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탈출] 엄마가 되어 만난 고교 동창의 ‘사교육 걱정’ -김선자, 구은정

*  오늘날 절대 다수 아이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의존성은 아이들 앞에 펼쳐질 불투명한 세상을 스스로가 독립적이며 굳세게 살아가도록 하는데 치명적 걸림돌입니다. 사교육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려하니 그 불안은 어떻게 다스려야할지, 사교육 의존성을 탈출한 후 진로는 어떻게 꾸려가야 하고, 꿈을 위한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대안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교육 탈출’, 꿈이 있는 공부’, ‘직업의 발견’, 한 달에 한 번씩 세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0여 년 전 대구에서 단짝 친구로 고교 3년을 함께 한 두 친구는 강남과 목동에서 고등학생을 키우는 엄마로 다시 만났다.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회원들 중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힐만한 구은정, 김선자 회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하나같이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최근에 너무나 열심히 사교육에 뛰어들었다며, 심란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다. 우리 운동이 학원에 보내지 말자는 건 아님에도 학원을 보내면 이 운동과 멀어진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선자(이하 김) : 학원을 보내면 아이들이 학원에 치여서 엄마가 어떻게든 다르게 키워 볼 시간 자체가 사라진다대화할 시간도 없고애들은 잠도 부족해진다요즘 학원은 전반적인 시스템이 빡빡하다보니 숙제가 정말 많다학교 다녀와서 예습복습하는 정도로 생활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게 바쁘다. 2인 큰 애는 친구들이 고등학교 수학을 이미 다 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으면서 학원을 시작했는데지금은 고교 수학을 미리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한다스스로가 느끼는 불안감 때문일 텐데그 불안감을 내가 심어줬을 지도 모르겠다. ‘수학공부 그 정도로 해서는 안되고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 거니.’ 이런 말을 내가 수도 없이 했으니까.”

구은정(이하 구) : “나는 등대장까지 맡고 있다 보니 지역모임에서 사교육의 안좋은 점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다아이가 저학년이면 학원을 안다니고도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선배 엄마들 모습 보면서 결국 고학년 되면 다 학원에 가야되는구나 생각하지 않겠나이 단체 와서 사교육 없이 자유롭게 키워보고 싶었는데선배 엄마들 모습 보면 실망스러울 것 같다그런데문제는 내 아들처럼 중학교 때 공부를 거의 안하다가 고1이 돼서 시작한 아이는 누락된 부분을 공교육에서 구제받을 수가 없다학교 진도는 수준별 수업이라 해도 너무 빠르다일대일학원에서도 완곡히 거절당하고 결국 과외를 시작했다.”


구은정 회원의 아들은 SKY가 뭔지도 몰랐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더니 인서울은 해야 한다며 집착을 보인다고 한다. 자기 수준과 적성에 맞는 데를 찾아 전문대라도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뜻과는 달리 아이는 인서울이 아니면 쓰레기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쟁적이고 차별적인 문화에 젖어드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과 내가 살아야 하는 세상 사이의 간극에서 괴로운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가 수학학원 가서 재밌어하고 또 뒤쳐지면 안 된다고 학원 계속 다니고 싶다고 하니 많이 혼란스럽더라고요." - 김선자

김 : 학원에 상담을 가면 강남에서 이런 엄마 처음 봅니다많이 늦었네요.’ 약속이나 한 듯이 이렇게 말한다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지금 시작해도 1등급은 안나온다고 하고아들은 이번 방학 때 하루에 8,9시간을 수학공부만 하면서 빨리 고교과정에 들어가고 싶어한다쳐다보고 있으면 너무 안쓰럽다이지경이다보니 사교육에 대한 철학도 없어진 거 같다내가 아이에 대해 어느 정도 기대하고 있는 건지 사실 헷갈린다전문직을 갖고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바라기도 했다가자기 능력 안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선택 앞에 놓여

"아이가 꼭 알아주는 대학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아이에게 트랙을 벗어나라고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 구은정

구 : 우리 단체에서 고등학생을 키우는 회원들을 많이 못봤다사교육을 덜 시키거나 안시키다가도 우리나라 입시현실에 부딪히다보면 내가 이제까지 한 건 뭔가라는 문제를 누구라도 맞닥뜨리게 되지 않을까모임에 나오지 않으시는 보통의 회원들은 어떤 마음일까예를 들어중학교 수학 과정을 자기 스스로 차근차근 공부해서 개념을 이해하고 그걸 바탕으로 고등학교 가서 공부할 수 있다라고 하시는데수학에 적성이 없는 평범한 아이들에게 요구하기 어려운 과정 아닌가최수일 선생님(수학사교육포럼 대표)도 학원에 다니든 그렇지 않든  공부 절대량은 채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집에서는 혼자 그걸 해내기 힘든데 학원은 어떻게 해서든 그 양을 채워준다그래도 돌아서서 생각하면 현실이 잘못된 거 같다애를 고등학교 보내고 보니까 학교가 미친 거 같다결국 선택이다체계적인 사교육의 도움 없이 좋은 대학을 보내기 어렵다는 건 현실인데 내 아이가 좋은 대학 못가고 천천히 가면서 자라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처음엔 그저 아이 공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단체를 찾았는데, 지금은 우리 모두 내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선택 앞에 놓였다. 나 혼자의 의지만으로 내릴 수 있는 선택도 아니라 길은 더욱 막막해 보인다.


김 : 현실이 이렇다보니 우리 운동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지역모임에 가면 나의 불안감을 털어놓을 수 있고 마음을 잡아주기 때문에 정말 도움이 된다일단 사교육 없이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고 생각한다대학에 굳이 갈 이유가 없으면 안가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학원 보낼까 말까 하는 고민에 비하면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다어설프게 따라갈 수 있는 길이 아닌 것 같다.”    

내가 아는 세상과 아이가 살아갈 세상

구: 좋은 대학 나와도 취직 못한다는 건 아는데돌파구가 없다우리가 알고 배운 세상이 그것밖에 없으니까내가 모르는 세상은 두렵다모르는 세상에 애들을 보낼 수는 없지 않나내가 남다르게 살았으면 이 선에서 벗어나도 안죽는다는 걸 알 텐데아닌 건 아니지만 다른 길이 내 길일까애들을 보면서 내 한계를 확인하는 거 같다나는 아이한테 가르치고 해줄 게 없다내 굳은 머리를 심어주는 것보다 자기가 피부로 깨닫고 헤쳐 나가는 게 나을 거 같다.”

김 : 먼 훗날은 모르겠고 대학은 알겠으니까성적이 나오면 갈 수 있는 대학은 알지 않나그러니까 자꾸 시키는 거 같다1인데단어와 문법은 왜 그렇게 많이 외우냐별로 소용도 없을 거 같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하는 게 제일 심각한 비극이다.”

구 : “결국 일자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실제 임금 격차만 줄어들면 좋겠다요즘 젊은이들이 저렇게 노력해도 취업도 안되고 힘든 걸 보면 내가 이렇게 편하게 지내는것에 대한 죄책감이 든다그런데악착같이 노력한 사람만이 부와 안정을 누리는 게 정의롭다면 차별을 인정하는 생각과 똑같은 게 아닐까그럼 내 아들에게 네가 공부 안하고 고생하는 건 당연하다고 해야 하는가공부를 그동안 좀 안했다고 해도적어도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하고 인간다운 도리를 하면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친구 따라 찾아온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비슷한 또래를 키우면서 비슷한 시기에 사교육 고민에 빠진 두 사람은 사실,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자율좌석제라 3년 동안 짝궁이었다. 수업시간에 졸아서 열심히 깨워주기도 하고, 맨날 똑같은 자리에 앉는 게 지겨워서 다른 아이랑 짝을 하겠다 하면 그래라 하고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이렇게 입시경쟁과 사교육 번민에 휩싸여 있어도 김선자 회원은 작년에 구은정 회원을 따라 이 단체에 온 게 인생 최고의 선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김 : 강의도 듣고 지역모임에도 참여하면서정말 많이 배운다지역모임은 단순히 수다를 떠는 모임이 아니라 공부를 하기도 하고내가 조금씩 성장할 수 있다나의 고민을 옆집 엄마에게 말하면 괜히 이상한 얘기를 더 듣고 오게 되는데지역모임에서는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받아들여주신다올해는 출신학교차별금지법에 대해 생각하면서 우리 사회 전반적인 차별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다아이를 보고 넌 키가 작아서..’이런 말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 : 사교육걱정 활동의 시작은 아이 공부 때문이었지만지금은 좀더 구체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보게 된다우리지역에서도 혁신교육사업 학부모분과에서 강의를 듣다가분과위원으로 활동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예전에는 잘되어 있는 공동체 마을을 보면 그냥 거기에 편입하고 싶었는데이제는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지금 제일 큰 고민은 내가 이렇게 노력하고아이도 나름대로 목표를 가지고 달리기 시작했는데혹시라도 그걸 이루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생각해보면 그것도 자기 몫인데... 얘기하다보니 엄마가 해줄 게 없네밥이라도 잘 챙겨줘야겠다.(웃음)”



흔들리지 않고 탄탄대로라 믿는 길로 아이 손을 끌고 갈 수 있다면 그들은 행복할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해져 있는 답은 없고 무엇이 옳다고 강요할 수 있는 길도 없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위로가 확인되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우리는 모두 흔들린다고, 이렇게 흔들리면서 함께 길을 찾아가자고 내미는 손이 여기 이렇게 멀리 있지 않다고..... 


인터뷰, 글 : 채송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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