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있는 공부] '사회학'과 '디지털 아트' 사이 - 정채건

오늘의 주인공은 사교육을 가장 급진적으로 탈출한 인물이다대안중학교를 졸업하고 고교과정에 해당하는 시기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배우는 언스쿨링을 실천한 정채건 씨그는 이미 수 년 전에 한겨레신문에 연재됐던 사교육탈출의 주인공이기도 했다그로부터 3년 후사교육뿐 아니라 기존의 교육 시스템과 결별한 채 십대 후반을 보낸 이 젊은이는 과연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2013년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사교육탈출' 연작 이후 3년만에 다시 만난 서울예술대학 2학년 정채건 군

채송아(이하 채) : 지금 서울예술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데전공 소개부터 부탁드려요.
정채건(이하 정) 전공은 디지털 아트이고 세부 전공은 인터랙티브 아트입니다저희는 1학년 때부터 세부전공을 배워요. ‘미디어 아트라는 예술의 한 장르를 전반적으로 배우는데 그 안에 영상도 있고 설치미술 등이 있습니다인터랙티브 아트를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밟으면 소리나는 계단을 들 수 있어요미적인 예술성도 들어 있고기술적인 부분도 들어가 있고사용자가 직접 참여해야 완성되는 예술작품이죠.

채 한겨레신문에 인터뷰가 실린 게 18살 때였어요서울예대는 경쟁률도 높았을 텐데대학 진학을 준비했던 과정이 궁금해요.
정 : 19살이 되고나서는 그 전까지 하던 일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사회학과에 진학할 계획을 세웠어요나름 입시를 준비한다고 수시 논술전형을 6개월 정도 준비했는데, 3년 내내 입시를 준비한 친구들과는 경쟁이 안되겠더라구요재수를 해야겠다 생각하다가 서울예대에 디지털아트 전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대안학교 다닐 때부터 영상에 관심이 있었고학교에 영상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거든요그 친구들 중 하나가 이쪽을 준비하는데나도 해볼만 하겠다 싶길래 지원했더니 합격이 됐어요.

채 본래 계획했던 사회학과와는 전공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정 중학교 때부터 방송반을 하면서 축제 영상도 만들고 하면서 관심은 계속 있었는데이걸 전공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대안학교이다보니 특이한 애들이 차고 넘쳤거든요영상 조금 만들 줄 알고 기타 조금 치는 정도의 취미는 나의 무기라고 하기에는 평범하다고 생각했죠저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전공으로 삼고 싶었는데영상 분야는 내 글을 가지고 다른 형식의 컨텐츠를 만들 수 있고타인의 글을 가지고도 내가 직접 컨텐츠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스토리가 없는 작품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잖아요.

사회학과 디지털아트그에게 두 분야의 간극은 우리가 생각하는만큼 넓은 것이 아니었다결정 과정이 어렵지 않았던 이유 또한 십대에 다양한 체험을 했던 이력도 도움이 되었겠지만무엇보다 유연한 사고 과정 속에서 나온 용기가 돋보였다그럼에도 본인과 일반적인 고등학교를 나온 친구들과 다른 점을 물어봤을 때의 대답은 다소 뜻밖이었다

정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은 새로운 과정에 적응하는 속도가 달라요대학교도 시간표를 짜고 나면 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데친구들은 그걸 훨씬 능숙하게 잘 하더라구요쓰는 말들도 좀 달라요서로 언어가 다르다는 게 한 두 학기는 좀 신기했어요.

다른 언어다른 속도그 안에서 자기 속도와 자기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텐데지금 그는 조금 버겁지만 제대로 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다른 대학생활

"1학년 1학기 때 들었던 수업들은 힘들어도 밤 새우면서 해내고나니 다 재밌었어요. 작업하다가 동틀 때 국밥 먹으러 가면 저쪽에서 연기과 아이들이 연기 연습 하다가 내려와요. 그런 때가 기억에 남아요."

채 대학교 생활은 어떤가요본인의 기대에 많이 부합하나요?
정 대학 생활은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달라요.(웃음엄청나게 자유롭고 시간 나면 친구들과 도강하러 다니고다들 하고 싶은 일 하려고 궁리하는 모습을 생각했죠그런데상상했던 대학생활이 아니라는 걸 첫 수업부터 깨달았어요시간이 나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줄 알았는데일단 시간이 나질 않더라구요. 1학년 때는 일주일 내내 밤 새고학교에서 살 때가 많았어요바쁘고 분주한 가운데시간을 쪼개야 자기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래도 1학년 1학기 때 들었던 수업들은 힘들어도 밤 새우면서 해내고나니 다 재밌었어요작업하다가 동틀 때 국밥 먹으러 가면 저쪽에서 연기과 아이들이 연기 연습 하다가 내려와요그런 때가 기억에 남아요.

우리 삶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은 그렇게 한 장의 사진처럼 각인된 순간이 남긴 에너지이다막 스무살이 되어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환상은 한순간에 사라졌지만그래도 주어진 과제에 몰입했을 때만이 만날 수 있는 강렬한 감정그 기억들이 오늘을 살게 한다.

채 대학생활 중에 가장 인상깊은 일을 소개한다면요?
정 제가 가지고 있는 로망들이 있어서 그걸 조금씩 실현해보는 중이예요요즘은 밤새 영화를 보는 파티를 하려고 계획중이예요강의실을 빌려서 밤새 영화 보면서 술도 마시고 하는 파티요저는 예술대학이니까 여기 오면 당연히 그런 걸 할 줄 알았어요그런데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하는 거예요초대장도 만들어서 사람들을 부를 생각이예요그렇게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어서 노는 계획하는 걸 좋아해요예를 들면수업 듣다가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난지도 캠핑장 큰 걸 하나 예약했어요수업 끝나자마자 갈 사람들을 모아서 하룻밤 놀고 다음 날 아침에 학교로 돌아오는 거죠.


채 놀이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있나봐요.
정 놀고 싶은 마음이 많고, 노는데 남들과 다르게 놀고 싶은 마음이 강한 거 같아요그래서 예술경영이나 기획수업도 재밌게 듣고 있어요언제든지 하고 싶은 일을 리스트업 해놨다가 기회가 닿는다 싶으면 즉시 실행하는 거죠이번 파티도 계속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로망이 비슷한 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실행하게 됐어요.


빈둥거리는 시간이 창의력이 자라는 시간이다.’ 어디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놀이에 대한 아이디어와 새로운 예술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일단 해보라, 그게 무엇이든지

"학교에 안가면 하루 24시간의 스케줄 표가 텅 비는 거잖아요. 그걸 내 스스로 채워야 하는 게 처음엔 막막해요. 부모님들은 그 답답함을 잘 참아주셔야 할 거 같아요. "

채 언스쿨링을 계획하거나 꿈꾸는 부모님이나 당사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정 부모님들은 일단 엄청 답답하실 거예요왜냐하면 저도 제 스스로가 답답했거든요쉬는 걸 좋아하고 집을 좋아하는 성격인데도 학교에 안가면 하루 24시간의 스케줄 표가 텅 비는 거잖아요그걸 내 스스로 채워야 하는 게 처음엔 막막해요부모님들은 그 답답함을 잘 참아주셔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당사자는 여유있는 시간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방법을 빨리 터득하는 게 좋아요게임을 하지 말고 책을 읽으라는 얘기가 아니예요게임을 해도 되지만그걸 어떻게 활용하고 이롭게 쓸지를 알아냈으면 좋겠어요처음엔 자기가 좋아하는 걸 많이 보러 쫓아다니겠지만본다고 하더라도 하게 되는 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하더라도 잘 하게 되는 데 시간이 또 걸릴 거예요그런데많이 하면 할수록 시간이 단축돼요포기도 빨라지고 끝까지 해내는 근성도 더 강해지구요.

채 전공 선택할 때 갈등과 고민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적었겠지만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요?
정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면 뭐든지 많이 보고 많이 하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특히 예술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많이 따라하다보면 언젠가 내 것이 생긴다는 말을 많이 해요많이 보면 볼수록 눈이 높아지고 그럴수록 내 작업의 퀄리티도 거기에 맞춰가게 되거든요다양한 걸 최대한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어요저는 관심있는 기사나 잡지등을 보면 무조건 저장해둬요그런 걸 많이 보다 보면 언젠가는 제 안목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 할 때마다 망설여지는 게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엄청난 열정에 넘쳐서 파고드는 성격이 아니거든요처음엔 최대한 많이 배우고 사람들에게 의견도 묻고 찾아보고 하다 중간에 포기한 것도 많아요피아노나 기타가 대표적인 예이구요세이브 더 칠드런 청소년 기자단할 때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의외로 글 쓰는 일만큼이나 기획을 좋아한다는 걸 발견하기도 했어요항상 놀 궁리를 하고어떻게 하면 지름길로 갈 수 있을까 궁리도 하고 그러다 또 부딪히구요좋아해서 자꾸 하게 되면 안부딪힐 수가 없어요그럴 때는 피해가기도 해요.

정채건 씨를 때 만나려고 계획했을 때 내 마음 속에는 양가감정이 있었다언스쿨링을 실천했을 정도면 여전히 특별한 무언가를 꿈꾸는 젊은이로 자랐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까아니면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이렇게 멀쩡한(!) 대학생이 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야 할까. ‘저는 그렇게 열정적인 성격이 아니예요.’라는 말을 듣고나니 어쩌면 이 모든 편견을 걷어내고그의 솔직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낙관해주지 않을 나를 낙관하기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사는 게 쉽지 않은데, 난 뭐라도 하겠지 하는 정도의 낙관, 잘 안되더라도 또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요."

자녀가 무엇을 선택하든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또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모인 우리는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채건씨의 부모님은 옆에서 그를 어떻게 지켜보았을 지 궁금했다.

채 부모님의 역할 중에 가장 도움이 됐던 부분은 어떤 건가요?
정 뭘 하더라도 일단 부모님이 믿어야 재정적으로 도와주실 수 있잖아요부모님이 제가 하고 싶은 걸 전폭적으로 믿고 지원해주신 게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근데그거 말고는 뭘 건드리지 않으셨어요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놔두신 게 어떻게 보면 좀 아쉽기도 해요게다가 어떤 부분은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우리 세대의 주류가 아닌 서브 컬쳐에 관심이 많은데그건 부모님이 아실 방법이 없잖아요나도 한참 찾아봐야 하는 작은 흐름이니까요예를 들면 여행을 가더라도 저는 다른 사람들이 안가는 곳에 가고 싶어요올해 1월 유럽에 다녀온 뒤로 다시 유럽에 가고 싶은데방법이 막막하잖아요그런데제가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속초에서 배를 타면 블라디보스톡에 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지난 10월 수시시험 보는 기간 동안 학교 수업이 쉬는 1주일을 이용해서 블라디보스톡에 다녀왔어어요근데 그 도시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 좀 힘들었죠.

채 요즘 제일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정 예술학교를 다니다보니까 남의 밑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고나 혼자만의 작업은 아니더라도 내 이름을 걸고 했으면 좋겠어요미래가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아요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를 골라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그걸 고르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뭐라도 할 거 같아요내가 나를 낙관하지 않으면 아무도 낙관해주지 않잖아요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사는 게 쉽지 않은데난 뭐라도 하겠지 하는 정도의 낙관잘 안되더라도 또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요.
 

그는 언스쿨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 대한 낙관 때문이었다고 한다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때그 선택이 성공할 수 있다는 근거를 찾는 데 골몰한다그러나때로 어떤 선택은 그 모든 근거를 뛰어넘는다모두 다 힘들고 어렵다는 현실 속에서 꿈을 꿀 수 있다면 그 또한내 안에 품은 낙관 때문이리라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무언가 시작하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지 않은지내 안에 낙관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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