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발견] '응급실 환자만 봐도 가슴이 뜁니다' - 정양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조회수 65

* 오늘날 절대 다수 아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존성은 아이들 앞에 펼쳐질 불투명한 세상을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굳세게 살아가도록 하는데 치명적 걸림돌입니다. 사교육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하니 그 불안은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사교육 의존성을 탈출한 후 진로는 어떻게 꾸려가야 하고, 꿈을 위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교육 탈출’, 꿈이 있는 공부’, ‘직업의 발견’, 한 달에 한 번씩 세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메디플라워 헬스케어센터 정양수 원장

[‘종합병원’부터 ‘골든타임’까지...위급 환자 발생 호출을 받은 하얀 가운 주인공은 20년 넘게 TV 속을 뛰어다닙니다. 메디컬 드라마는 전문직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과의 공감이 필수인 지상파 드라마 단골 소재로 등장합니다. ....의사를 병원보다 TV에서 더 많이 만나는 나라,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 중 대다수가 의대에 지원하는 나라.

대한민국에서 의사란 다른 어떤 전문직보다 더 친근하고 또 동경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메디플라워 헬스케어센터 정양수 원장은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의 의사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전문의 자격 취득 후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것 같은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습니다. ‘진료실에 갇히지 않는 의사’. 이 표현이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다. ‘종합병원’의 김도훈(이재룡 分)과도 다르고 골든타임의 최인혁(이성민 分)과도 다른 정양수 원장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인터뷰 약속이 있던 9월의 어느 금요일 오후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하늘이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만나고 근처에 법원과 서울교육대학교 그리고 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해 있어 낮 시간에도 사람들 발걸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곳.
    
정양수 원장의 일터이자 인터뷰 장소인 메디플라워 헬스케어센터는 땅 값 비싼 서초동 그것도 서울지하철 2,3호선 환승역인 교대역 13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었다.
    
“병원 안도 으리으리하겠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내내 머리를 채웠던 생각이다. 목적 층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띵’ 소리와 함께 깨져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먼저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물었다. 헬스케어센터 원장, 의대 임상지도 교수, 소셜 벤처 이사, 독거노인 방문 진료 주치의.... 대체 이 여러 가지 직함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 것일까?  

1년도 5년도 아닌 10년 계획을 세워요

정승훈(이하 훈):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먼저 여쭤볼게요. 진료도 보시면서  연구도 하시고 직접 학생들도 가르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대체 이 많은 일들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하고 시간 배분은 어떻게 하시나요? 어떤 원칙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정양수(이하 수) :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나머지를 아래에 배치한다고 할까요? 1년도 아니고 5년도 아니고 10년 단위로 이루고 싶은 일의 방향을 정하고 1년 단위로 구체적 실천 계획을 세웁니다.  물론 정해놓고 방치하는 건 아니고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점검하고 수정하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제가 생각한 그 곳에 가 있게 되더라고요또 그렇게 장기목표와 구체적 계획을 세우면 어떤 일이 닥쳐도 주저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아요.

10년 단위로 한 10개 정도의 세부목표를 정하는데 기사 제목 붙이는 것처럼 한 열 개 정도 이렇게 만들어 놓지요그리고 1년이 지날 때마다 그 해에 중점적으로 할 일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놓습니다물론 지난 1년에 대한 점검도 하고요그래서 그 때 그 때 현실성 있고 바로 추진 가능한 것부터 먼저 하고 바로 하기 어려운 일은 장기 과제로 넘깁니다그러면 여러 가지 일을 원래 목적에 맞게 잘 수행할 수 있습니다.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나머지를 아래에 배치한다고 할까요? 1년도 아니고 5년도 아니고 10년 단위로 이루고 싶은 일의 방향을 정하고 1년 단위로 구체적 실천 계획을 세웁니다."

훈 : 조금 추상적인 것 같은데 약간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수 그럼 2008년도에 보완 통합의학 관련 연구를 위한 공간을 찾던 때 이야기를 해드리면 될 것 같아요보완 통합의학 분야 연구를 너무 하고 싶은데 연구라는 게 혼자 하기는 힘든 거잖아요연구소를 만들려면 돈이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또 인력도 많이 필요하고..,그렇게 구상만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제 친구 중 한 명이 제가 구상한 내용과 비슷한 연구를 하는 연구소를 이미 꾸리고 있는 거예요그리고 제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연구를 함께 하자고 제안까지 해주더라고요물론 우연일 수는 있지만 만약 제가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지 않고제가 어떤 지향을 가지고 사는지 설명하지 않았다면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겁니다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어야 그것에 대한 기회가 찾아옵니다.
   
훈 : 그렇군요. 그럼 시기마다 우선순위를 재배열하고 또 원래 계획에 없던 일이 생기기도 하겠네요.
수 살다보면 그런 일이 당연히 생기지요그래서 원래 마음먹은 그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아요하지만 촘촘한 목표의식과 구체적 계획이 없다면 특히 돌발 상황을 만났을 때 방향을 잃기가 쉽지요.

전문의 된 후 더 열심히 공부한 남자

의사 정양수는 오히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관심영역을 넓힌다. 의사자격증 획득 후에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보다는 하루하루 환자 진료에만 신경 쓰기에도 바쁜 다른 의사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정이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자격증을 딴 정 원장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또 다시 책을 펼친다. 환자 치유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확신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차의과대학 대체의학대학원 고급과정을 수료하고 미국 연수를 통해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인 운동, 명상에 대한 연구를 지속했고 귀국 후에도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그에게 의사자격증은 직업 선택의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시작이었던 것이다.
    
문득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꿈꾸는 현실에 대한 정양수 선생님 생각이 궁금해졌다.

훈 :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 중 대부분이 의대에 지원하는 게 현실입니다. 20년 전 ‘종합병원’부터 최근만 해도 ‘골든타임’, ‘굿닥터’ 등 의학 드라마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도 있고요. 현직 의사로서 이런 세태를 어떻게 보시는 지가 궁금해요. 일단 의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은데 의사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수 굉장히 중요한 질문입니다예상 질문이기도 했고요 (웃음의사가 갖추어야 할 최고 자질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고 봐요. 2004년부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2학년 학생들이 저한테 실습을 오거든요본과 2학년이면 실제 병원에서 진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게 알아야 하니까... 시간이 그렇게 되었으니 다녀간 친구들이 참 많지요그 많은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느껴지는 게 옛날하고 다르게 애들이 훨씬 현실적이 되었다는 거예요예전엔 의사가 왜 되었냐고 물으면 나는 남을 도와주고 병을 고치기 위해서 라고 하는데 요즘은 그렇게 대답하는 학생이 별로 없습니다진짜 변했어요아이들이 너무 현실적이에요먹고 살아야 하니 현실적인 것은 해결해야 하겠지만 돈만을 추구해서 의사가 된다면 물음표를 평생 가지고 다녀야 하지 않을까옛날에 우리는 그래도 꿈을 꿨는데이게 세상이 너무 각박해진 거 아닌가....(한숨솔직히 겁이 나요사교육걱정없는세상도 사교육 걱정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꿈을  어떻게 찾아줘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봅니다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의사라고 다 돈 잘 벌지는 않아요

대답을 듣는데 안타까움이 목소리에서 너무 진하게 묻어나와 나까지 심각해졌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약간 가진 뒤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훈 : 의사라고 하면 전도유망하고 선망의 직업이고 돈도 많이 벌 것 같은데 진짜 그런지 혹시 일반인들이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는 것은 뭘까요?
수 일단 기대수익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물론 전공에 따라 또 병원의 입지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하지만  대체적으로 의사 자격증이 안정적 고소득의 보증수표였던 시대는 지난 것 같아요저의 경우 의사 연봉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차라리 IT 분야에 실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돈 잘 버는 의사들 적지 않고 꽤 많이 벌지요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많이 알려지지만 개업했다가 실패해서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도 많아요시대가 달라졌어요의사가 된다고 무조건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또 평생 직업이잖아요그렇다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 지 근본적인 물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평생 괴로움 속에 사는 거에요그래서 자연계 최상위권 수험생들 대부분이 의대에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좋게 들리지는 않아요그 중 적지 않은 수가 분명히 괴로워 할 게 뻔하니까요모두가 적성에 맞을 수는 없거든요.
    
훈 :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의대에 지원을 하셨는지요? 학창시절부터 꿈이셨나요?(웃음)
수 부끄러운 이야긴데요처음엔 정말 공대를 가고 싶었어요.
 
훈 : 공대요?
수 예 (웃음어릴 때부터 뭔가를 발명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그래서 사람들에게 편리한 뭔가를 해주고 싶었어요우리 때는 서울대 공대를 갈려고 하면 성적이 굉장히 좋아야 했어요그런데 지금은 역전돼서 지방대 의대까지 다 들어가고 서울대 공대 들어가는데 우리 때는 안 그랬습니다.

의대는 사실 고때 뭐를 잘 모르니까 아버지가 가라고 해서 간 거예요고향이 부산이었는데 부모님이 조건을 내걸은 거죠. ‘네가 서울대를 아니면 절대 서울을 못 보내겠다.’(웃음지금은 부모님이 고맙죠만약 의사가 안 맞았다면 힘들었겠지만 저는 학교 다닐 때는 피 터지게 운동하고 놀이패도 만들어서 사물놀이도 하고 민중가요 부르고 학생회장도 하고 이렇게 지냈는데 실제 환자를 보는 순간 너무 너무 이게 내 일이구나’ 다른 사람 도와줄 수 있으니까 너무 좋구나또 그 힘들다는 응급실 근무가 저한테는 더 많은 보람을 줬어요응급실 환자만 봐도 즐겁고 저 혼자 너무 보람되고 해서 응급실에 있는 게 참 행복했어요.

"시대가 달라졌어요. 의사가 된다고 무조건 안정적인 소득을 기대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또 평생 직업이잖아요. 그렇다보니 내가 왜 이 일을 하는 지 근본적인 물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평생 괴로움 속에 사는 거에요."

인터뷰 시작 이후 정양수 선생님의 표정이 가장 밝아졌다. 인터뷰 중간 중간 직원들의 퇴근인사가 이어졌고 정 원장은 “주말 잘 보내세요” 라는 인사로 화답했다. 오고 가는 인사에서 상사와 직원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준비한 질문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사교육걱정많은세상에 삽니다

훈 : 이제 거의 인터뷰 막바지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SKY 신입생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를 선택하는 등, 의대 진학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가는 한 편, 지난 봄 알파고 열풍 이후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처방도 하고 수술도 할 수 있다며 이제 의사가 필요 없어지는 시대가 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선생님은 미래를 어떻게 보시고 계신가요?
수 한 마디로 정리하기 힘든 복잡한 시대가 되리라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그래서 저는 두 가지 틀을 통해 변화를 해석하는데요하나는 머리다른 하나는 가슴입니다이 두 가지는 당연히 함께 작동하지요기능적 측면 그러니까 오류를 줄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효율적으로 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급속하게 의사를 대체하겠지요하지만 그것의 큰 방향을 정하고 어디에 중점을 두는 것은 인간의 몫이겠지요의학에서는 특히 가슴’, 즉 사람에 대한 사랑이 필요할 것이고요.
    
병원을 찾는다는 건 일단 마음이 다쳤다는 거예요몸이 다치면 마음이 다칠 수밖에 없어요그래서 의사는 처치도 잘해야 하지만 그 다친 마음을 위로하는 역할도 잘해야 해요소통소통 하는데 소통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부문이 의료지요.
그런데....(한숨문제는 우리 교육이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는 거지요저도 아이를 키우는 아빠지만 아이들 교육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요저뿐만 아니라 다들 아플 겁니다사교육걱정많은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웃음)


인터뷰 시작 후 1시간 30분만에 주황색 의사 유니폼 넘어 아버지 정양수가 보였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의사 정양수가 아닌 아버지 정양수에게 하기로 했다.

훈 :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교육걱정많은세상에 사신다고 하셨는데 어떤 걱정이신가요?
수 :  “저는 아이가 그냥 스스로 관리하며 공부할 줄 알았어요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더라구요그냥 모르는 게 생기면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되고요또 수학 선생님인 제 친구에게 부탁해서 어떻게 공부해라 통화도 하게 했고그런데 기질 상 혼자서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저희 아이인 것 같아요성적이 좋지 않으니 아이도 많이 힘들어하더라고요
 
너무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 중학교 3학년 쯤 됐을 때 과외를 처음 시켜봤어요근데 눈이 띄게 확 좋아진 거예요그러면서 코가 뀐 거죠학원도 다니게 되고... 사교육이 주는 단기 효과를 누린 거지요.
  
그런데 궁극적으로 공부를 좋아하는 애가 아니에요그 때 든 생각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남들도 다 하니까 압박을 가지고 계속해야 하나 하는 것이었어요그래서 저는 공부 못해도 좋고 전문대학에 진학해도 아무 상관없고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것 공부하고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하는데 또 아이 마음이 저랑 똑같기는 힘들고...그래서 요새는 저녁마다 제 시간에 밥 챙겨주고 고민 들어주고 하는 것만 하고 있습니다아빠 노릇 어려워요 (웃음)


* 인터뷰 말미 자녀 걱정하는 정 원장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아이가 공부가 하기 힘들다고 하고 부모가 다그치는 것이 지금껏 익숙한 풍경이 아닌가?  

아무리 봐도 학원을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한다더라고요사실 어디를 나오더라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아무래도 또래들 사이에서 대학 안 나오면 인생 끝이라는 공포가 퍼졌나보네요.”
    
이 말을 남기고 다소 이른 5시 경 아이들 밥 챙겨줘야 한다며 빠르게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정 원장의  뒷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그동안 가졌던 선입견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고이지 않는 사람’.

누군가 나에게 정양수 원장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고이지 않기에 계속 흐를 수 있는 그의 미래를 응원한다.

인터뷰, 글 : 정승훈(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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