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탈출] “얘는 교문 보면 토해요... 벼랑 끝에서 만난 등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2020-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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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매일 울면서 학교에 갔어요. 2년 동안 그랬으니 학교에 대한 트라우마가 시작된 거죠. 제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만나고, 

우리 단체가 추구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큰 애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터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필 회원님은 큰 아들의 초등학교 1,2학년 시절을 떠올리며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아직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데,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아찔했으면 이러하실까 싶어 앞으로 듣게 될 사연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정필 선생님

공인희, 이정필 부부가 운영한 큰나무 도서관은 인천 문학동에 있다. 


인천에 있는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 같은 건물 1층에서 지역 도서관까지 운영하는 이정필, 공인희 부부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9년,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정필 회원은 지금과 180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전 교회에서 영아부로부터 청년부까지 담당하는 교육 목사로 일하는 동안 ‘2등은 패배다, 기독교인이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 1등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능을 100일 앞둔 고3 학생 전원을 아침에 태워서 학교에 내려주고, 방과 후에도 

도서관으로 데려다줬다가 끝날 때 다시 태워 집으로 보내는 열정을 쏟으며 관리했다. 때로는 과외 선생님을 붙여서 스파르타식으로 

새벽 3시까지 공부시키는 등, 어지간한 입시 학원 강사를 능가할 에너지로 아이들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생활을 힘들어하자 그 공고하던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불통 담임선생님과 소통하는 힘을 키워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인희(이하 공) : 학교에 부적응한 가장 큰 이유는 담임선생님과 정말 안 맞았어요. 정년을 앞둔 나이 든 여자 선생님이신데, 

쉬는 시간에 쉬지도 못하게 하시면서 아이들과 소통도 없고, 공부만 강요하셨죠. 학기 초에 리듬악기를 가져오라고 했는데, 

1년이 지나도 한 번도 친 적이 없어서 이건 왜 안 하냐고 질문했더니, “시끄러워서 안 한다.”고 하셨대요. 

큰 아이 입장에서 학교에는 이해가 안되는 점이 너무 많았어요. 아이가 “이건 이상해.”라고 얘기하면, 선생님은 아이가 버릇없고 

자기 할 말 다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셔서 서로 소통이 안됐어요. 그런데, 2학년 때 그 선생님이 또 담임이 된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도 저도 너무 힘들었죠.  


채송아 (이하 채) : 아이의 힘든 모습을 지켜보다가 등대지기학교를 수강하게 되셨는데,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공 : 현장 강의 듣는 동안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요. 1시간 반에서 2시간 들여 삼각지까지 가서 강의 듣고, 또다시 2시간 거리를

되돌아오면서 아이에 대해 부부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어요. 남편도 아이 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걸 발견해서 

정말 반가웠죠. 선생님께 아이가 힘들어한다고 말하면 아이를 미워하게 된다고 주변 엄마들은 말을 못하게 하는데, 

등대지기학교 들으면서 ‘아, 내가 담임선생님과 소통을 해야겠구나.’라는 의식이 생겼어요. 

그래서 ‘작년에 이런 점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했다.’고 선생님께 편지를 썼죠.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소통을 시작한 게 가장 달라진 점이예요.  

나에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란? - 공인희 선생님


채 : 편지 받으시고 담임 선생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공 : 그렇게라도 소통을 시도하니까 관계가 형성이 됐어요. 큰 아이는 뭘 하려면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한 아이예요. 

예를 들면,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단원평가 시험지를 풀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바빠서 제때 안주시다가 학기말 시험이 다가오면 

밀려있던 걸 한꺼번에 풀라고 주셨다는 거예요. ‘학교에서 3장을 풀었는데, 집에서 또 풀라고 4장을 주셨다. 나는 이거 하기 싫다.’ 

이런 식이었죠. 선생님께 ‘이 아이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니까 왜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면 덜 힘드실 거’라고 부탁을 드렸어요. 아이한테는 ‘선생님이 너무 바쁘고 아이들이 많아서 일일이 설명하시기 어려우니, 

일단 해보고 하다가 안 될 때는 선생님께 말씀드려라.’고 얘길 하고요. 그렇게 하면 서로 이해가 되고, 아이도 해보겠다고 했어요.  

선생님은 처음에 엄마가 아이를 너무 받아주니까 애가 이렇게 된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학교에 열심히 가서 청소도 하고, 

선생님에게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느 날은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너는 외국 나가서 살아야 되겠다, 한국은 안 맞는다.’고 하셨대요. 2학년 때는 1학년 때보다 

마음 편하게 지냈던 거 같아요. 그렇게라도 대화할 수 있었던 것도 등대지기학교 들으면서 제 힘이 자란 증거 같아요.  



숨쉬기 힘들 만큼 아이를 옥죄었던 학교


여기까지는 주변에서 가끔 보는, 남들보다 좀 힘들게 초등학교에 적응한 아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부터 펼쳐지는 

사건들은 인터뷰어의 질문이 더 이상 필요 없을 지경이었다.  


이정필 (이하 이) : 중학교 가면 힘들어진다 걸 알고, 6학년 때 미리 얘기를 했어요. 초등학교 입학할 때 느꼈던 것처럼 

중학교 가면 비슷한 충격이 있을 거라고요. 1년 쉬면서 도서관 프로그램을 홈스쿨링처럼 활용하거나, 기독교 대안학교를 알아보자 

했고, 그냥 일반 중학교에 가도 된다고 했죠. 저희가 알아본 대안학교는 기숙형이라 집을 떠나야 하는데 그건 싫다고 했어요. 

친구들은 다 중학교 가는데 학교 안 다니고 지내는 건 힘들 거 같다며, 일반 중학교에 가겠다길래 그럼, 가보자 했지요. 

그런데, 중학교 가서 하루하루가 정말, 정말 힘들었어요. 

인천등대모임에 부부가 함께 참여하며 자녀 교육의 방향을 세울 수 있었다.


공 : 우선 남자 중학교니까 선생님이 아이를 다루는 방식이 거칠죠. 1학년 때 담임이 나이 좀 있으신 남자 선생님인데 

첫날, 아이가 학교 다녀와서 ‘선생님 말 중에 욕을 빼면 말이 안 돼.’ 하더라고요. 아이가 6학년 때 배운 기타를 재밌어해서 

방과 후 수업으로 기타반을 수강했거든요. 그 수업이 인기가 좋아져서 다음 분기에는 경쟁이 붙었어요. 

분명히 자기가 먼저 신청했는데, 담임선생님이 공부 잘하는 아이부터 넣어주니까 얘가 열받은 거죠. 

그래서 선생님에게 먼저 신청했다고 얘길 하니까 “이번에 몇 등 했어? 넌 공부나 하지.”라고 하시더래요. 

다시 따져 물으면 선생님한테 대드는 거냐며 화를 내셔서 결국 기타반이 못됐어요. 

그다음 분기에 다시 기타반을 신청해야 하는데, 영어 성적이 60점을 못 넘었다고 기타반 대신 abc부터 하는 영어 보충반에 

들어가라 강요하시고요.  


그렇게 힘들게 1년을 지내고 2학년이 됐어요. 근데, 4월 무렵 아이에게 이상한 반응이 보였어요. 처음엔 스트레스를 받으면 

온몸에 발갛게 두드러기가 나더라고요. 어느 날은 교복 와이셔츠를 입고 조끼를 입어야 하는데, 와이셔츠 단추를 안 잠그고 조끼를 

입더라고요. 잠그라 했더니, “단추를 잠그면 답답해.”라는 거예요. 소화도 잘 안되니까 자주 설사를 했는데, 아침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어떤 때는 버스정류장까지 갔다가 다시 집에 오고요. 밤에 잠이 안 온다면서 안대를 사달라고도 하고… 

어느 날은 앉아서 막 울길래 왜 그러냐고 했더니, “숨이 안쉬어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아이 증상을 주변에 얘기했더니 한의사 한 분을 소개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이를 보자마자,

“애를 왜 이 지경까지 내버려 뒀냐. 공황장애다. 한두 해 쌓아 놓은 게 아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뛰어 내린다든지 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냐고 아이에게 물었더니, ‘아, 이렇게 가다 보면 죽지 않을까.’ 생각을 했대요. 

근데, 아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좋아서 학교 다니는 애들이 얼마나 되냐고 아이를 달랬으니…….  


그렇게 힘들었다 하니까 학교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위(Wee)센터 상담 프로그램과  청소년 심리상담센터를 연계해줬어요. 

한의사 선생님께서 이 아이는 그냥 놔뒀으면 이 세상 애가 아닐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아이가 심리치료를 하면서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곳으로 안방을 그렸거든요. 되돌아보면 대안학교가 싫은 게 아니라 기숙학교가 싫었던 거였어요. 


저희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통해서 배우고 생각이 바뀌면서 ‘너는 정말 소중한 아이고, 우린 항상 네 편’이라는 걸 심어주려고 

노력했는데, 집이라도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교육걱정을 안 만나고 여느 부모처럼 아이를 몰아세웠으면 

어떻게 됐을까, 정말 상상만 해도 아찔해요.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한 ‘아이만의 날’


이 : 아이가 사춘기가 돼서 방문을 걸어 잠그기 전에, 소통 창구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어요. 

한 달이 4주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날을 정해서 그날의 주인공이 원하는 걸 같이 먹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는 거예요. 

일주일 동안 좋았던 일, 힘들었던 일도 얘기하고, 그걸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공 : 처음에는 그냥 얘기하자고 해도 잘 될 거 같지 않아서, 그날은 그 아이의 날로 만든 거죠. 

큰 아이가 치킨 먹고 싶다고 하면 매월 큰 아이의 날마다 치킨을 먹고, 둘째는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까 한겨울에도 체육공원에 

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얘길 하게 됐어요. 그렇게 소통을 한다고 했는데도 아이가 속으로 그렇게 힘든 줄은 잘 몰랐어요.  

이정필 선생님 


이 : 그 증상이 나타날 때는 학교 앞을 지나가는 큰 대로를 못 지나갔어요. 거기만 지나면 숨을 못 쉬고, 돌아가자고 했으니까요. 

친구들이 “얘는 교문 보면 토해요.” 하더라고요. 스트레스로 공황장애가 왔던 거죠. 두통, 소화불량 설사, 두드러기, 호흡 장애, 

이런 게 번갈아가면서 일어나고 학교 생각만 하면 숨을 못 쉬고요.  

둘째와 함께, 공인희 선생님


공 : 중 2,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아이 상황을 이해해주셔서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아이가 어려서부터 통제나 규제 안에 있는 걸 무조건 힘들어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중학교 3학년 때,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어요. 

담임선생님이 쉬는 시간마다 반에 올라오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큰 아이가 싫어할 줄 알았더니 괜찮대요. 


왜냐하면, 전에 계시던 중학교에서 한 아이가 몸이 아프다고 조퇴를 하고 나가 자살하는 사건이 생긴 뒤로, 선생님께서 아이들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올라오시는 거라면서요. 선생님 얘기를 듣고 “선생님이 너무 힘드셨을 거 같다. 우리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시는 거다.”라고 생각한대요. 이 아이가 통제를 무조건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설득되지 않는 걸 강요해서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이 : 중학교 졸업하고 ‘꽃다운 친구(고등학교 가기 전, 1년의 방학을 갖고 진로 탐색을 하는  프로그램)’에 가기로 했죠. 

프로그램이 아이한테 너무 잘 맞는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제가 인도네시아에 가게 됐어요. 

무조건 같이 가자고 했으면 애들도 싫어했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 엄마가 “우리 주변에 외국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니. 매우 드문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하니까 아이들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기대하게 된 거 같아요.  이제 사고 안 나고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해요. 친구관계도 좋아서 어울려서 많은 걸 해요. 

농구하는 친구, 축구하는 친구, 피시방 가는 친구, 교회 친구가 다 따로 있어요. 


요즘은 ‘원피스’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서 일본어도 꽤 익혔더라고요. 

기타를 딱 한 달 가르쳐줬는데, 6학년 내내 들고 다지면서 너무 열심히 하더라고요. 

공부 안 할까 봐 걱정도 했는데, 지금은 예고 갈 만한 실력이 됐어요. 

뭔가 하나에 꽂혀서 자기 나름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면 나중에라도 뭔가 스스로 몰입해서 자기 진로를 찾겠죠. 

3,40대에 바뀔 수도 있고요. 



자식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채 : 2등은 패배라고 생각하실 만큼 엘리트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분이, 단체 활동만으로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부모로 변화했다는 게 여전히 놀라워요. 

  

이 : 저 같은 경우는 단체를 만나고 등대지기학교 수강하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봤어요. 

그리고 내 과거를 돌이켜보니까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밤 12시까지 오락실에서 살았어요. 

엄마 주머니까지 털어서 꼬박 1년이나 오락에 빠져 지냈어요. 고등학교 때는 폭주족의 원조였고요. 

그때는 반항하려던 것도 아니고 그게 그냥 재밌어서 한 거예요.  

우리 어머니도 저에게 공부 엄청 시키셨거든요? 근데, 안 했어요. 그러다가 누가 오락실 그만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그만뒀어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는 죽어라고 공부했고요. 이 아이에게도 그런 과정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 아이와 내가 다른 건, 어린 시절의 제 주변엔 멘토 역할을 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 인생이 더뎠던 거 같아요. 이 아이에게는 뭔가 많이 해주기보다 자기를 인정해주고 늦더라도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는 부모가 있잖아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줬어요. 

여태껏 들었던 모든 강의의 결론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냅둬라, 냅두면 알아서 큰다’ 저는 그렇게 이해했거든요.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삼각지에 들러 상근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 : 사교육걱정에서 하는 강의 들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지?’ 그런 질문을 하게 됐어요. 

아이가 내 뜻대로 잘 되지 않지만, 내 틀이 잘 갖추어진 틀이 아니라 미완성이고 불완전한데 얘를 거기에 맞추려는 건 

민망하잖아요. 전성은 선생님 말씀처럼 ‘나만 잘 하면 되지, 내 꼬라지에 누굴?’ 아무리 내 아이라도 내가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어요. 이 아이가 내 나이 되면 나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삶을 살 거 같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어요. 중 3 때를 저를 돌아봐도 아이가 훨씬 괜찮은 거 같아요. 


이 : 아이들이 부모가 목회자니까 부자가 아닌 걸 알아요. 그래도 자기들을 그렇게 무한 사랑했던 부모를 기억하면 

그걸로 만족해요. 어떤 성과를 내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요. 

빨리빨리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지 않는 거죠. 언젠가는 우리의 믿음이 나타나겠지, 안 나타나도 할 수 없고요.  

이정필, 공인희 선생님, 인도네시아에서도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청소년 자살이 일어난 뒤에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죽을 만큼 힘든 줄 몰랐다고 가슴을 치며 후회한다.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답답해할 때, 아이 역시 자기를 둘러싼 이 세상과 너무나 많은 것을 강요하는 어른들로 인해 

얼마나 답답했을지 나는 마음 깊이 생각해보았을까. 

이정필, 공인희 회원 부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아이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기 위해서 내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무겁게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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