인데, 선생님은 엄마로서 그 때 아이를 학교에서 벗어나게 한 것에 대해 후회해
보신 적은 없으세요?
곽: 저는 둘째에게도 탈학교를 권했어요. 그런데 둘째는 성향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안정적인 틀에서 매일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을
좋아했어요. 큰 애는 자기주도적으로 할 때 성취를 느끼는 애고, 둘째는 주어진 시스템에서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다른 삶도 가능해요....'


전: 큰 애와 다른 성향인데도 권하신 건가요?
곽: 제가 둘째한테 억지로 강요한 건 아니고요, ‘이런 길도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던져 준거죠. 
학교를 다니면서 자기는 원하지 않는데 강요받거나 남의 시선 때문에 못 벗어날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옆에서 ‘학교를 떠나는 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인생의 낙오도 아니’라고 얘기해준 거예요. 
저는 21세기를 살면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해가 안돼요. (웃음)

전: 선생님이 그렇게 강한 신념을 갖게 되신 루트를 찾고 싶어요.
곽: 저는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평범하지 않았나 봐요. 
제가 봤을 때 이게 아니다 싶으면 아닌 건데,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 길을 가는 게 저는 더 이상하게 생각돼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아니라고 하면서도 대세를 따라 가는 다수의 사람들이 듣는다면 뭐라고 했을까?
선생님의 신념에서 우러나온 실천적 삶이 부럽지만 내 것은 될 수 없는 또 하나의 성공담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우리는 행복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개인들이 그런 변화를 선택하기 위한 대안이 한국에 너무 없다는 게 현실이죠.
많은 사람들이 나 혼자 그런다고 이 사회가 바뀌겠냐 생각하거든요.
곽: 사실 우리도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진정한 공부를 해보지 못한 세대죠. 
지금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우리 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도 그래요. 
이 사회가 말하는 대로 돈 많이 벌고 좋은 대학 나오면 행복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거지 실제로 내 옆에서 그렇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못 본 것 같아요 우리도, 나도 마찬가지로 그런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아이들에게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전: 우리에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표상은 없다는 말씀이시네요.

등대지기 가족들과 함께. (2012년)


우리는 비둘기처럼 다정하고 장미꽃 넝쿨 우거져 향기로운 가정을 꿈꾸지만 현실에서는 상처뿐인 관계의 어그러짐이 시작되는
곳이 가정이다. 그렇게 행복도 꿈꾸지만 내게 맞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채 규격화된 행복을 추구하며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와 닿았다.

전: 아이를 키우시면서 내 아이를 위한 적합한 교육을 하고자 남다른 노력을 하신 부분이 있나요?
곽: 인문학을 접하게 한 부분, 삶을 사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기회를 준 것이라 생각해요. 
뭐든 자기가 생각하고 스스로 느껴서 선택한 부분에 대해서는 본인이 더 책임감을 느끼고 자주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간섭을 덜 하는 거죠. 그러면 부모와 관계가 틀어지지 않고, 자립심도 커져요. 저는 부모가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이 
차라리 쉬운 방법인 거 같아요. 그에 비해 기다려주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못하는 거죠.  

미지의 세상에서 만난 사람의 온기

전: 그럼 선생님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자신이 찾는 행복의 그림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우리들이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선행교육 금지법 제정 촉구 릴레이 1인 시위 중 (2012년)

곽: 큰 애가 대학 갈 때 쓴 자기소개서를 봤는데, 첫 문장이 자기가 수유리에 살았을 때  기억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이가 어릴 때 수유리 시장 근처에 살았거든요.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같은 주택가였지요. 저는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고, 
큰 아이는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비슷한 애들과 함께 놀면서 자랐거든요. 
그때도 아이들이 유치원 외에 피아노니 태권도니 다녔죠. 현재만큼 조기교육이 있지 않았지만 저는 학원에 보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제가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아이가 미지에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나 봐요. 

어느 날 할머니한테 천 원짜리 하나를 받아 동네 아이들과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대요.
아마도 우이동이나 4.19탑 인근을 간 것 같아요. 저희들끼리 처음 세상으로 나간 거잖아요. 
거기서 너무 배가 고파 분식집에 들어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얘들이 꼬깃꼬깃한 돈으로 떡볶이를 시켜 허겁지겁 먹는걸 보고, 
시키지도 않은 오뎅과 국물을 주시면서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셨대요.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따뜻함이 아이를 키워요."


아이가 처음 나가 본 세상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낀 거예요. 글을 읽는 저도 온기가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그 글을 보면서 
‘잘 자랐구나.’ 생각했어요. 제가 잘 키워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 모든 아이가 잘 자라야 된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키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따뜻함이 아이를 키우는 거구나. 그게 우리 어른들의 책임인 거죠. 

이 시대의 부모인 우리들은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 자식을 잘 키우는 부모는 어떤 고급 기술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찾고 공부하며 애쓴다. 그 수많은 노력이 향하는 곳에 무엇이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허나 지금의 아이들은 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며 자라고 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해진다.

우리 아이들이, 배고픈 아이를 내 새끼처럼 품어 따뜻한 국물 한 사발 담아주는 마음을 이 세상에서 만난다면,
사람의 온기로 충만한 시간을 가져본다면, 그 어떤 공학적 육아 기술로도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삶을 펼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천진난만한 꿈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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