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설 수학교육혁신센터 센터장 최수일입니다. 오늘 선생님께 제 마음 깊은 곳의 고민을 털어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을 후원자로 초대하는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유능감을 많이 느끼던 교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이 좋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의 논두렁에서 개구리도 잡고 산에 올라 산 열매들을 따 먹으며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노곤했지만 매일 밤이 되면 호롱불에 수학 공부를 하며 쾌감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흥미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을 와 수학 교육을 전공하고 교사로서 일반고, 과학고를 거치면서도 수학은 저에게 늘 재미와 유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잘 푸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원리를 관통하는 기술적 풀이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낑낑대던 문제를 한숨에 간단히 풀어냈습니다. 아이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습니다. 아직도 저를 추앙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문제를 쉽게 잘 풀어주는 것에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능감에 가려 초고난도 문항 평가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 한 구석은 무거웠습니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인가, 교육과정에 이러한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한가, 워낙 고난도 문항들이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맞는 것인가 질문들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평생을 수학교사로 살아오며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은 행복했지만, 수학을 가르치는 교단에서나 교단 바깥에서 수학 교육의 변화를 외치는 지금까지 마음이 편한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우울하고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수학은 저의 정체성이자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학이 우리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걱정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은 수학의 필요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자주 제 인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초임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니까 막연히 수학을 싫어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처음부터 수학을 싫어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은 수포자가 되고 수학 공부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2004년부터 3년 동안 무급 휴직을 감수하면서 부지런히 수학 수업을 찾아다녔습니다. 3년 동안 수학 교사들을 만나고 현장을 돌아보며 내린 결론은 “수업과 평가의 불일치”였습니다. 가르친 내용의 수준과 범위에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꼬일대로 꼬아낸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수학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변별에 있었습니다. 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가려내기 위해 전체 다수 학생들이 희생할 수 밖에 없는 평가 시스템을 우리 교육은 수십년째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째 수능 수학 시험에서 30번 문항은 소위 킬러문항이라고 불립니다.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이야기인지. 교육현장에 ‘킬러’라는 끔찍한 언어가 등장하고 국가가 그것을 방조하고 있는 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본 수능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3에게 매달 시행되는 수능 모의고사는 6월과 9월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하고 나머지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주관해서 출제를 합니다. 평가원이 출제하는 모의고사나 수능 시험 출제는 대학교수가 다수 포함되지만, 시도교육청 모의고사는 100% 현직 교사가 출제를 합니다. 수학교육혁신센터는 교육과정을 벗어나 사교육을 유발하는 문항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교육청 모의고사 문항을 살펴보는데 이런 문제를 누가 왜 내는 것인지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모의고사 출제에 참여한 후배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인사도 생략한 채 “이런 문제는 도대체 누가 왜 내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후배교사는 어두운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습니다. 모의고사 출제 및 검토회의에서, 30번 킬러문항을 출제자를 제외한 모든 수학교사가 풀지 못해 출제자의 해설을 듣고서야 겨우 이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수능의 킬러문항 출제 관행 이후에 계속된 일이라고 합니다. 현직교사들마저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교사들의 상황과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출제진은 교수가 다수이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잘 몰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현직 교사가 출제하는 시도교육청 모의고사마저 수능 킬러 문항 대비를 위해 같이 낭떠러지로 가는 것을 따라가는 이런 형국은 정말 비극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학생들은 수학 공부가 얼마나 고통이겠습니까. 더 큰 비극은 따로 있습니다. 출제자 이외의 모든 수학교사가 풀지 못한 것을 확인한 그 회의가 끝난 후 킬러문항 출제는 달라졌을까요? 예측하셨겠지만 아닙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회의가 남긴 것은 수학교사도 풀지 못하는 문항 출제의 전면 재검토가 아니었습니다. 교사들은 문제를 못 푼 것에 창피해 하면서 죽어라 공부했을 겁니다.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 출제의 기이함을 누구도 지적하지 못한 것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은 학생들의 응답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강득구 의원실과 함께 2022년 4월에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 8천여 명, 그 중 2,351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설문한 결과 76.2%는 ‘학교 수학 시험에 출제된 문제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보다 과도하게 어렵’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수학교사 응답에서도 64.4%에 달하는 125명의 교사들이 ‘변별 때문에 가르친 내용보다 더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국가는 수학 평가에 대한 기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평가의 개선을 계속 건의했지만 교육부의 정책은 탁상공론에 그칠 뿐 학교 현장의 수학 평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들이 수능을 비롯한 대학별 고사, 그리고 학교 내신 평가에 빈번하게 출제되는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에서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학생 85.9%와 학부모 90.7%가 사교육이 필요하다고도 응답했습니다. 한국 수학 시험 문제는 수학적 사고보다는 문제 풀이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집에 수록된 기출 문제 중심으로 출제되는 관행은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 수업보다 시중의 기출 문제집으로 훈련하는 사교육이 필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중의 기출 문제집에는 개념적인 문항이 없습니다. 인수분해를 예로 들자면, 인수분해를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왜 인수분해를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수학은 위계성이 강한 학문입니다. 개념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공식암기 등 수박 겉핥기식의 문제 풀이 훈련만 계속하는 경우 고학년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기 어렵습니다. 인수분해를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전에 왜 인수분해를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데 시중 문제집에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문제가 출제된 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집에서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학생 65.8%, 고등학생 85.2%, 학부모의 75.3%가 ‘학교 수학 시험이 (수학적 사고를 묻지 않고)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만든다’는 설문 결과는 위의 사실을 입증합니다. 수학적 사고를 요하지 않고 문제 풀이 기술만을 필요로 하는 현재의 평가 문항은 학생들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수학 평가를 반드시 혁신해야 합니다. 수능과 학교 내신 시험의 두 가지 문제는 교육과정 평가기준을 벗어나 문제를 낸다는 점, 문제 풀이 훈련을 요구하며 수학적 사고력 함양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십년째 이 문제를 방치하고 모두가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이에 대한 모든 희생의 대가는 부모들의 사교육비 지출로, 또 학생들의 학습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국가에 요구해야 합니다. 수학이 중요하다며 교육과정 양만 늘리려고 할 게 아니라, 수학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평가, 다수의 학생이 배운 만큼 자신 있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으로 개선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오늘 선생님께 털어놓고자 하는 제 평생의 숙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평생 수학교육자로서 저 역시 고통받아온 이 문제를 이제는 해결해야겠다, 내 남은 인생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학교사들과 함께 헌신해야겠다”는 다짐 말입니다. 대안 교과서를 제작했던 상황, 즉 국가가 교과서의 참된 모범을 보여주지 않음으로 인해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후원을 얻어서 그 본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평가의 대안을 마련하여 제시하고자 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는 다음의 네 가지의 변화를 이루려고 합니다.첫 번째, 개념과 수학 사고력을 진단할 수 있는 중고등 문항 및 평가 제도 개발입니다. 이미 문항과 관련해서 교육과정 맞춤형 문제 플랫폼인 <모두의 수학>을 개발하였고 중학교 전 과정의 문항을 탑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교 과정의 문제 개발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평가를 위한 다양한 활용 레퍼런스와 실제 학교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현직 교사들과 함께 문항을 개발하고 레퍼런스 및 가이드를 제작해 학교 내신 수학 평가를 바꾸겠습니다. 두 번째, 평가 기준 안내 매뉴얼의 보급입니다. 현재는 ‘교육과정 평가기준 안내’ 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부족합니다. 본래 ‘교육과정 평가기준 안내’라 함은 해당 교육과정의 성취수준을 얼마나 깊이,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내신 시험이 치러지기 전에 시험 문제 출제범위, 문항 배점 등 시험에 관련된 사항을 학생들에게 간단히 알려주고 있는 것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학생 학부모가 해당 평가 기준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정보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습니다, 또한 수학교사들에게 평가 기준 안내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을 제작 보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수능과 학교 내신에서의 킬러문항 방지를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 사업입니다. 사교육걱정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킬러문항 방지를 위한 소송을 진행했고 2021년에는 강민정 의원실과 킬러문항 방지법을 발의했습니다. 교육계와 국가에 중요한 신호를 주는 발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법률 통과는 요원합니다. 변별이라는 가치를 위해 배운 것보다 어려운 문항이 출제되는 병리적 현상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됩니다. 법 제정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수학 교육 현장의 문제를 드러내고 떠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대학별 고사/수능/학교 내신 수학 평가 모니터링단을 실시간으로 운영하여 킬러문항 출제의 실태를 알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겠습니다. 종국적으로는 국가가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도록 킬러문항 방지법 제정과 선행교육규제법을 개정하는데 까지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 학교를 명예퇴직 할 때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가 일치하는 수학교육의 정상화를 꿈꾸었습니다. 수업의 변화와 더불어 교육과정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마지막 하나의 숙제만이 남았습니다. 그 하나가 평가인데 너무 영향이 커서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늘 밤잠을 설칩니다. 잘못된 수학 평가 시스템으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와 학생, 교사들을 위해 선생님께서 힘을 보태주십시오.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는 수학 책임교육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평가의 혁신을 선생님과 함께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이 일에 선생님의 관심과 응원을 모아주시고, 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아래 후원 기대표를 확인하시고 함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2022년 6월 15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설 수학교육혁신센터 최수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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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부설 수학교육혁신센터 센터장 최수일입니다. 오늘 선생님께 제 마음 깊은 곳의 고민을 털어놓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함께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을 후원자로 초대하는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유능감을 많이 느끼던 교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이 좋았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의 논두렁에서 개구리도 잡고 산에 올라 산 열매들을 따 먹으며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노곤했지만 매일 밤이 되면 호롱불에 수학 공부를 하며 쾌감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흥미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서울로 유학을 와 수학 교육을 전공하고 교사로서 일반고, 과학고를 거치면서도 수학은 저에게 늘 재미와 유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잘 푸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원리를 관통하는 기술적 풀이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낑낑대던 문제를 한숨에 간단히 풀어냈습니다. 아이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왔습니다. 아직도 저를 추앙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문제를 쉽게 잘 풀어주는 것에 교사로서 보람을 느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능감에 가려 초고난도 문항 평가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 한 구석은 무거웠습니다. 다른 교사들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인가, 교육과정에 이러한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한가, 워낙 고난도 문항들이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맞는 것인가 질문들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평생을 수학교사로 살아오며 학생들을 만나는 순간은 행복했지만, 수학을 가르치는 교단에서나 교단 바깥에서 수학 교육의 변화를 외치는 지금까지 마음이 편한 적은 없었습니다. 항상 우울하고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수학은 저의 정체성이자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수학이 우리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걱정과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은 수학의 필요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자주 제 인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초임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니까 막연히 수학을 싫어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처음부터 수학을 싫어한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 공부를 잘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이들은 수포자가 되고 수학 공부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2004년부터 3년 동안 무급 휴직을 감수하면서 부지런히 수학 수업을 찾아다녔습니다.
3년 동안 수학 교사들을 만나고 현장을 돌아보며 내린 결론은 “수업과 평가의 불일치”였습니다. 가르친 내용의 수준과 범위에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꼬일대로 꼬아낸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수학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바로 변별에 있었습니다. 소수의 상위권 학생을 가려내기 위해 전체 다수 학생들이 희생할 수 밖에 없는 평가 시스템을 우리 교육은 수십년째 고수하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째 수능 수학 시험에서 30번 문항은 소위 킬러문항이라고 불립니다.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이야기인지. 교육현장에 ‘킬러’라는 끔찍한 언어가 등장하고 국가가 그것을 방조하고 있는 것은 정말 큰일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본 수능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3에게 매달 시행되는 수능 모의고사는 6월과 9월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출제하고 나머지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주관해서 출제를 합니다. 평가원이 출제하는 모의고사나 수능 시험 출제는 대학교수가 다수 포함되지만, 시도교육청 모의고사는 100% 현직 교사가 출제를 합니다.
수학교육혁신센터는 교육과정을 벗어나 사교육을 유발하는 문항에 대한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교육청 모의고사 문항을 살펴보는데 이런 문제를 누가 왜 내는 것인지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모의고사 출제에 참여한 후배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인사도 생략한 채 “이런 문제는 도대체 누가 왜 내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후배교사는 어두운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습니다. 모의고사 출제 및 검토회의에서, 30번 킬러문항을 출제자를 제외한 모든 수학교사가 풀지 못해 출제자의 해설을 듣고서야 겨우 이해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수능의 킬러문항 출제 관행 이후에 계속된 일이라고 합니다.
현직교사들마저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 교사들의 상황과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출제진은 교수가 다수이기 때문에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잘 몰라 그렇다고 치더라도, 현직 교사가 출제하는 시도교육청 모의고사마저 수능 킬러 문항 대비를 위해 같이 낭떠러지로 가는 것을 따라가는 이런 형국은 정말 비극입니다. 상황이 이러하니 학생들은 수학 공부가 얼마나 고통이겠습니까.
더 큰 비극은 따로 있습니다. 출제자 이외의 모든 수학교사가 풀지 못한 것을 확인한 그 회의가 끝난 후 킬러문항 출제는 달라졌을까요? 예측하셨겠지만 아닙니다.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회의가 남긴 것은 수학교사도 풀지 못하는 문항 출제의 전면 재검토가 아니었습니다. 교사들은 문제를 못 푼 것에 창피해 하면서 죽어라 공부했을 겁니다.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 출제의 기이함을 누구도 지적하지 못한 것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은 학생들의 응답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강득구 의원실과 함께 2022년 4월에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 8천여 명, 그 중 2,351명의 고등학생들에게 설문한 결과 76.2%는 ‘학교 수학 시험에 출제된 문제가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보다 과도하게 어렵’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수학교사 응답에서도 64.4%에 달하는 125명의 교사들이 ‘변별 때문에 가르친 내용보다 더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국가는 수학 평가에 대한 기본이 무엇인지를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평가의 개선을 계속 건의했지만 교육부의 정책은 탁상공론에 그칠 뿐 학교 현장의 수학 평가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들이 수능을 비롯한 대학별 고사, 그리고 학교 내신 평가에 빈번하게 출제되는 관행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설문에서 학교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학생 85.9%와 학부모 90.7%가 사교육이 필요하다고도 응답했습니다. 한국 수학 시험 문제는 수학적 사고보다는 문제 풀이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집에 수록된 기출 문제 중심으로 출제되는 관행은 교과서를 중심으로 하는 학교 수업보다 시중의 기출 문제집으로 훈련하는 사교육이 필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중의 기출 문제집에는 개념적인 문항이 없습니다. 인수분해를 예로 들자면, 인수분해를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왜 인수분해를 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수학은 위계성이 강한 학문입니다. 개념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공식암기 등 수박 겉핥기식의 문제 풀이 훈련만 계속하는 경우 고학년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기 어렵습니다.
인수분해를 할 수 있는가를 묻기 전에 왜 인수분해를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데 시중 문제집에는 그런 문제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그런 문제가 출제된 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집에서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학생 65.8%, 고등학생 85.2%, 학부모의 75.3%가 ‘학교 수학 시험이 (수학적 사고를 묻지 않고)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만든다’는 설문 결과는 위의 사실을 입증합니다. 수학적 사고를 요하지 않고 문제 풀이 기술만을 필요로 하는 현재의 평가 문항은 학생들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수학 평가를 반드시 혁신해야 합니다.
수능과 학교 내신 시험의 두 가지 문제는 교육과정 평가기준을 벗어나 문제를 낸다는 점, 문제 풀이 훈련을 요구하며 수학적 사고력 함양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수십년째 이 문제를 방치하고 모두가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픕니다. 이에 대한 모든 희생의 대가는 부모들의 사교육비 지출로, 또 학생들의 학습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국가에 요구해야 합니다. 수학이 중요하다며 교육과정 양만 늘리려고 할 게 아니라, 수학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평가, 다수의 학생이 배운 만큼 자신 있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평가 시스템으로 개선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오늘 선생님께 털어놓고자 하는 제 평생의 숙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평생 수학교육자로서 저 역시 고통받아온 이 문제를 이제는 해결해야겠다, 내 남은 인생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학교사들과 함께 헌신해야겠다”는 다짐 말입니다. 대안 교과서를 제작했던 상황, 즉 국가가 교과서의 참된 모범을 보여주지 않음으로 인해 시민단체가 시민들의 후원을 얻어서 그 본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제는 평가의 대안을 마련하여 제시하고자 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는 다음의 네 가지의 변화를 이루려고 합니다.첫 번째, 개념과 수학 사고력을 진단할 수 있는 중고등 문항 및 평가 제도 개발입니다. 이미 문항과 관련해서 교육과정 맞춤형 문제 플랫폼인 <모두의 수학>을 개발하였고 중학교 전 과정의 문항을 탑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고등학교 과정의 문제 개발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평가를 위한 다양한 활용 레퍼런스와 실제 학교 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못합니다. 현직 교사들과 함께 문항을 개발하고 레퍼런스 및 가이드를 제작해 학교 내신 수학 평가를 바꾸겠습니다.
두 번째, 평가 기준 안내 매뉴얼의 보급입니다. 현재는 ‘교육과정 평가기준 안내’ 에 대한 구체적인 매뉴얼이 부족합니다. 본래 ‘교육과정 평가기준 안내’라 함은 해당 교육과정의 성취수준을 얼마나 깊이,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내신 시험이 치러지기 전에 시험 문제 출제범위, 문항 배점 등 시험에 관련된 사항을 학생들에게 간단히 알려주고 있는 것에만 그치고 있습니다. 학생 학부모가 해당 평가 기준에 대해서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정보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겠습니다, 또한 수학교사들에게 평가 기준 안내에 대한 제대로 된 매뉴얼을 제작 보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수능과 학교 내신에서의 킬러문항 방지를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 사업입니다. 사교육걱정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킬러문항 방지를 위한 소송을 진행했고 2021년에는 강민정 의원실과 킬러문항 방지법을 발의했습니다. 교육계와 국가에 중요한 신호를 주는 발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법률 통과는 요원합니다. 변별이라는 가치를 위해 배운 것보다 어려운 문항이 출제되는 병리적 현상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됩니다. 법 제정을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수학 교육 현장의 문제를 드러내고 떠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대학별 고사/수능/학교 내신 수학 평가 모니터링단을 실시간으로 운영하여 킬러문항 출제의 실태를 알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겠습니다. 종국적으로는 국가가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도록 킬러문항 방지법 제정과 선행교육규제법을 개정하는데 까지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10여 년 전 학교를 명예퇴직 할 때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가 일치하는 수학교육의 정상화를 꿈꾸었습니다. 수업의 변화와 더불어 교육과정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 마지막 하나의 숙제만이 남았습니다. 그 하나가 평가인데 너무 영향이 커서 이 숙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까 늘 밤잠을 설칩니다. 잘못된 수학 평가 시스템으로 인해 고통 받는 부모와 학생, 교사들을 위해 선생님께서 힘을 보태주십시오.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는 수학 책임교육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평가의 혁신을 선생님과 함께 이루어가고 싶습니다. 이 일에 선생님의 관심과 응원을 모아주시고, 이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아래 후원 기대표를 확인하시고 함께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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