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발견] 엄마는 마임할 때가 제일 엄마같아 - 조인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조회수 106

11월 첫 주말사교육걱정없는세상 식구들은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을 위한 6개 도시 순회 공청회를 마치고 올라오는 길이었습니다.  보통은 그 주말을 백만이 처음 거리로 모였던 날로 기억하겠지만 공청회 첫 주 일정을 마친 우리들에겐 마임과 처음 만난 날로 기억됩니다.

과장스런 피에로 복장을 갖추고 과장된 몸짓을 하는 것공청회를 통해 조인정 선생님 공연을 보기 전엔 마임 하면 이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들이 많았습니다하지만 공연을 본 뒤에 우리들은 정말 감동이었다’, ‘복잡한 내용을 몸짓으로 이렇게 나타낼 수 있구나’ 하며 마임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만장일치로 마임이스트 조인정 선생님을 이번 직업의 발견 인터뷰 주인공으로 하기로 하고 선생님과 더 길고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성악 전공을 꿈꾸던 뮤지컬 배우가 16년차 마임이스트로 살아가기까지의 이야기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서정필 (이하 서) : 태어나신 곳은 어디에요나이는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올 테니 일단 지금은 태어나신 곳만 여쭐게요.
조인정 (이하 조) : 서울에서 태어났어요동대문구 휘경동입니다경희대랑 외대 사이에요철길 있고 건널목 있고...아 그리고 74년생이에요뭐 숨길 것 있나요.(웃음)

(인터뷰 시간이 저녁이라 식사를 먼저 하게 되었고 먼저 명함을 교환하는 시간이 있었다명함을 살피는데 메일 주소에 ‘7474’가 들어가 있었다그래서 7474에 대체 어떤 뜻이 있는지 뒤에 물어보려 했지만 답이 먼저 나와 버렸다.)

서 : 제가 항상 물어보는 질문인데요어릴 때 떠올리면 어떤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어렸을 때 기억이 나중에 전공을 선택하거나 직업을 고를 때 영향을 주는 일이 많더라고요.
조 : 클래식 음악이 떠오릅니다아버지께서 클래식 음악을 참 좋아하셨어요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 날이면 언제나 집에 클래식 음악이 흘렀지요아주 크지는 않지만 마당도 있었고...그래서 어린 시절 떠올리면 클래식이 BGM(BackGround Music)으로 깔리고 아버지 서재에 앉아서 음악 들으시고 저는 그냥 아무 걱정 없이 집안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게 생각나요.

클래식 흐르는 마당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클래식이 떠오른다니 뭔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다약간 더 자세히 묻기로 했다
   

서 : 아버님께서 클래식을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그 시절이라면 테이프가 막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같은데...혹시 LP였나요?
조 : 예 맞아요턴테이블이었어요엠프 크고...(웃음어린 시절이니 아무래도 누구의 무슨 작품이니 그런 건 당연히 모르지요.

하지만 많이 듣다보니 집 도착해서 가방 던져놓고 조금만 지나면 아 이 부분이 어떤 부분이구나 하고 바로 떠올라요영화에 BGM이 깔리듯 제 어린 시절은 클래식 음악이 함께 했습니다.

클래식이 정말 잘 만든 음악인 게 그 안에 기---결이 다 들어가 있어요그 어린 시절에도 그게 느껴지더라고요잔잔하게 시작했다가 전개과정을 거쳐서 막 긴장이 오르다가 절정에서 ’ 터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그래서 어린 시절부터 그 절정 부분 음악에 맞춰서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했지요.

특별히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없다고 한다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건 또 아니다원래 성격이 마음 속으로 동의가 되는 건 열심히 하는 성격이라고 한다결과야 뭐 더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거고원래 그래요해야겠다 싶은 건 열심히 해요” 시켜서 하지 않았을 뿐 공부도 열심히 했던 질풍노도 시절의 선생님께 질문을 던진다.

서 :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웃음공식적으로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미래에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합니다선생님은 어떠셨어요?
조 : 사실 뭐 제가 다닌 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지금도 아주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입시 준비하는 데에도 바빠서 애들 진로에 대해 챙겨줄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공부하는 아이는 계속 책만 보고 포기하고 노는 아이들은 그냥 열심히 놀랐어요.

제 이야기를 드리면...저는 학창시절에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어요.. 어릴 적부터 클래식그 중에서도 드라마틱한 노래가 부르고 싶어서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거든요그래서 성악과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실용음악에서는 굳이 전공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수를 할 수 있지만성악가는 일단 전공부터 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고또 너무도 하고 싶은 공부였으니까 오로지 성악과만 생각했었어요.

서 : 보통 전공을 택할 때면 그냥 하고 싶다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생각할 것이 많잖아요돈을 얼마나 벌 수 있고 세상에서 얼마나 알아주는지 같은...
조 : 어떻게 이해하실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은 많이 해보지 않은 것 같아요다른 것 재고 그러지는 않았어요철이 없었던 거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집안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아요. ‘일단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후회해도 해보고 후회해라’ 그런 분위기였거든요.

서 : 그래도 성악과 입시를 준비하려면 레슨도 받고 해야 하는 게 아닌지요?
조 : 예 그렇지요저도 레슨 받았습니다중 3때 아버지께서 사업에 실패하시고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고3에 1재수 하면서 1년 총 2년 받았습니다.

서 : 보통 예체능 입시 준비하는 경우에는 빠르면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 학원도 다니고 레슨도 받고 하는데그렇게 준비하지 못해서 불안하거나 그렇지는 않으셨는지요?
조 : 지금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 때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어요어려운 형편에 레슨 시켜주시는 것만으로 부모님께 감사했을 뿐이지 그런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그런데도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당시만 해도 노래를 꽤나 잘한다고 착각을 했던 때라  레슨만 받는다면 학교는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이 있는데제가 그렇게 뭘 몰라서 용감했었습니다. (웃음)

고등학교 3학년 겨울에 치른 첫 대학입시에서 실패한 조인정 선생님은 대입 재도전을 결심한다그래서 얄궂게도 마지막 대입 학력고사와 첫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모두 치러야 했다하지만 아쉽게도 다시 찾아온 겨울에도 성악과 입학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한다.
 

서 : 아 세상이 역시 쉽지 않아요많이 아쉬우셨지요?
조 : 맞아요힘들었어요나름 확실히 붙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대학까지 낙방하니 그냥 맥이 다 풀렸어요그렇게 멍하게 있는데 부모님이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어디라도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설득하셔서 후기 모집 끝나고 전문대 입시에 원서를 넣고 합격했습니다.

서 : 전공은 무엇으로 정하셨어요?
조 : 사실 그 때 그냥 지원할 대학 찾고 원서 작성하고 하는 것 모두 고시절 담임선생님 신세 졌어요지원서 넣고 보니 유아교육 전공이었더라고요.(웃음)

서 : 그 때까지 유아교육을 전공하실 거라고 한 번이라고 생각해 보신 적인 있으신지요?
조 : 아니요단 한 번도 없습니다.

입시 실패란 스무 해도 살지 못한 이들에게는 쉬이 극복할 수 없는 상처다.  나이테가 더 쌓인 이들에게는 수많은 시련 중 하나로 덤덤하게 다가오지만 그네들에겐 그 때까지의 삶 속에서 가장 아픈 경험이기 때문이다이전까지는  유아교육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다는 그녀언뜻 생각하면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그녀의 대학생활 시작은 삐걱거렸어야 했다하지만 그녀의 맥빠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 : 학교 다니기 싫으셨겠어요.
조 : 아 사실 바라고 준비하던 공부가 아니니까 그런 점이 있기는 없지는 않았어요그런데 수업 듣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웃음)

제가 뭐든 흥미가 있으면 되게 열심히 하거든요자랑인지 모르겠는데 다니는 내내 장학금 받았어요,.

그리고 유아교육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에 대한 연구라 이 시기에 배우고 깨닫게 된 것도 참 많아요돌이켜보면 그 짧은 2년이 있었기에 제 아이들도 잘 이해하면서 크게 실수 하지 않고 키울 수 있었던 것 같고또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그 때 그 공부를 했기 때문에 마임 작품을 이해하고창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마임도 결국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사람을 향해서 하는 거니까요.

저런 게 발레슈즈라는 거구나

서 그럼 뮤지컬 배우 생활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따로 준비는 어떻게?
조 : 아 학교생활도 충실히 하면서 뮤지컬 배우 시험 준비도 했었어요대학교 들어가고 한 학기 쯤 지났을 때 같은데 동기 한 명이 뮤지컬 배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꼭 성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자기도 꿈이 그거라고 했어요새로운 세상이 열린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랬어요새로운 목표가 생긴 거지요저도 대학 졸업하고 바로 시험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졸업하고 바로요따로 더 준비한 것은 없고요?
조 노래는 원래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고요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서 면접 심사 때 부를 노래 준비했지요그 정도 준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이야 인터넷이 빠르고 검색도 편하게 되고 해서 어디서 몇 명 뽑는다는 정보를 바로바로 알 수 있는데 그 땐 극단 채용 공고는 보통 신문을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었거든요.

활동했던 극단 신시뮤지컬컴퍼니’ 시험도 마찬가지였어요이틀 전엔가 시험 본다는 소식 들었어요이틀 전이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래서 시험 날 당황을 좀 했지요연습복과 슈즈를 지참해 오라고 하는데 저는 당장 그런게 없으니까 집에서 잠잘 때 입던 쫄티쫄바지랑 하얀 단화를 가져 갔는데가서 봤더니 딱 저 한 사람만 빼놓고 다른 분들은 정말 제대로 된 연습복에 발레슈즈재즈슈즈를 다 가지고 오셨더라구요.

연극영화과나 예술대학 출신도 많았고요길게는 몇 년씩 한 사람도 있고요.

서 결과는요?
조 붙었어요그 땐 그냥 좋기만 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어요신시는 정말 큰 극단이거든요.


역시 여기도 제가 뭘 잘 몰라서 용감히 도전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여기가 얼마나 크고퀄리티 높은 극단인지 미리 알았더라면아마도 오디션 망설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그래서 저는 지금도 사람은 좀 항상 용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붙을 수 있는 것을 미리 포기 했더라면저한테 그렇게 좋은 기회는 다시없었을 거니까요그렇게 극단 들어가서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하긴 했어요.

연습실 제일 먼저 나가고제일 늦게 들어오고온 에너지를 다해서 매사에 열심히 했어요오랫동안 품고 있던 꿈이 좌절돼서 그래도 마음 한구석엔 멍이 그대로 있었지만정말 해보고 싶은 새로운 꿈이었기 때문에 열심히 했고또 제가 잘 해 나가고 있었지요.

그녀는 그렇게 1년 남짓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의 삶을 꾸려나간다세상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뮤지컬 세계도 비중 있는 배역을 향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한 곳하지만 뭐든지 참 열심히 하는 그녀는 그 경쟁이 자신을 더욱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엔 불의의 발목 부상이 그녀를 가로막는다처음에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발목 통증을 방치하다가 다시 뮤지컬 무대에 서기 힘든 상태까지 된 것이다.

서 : 20대 초중반 정말 많은 일이 있었군요.
조 그렇지요? (웃음저도 그 때 생각하면 참 바쁘게 한 것 같아요.

서 결혼도 그 즈음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조 다리 다치기 얼마 전에 조명 감독 하던 지금 남편에게 고백 받았어요원래 작품 들어가면 시간이나 마음 여유가 거의 없는데 발목 부상 때문에 그 시기에 연애할 수 있었어요. (웃음)

그렇게 만나다보니 이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지더라고요그래서 이른 나이긴 했지만 결혼 했어요스물 넷이었지요주위에서 다들 엄청 놀랐어요.

배우가 벌써 결혼하면 어떡하냐고 막 걱정하고....그런데 그때도 뭘 잘 몰랐는지 배우생활은 배우생활이고 결혼생활은 결혼생활이지 뭐 별 일 있겠나 싶었어요.

오히려 남편이 있으니 더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조명 감독이었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성악과 진학 실패 유아교육과 진학 뮤지컬 배우 활동으로 이어진 격동의 20대 초반이 흘러간다이 때가 처음 삶의 무게라는 것을 느끼던 시기였다고 그녀는 회상한다.

서 결혼하면서 달라진 게 많으실 것 같아요.
조 난생 처음으로 삶의 무게라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고 할까요그 전까지는 제 꿈만 바라보면서 철없게 또 바쁘게 살았고남편도 배우로서의 저를 진짜 좋아했기 때문에 남편 서포트도 문제 없었는데아이는 문제가 다르더라구요육아자체도 쉽지 않은 일인데아이가 생기니까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예를 들면 넓고 안락한 집교육비 생각하니 돈도 많았으면 좋겠고..등등 저만 생각하던 때하고는 완전 다른 세계 안으로 이전 된 느낌이었어요.
 

서 계속 활동적인 삶을 살다가 집에 계시니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조 그래서도 힘들었지요그런데 그 기간이 오래 되지는 않았어요. (웃음마임이 유아교육 전공자뮤지컬 배우가 될 때처럼 갑자기 찾아왔어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 있는데 대학교 때 활동하던 기독교 동아리를 지도해주시던 목사님 제안으로 마임과 만나게 되었지요.

서 목사님이요?
조 예 목사님께서 프랑스 여행 하시면서 마임을 보게 되셨는데 문화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데 마임이 훌륭한 수단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셨다면서 저에게 강력하게 추천하셨어요.

고민하다가 받아들이기로 했어요일단 마임을 보자마자 저를 떠올리셨다는 게 감사하기도 했고 또 그 시기가 저에게 어떤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기도 했고요.

사실 처음 시작할 때엔 이렇게 길게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그런데 이렇게 16년이나 되었네요누가 마임 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이렇게 물으면 대답하기가 쉬워요딱 2000년에 시작했거든요.

서 뮤지컬과 마임어떤 정도로 공통점이 있나요모르는 사람들은 뮤지컬 배우 경험이 있어서 마임이스트가 되기 그만큼 수월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조 물론 무대에서 자신을 표현한다는 점은 같은데요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릅니다오히려 뮤지컬 무대에서 주로 썼던 몸짓들을 하지 말라는 경우도 있었어요.

다시 다 새로 배워야 했습니다사실 저도 남편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저도 다시 돈을 버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게 상식적이었겠지요그런데 저는 아이 친정어머니께 맡기고 돈을 들이면서 마임 강의를 들었어요그렇게 반년 정도 준비한 뒤에 바로 무대에 올랐어요.


서 그럼 다시 마임에 대해서 배우셔야 한 거군요.
조 연극이나 무용은 전공과가 있는데마임 하나만을 전공으로 하는 학교는 우리 나라엔 없어요.

연극과 커리큘럼 중에 움직임 1,2’ 뭐 이렇게는 들어 있는데 스쿨이 존재하는 건 아니어서 배우려면 마임이스트들에게 직접 배워야 합니다마임이스트들이 때때로 진행하는 아카데미들이 있어요.

한창 진행되다 없어지기도 하고몇 년간 분기별로 진행되기도 하고마임이스트 각자의 상황이나 스케줄에 아무래도 영향을 좀 받게 되는데,

저는 이것도 역시 감사하게도 가장 좋을 때 좋은 분들게 배울 수 있었던 거 같아요한 분은 국내에서 탄탄히 마임을 하시면서 한국 마임을 지키고 키워 오신 분이구요또 다른 한 분은 유학파이신데 학력으로나 움직임으로나 최고이신 선생님께 배우게 됐습니다.


서 역시 자신감이 대단하세요
조 먼저 영상자료를 보는데 견적이 나온다고 해야 하나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나 저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부딪치며 균형 맞추는 법 배운 16년

이야기를 들을수록 이 분은 정말 뭔가를 결정할 때 딱 두 가지만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하나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가?’, ‘이게 내가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라는 대답이 나오면 바로 다른 고려 없이 결정하고 일을 추진한다그리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을 통해 배운다.

서 마임 공연 준비는 어떻게 진행되는지요?
조 주변에 작업을 돕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제 마임의 음악은 거의 노래라서 마임의 내용이 노래에 담깁니다.

노래랑 마임이랑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서로 도와야 하는 관계라 작품을 처음 기획하는 단계부터 작곡가와 많은 회의와 협의를 합니다.

그렇게 음악(노래)을 먼저 완성 시키고그 뒤 마임을 만들지요마임 창작은 100% 제가 다 하구요이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을 가지고 모두 모아서 만약 기획공연을 한다면기획무대조명음향영상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또 함께 하게 됩니다.

서 쉬운 길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조 당연히 쉽지 않지요마임을 짜고 연습하고 하는 게 참 외로운 과정이거든요결국 시간문제인데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정해져 있다 보니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어딘가는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힘들었어요또 일하는 모든 엄마들이 느끼는 문제겠지만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쉽지가 않더라고요그렇게 8년 정도 달리고 나니 지치더라고요그 때 전환점이 생겨요아니 제가 만든 거지요.

서 그게 뭔가요?
조 음대 입시 실패 후 15년 만에 편입으로 대학에서 성악공부를 하게 됐어요.
표면적으로는 학사학위가 필요해서였지만사실 그것 보다는 버려지지 않았던 오랜 상처 하나를 말끔히 치유하는 과정으로서의 의미가 아주 컸지요.


동시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꿈을 드디어 만났다는 기쁨도 엄청났어요항상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 하고 싶었던 공부라 참 열심히 했습니다그래서 또 장학금도 받았는데요...학교 다니면서 진실을 깨달았죠저는 사실 노래를 잘 못하더라고요. (동시 웃음)

성악과를 가서 보니 나는 노래보다 마임을 더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더라구요..그래서 역시 신은 현명하시다 인정했습니다.


서 : 30대 중반에 다시 학업을 이어간다는 게 쉬운 게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공부는 제대로 하면 정말 모든 걸 바쳐야 해요공부 정말 쉽지 않아요진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쳐야 뭔가를 제대로 배울 수 있어요지금도 그 때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 가족들한테 너무 고마워요.


서 입시에 실패하지 않고 바로 성악을 전공했다면 어떤 다른 점이 있었을까요?
조 바로 음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많은 소중함을 놓치며 살아왔을 것 같아요유아교육과에서 배웠던 것들뮤지컬 배우 경험 아마 놓쳤을 지도 모르겠지요.


물론 바로 성악을 전공해서 얻을 수 있던 것도 있었기 때문에 뭐가 좋다 나쁘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30대 중반에 하는 성악 공부도 좋더라고요.

그렇게 2년 간 재충전 겸 공부를 마치고 또 2010년부터 열심히 마임이스트로 살아오고 있습니다여전히 힘들고 지치고 하지만 그래도 달라진 건 있는 것 같아요.

서 그게 뭔가요?
조 생각해 보니 삶의 각 영역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균형감각 이 생겼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걸로 알고 좀 몸에 무리가 오더라도 무시하고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멀리 보고 균형 맞추면서 하루하루 채워갑니다.

그게 달라진 것 같아요마임이스트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또 딸로서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가 미쳤구만. 널 왜 떨어뜨려?”


불안의 시대다. 그래서 사람들에겐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부터 온갖 실패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버릇이 생겼다. 블로킹에 막힐 것이 두려워 도움닫기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조인정 선생님은 그 반대였다. 무언가를 시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까지만 자기 몫으로 생각하고 실패를 통해서도 배운다. 이런 성향은 어디에서 왔는지가 궁금했다.

   

서 : 제가 넘겨짚었을지 모르지만 뭐든 결단이 참 빠르시고 새로운 일을 추진하시는데 거리낌이 없으신 것 같아요. 뮤지컬 배우 시험 보실 때도 그렇고 아이 맡기고 마임 강좌 들으실 때도 그렇고요.

조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아마 부모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제가 재수에서도 입시에 실패하고 고개 숙이고 있는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뭔지 아세요?

   

서 : 뭔데요?

조 : “학교가 미쳤구만널 왜 떨어뜨려그 학교 가지 마” 였어요두 분 다 그런 분이셨어요어떤 실패가 와도 위로해 줄 내 편이 있으니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것을 계속 시도해 볼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사실 제 주위에 좋은 대학 나오고 대기업 다니는 사람들 많거든요그런데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한 사람이 없어요다들 너무 많은 불안 속에 살아가요하지만 전 아니에요.

   

뒤늦게 자아 찾는다고 진로 고민 다시 하는 사람 많은데 전 해보고 싶은 것에 거리낌 없이 도전한 경험이 있으니 그런 아쉬움은 없어요성악 공부도 했고 뮤지컬 배우도 했고 그래서 지금 마임이스트로 사는 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서 : 이번에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지방 순회 공청회에 함께 해달라는 제안 받으시고 어땠어요?

조 : 5월에 좋은교사’ 운동에서 쉼이 있는 교육’ 출범식 공연 제안 받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 온 건데요.


좋은교사도 그렇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번 캠페인도 그렇고 사실 교회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오더라고요이렇게 아이들이 아픈데 왜 교회는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는가이런 마음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했어요.

   

서 : 이번 공연 준비하는데 기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조 처음 전화 받고 작품에 대한 고민은 바로 시작되지요.. 충분히 고민하고컨셉 잡은 뒤 음악 작업부터 들어가는데요.

물리적 작업은 약 2주에서 3주 정도 걸린 것 같아요이번에도 막 제가 계속 심각하게 뭘 고민하고 그러니까 아이들이 먼저 알아채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더라구요.엄마는 마임할 때가 제일 엄마 같아”. 얼마 전에 애들이 이러더라고요이 말 듣는데 참 고마웠어요다른 사람들 많이 알아주는 거보다 아이들이 마임이스트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았어요.

   

서 : 3주 동안 저희와 함께 하셨는데 소감 한 마디 남겨 주신 다면요?

조 매주 하려니까 피곤하긴 하더라고요. (웃음그런데 가치 있는 일을 하니까 좋았고요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하는 일에 대해 또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조금 더 가깝게 볼 수 있어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서 : 또 다른 기회가 닿으면 다시 함께 할 수 있을까요?

조 아마도요? (웃음)

   

서 : 오늘 시간 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무대 기대하겠습니다.

조 감사합니다.

   

마임이스트 조인정. 다른 사람들이 블로킹에 막힌 뒤 사람들 시선이 두려워 점프조차 못 할 때 당당하게 도움닫기부터 시작하는 사람. 착지한 뒤에는 어느 샌가 또 다른 곳을 향한 점프를 준비하는 그녀. 10분 남짓한 시간동안 관객들을 자신에게만 집중시킨 뒤 다시 또 다른 작품을 고민해야 하는 마임은 그녀의 삶과 꼭 닮았다.


인터뷰 내내 그녀 웃음에서 순간순간 생각을 실천으로 바꿔온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후련함이 느껴졌다. 그 웃음이 참 좋았다.



[2016]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전국공청회 - 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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