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대규모 서·논술형 채점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다만 규모의 격차는 분명합니다. 임용시험은 매년 4만여 명이 응시하는 반면, 수능은 매년 40만 명이 넘어 임용고시 응시인원의 10배가 넘습니다. 현재와 똑같은 수능 채점 체제에 문항 유형만 서술형으로 바꾼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문항 몇 개를 바꾸자는 차원이 아닌 국가적 채점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응시 인원이 많다고 서·논술형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채점 인력 확보는 국가가 답해야 할 문제이며, 그 규모와 훈련과정, 예산을 국가가 책임지고 잘 설계한다면 충분히 잘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프랑스,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직 교원을 활용하든 별도의 전문 채점 인력을 양성하든 세세한 방법들은 이미 잘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충분히 배워올 수 있습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프랑스의 고교 졸업시험 겸 대학진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논술형 문제의 비중이 높은 대규모 국가시험으로, 2025년 기준 약 74만명이 응시했습니다. 이 중 기술‧직업계 바칼로레아를 제외하고 일반 바칼로레아 응시자만 약 38만명으로, 한국의 수능 응시 인원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중국은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 역시 제도 초기인 1953년부터 작문을 활용해왔고, 2026년에는 약 1,290만 명의 학생이 응시했습니다.
채점인원 확보를 위해서, 현직 교사를 국가가 선발‧ 훈련해서 활용(프랑스, 중국, 독일)하는 방법도 있고, 교사와 국가시험위원회가 위촉한 전문 채점자를 활용(핀란드)하거나, 교사들을 인증, 훈련을 통해 시험관으로 활용(IB)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능 전 영역을 한꺼번에 전면 전환하는 방식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논술형과 선다형을 병행하거나 과목별로 서·논술형 비중을 달리하는 설계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가오카오는 수학에서 ‘해답형(解答题)’ 문항을 통해 풀이·증명·계산 과정을 직접 작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 이러한 해답형 문항은 전체 150점 중 77점으로 약 51%를 차지합니다. 영어에서도 글쓰기형 문항이 전체 150점 중 40점으로 약 27%를 차지합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서는 프랑스어와 철학 과목에서 문학 작품이나 텍스트를 분석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서·논술형 평가, 수학·과학 등의 과목에서는 계산과정과 문제 해결 과정, 자료 분석과 해석 등을 직접 작성하는 평가가 주로 활용되지만, 2026년 시행된 일반 바칼로레아 수학 조기시험에서 20점 중 6점(30%)을 선다형, 나머지 14점은 풀이 과정을 작성하는 문제로 구성하여, 선다형과 풀이과정 작성형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50만 명을 누가 한 번에 채점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50만 명의 답안을 여러 단계의 검증체계를 통해 어떻게 신뢰도 있게 채점할 것인가’입니다. 채점자 간 신뢰도 확보가 관건입니다. 이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준비 기간과 어떤 인프라를 전제로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질문2. 채점자마다 기준이 달라 점수가 제각각 달라지는 것 아닌가요?
채점자 간 편차는 서·논술형 평가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편차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입니다. 채점자 간 편차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점자 간 편차는 전문가 그룹에서 동의한 일관된 기준에 따라 검증하고, 연수와 감독 등을 통해 관리하여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도 채점위원 워크숍과 가채점 협의로 채점 기준의 일치도를 높이고, 확정된 공통 기준을 3인이 독립적으로 복수채점 하여 채점자 간 차이를 줄이고 있습니다. 즉, 채점자의 개인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채점 전에 기준을 맞추고, 실제 채점 과정에서 복수의 채점자가 동일한 답안을 평가하도록 하는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해외의 대규모 서·논술형 평가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중국의 가오카오에서는 주관식 답안을 복수의 채점자가 독립적으로 채점하고, 채점 결과의 차이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제3채점이나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합니다. 핀란드 대학입학시험에서도 학교의 예비채점과 국가시험위원회의 최종채점을 분리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채점자가 개입합니다. 독일의 아비투어에서는 기대답안·평가기준을 활용해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구체화하고 1·2차 채점을 통해 평가를 검증합니다. 프랑스와 IB의 사례는 여기에 채점자 자체를 검증하는 절차까지 더합니다. 프랑스는 채점자별 점수 분포와 평균 등을 비교하는 조화 절차를 통해 특정 채점자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관대한지를 점검합니다. IB는 채점 전 표준화 훈련과 자격검증을 실시하고, 실제 채점 중에도 이미 기준점수가 정해진 답안을 배치하여 채점자가 계속 동일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기준에서 벗어난 채점이 반복되면 해당 채점자에 대한 재훈련이나 채점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따라서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은 “모든 채점자가 완전히 똑같이 판단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판단에는 일정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차이를 발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면 최소한 △모든 채점자가 공유하는 공통 루브릭과 기준답안을 마련하고, 점수대별로 기준이 되는 앵커답안을 제시해 채점자가 자신의 판단을 견주어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채점자 사전훈련과 공동채점, 교차채점, 채점자별 점수 분포 및 편향 분석 등으로 편차를 좁히고, △그럼에도 일정 수준 이상 편차가 벌어진 답안은 제3의 전문 채점자가 다시 검토하는 다층 채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채점자의 주관성은 더 이상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 막연한 위험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시스템에 의해 충분히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성질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채점자 간 차이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다형 평가 역시 출제 오류나 문항의 타당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오류 가능성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입니다.
또한 ‘AI가 채점하면 채점자 편차가 해결된다’고 단순하게 접근해서도 안 됩니다. 교육당국은 서·논술형 수능이 도입되면 채점에 AI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며 이미 여러 교육청과 평가원이 AI 채점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I 역시 학습 자료와 평가모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 답안을 적절히 평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활용한다면 인간 채점자를 대체하는 최종 판정자가 아니라, 채점자 간 편차나 이상 답안을 탐지하고 재검토 대상을 선별하는 등 채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보조적 질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 채점하면 주관적이고 AI가 채점하면 객관적이다’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닙니다. 사람의 판단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차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고, 이를 어떻게 발견, 검증,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이미 국제적인 대규모 시험들도 다수의 채점과 채점자 간 일치도 점검, 기준에서 벗어난 답안의 재검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채점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채점 관리뿐 아니라 그 기준과 과정 자체가 투명하게 검증될 수 있어야 합니다. 채점의 공정성은 채점자들만 공유하는 기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학생과 교사도 평가요소와 채점 원칙을 사전에 알 수 있어야 하며, 시험 후에는 대표적인 답안과 채점기준을 공개해 결과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은 단순히 ‘누가 채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채점하고 발생할 수 있는 편차와 오류를 어떻게 통제하며 그 결과를 얼마나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질문3. 서·논술형과 함께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학교마다 '등급 부풀리기'가 생기지 않나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우려입니다. 학교마다 평가 난이도와 채점 관행이 다르고, 교사가 학생의 성취수준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교에서 이루어진 절대평가 결과가 대입에 활용된다면 학교별 평가 결과의 차이를 줄이고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상대평가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상대평가는 학생이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성취수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가 아니라, 같은 학교·같은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합니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에 충실한 평가보다 학생 간 서열을 가르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변별을 위한 고난도 문항과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대평가는 학교 규모와 지역에 따라 학생이 상위등급을 받을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학교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6학년도 고3에서는 전국 45개 고교에서 1등급 학생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고2와 고1에서도 각각 11개교와 9개교에서 1등급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학교는 강원·경남·경북·인천·전남·전북 등 농산어촌·인구감소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표2> 참조).
■ ‘서·논술형 평가, 오해와 진실을 짚는다’ 3회 연속 기획보도①(2026.09.01.)
70~1200만 명이 보는 논술시험, 채점 시스템으로 공정성 담보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서·논술형 평가 도입과 관련해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언론과 교육현장, 국가교육위원회 공론화 과정에서 제기된 주요 우려와 반박 논거들을 3회에 걸쳐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정한 채점이 가능한가’, ‘고액 사교육과 교육격차를 키우지 않는가’, ‘왜 지금 새로운 평가체제로 전환해야 하는가’ 등 시민과 교육현장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에는 충분히 검토하고 해소해야 할 현실적인 쟁점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우려는 서·논술형 평가라는 평가 방식 자체의 특성과 실제 제도 설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혼동하거나 충분한 사실관계 검토 없이 확산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과 혼란을 키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서·논술형 평가를 둘러싼 대표적 질문들을 사실과 데이터를 토대로 하나씩 검토하고, 무엇이 타당한 우려이며 무엇이 사실과 다른 인식인지를 구분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앞으로의 평가 개편이 입시 불안과 사교육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안착되기 위해 필요한 선결 요건과 보완 과제도 함께 제안하려 합니다.
[연속보도 ①] 채점 공정성에 대한 우려에 답한다.
[연속보도 ②] 서·논술형 평가의 사교육 유발성에 답하다.
[연속보도 ③] 현장 여건과 대입 반영의 가능성에 답하다.
지난 8월 29일과 30일에 국가교육위원회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대입제도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국민 참여 위원회 미래 대입제도 숙의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이슈가 되고 있는 서논술형 수능 개편 관련 공론화가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논술형 수능 도입과 관련해 여러 쟁점이 논의되었는데 채점 공정성과 관련해서도 몇몇 쟁점들이 도출되었습니다. 본 보도 자료에서는 그 중에 제기된 네 가지 질문에 대해 답하면서 채점공정성 담보와 관련된 오해와 진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 질문1. 50만 명분 답안을 단기간에 공정하게 채점하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요?
‘50만 명분의 답안을 어떻게 채점하느냐’는 질문에는 대규모 서·논술형 채점이 한국 사회에서는 없던 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매년 시행하는 중등교사 임용시험 1차 시험이 바로 서·논술형(일부 단답형 포함) 시험입니다.
응시 규모도 상당합니다. 2022학년도 48,784명, 2024학년도 43,426명, 2026학년도 44,695명으로 매년 4만 명대입니다. 문항 유형은 1) 제시문 속 빈칸을 채우는 단답식과 2) 지문을 제시하고 작성 방법에 따라 서술하는 문항, 3) 수학이나 물리처럼 계산해 답을 도출하는 경우 풀이 과정까지 함께 기재하게 하는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1) 채점위원 워크숍과 2) 가채점, 3) 채점 기준의 수정·보완, 4) 채점위원 3인의 독립 채점으로 이어지는 채점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채점위원들은 먼저 워크숍을 통해 문항의 평가 목표와 채점 기준, 모범답안을 숙지한 후 동일한 문항의 동일한 답안을 놓고 가채점을 실시한 뒤 결과를 서로 비교·협의합니다. 평가원은 이 절차의 목적이 채점 기준의 일치도를 높이고 채점위원 간 신뢰도를 확보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채점자 간 편차를 줄이는 작업이 본 채점 이전에 별도의 공식 절차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협의 결과 필요한 경우에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채점 기준을 수정·보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확정된 기준은 채점위원 3인이 모든 답안지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본 채점에서는 하나의 답안에 대하여 3인이 독립적으로 채점한 뒤 평균 점수를 산출됩니다(<표1> 참조).
우리나라가 대규모 서·논술형 채점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다만 규모의 격차는 분명합니다. 임용시험은 매년 4만여 명이 응시하는 반면, 수능은 매년 40만 명이 넘어 임용고시 응시인원의 10배가 넘습니다. 현재와 똑같은 수능 채점 체제에 문항 유형만 서술형으로 바꾼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즉, 문항 몇 개를 바꾸자는 차원이 아닌 국가적 채점 인프라를 새로 구축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응시 인원이 많다고 서·논술형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채점 인력 확보는 국가가 답해야 할 문제이며, 그 규모와 훈련과정, 예산을 국가가 책임지고 잘 설계한다면 충분히 잘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프랑스,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의 예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직 교원을 활용하든 별도의 전문 채점 인력을 양성하든 세세한 방법들은 이미 잘 운영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충분히 배워올 수 있습니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프랑스의 고교 졸업시험 겸 대학진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논술형 문제의 비중이 높은 대규모 국가시험으로, 2025년 기준 약 74만명이 응시했습니다. 이 중 기술‧직업계 바칼로레아를 제외하고 일반 바칼로레아 응시자만 약 38만명으로, 한국의 수능 응시 인원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중국은 대학입학시험인 가오카오 역시 제도 초기인 1953년부터 작문을 활용해왔고, 2026년에는 약 1,290만 명의 학생이 응시했습니다.
채점인원 확보를 위해서, 현직 교사를 국가가 선발‧ 훈련해서 활용(프랑스, 중국, 독일)하는 방법도 있고, 교사와 국가시험위원회가 위촉한 전문 채점자를 활용(핀란드)하거나, 교사들을 인증, 훈련을 통해 시험관으로 활용(IB)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수능 전 영역을 한꺼번에 전면 전환하는 방식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서·논술형과 선다형을 병행하거나 과목별로 서·논술형 비중을 달리하는 설계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 가오카오는 수학에서 ‘해답형(解答题)’ 문항을 통해 풀이·증명·계산 과정을 직접 작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 이러한 해답형 문항은 전체 150점 중 77점으로 약 51%를 차지합니다. 영어에서도 글쓰기형 문항이 전체 150점 중 40점으로 약 27%를 차지합니다. 프랑스 바칼로레아에서는 프랑스어와 철학 과목에서 문학 작품이나 텍스트를 분석하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는 서·논술형 평가, 수학·과학 등의 과목에서는 계산과정과 문제 해결 과정, 자료 분석과 해석 등을 직접 작성하는 평가가 주로 활용되지만, 2026년 시행된 일반 바칼로레아 수학 조기시험에서 20점 중 6점(30%)을 선다형, 나머지 14점은 풀이 과정을 작성하는 문제로 구성하여, 선다형과 풀이과정 작성형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50만 명을 누가 한 번에 채점할 것인가’가 아닙니다. ‘50만 명의 답안을 여러 단계의 검증체계를 통해 어떻게 신뢰도 있게 채점할 것인가’입니다. 채점자 간 신뢰도 확보가 관건입니다. 이는 가능·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준비 기간과 어떤 인프라를 전제로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 질문2. 채점자마다 기준이 달라 점수가 제각각 달라지는 것 아닌가요?
채점자 간 편차는 서·논술형 평가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편차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통제할 수 있느냐입니다. 채점자 간 편차는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채점자 간 편차는 전문가 그룹에서 동의한 일관된 기준에 따라 검증하고, 연수와 감독 등을 통해 관리하여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도 채점위원 워크숍과 가채점 협의로 채점 기준의 일치도를 높이고, 확정된 공통 기준을 3인이 독립적으로 복수채점 하여 채점자 간 차이를 줄이고 있습니다. 즉, 채점자의 개인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채점 전에 기준을 맞추고, 실제 채점 과정에서 복수의 채점자가 동일한 답안을 평가하도록 하는 장치를 두고 있습니다.
해외의 대규모 서·논술형 평가에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중국의 가오카오에서는 주관식 답안을 복수의 채점자가 독립적으로 채점하고, 채점 결과의 차이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제3채점이나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합니다. 핀란드 대학입학시험에서도 학교의 예비채점과 국가시험위원회의 최종채점을 분리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채점자가 개입합니다. 독일의 아비투어에서는 기대답안·평가기준을 활용해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구체화하고 1·2차 채점을 통해 평가를 검증합니다. 프랑스와 IB의 사례는 여기에 채점자 자체를 검증하는 절차까지 더합니다. 프랑스는 채점자별 점수 분포와 평균 등을 비교하는 조화 절차를 통해 특정 채점자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관대한지를 점검합니다. IB는 채점 전 표준화 훈련과 자격검증을 실시하고, 실제 채점 중에도 이미 기준점수가 정해진 답안을 배치하여 채점자가 계속 동일한 기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기준에서 벗어난 채점이 반복되면 해당 채점자에 대한 재훈련이나 채점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합니다. 따라서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은 “모든 채점자가 완전히 똑같이 판단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판단에는 일정한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차이를 발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한다면 최소한 △모든 채점자가 공유하는 공통 루브릭과 기준답안을 마련하고, 점수대별로 기준이 되는 앵커답안을 제시해 채점자가 자신의 판단을 견주어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채점자 사전훈련과 공동채점, 교차채점, 채점자별 점수 분포 및 편향 분석 등으로 편차를 좁히고, △그럼에도 일정 수준 이상 편차가 벌어진 답안은 제3의 전문 채점자가 다시 검토하는 다층 채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채점자의 주관성은 더 이상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 막연한 위험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시스템에 의해 충분히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성질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채점자 간 차이가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다형 평가 역시 출제 오류나 문항의 타당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오류 가능성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입니다.
또한 ‘AI가 채점하면 채점자 편차가 해결된다’고 단순하게 접근해서도 안 됩니다. 교육당국은 서·논술형 수능이 도입되면 채점에 AI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방침이며 이미 여러 교육청과 평가원이 AI 채점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AI 역시 학습 자료와 평가모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한 답안을 적절히 평가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AI를 활용한다면 인간 채점자를 대체하는 최종 판정자가 아니라, 채점자 간 편차나 이상 답안을 탐지하고 재검토 대상을 선별하는 등 채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보조적 질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이 채점하면 주관적이고 AI가 채점하면 객관적이다’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아닙니다. 사람의 판단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차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하고, 이를 어떻게 발견, 검증,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이미 국제적인 대규모 시험들도 다수의 채점과 채점자 간 일치도 점검, 기준에서 벗어난 답안의 재검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채점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채점 관리뿐 아니라 그 기준과 과정 자체가 투명하게 검증될 수 있어야 합니다. 채점의 공정성은 채점자들만 공유하는 기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학생과 교사도 평가요소와 채점 원칙을 사전에 알 수 있어야 하며, 시험 후에는 대표적인 답안과 채점기준을 공개해 결과를 검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결국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은 단순히 ‘누가 채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채점하고 발생할 수 있는 편차와 오류를 어떻게 통제하며 그 결과를 얼마나 투명하게 검증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질문3. 서·논술형과 함께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학교마다 '등급 부풀리기'가 생기지 않나요?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우려입니다. 학교마다 평가 난이도와 채점 관행이 다르고, 교사가 학생의 성취수준을 판단하는 과정에서도 일정한 차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학교에서 이루어진 절대평가 결과가 대입에 활용된다면 학교별 평가 결과의 차이를 줄이고 신뢰도를 확보하는 것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상대평가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상대평가는 학생이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성취수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가 아니라, 같은 학교·같은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를 기준으로 등급을 부여합니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에 충실한 평가보다 학생 간 서열을 가르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변별을 위한 고난도 문항과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상대평가는 학교 규모와 지역에 따라 학생이 상위등급을 받을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합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학교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6학년도 고3에서는 전국 45개 고교에서 1등급 학생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고, 고2와 고1에서도 각각 11개교와 9개교에서 1등급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러한 학교는 강원·경남·경북·인천·전남·전북 등 농산어촌·인구감소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표2> 참조).
9등급 상대평가에서 1등급은 상위 4%에 해당하기 때문에 수강 학생 수가 적은 과목에서는 1등급 학생이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학생의 학업 역량과 관계없이 학교 규모나 지역에 따라 최고등급을 받을 기회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2026년 5월 21일 농산어촌과 소규모 고등학교에서 상대평가로 인해 상위등급이 발생하지 않거나 극소수에 그치는 문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상대평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학생의 실제 성취수준을 평가하는 절대평가로 전환하면서 그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게 만들 것 인가입니다. 절대평가에서 학교별 평가 기준의 차이가 발생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는 절대평가의 본질적인 한계라기보다 공통 기준과 검증 체계를 통해 관리해야 할 제도적 과제입니다.
해외에서도 학교와 교사의 전문적 판단을 인정하면서 이를 공통 기준과 외부 검증으로 보완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대학입학시험은 학교 교사의 예비채점과 국가시험위원회의 전문 채점을 결합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채점을 통해 결과를 검증합니다. IB 역시 공통 평가기준과 예시답안을 바탕으로 교사를 훈련한 뒤 외부 조정 및 검증 절차를 통해 학교별 채점 수준이 공통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지를 확인합니다. 프랑스의 국가시험에서도 채점 결과 조정 절차를 통해 채점자별 결과의 차이를 점검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평가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국가 차원의 공통 성취기준과 평가기준, 성취수준별 기준답안과 예시답안을 마련하고, 교사가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연수와 채점 기준 조정·일치화 절차를 운영해야 합니다. 학교 간 공동 출제·공동채점과 교차검토를 활성화하고, 필요한 경우 외부 전문가의 표본 검증과 학교별 평가 결과에 대한 통계적 점검도 실시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시험을 보게 하거나 동일한 비율로 높은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성취수준을 보인 학생이라면 어느 학교에서 평가받더라도 사회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일관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성적 부풀리기 문제 역시 교사의 도덕성이나 책임만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교사의 평가 전문성을 높이고 그 판단을 공동으로 검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해결해야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성적 부풀리기가 걱정되니 절대평가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상대평가는 이미 학교 규모와 지역에 따라 상위등급 획득 기회를 다르게 만드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학령인구 감소가 심화될수록 이러한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상대평가 폐지는 학생의 상대적 서열이 아니라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성취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중요한 전제입니다. 절대평가에 대한 신뢰는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비율로 높은 등급을 주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실제로 어떤 성취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어느 학교에서 평가하더라도 타당하고 일관되게 판단할 수 있을 때 확보됩니다. 따라서 성적 부풀리기 우려는 절대평가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상대평가 폐지와 함께 교사의 평가 전문성을 지원하고 학교 간 평가의 차이를 검증·보정할 수 있는 공적 평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 질문4. 채점 주관성 문제로 교사에게 채점과 민원 부담이 가중될 것이 아닌가요?
타당한 우려입니다. 서·논술형 평가는 선다형 평가에 비해 학생의 답안을 읽고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여기에 평가 결과에 대한 설명과 이의제기 대응까지 더해질 경우 교사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교사 개인의 헌신과 희생에만 의존한 채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해서는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평가 방식의 변화에 걸맞게 채점과 평가 업무를 지원할 인력과 시스템을 갖추고, 교사가 감당해야 할 업무 부담을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먼저 채점과 피드백에 필요한 시간을 공식적인 교육활동 및 업무시간으로 인정하고 보장해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에서 채점과 피드백은 부수적인 행정업무가 아니라 학생의 학습 수준을 확인하고 다음 학습을 지원하는 핵심적인 교육활동입니다. 이를 정규 업무로 인정하지 않은 채 교사 개인의 헌신과 책임에 맡겨서는 지속 가능한 평가체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채점 업무를 개별 교사에게 내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평가 업무를 공동검증·전문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내 공동 출제와 공동채점, 교사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국가 단위 평가에서는 별도의 전문 채점 인력을 확보해 학교 교사의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특히 대규모 국가시험의 경우 교사가 자신의 학생을 채점하는 구조가 아니라, 독립적인 전문 채점체계를 통해 평가의 공정성과 교사의 업무 부담을 함께 관리해야 합니다. 민원과 이의제기에 대한 대응 역시 개별 교사에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채점 기준과 평가 절차를 사전에 명확히 하고,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와 재검토를 담당할 공식적인 절차와 기관을 마련해야 합니다. 교사가 혼자 학부모와 학생에게 점수의 근거를 설명하고 반복적으로 민원에 대응하는 구조라면 서·논술형 평가의 정착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평가에 대한 설명과 재검토가 필요한 경우 학교·교육청·국가 단위의 지원체계가 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교사의 평가 전문성을 약화시키거나 학교 평가를 국가가 일률적으로 통제하자는 뜻이 아닙니다. 교사가 학생의 사고 과정과 학습 수준을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연수, 협업 환경을 보장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적, 절차적 부담은 국가와 교육청이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사의 전문적 판단은 존중하되, 그 판단에 따르는 모든 부담까지 개인에게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여건이 마련되어야만 서·논술형 평가를 통해 교사가 학생의 사고와 학습 과정을 더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교육적 환경이 안착될 수 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선다형 평가의 필요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확인하는 데 선다형 문항은 여전히 유용하며, 학교 평가에서 어떤 평가방식을 사용할 것인지는 교육목적과 교사의 전문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현재처럼 학교 평가와 국가 단위 평가 모두에서 선다형 평가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구조에서는 학생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넘어 어떻게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확인할 기회가 제한적입니다.
서·논술형 평가의 확대 도입이라는 평가 방식의 변화에 맞춰, 평가 업무의 구조와 지원체계도 함께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채점에 필요한 시간은 공식적인 업무시간으로 보장하고, 공동 출제 및 채점 체계를 구축하며 전문 채점 인력을 확보하고, 민원과 이의제기에 대응할 공적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국가와 교육청이 평가 인프라와 인력을 책임지고, 교사는 충분한 시간과 지원 속에서 교육적 판단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서·논술형 평가의 성공 조건은 교사들이 평가의 교육적 목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인력·지원체계를 국가가 충분히 보장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다음 회차에서 ‘서·논술형 평가가 사교육을 키우는가’ 라는 질문에 답합니다. 대학별 논술고사와의 차이, 사교육 저연령화 우려, 교육격차 문제를 사실과 데이터로 검토할 예정이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신소영, 나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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