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15일, 광복 81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가 그날 되찾은 것은 국토와 주권만이 아니었습니다. 배울 권리,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1. 우리가 벗어났던 교육을 기억합시다
일제는 우리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가르쳤습니다. 조선인의 고등교육 기회를 철저히 제한했고, 보통교육의 연한마저 일본인 학생보다 짧게 두었습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이후, 조선어는 필수과목에서 밀려나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말을 빼앗는 것이야말로 생각을 빼앗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교육이 겨냥한 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정해진 것을 정확히 외우고, 시키는 대로 수행하며, 왜 그런지 묻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민화 교육의 목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이 아니라, 정해진 답만 아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학교를 세웠습니다. 서당을 지켰고, 조선어학회는 사전 편찬에 목숨을 걸었으며, 학생들은 방학마다 농촌으로 내려가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3·1운동에서, 6·10만세운동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앞장선 것은 언제나 배운 청년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교육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이었습니다.
2. 교육은 대한민국의 저력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이 땅의 문맹률은 78%에 달했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이 글을 읽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논밭을 팔아 자식을 가르쳤고, 1970년에 이르러 그 비율을 7%까지 낮추었습니다. 한 세대 만에 이룬 일입니다.
그 위에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53년 67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오늘날 3만 6천 달러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에게는 유전이 없었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교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지하자원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그 사람을 캐낸 것은 교육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교육은 추격의 교육이었습니다. 앞선 나라가 이미 찾아놓은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는 것, 정답이 이미 존재하던 시대에 그것은 옳은 전략이었고,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오지선다형 평가는 그 전략에 잘 맞는 도구였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합리였습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오지선다형은 애초에 깊은 사고를 재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10년대 중반 미국 캔자스의 프레더릭 J. 켈리가 채점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식입니다. 이는 1917년에 전쟁터로 보낼 200만 신병을 빠르게 분류하기 위한 미군의 알파 검사에 그대로 쓰였습니다. 값싸고, 빠르고, 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교육은 만든 사람조차 낮은 수준의 사고만을 잰다고 밝힌 도구를 반세기가 넘도록 국가의 미래를 가르는 유일한 잣대로 삼아 왔습니다.
3.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뒤따라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반도체 강국이자 AI 강국으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가는 자에게는 베낄 정답지가 없습니다. 정답지가 없는 자리에서 필요한 능력은 무엇보다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지난 8월 5일 대통령은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초보 컴퓨터도 쉽게 풀 수 있는 객관식 수능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가. 질문만 하면 어떤 전문가보다 정확하게 답을 알려주는 AI가 있는 시대에,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덧붙여, 객관식 출제는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발하는 측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같은 방향에서 국가교육위원회도 움직였습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지난 8월 12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서·논술형 수능 도입 방향을 밝히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학원에 갈 필요는 없고 각 가정과 학생은 폭넓게 독서를 해두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서·논술형 평가를 내신과 수능에 함께 도입해 학교교육과 대입을 연계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습니다. 대입이 학교교육을 종속시키는 힘이 아니라 견인하는 힘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한민국 교육의 급소를 정확히 짚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은 채점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의 사고를 접어 넣는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심지어 변별을 위해 교육과정 밖으로 나가야 했던 킬러문항 사태는 그 구조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실은 답을 집어넣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끄집어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상황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은 대입제도 개편 과정에서 빚어질 혼란과 사회적 갈등도 함께 우려했습니다. 그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의 변화에는 언제나 진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진통이 두려워 결정을 미뤄 온 동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금의 학생들에게 전가되어 왔습니다.
AI가 글까지 대신 써주는 시대에 굳이 서·논술형 평가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서·논술형 평가가 더더욱 필요하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AI는 그럴듯한 답을 무한히 만들어냅니다. 그 답이 옳은지, 근거가 무엇인지, 논리에 구멍은 없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력은 스스로 논증을 세워 본 사람에게만 생깁니다.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 없는 사람은 AI가 쓴 글의 오류를 볼 수 없습니다. 답을 검증하는 능력은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답을 만들어 본 경험에서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쌓게 하려면, 평가 체제가 바뀌어야 합니다.
4. 교실을 바꾸려면 답안지를 바꿔야 합니다
오지선다형 문항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러나 학교를 나와 마주할 세상에서는, 정답이 보기로 주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근거를 모으고, 반론을 예상하고, 자기 결론을 남에게 설득하는 일, 그 어느 것도 다섯 개 중 하나를 고르는 훈련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평가는 교육의 마지막 절차가 아니라 첫 단추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고르는 훈련만 시켜 온 것은, 우리가 고르는 것만 측정해 왔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난 30년간 교육과정을 다섯 차례 개정했습니다. 토론 수업을 권장했고,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했으며, 창의성을 교육 목표의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교실은 끝내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교육부장관이 말한 대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던 수업이 중학교 3학년을 지나면 다시 문제풀이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현장의 오래된 증언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육은 마지막 관문인 평가 방식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평가 방식이 정답 고르기를 요구하는 한, 수업은 정답 고르기로 수렴합니다. 우리는 교육과정을 다섯 번이나 새로 썼지만 오지선다형 평가만큼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바꿔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실패한 것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개혁이 언제나 수능 앞에서 멈춰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5.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받쳐 주지 않은 것입니다
프랑스는 200년이 넘도록 바칼로레아를 통해 청소년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독일의 아비투어는 서술형 답안으로 대학입학 자격을 부여합니다. 핀란드의 대입자격시험 역시 서술형이 주를 이룹니다. 이들 나라에서 서·논술형 평가는 실험이 아니라 오래된 표준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지금처럼 AI가 없던 시절에도, 길게는 200년 넘게 채점의 공정성을 지켜 왔다는 사실입니다. 복수 채점과 채점자 간 조정회의, 채점 기준의 공개, 투명한 이의신청 절차 등의 제도와 투자로 공정성을 세워 왔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이 배워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서·논술형 평가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도 일정 부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은 지필평가를 서·논술형 문항만으로 실시하는 것까지 허용하며, 다양한 답안이 예상되는 문항의 인정 답안 처리와 부분 점수 부여 기준도 규정으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채점의 수준이 학교마다, 교사마다 고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교한 채점기준표와 교차채점으로 신뢰를 쌓아 온 학교가 있는가 하면, 채점 시비가 두려워 정답이 하나로 떨어지는 문항만 골라 출제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서·논술형 채점의 질은 오롯이 개별 교사의 헌신과 학교의 형편에 맡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마련한 채점자 연수 체계도, 조정 절차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받쳐 주지 않았으니 채점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국가가 손을 놓은 것은 채점 체계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학교의 평가와 대학이 요구하는 평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씁니다. 교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서·논술형 문항을 내도, 아이들이 고3에 이르러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오지선다형입니다. 학교에서 기르는 능력과 대학이 재는 능력이 다른 한, 교사의 노력은 입시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평가받은 것이 그대로 대입 준비가 되는 구조, 내신과 수능이 하나의 평가 체계로 이어지는 설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정부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결과를 두고 '서·논술형은 공정하기 어렵다'고 말해 왔습니다. 서·논술형 도입과 확대라는 시대적 요청은 교사에게 더 많은 것을 짊어지게 하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교사 홀로 감당해 온 일을 이제는 국가가 제도로 받치라는 요청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두 세기에 걸쳐 만들어 온 것도 바로 그 받침대였습니다.
6. 서·논술형은 사교육이 자라 온 낡은 토양을 갈아엎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서·논술형 평가의 도입이 사교육비 증가와 시장을 확대시킬 거라는 걱정을 우리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평가로 바뀌든 전환 초기에 단기적인 시장 팽창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뒤따를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다만 공교육만 잘하면 사교육은 필요 없어진다는 지나친 낙관 또한 경계합니다. 사교육의 뿌리는 견고한 대학 서열과 학력에 따른 보상 격차, 자녀가 뒤처질까 두려운 불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논술형 전환은 그 뿌리를 함께 다루는 가운데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상대평가 체제의 개편을 함께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그 상대평가 구조가 사교육을 키운 축입니다. 변별을 위해 수능의 난이도는 참으로 극악하게 출제돼왔습니다. 최근 몇 해 수능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22학년도 149점, 24학년도 150점, 26학년도 147점으로 수학보다도 더 높았습니다. 초등 단계부터 논술·문해력 시장을 키운 것은 난해한 소재의 지문을 촌각에 읽어내야 하는 고부담 상대평가였지, 서·논술형이라는 방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다수가 정답을 맞히면 안 되는 평가 구조가 있는 한, 시험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예측 불가능한 난이도로 아이들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술 사교육비 우려도 세밀히 읽어야 합니다. 올해 발표된 2025 사교육비조사에서 전반적인 사교육 경감세 속에서도 논술 사교육비는 1.4% 늘었고, 특히 고3 논술 사교육비는 무려 43.2% 급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학교교과 기반의 서·논술형 대비 시장이 아니라, 대학마다 따로 치러 온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키운 시장입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기반해 학교 수업과의 연계도가 높고 공교육 안에서 대비할 수 있는 평가라면, 학교 수업이 곧 대입 준비가 되고 대학은 굳이 별도의 대학별고사를 치를 이유가 줄어듭니다. 제대로 설계된 교과 서·논술형 평가의 도입은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여는 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교육을 키워 온 낡은 대학별고사 시장을 걷어낼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사교육에 관한 세간의 모든 우려를 감안하더라도, 오지선다형을 그대로 두는 편이 결코 더 나은 선택일 수는 없습니다. 정답이 다섯 개 안에 있다는 사실만큼 사교육이 파고들기 좋은 조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유형이 나뉘고, 유형이 나뉘니 반복으로 속도를 올리고, 오답의 함정마저 목록으로 외울 수 있습니다. 선다형이 파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요령입니다. 자기 생각을 세우는 능력은 그렇게 압축되지 않습니다. 사교육이 그 자리를 파고들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선다형만큼 쉽고 빠르게 상품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것은 서·논술형으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서·논술형으로 갈 것인가입니다. 대학별고사의 그늘과 상대평가를 위한 극단적 변별의 압박에서 벗어나 교과 교육과정과 잘 접목된 평가라면, 서·논술형 평가는 사교육을 키우는 새 시장이 아니라, 사교육이 자라 온 낡은 토양을 갈아엎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7.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첫째. 수능과 내신을 아우르는 서·논술형 평가로의 단계적 전환을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명시적으로 담을 것을 요구합니다. 국가교육발전계획은 국가교육위원회가 법률에 따라 10년마다 수립하는 계획이며, 2027년 3월 확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10년 단위 계획에 담기지 않은 방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려 왔고, 역대 대입 개혁이 번번이 좌초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전환의 방향을 분명히 하되 속도는 신중히 해야 합니다.
둘째.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공적 인프라 구축을 전환에 앞서 완비할 것을 요구합니다. 평가관리센터 설립, 복수 채점 체계, 채점 기준과 결과의 공개, 채점 전문 인력의 양성과 처우가 그 핵심입니다. AI의 획기적인 발달은 서·논술형 평가의 정착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용한 보조 수단에 해당하지 신뢰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셋째. 평가 방식의 전환과 함께 상대평가 체제의 개편을 논의할 것을 요구합니다. 서·논술형 채점은 학생이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평가는 정해진 비율로 줄을 세우기 위해 답안 사이에 미세한 점수 차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순간 채점 기준은 무엇을 해냈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감점할지로 바뀌고, 서·논술형 문항은 정답에 가까운 정도를 재는 사실상의 단답형으로 되돌아갑니다. 다수가 정답을 맞히면 안 되는 평가 구조 위에서는 어떤 문항 개혁도 결국 변별을 위한 기교로 귀결됩니다. 킬러문항 사태가 그것을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넷째. 사교육 유발 우려에 대해 정부가 실효적인 대책을 함께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폭넓은 독서만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으로는 학부모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서·논술형 학교평가와 수능이 기존 대학별로 치르던 논술고사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대입 반영 방식을 설계하고, 변별을 위해 극악한 문항들이 출제되지 않도록 절대평가로의 개편 및 출제 기준의 안정성을 함께 갖춰야 합니다. 아울러 공교육 안에서 쓰기와 사고를 지도할 수 있도록 교사의 평가 전문성 연수, 수업 시수와 업무의 재설계,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 함께 가야 합니다.
다섯째. 충분한 예고 기간과 현장 준비 지원을 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준비 없는 전환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이며, 그 부담은 언제나 가장 약한 아이들에게 먼저 돌아갑니다. 연구학교와 시범지역을 통해 먼저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고쳐 나가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시행착오는 전면 시행 이전에 겪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현장의 충격은 줄고 전환의 유익은 온전히 살아날 것입니다.
8.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이 길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미뤄 온 30년의 청구서는 지금의 아이들이 대신 치르고 있습니다. 킬러문항에 무너지고, 스스로를 등급으로 부르고, 배움의 즐거움을 잃은 채 열아홉을 맞는 학생들이 그 청구서입니다.
방향의 확정과 속도의 신중함은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신중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채점 인력을 기르는 데도, 교사 연수 체계를 세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방향이 미정인 채로는 누구도 그 준비에 예산과 사람을 넣지 않습니다. 지난 30여년 우리가 실패한 것은 서둘렀기 때문이 아니라, 결정하지 않아 준비를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야 할 길임을 분명히 선언하되 준비 없이 서두르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교육의봄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도 그 준비의 전 과정에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하루,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하루를 위해 수십 년간, 누군가는 총을 들었고 누군가는 국제사회를 향해 호소했으며, 또 누군가는 학교를 세우고 사전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시작하려는 논의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가 그 결실을 다 보지 못할지라도,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한때 교육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교육이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정답을 좇던 나라에서 질문을 던지는 나라로, 그것이 광복 81주년에 우리 교육이 받아 든 새로운 과제입니다. 우리는 문맹의 나라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때도 불가능하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2026년 8월, 이제 대한민국이 우리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되찾아 줄 차례입니다.
■ 교육3단체의 서·논술형 평가 중심의 대입제도 개편 촉구 및 5대 요구 발표 공동 기자회견 (2026.08.18.)
2026년 8월 15일, 광복 81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가 그날 되찾은 것은 국토와 주권만이 아니었습니다. 배울 권리,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되찾았습니다.
일제는 우리를 통치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가르쳤습니다. 조선인의 고등교육 기회를 철저히 제한했고, 보통교육의 연한마저 일본인 학생보다 짧게 두었습니다.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이후, 조선어는 필수과목에서 밀려나 사실상 자취를 감췄습니다. 말을 빼앗는 것이야말로 생각을 빼앗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교육이 겨냥한 것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었습니다. 정해진 것을 정확히 외우고, 시키는 대로 수행하며, 왜 그런지 묻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민화 교육의 목표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이 아니라, 정해진 답만 아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학교를 세웠습니다. 서당을 지켰고, 조선어학회는 사전 편찬에 목숨을 걸었으며, 학생들은 방학마다 농촌으로 내려가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3·1운동에서, 6·10만세운동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앞장선 것은 언제나 배운 청년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교육은 처음부터 독립운동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이 땅의 문맹률은 78%에 달했습니다. 국민 열 명 중 여덟 명이 글을 읽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논밭을 팔아 자식을 가르쳤고, 1970년에 이르러 그 비율을 7%까지 낮추었습니다. 한 세대 만에 이룬 일입니다.
그 위에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1953년 67달러였던 1인당 국민총소득은 오늘날 3만 6천 달러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에게는 유전이 없었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교실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지하자원은 언제나 사람이었고, 그 사람을 캐낸 것은 교육이었습니다.
그 시대의 교육은 추격의 교육이었습니다. 앞선 나라가 이미 찾아놓은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습득하는 것, 정답이 이미 존재하던 시대에 그것은 옳은 전략이었고, 실제로 성공했습니다. 오지선다형 평가는 그 전략에 잘 맞는 도구였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합리였습니다.
다만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오지선다형은 애초에 깊은 사고를 재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1910년대 중반 미국 캔자스의 프레더릭 J. 켈리가 채점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방식입니다. 이는 1917년에 전쟁터로 보낼 200만 신병을 빠르게 분류하기 위한 미군의 알파 검사에 그대로 쓰였습니다. 값싸고, 빠르고, 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한민국 교육은 만든 사람조차 낮은 수준의 사고만을 잰다고 밝힌 도구를 반세기가 넘도록 국가의 미래를 가르는 유일한 잣대로 삼아 왔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뒤따라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반도체 강국이자 AI 강국으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서 가는 자에게는 베낄 정답지가 없습니다. 정답지가 없는 자리에서 필요한 능력은 무엇보다 ‘질문하는 능력’입니다.
지난 8월 5일 대통령은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초보 컴퓨터도 쉽게 풀 수 있는 객관식 수능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인가. 질문만 하면 어떤 전문가보다 정확하게 답을 알려주는 AI가 있는 시대에, 질문에 답하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덧붙여, 객관식 출제는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발하는 측의 편의와 안전을 위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같은 방향에서 국가교육위원회도 움직였습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은 지난 8월 12일 국회 교육위원회에 출석해 서·논술형 수능 도입 방향을 밝히며, 이를 대비하기 위해 학원에 갈 필요는 없고 각 가정과 학생은 폭넓게 독서를 해두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서·논술형 평가를 내신과 수능에 함께 도입해 학교교육과 대입을 연계하겠다는 구상도 내놓았습니다. 대입이 학교교육을 종속시키는 힘이 아니라 견인하는 힘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한민국 교육의 급소를 정확히 짚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아이들은 채점기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자신의 사고를 접어 넣는 훈련을 받아 왔습니다. 심지어 변별을 위해 교육과정 밖으로 나가야 했던 킬러문항 사태는 그 구조가 낳은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지금 우리 교실은 답을 집어넣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 생각을 끄집어내는 교육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상황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대통령은 대입제도 개편 과정에서 빚어질 혼란과 사회적 갈등도 함께 우려했습니다. 그 우려는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제도의 변화에는 언제나 진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진통이 두려워 결정을 미뤄 온 동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금의 학생들에게 전가되어 왔습니다.
AI가 글까지 대신 써주는 시대에 굳이 서·논술형 평가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시대이기 때문에 서·논술형 평가가 더더욱 필요하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AI는 그럴듯한 답을 무한히 만들어냅니다. 그 답이 옳은지, 근거가 무엇인지, 논리에 구멍은 없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력은 스스로 논증을 세워 본 사람에게만 생깁니다.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 없는 사람은 AI가 쓴 글의 오류를 볼 수 없습니다. 답을 검증하는 능력은 자신의 생각을 토대로 답을 만들어 본 경험에서만 나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쌓게 하려면, 평가 체제가 바뀌어야 합니다.
오지선다형 문항 앞에서 우리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러나 학교를 나와 마주할 세상에서는, 정답이 보기로 주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근거를 모으고, 반론을 예상하고, 자기 결론을 남에게 설득하는 일, 그 어느 것도 다섯 개 중 하나를 고르는 훈련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평가는 교육의 마지막 절차가 아니라 첫 단추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고르는 훈련만 시켜 온 것은, 우리가 고르는 것만 측정해 왔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지난 30년간 교육과정을 다섯 차례 개정했습니다. 토론 수업을 권장했고,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했으며, 창의성을 교육 목표의 맨 앞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교실은 끝내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난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교육부장관이 말한 대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던 수업이 중학교 3학년을 지나면 다시 문제풀이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현장의 오래된 증언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육은 마지막 관문인 평가 방식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평가 방식이 정답 고르기를 요구하는 한, 수업은 정답 고르기로 수렴합니다. 우리는 교육과정을 다섯 번이나 새로 썼지만 오지선다형 평가만큼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바꿔내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실패한 것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개혁이 언제나 수능 앞에서 멈춰 섰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는 200년이 넘도록 바칼로레아를 통해 청소년에게 정답 없는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독일의 아비투어는 서술형 답안으로 대학입학 자격을 부여합니다. 핀란드의 대입자격시험 역시 서술형이 주를 이룹니다. 이들 나라에서 서·논술형 평가는 실험이 아니라 오래된 표준입니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지금처럼 AI가 없던 시절에도, 길게는 200년 넘게 채점의 공정성을 지켜 왔다는 사실입니다. 복수 채점과 채점자 간 조정회의, 채점 기준의 공개, 투명한 이의신청 절차 등의 제도와 투자로 공정성을 세워 왔습니다. 대한민국 교육이 배워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들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서·논술형 평가는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도 일정 부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지침은 지필평가를 서·논술형 문항만으로 실시하는 것까지 허용하며, 다양한 답안이 예상되는 문항의 인정 답안 처리와 부분 점수 부여 기준도 규정으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채점의 수준이 학교마다, 교사마다 고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교한 채점기준표와 교차채점으로 신뢰를 쌓아 온 학교가 있는가 하면, 채점 시비가 두려워 정답이 하나로 떨어지는 문항만 골라 출제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서·논술형 채점의 질은 오롯이 개별 교사의 헌신과 학교의 형편에 맡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마련한 채점자 연수 체계도, 조정 절차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받쳐 주지 않았으니 채점의 수준이 고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국가가 손을 놓은 것은 채점 체계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학교의 평가와 대학이 요구하는 평가는 서로 다른 언어를 씁니다. 교사가 아무리 정교하게 서·논술형 문항을 내도, 아이들이 고3에 이르러 마주하는 것은 여전히 오지선다형입니다. 학교에서 기르는 능력과 대학이 재는 능력이 다른 한, 교사의 노력은 입시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평가받은 것이 그대로 대입 준비가 되는 구조, 내신과 수능이 하나의 평가 체계로 이어지는 설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정부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 결과를 두고 '서·논술형은 공정하기 어렵다'고 말해 왔습니다. 서·논술형 도입과 확대라는 시대적 요청은 교사에게 더 많은 것을 짊어지게 하라는 주문이 아닙니다. 교사 홀로 감당해 온 일을 이제는 국가가 제도로 받치라는 요청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두 세기에 걸쳐 만들어 온 것도 바로 그 받침대였습니다.
서·논술형 평가의 도입이 사교육비 증가와 시장을 확대시킬 거라는 걱정을 우리는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어떤 평가로 바뀌든 전환 초기에 단기적인 시장 팽창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게 뒤따를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다만 공교육만 잘하면 사교육은 필요 없어진다는 지나친 낙관 또한 경계합니다. 사교육의 뿌리는 견고한 대학 서열과 학력에 따른 보상 격차, 자녀가 뒤처질까 두려운 불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논술형 전환은 그 뿌리를 함께 다루는 가운데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상대평가 체제의 개편을 함께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그 상대평가 구조가 사교육을 키운 축입니다. 변별을 위해 수능의 난이도는 참으로 극악하게 출제돼왔습니다. 최근 몇 해 수능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은 22학년도 149점, 24학년도 150점, 26학년도 147점으로 수학보다도 더 높았습니다. 초등 단계부터 논술·문해력 시장을 키운 것은 난해한 소재의 지문을 촌각에 읽어내야 하는 고부담 상대평가였지, 서·논술형이라는 방향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다수가 정답을 맞히면 안 되는 평가 구조가 있는 한, 시험은 어떤 형태를 취하든 예측 불가능한 난이도로 아이들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술 사교육비 우려도 세밀히 읽어야 합니다. 올해 발표된 2025 사교육비조사에서 전반적인 사교육 경감세 속에서도 논술 사교육비는 1.4% 늘었고, 특히 고3 논술 사교육비는 무려 43.2% 급등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학교교과 기반의 서·논술형 대비 시장이 아니라, 대학마다 따로 치러 온 통합교과형 논술고사가 키운 시장입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기반해 학교 수업과의 연계도가 높고 공교육 안에서 대비할 수 있는 평가라면, 학교 수업이 곧 대입 준비가 되고 대학은 굳이 별도의 대학별고사를 치를 이유가 줄어듭니다. 제대로 설계된 교과 서·논술형 평가의 도입은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여는 문이 아니라, 오랫동안 사교육을 키워 온 낡은 대학별고사 시장을 걷어낼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사교육에 관한 세간의 모든 우려를 감안하더라도, 오지선다형을 그대로 두는 편이 결코 더 나은 선택일 수는 없습니다. 정답이 다섯 개 안에 있다는 사실만큼 사교육이 파고들기 좋은 조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답이 정해져 있으니 유형이 나뉘고, 유형이 나뉘니 반복으로 속도를 올리고, 오답의 함정마저 목록으로 외울 수 있습니다. 선다형이 파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요령입니다. 자기 생각을 세우는 능력은 그렇게 압축되지 않습니다. 사교육이 그 자리를 파고들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선다형만큼 쉽고 빠르게 상품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물어야 할 것은 서·논술형으로 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서·논술형으로 갈 것인가입니다. 대학별고사의 그늘과 상대평가를 위한 극단적 변별의 압박에서 벗어나 교과 교육과정과 잘 접목된 평가라면, 서·논술형 평가는 사교육을 키우는 새 시장이 아니라, 사교육이 자라 온 낡은 토양을 갈아엎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첫째. 수능과 내신을 아우르는 서·논술형 평가로의 단계적 전환을 국가교육발전계획에 명시적으로 담을 것을 요구합니다. 국가교육발전계획은 국가교육위원회가 법률에 따라 10년마다 수립하는 계획이며, 2027년 3월 확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10년 단위 계획에 담기지 않은 방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려 왔고, 역대 대입 개혁이 번번이 좌초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전환의 방향을 분명히 하되 속도는 신중히 해야 합니다.
둘째. 채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공적 인프라 구축을 전환에 앞서 완비할 것을 요구합니다. 평가관리센터 설립, 복수 채점 체계, 채점 기준과 결과의 공개, 채점 전문 인력의 양성과 처우가 그 핵심입니다. AI의 획기적인 발달은 서·논술형 평가의 정착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유용한 보조 수단에 해당하지 신뢰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셋째. 평가 방식의 전환과 함께 상대평가 체제의 개편을 논의할 것을 요구합니다. 서·논술형 채점은 학생이 성취기준에 도달했는지를 판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평가는 정해진 비율로 줄을 세우기 위해 답안 사이에 미세한 점수 차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 순간 채점 기준은 무엇을 해냈는지가 아니라 어디를 감점할지로 바뀌고, 서·논술형 문항은 정답에 가까운 정도를 재는 사실상의 단답형으로 되돌아갑니다. 다수가 정답을 맞히면 안 되는 평가 구조 위에서는 어떤 문항 개혁도 결국 변별을 위한 기교로 귀결됩니다. 킬러문항 사태가 그것을 이미 보여주었습니다.
넷째. 사교육 유발 우려에 대해 정부가 실효적인 대책을 함께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폭넓은 독서만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설명으로는 학부모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서·논술형 학교평가와 수능이 기존 대학별로 치르던 논술고사를 실질적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대입 반영 방식을 설계하고, 변별을 위해 극악한 문항들이 출제되지 않도록 절대평가로의 개편 및 출제 기준의 안정성을 함께 갖춰야 합니다. 아울러 공교육 안에서 쓰기와 사고를 지도할 수 있도록 교사의 평가 전문성 연수, 수업 시수와 업무의 재설계,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 함께 가야 합니다.
다섯째. 충분한 예고 기간과 현장 준비 지원을 보장할 것을 요구합니다. 준비 없는 전환은 개혁이 아니라 혼란이며, 그 부담은 언제나 가장 약한 아이들에게 먼저 돌아갑니다. 연구학교와 시범지역을 통해 먼저 시행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를 고쳐 나가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시행착오는 전면 시행 이전에 겪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 현장의 충격은 줄고 전환의 유익은 온전히 살아날 것입니다.
8.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이 길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미뤄 온 30년의 청구서는 지금의 아이들이 대신 치르고 있습니다. 킬러문항에 무너지고, 스스로를 등급으로 부르고, 배움의 즐거움을 잃은 채 열아홉을 맞는 학생들이 그 청구서입니다.
방향의 확정과 속도의 신중함은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향이 정해지지 않으면 신중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채점 인력을 기르는 데도, 교사 연수 체계를 세우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방향이 미정인 채로는 누구도 그 준비에 예산과 사람을 넣지 않습니다. 지난 30여년 우리가 실패한 것은 서둘렀기 때문이 아니라, 결정하지 않아 준비를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야 할 길임을 분명히 선언하되 준비 없이 서두르지 않는 것, 그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교육의봄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좋은교사운동도 그 준비의 전 과정에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광복은 1945년 8월 15일 하루,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하루를 위해 수십 년간, 누군가는 총을 들었고 누군가는 국제사회를 향해 호소했으며, 또 누군가는 학교를 세우고 사전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시작하려는 논의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가 그 결실을 다 보지 못할지라도, 시작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한때 교육은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 교육이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진단을 우리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습니다. 정답을 좇던 나라에서 질문을 던지는 나라로, 그것이 광복 81주년에 우리 교육이 받아 든 새로운 과제입니다. 우리는 문맹의 나라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때도 불가능하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해냈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2026년 8월, 이제 대한민국이 우리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권리를 되찾아 줄 차례입니다.
※ 문의 : 교육의봄 부대표 안상진(02-6338-0660)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신소영(02-797-4044)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장승진(02-876-4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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