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속에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역대 그 어느 정부보다 기대감이 높았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우리 아이들을 입시 지옥에서 구할 수 있는 교육공약을 2017년 모든 대통령 후보들에게 제안했고, 현 정부는 그 제안 대부분을 공약으로 받아 안았습니다. 공약을 전부 실현시키진 못하더라도 방향성만큼은 잃지 않고 길을 가길 기대했건만, 많은 공약들이 파기 또는 지체되고 있습니다.
교육계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6명의 전문가가 모여 문재인 정부의 교육공약 이행 정도를 평가했습니다. 이제 남은 1년과 이후에 등장할 정부는 또 어떤 일을 해 나가야 할지 나침반이 되어줄 토론회(2021.6.1.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뉴스톱 공동주최) 소식 정책언니가 전해드립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 구본창] 현 정부의 실책은 2018년 여름부터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1년을 미룬 대입제도 개편을 공론화 과정으로 공을 떠넘기더니, 결국 ‘수능 상대평가, 정시 30% 확대’로 결정됐습니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여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하겠다고 한 약속과도 완전히 역행하는 방향이었죠. 고교학점제 전면 시행은 다음 정권인 2025년으로 미뤄진 상태입니다.
공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 ‘교원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도 하위공약 8가지 중 6가지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주요공약인 대입제도·고교학점제 관련 공약은 파기 또는 지체되고, 118개의 세부 교육공약 중 임기 4년차인 지금, ‘완료’된 공약은 11개(9.3%)에 불과합니다. 남은 임기 동안, 코로나19로 학습격차, 교육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이 최우선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밀진단을 법제화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국회의원은 올해 2월 사교육걱정과의 협업으로 ‘교육불평등 해소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학벌은 물론 영유아 시기부터 생애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법률과 정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합니다.
[베이비뉴스 취재팀장 권현경] 이해관계가 첨예하지 않은 보육공약은 상대적으로 이행률이 높습니다. 베이비뉴스는 2017년 6월부터 ‘문재인 공약 퍼즐 맞추기’ 기획기사를 통해 공약추진 정도를 점검해왔고, 대표 공약인 아동수당(만 7세 미만까지 월 10만원 지급)을 시행한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각 시도교육청과 갈등을 빚었던 유치원·어린이집의 ‘누리과정’을 전액 국고로 지원했습니다. ⓒ 베이비뉴스, 공약이 이행될 때마다 흑백 숫자가 칼라로 바뀐다.
그러나, 아동들의 놀 권리, 적절한 휴식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영유아 조기 사교육을 제한하는‘아동 인권법’은 시민 선호도 1위로 선정된 교육공약임에도, 20대 국회에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지난 4월 말 교육부 관계자는 베이비뉴스와의 통화에서 아동인권법을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니, 우리 아이들의 잃어버린 일상을 찾기 위해 갈 길이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교육공약은 선언적인 구호가 많습니다. 당선 후, ‘국정과제’가 되어 교육부의 정책 및 사업과제로 편성되는데 이마저도 공약의 본래 취지가 희석되어, ‘단계적 실시’, ‘점차 확대’, ‘의견 수렴을 통한 개편 추진’ 같은 모호한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4년이 지난 지금 국정과제 추진 현황을 살펴보면, 현장 참관, 워크숍, 각종 회의, 정책 연구 등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교육부가 이러한 실적 나열만 공약 이행으로 인식하고, 정작 정책으로 반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향후 들어서는 정부의 공약이 국정과제로 넘어갈 때 시민사회의 세밀한 감시, 비판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현 정부는 초중등 교육을 교육청에 이양하고, 교육부는 고등교육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의 성과만 봐도 그러합니다. 지난 4년간 교육 개혁 추진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숙의는 했지만 ‘결론’이 없거나 ‘결론’은 있지만 ‘쓸모’가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2022년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전 정부까지만 해도 대통령공약을 세밀한 데이터로 진단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체계 자체가 부족했습니다. 그에 비해 현 정부의 공약 이행을 4년 동안 꾸준히 체크해온‘문재인미터’와 같은 사이트, 오늘 토론회에 모인 교육운동 단체와 시민들의 역할이 다음 정부의 교육공약 수립에 중요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연구원 곽영신] 한국교육의 불평등과 불공정, 특히 ‘지잡대’라는 멸칭에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팽배합니다. 전체 대학생의 5%에 불과한 서울대·연고대에 정부의 재정 지원 20%가 몰리는 현실을 해결하고자 대학구조개혁의 논의는 계속되어 왔지만, 실행에 도달한 적은 전무합니다. 국정과제로까지 편성된 ’공영형 사립대’ 정책은 예산을 삭감해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대학끼리 경쟁한 결과에 따라 지원해야 한다는 기존의 능력주의 논리를 답습하고 있고요. 결국 2021년도 입시에서 지방대는 미충원 사태가 대거 벌어집니다. 이미 힘의 균형이 깨진 생태계에서 대학끼리 경합을 붙이는 것이 공정할까요? 우리가 공정하게 바꾸어야 할 것은 게임의 규칙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입니다. 단순히 능력과 절차적 공정에 따라 자원을 배분할 게 아니라, 더 합리적이고 공익적인 자원 배분을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기대가 컸기에 더 슬픈, 별 두 개짜리 성적표
[교육을바꾸는사람들 정책팀장 김태균]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은 교육분야 국정과제 수행에 전반적인 평가로 별 2개를 줬습니다. 현 정부는 큰 그림과 철학 없이 현상 유지나 땜질식 정책 추진으로, 공교육을 개선하지 못한 채 기존의 문제를 오히려 강화시켰습니다. 사교육비를 절감하기는커녕 큰 폭으로 상승하게 만든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물론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1.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국고전환, 고교 무상교육 실시 2.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 도입해 재정 투명성을 높임 3. 기초학력 보장, 돌봄 강화 정책으로 책임교육 인식 제고 4. 혁신학교 및 교장공모제를 확대 5. 역사 국정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되돌림 그러나, 비판 또한 피할 수 없습니다. 1. 개혁에 대한 청사진 없이 현상 유지와 땜질식 개혁에 머무름 2.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공약을 여론 반발에 밀려 포기 3. 주요대학 정시 비중을 40%로 높임, 교육 다양성 구현에 역행 4. 고교학점제, 성취평가제가 정상 작동할 여건 마련하지 못함 5. 코로나 위기 시 학사 일정 유지에 급급해 격차를 악화시킴 6. 대학교육 질을 제고하지 못함 차기 정부는 물론 남은 1년 동안도 책임교육을 실현할 기초학력보장제와 고교학점제까지 “모든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육”이 실현되도록, 시민사회가 정부 정책에 세부적인 대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Robin Orchs’ Blog, 교육과정 설계의 3가지 유형
[하나고 교사, 전 참교육연구소장 전경원] 현 정부의 교육철학은 경쟁 vs 협력, 어느 쪽에 기반을 두고 있을까요? 뚜렷한 교육철학이 없다 보니, 정책에서도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교육청에서 지정취소한 상산고를 교육부에서 불허한 사태만 봐도 교육철학의 부재를 단적으로 포착할 수 있습니다. 미래사회에 통찰력을 가지려면 지금부터 교육에 투자해야 하는데, 정작 교육부가 투자하는 분야는 학교 공간을 개선하고, 기자재를 도입하는 일입니다. 본질적으로는 학급당 학생 수부터 줄여서 수업의 질을 높이는 게 먼저 아닐까요? 특별히, 교사는 혁신의 주체입니다. 교사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은 지난하더라도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입니다.
문재인 정부 4년, 국민에게 약속한 교육개혁의 성적표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잘못한 일에 실망하고 비판하는 일은 오히려 쉬운 일 같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 평가하고 제안한 과제들을 모아, 현 정부의 남은 1년과 차기 정부에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끝까지 고민하고 정리해내야 합니다. 토론회에 모인 6명의 전문가들은, 교육철학을 담아 설계한 공약이 국정과제로 반영되고 실행단계에서 모호해지지 않도록 각 단계별 전략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를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지표를 마련하고 점검하는 일까지 현 정부는 물론, 차기 정부 역시 게을리하지 않도록 우리는 더 철저히 감시하고 요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어른이니까요. ‘모든 아이는 우리 모두의 아이’라는 이 정부의 슬로건이 그저 말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도록 다시 치열하게 지혜를 모아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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