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 1. 현행 객관식 평가로도 학력을 충분히 측정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바꿔야 하나요? ▶ 답변. 객관식 평가만으로는 미래 인재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가 있음.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역량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고차원적 사고로 바뀌고 있고, 이러한 미래역량을 측정하고 개발하는 데 서‧논술형 평가의 확대가 필수적임. 미래역량의 개념적 토대는 OECD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역량 연구에 기반합니다. OECD는 1997~2003년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ies)」 프로젝트를 통해 정보화 사회에서 개인이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을 체계화했습니다. 이후 「OECD 교육 2030」을 통해 미래의 복잡한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으로 그 개념을 한층 발전시켰습니다. DeSeCo가 제시한 핵심역량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언어·상징, 지식·정보, 기술 등 여러 도구를 상호작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둘째는 이질적인 집단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관리·해결하는 능력, 셋째는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권리와 책임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며 행동하는 능력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2015년부터 추진된 「OECD 교육 2030」은 이 역량의 개념을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했습니다. 나아가 학습나침반( Learning Compass 2030)을 통해 ① 새로운 가치 창출하기, ② 긴장과 딜레마 조정하기, ③ 책임지기라는 세 가지 핵심 역량을 제시했습니다. 이때 역량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지식·기능·태도·가치를 동원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뜻합니다. 또 학생을 교사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성찰하며 책임 있게 행동하는 ‘학생 행위 주체성(student agency)’을 갖춘 존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역량은 정답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평가가 어렵습니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블룸(Bloom)의 교육목표 분류모형에서 인지적 학습은 단순한 기억과 이해를 넘어 적용, 분석, 종합, 평가, 창안 등으로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선택형 평가는 객관성과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갖지만 분석·종합·평가‧창안와 같은 블룸의 인지 영역 상위 단계의 사고 과정을 측정하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객관식 시험에서는 학생이 문제의 정답을 맞혔더라도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자료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서·논술형 평가는 학생이 자료를 분석·해석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사고 과정 전체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충청북도교육연구정보원과 한국교원대학교 연구(2025)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해 과목별 표준 서·논술형 문항을 개발했습니다. 국어는 논증과 자료 해석, 수학은 개념적 서술과 풀이 과정, 과학은 탐구 과정과 증거 기반 설명을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서·논술형 평가로 바꾸자는 것은 객관식 평가를 없애자는 뜻이 아닙니다. 객관식 평가가 잘 측정할 수 있는 지식과 이해는 객관식으로 평가하되, 객관식만으로는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운 사고·탐구·문제해결·논리적 표현의 역량을 서·논술형 평가로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평가의 질문도 ‘정답을 알고 있는가?’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생각하고,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AI 시대에 걸맞는 교육과 평가의 방향입니다. ■ 질문 2. 왜 지금 갑자기 서·논술형 수능을 도입하려고 하나요? 충분한 검토 없이 밀어 붙이는 것 아닌가요? ▶ 답변. 서‧논술형 평가는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닙니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30년이 넘도록 교육과정을 통해 선택형 중심 평가를 보완하고 서·논술형·수행평가를 확대해 왔으며, 관련 연구와 문항 개발도 꾸준히 축적해 왔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전면 도입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수능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서·논술형 평가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닙니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선택형 일변도의 평가를 지양하고 학생의 사고 과정과 표현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를 확대하는 방향이 제시되었습니다. 이후 제7차, 2007 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며 서술형·논술형·관찰법 등 다양한 평가방법을 조화롭게 활용하도록 권장했고,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서술형·논술형 평가와 수행평가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을 보다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최근 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의 비중을 확대’하도록 했고 2022 개정 교육과정도 ‘수행평가를 내실화하고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의 비중을 확대’를 명시했습니다. 즉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진 정책이라기보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까지 약 30년 동안 여러 차례의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거치면서 지속되어 온 평가의 방향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최근의 정책 방향이 단순 양적 확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충청북도교육연구정보원 및 한국교원대의 연구(최슬기 외, 2025)에서는 우리나라의 서·논술형 평가정책을 크게 1992~2009년의 소극적 접근, 2009~2022년의 적극적 확대, 이후 질적 발전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확대’와 함께‘내실화’가 강조된 것도 문항의 질, 교육과정과 평가의 정합성, 채점의 공정성, 교사의 평가 전문성 등을 함께 갖추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AI의 발전과 함께 이와 관련된 현장 적용 연구도 빠르게 축적되고 있습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초중고교의 평가에서 서․논술형을 구현하겠다는 움직임도 최소 십 수 년이 되었습니다. 2010년 전후 경기도교육청을 중심으로 학교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바람이 불었고 당시 이명박 정부도 서술형․수행평가 확대라는 정책 기조를 펼쳤습니다. 이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적잖은 학교가 내신에서 서․논술형 경험을 축적한 것도 사실입니다. 수능에 서․논술형을 도입하자는 논의도 거의 10년이 되었습니다. 2018년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개편 과정에서 중장기적 과제로 '논․서술형 수능 도입'을 제시했고 2020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관련 가능성을 검토하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경기도교육청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잇따라 수능에 절대평가 및 서·논술형 도입을 정부에 제안했고 12월에는 서울시교육청도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2033학년도 30%, 2037학년도 50%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안까지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서·논술형 수능 논의를 충분한 검토 없이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난 30여 년 동안 교육과정은 학생이 정답을 고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문제해결 과정을 표현하도록 변화해 왔습니다. 다만 입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수능이 여전히 오지선다형에 머물러 있어 학교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비정상적인 현상을 바로잡고 교육과정과 평가를 정상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질문 3. 일본도 실패한 서·논술형 대입, 한국은 다를 수 있나요? ▶ 답변. 일본의 실패는 서·논술형 평가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대규모 공통시험에 필요한 채점 인력과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도입을 추진한 실패였습니다. 한국은 이를 교훈 삼아 학교의 평가 역량과 국가의 공적 채점 인프라를 먼저 구축한 뒤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일본은 2021년부터 시행하는 '대학입학공통테스트(大学入学共通テスト)'에 국어와 수학에 서술형 문항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시행을 1년여 앞둔 2019년 12월 계획을 보류했습니다. 이후 전문가 의견수렴 및 조사 등을 거쳐 드러난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대규모 채점 시스템의 준비 부족이었습니다. 일본의 공통테스트에는 50만 명 이상이 응시하는데 1월 중순 시험 이후 약 2주라는 짧은 기간에 숙련된 채점자를 대규모로 확보해 답안을 처리하는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채점업무 일부를 민간업체에 위탁했으나 실제 채점 인력은 시험 전년도 가을 이후에야 선발·연수를 거쳐 확정되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양질의 채점자 확보가 어려웠고 시행을 앞두고도 구체적인 채점체제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고부담 국가시험의 채점을 민간 업체에 크게 의존한 것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단기간에 대량의 답안을 단기간에 처리하고자 채점업무 일부를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했지만 하필 해당 업체가 참고서 등을 판매하는 기업집단의 계열사라는 점에서 시험정보 유출과 이해충돌 가능성등 공정성 시비가 거세게 일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채점하려 할수록 정작 서술형 평가의 장점이 약해지는 딜레마였습니다. 일본은 학생이 자유롭게 생각을 전개하는 문항 대신, 답안에 일정한 조건을 부여하는 ‘조건부 서술형 문제’를 중심으로 출제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답안을 제한할수록 측정 가능한 사고력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통시험에 서술형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서술형의 교육적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50만 명의 답안을 빠르고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문항과 채점체제를 일관되게 확보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서·논술형 수능을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실제 시행에 앞서 일선 학교에서 서·논술형 수업과 평가가 충분히 정착되도록 교사의 문항 개발·채점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교육과정에 기반한 표준 문항과 채점기준, 전문 채점자 양성과 훈련, 복수채점과 제3채점, 채점자 간 편차 관리와 이의제기·재검토 절차 등 공적 채점 인프라를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나아가 반복적인 시범평가를 통해 대규모 채점의 정확성과 소요 시간·비용까지 검증해 낸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인 평가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질문 4. 내신에만 적용하면 되지 왜 수능까지 적용해야 하나요? 평가가 달라진다고 교육이 달리지나요? ▶ 답변. 지금까지 내신에서는 서·논술형, 수행평가를 확대하면서 정작 대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능은 선택형 중심으로 남아 있어, 고교 수업이 다시 수능 문제풀이로 회귀하는 문제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과 수능이 요구하는 역량을 일치시켜야 교육과정-수업-평가의 변화가 교실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고교 교육은 수능이 무엇을 어떻게 묻느냐에 강한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여러 시·도교육청이 10년 넘게 내신에서 서·논술형 평가 비중을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수능은 여전히 선다형 중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풀이 과정을 쓰도록 가르치면서 막상 수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선택지에서 정답을 찾도록 요구하는 서로 다른 평가체제가 공존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의 불일치가 학교 수업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내신을 위해 서·논술형 평가와 수행평가를 준비하다가도 대입이 가까워질수록 수업의 무게중심이 수능 기출문제와 선다형 문제풀이로 이동하기 쉽습니다. 교육과정과 내신을 아무리 바꾸더라도 최종 관문인 수능이 그대로라면 학교와 학생은 결국 수능이 요구하는 방식에 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을 그대로 둔 채 학교 현장의 변화만을 촉구하는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내신과 수능의 평가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내신에서 평가받은 사고와 표현의 방식이 수능에서도 이어진다면 학생은 '학교 공부' 와 '수능 공부'를 별개의 것으로 준비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게 참여하고 내신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수능 준비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가제도 하나가 바뀐다고 교육이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입평가를 그대로 둔 채 학교 수업만의 혁신을 요구해서는 결코 교육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내신에서 평가하는 방식, 수능에서 묻는 역량을 같은 방향으로 맞춰야 합니다. 수능 서·논술형 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시험 하나를 더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과 대입 준비가 따로 움직여 온 구조를 다시 연결하는 데 있습니다. ■ 질문 5. 어차피 대학 서열과 입시 경쟁은 그대로인데 서·논술형 평가만 도입한다고 달라질까요? ▶ 답변. 서·논술형 평가 하나로 대학 서열과 입시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평가를 그대로 둔 채 시험 형식만 바꾼다면 더 정교한 줄 세우기와 새로운 사교육 경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서·논술형은 절대평가 전환과 대학체제 개편을 함께 추진하는 종합적인 교육개혁의 한 축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최근 국교위의 국민참여위원회 숙의 토론에서도 서·논술형 도입만으로 입시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대학 서열화와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구조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수능이 학생을 줄 세우는 변별의 기능을 고수하는 한 어떤 평가 방식을 얹어도 0.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상황에서는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교육 수요의 뿌리가 대학 서열에 있다는 것은 사교육걱정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다만 서열화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어떤 교육 정책도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서열 구조를 바꾸는 일과 평가 방식을 바꾸는 일은 순서를 정해 하나씩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현시점에서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문항 형식만 객관식에서 서·논술형으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평가의 목적이 여전히 학생 간변별에 머문다면 문항이 무엇이든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늘어납니다. 줄 세우기의 도구만 더 정교하고 값비싸게 바뀌는 셈입니다. 고교학점제가 상대평가와 결합되면서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 경험을 우리는 이미 했습니다. 서·논술형 평가가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사교육걱정은 지속 불가능하고 비교육적인 상대평가 체제에서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평가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수능과 학교 평가의 괴리를 해소해 학교 교육만으로도 평가에 대비할 수 있는 연계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는 절대평가 전환과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종합적인 평가 개혁을 이루는 하나의 축으로 기능해야 합니다. 현재 국교위가 논의 중인 중장기 국가교육 발전계획은 2028년부터 2037년까지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 주요 방향에는 고등교육 체제의 재구조화와 정부 투자 확대, 성장과 역량 중심의 평가 및 대입 패러다임 전환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견고한 서열화는 평가 방식 하나로 풀리지 않겠지만 평가와 대학 체제와 입시 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설계 안에서라면 서·논술형 도입은 그 변화를 떠받치는 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이 10년 설계에 무엇이 담기는지 지켜보고 제대로 담기도록 요구하는 일입니다. ■ 서·논술형 평가가 교육 개혁으로 안착하기 위한 5대 과제 사교육걱정은 세 차례에 걸쳐 서·논술형 평가를 둘러싼 채점의 공정성, 사교육 유발 가능성, 도입의 필요성과 현실적 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서·논술형 평가가 또 하나의 입시 부담으로 귀결되지 않고 학교교육을 강화하는 평가개혁으로 안착하기 위해 다음의 다섯 가지 과제를 제안합니다. ▲ 첫째, 교육과정과 수업, 학교 평가와 수능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의 평가 개편안이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와 대입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정밀한 진단이 먼저입니다. 학교급별로 교육과정이 서·논술형 평가를 어디까지 전제하고 있는지, 교사가 수업과 학교 평가에서 이를 구현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 난점의 대안은 무엇인지 현장 검증을 거쳐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 둘째, 절대평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문항 형식만 바꾸면 서·논술형은 또 하나의 줄 세우기 도구가 됩니다. 평가의 목적이 여전히 학생 간 변별에 머문다면 문항이 무엇이든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팽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학령인구 급감으로 소규모 학교에서는 상위 등급이 아예 산출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절대평가 전환은 서·논술형 도입의 전제 조건입니다. ▲ 셋째, 국가 주도의 공적 평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문항 개발부터 채점 기준, 공동 채점과 피드백 체계를 국가가 마련해야 합니다. 채점 루브릭과 기준 답안, 학생 답안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고, 복수 채점과 교차채점, 채점자 간 편차가 큰 답안의 재채점 절차를 갖춘 공적 채점 체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 넷째, 교사의 평가 업무 과중 해소를 위해 인적자원 및 인프라가 함께 준비되어야 합니다. 채점 부담을 학교에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안착할 수 없습니다. 평가 전문성을 훈련하고 인증하며 그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하는 체계가 필요하고 고부담 국가시험을 담당할 전문 채점인력도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야 합니다. 학교 안에서는 공동 출제와 공동 채점, 교차 채점에 필요한 시간이 업무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교원 확충과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다섯째, 사교육 시장이 움직이기 전에 선제 대응해야 합니다. 새로운 평가제도가 발표되면 사교육 시장은 곧바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정부는 사교육 시장의 업종·업태별 반응을 사전에 예측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예시문항과 평가기준, 실제 학생 답안과 채점 사례를 공공 데이터베이스로 충분히 공개해야 합니다. 새로운 평가에 관한 정보와 좋은 문항, 피드백 자료를 학원이 아니라 학교가 가장 먼저 풍부하게 자원을 갖추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제기되는 채점과 공정성, 현장 준비도에 대한 우려를 직시해야 합니다. 막연한 불안과 인상비평을 넘어 실제 가능성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시민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함께 확인하고 대안을 함께 찾아가는 숙의입니다. 사교육걱정이 세 차례에 걸쳐 사실과 데이터를 하나씩 짚어 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공교육은 학생을 얼마나 촘촘하게 구분할 것인가를 넘어 학생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사고하며,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책임지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서·논술형 평가가 새로운 사교육 경쟁의 불씨가 아니라 공교육을 강화하는 평가개혁의 한 축으로 자리 잡도록, 앞으로도 객관적인 근거를 검증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
■ ‘서·논술형 평가, 오해와 진실을 짚는다’ 3회 연속 기획보도③(2026.09.03.)
서․논술형 수능 도입은 30년을 미뤄온 평가 개혁의 신호탄입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서·논술형 평가 도입과 관련해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언론과 교육현장, 국가교육위원회 공론화 과정에서 제기된 주요 우려와 반박 논거들을 3회에 걸쳐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공정한 채점이 가능한가’, ‘고액 사교육과 교육격차를 키우지 않는가’, ‘왜 지금 새로운 평가체제로 전환해야 하는가’ 등 시민과 교육현장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에는 충분히 검토하고 해소해야 할 현실적인 쟁점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우려는 서·논술형 평가라는 평가 방식 자체의 특성과 실제 제도 설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혼동하거나 충분한 사실관계 검토 없이 확산되면서 불필요한 불안과 혼란을 키울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서·논술형 평가를 둘러싼 대표적 질문들을 사실과 데이터를 토대로 하나씩 검토하고, 무엇이 타당한 우려이며 무엇이 사실과 다른 인식인지를 구분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앞으로의 평가 개편이 입시 불안과 사교육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안착되기 위해 필요한 선결 요건과 보완 과제도 함께 제안하려 합니다.
[연속보도 ①] 채점 공정성에 대한 우려에 답한다.
[연속보도 ②] 서·논술형 평가의 사교육 유발성에 답하다.
[연속보도 ③] 현장 여건과 대입 반영의 가능성에 답하다.
지난 8월 29일과 30일에 국가교육위원회는 “미래 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대입제도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국민 참여 위원회 미래 대입제도 숙의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이슈가 되고 있는 서・논술형 수능 개편 관련 공론화가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논술형 수능 도입과 관련해 여러 쟁점이 논의되었습니다. 지난 1회차 연속 보도에서는 채점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검토했습니다(연속보도①). 2회차 연속보도에서는 서·논술형 평가의 사교육 유발성에 대해 답해보았습니다(연속보도 ②). 마지막인 3회차에서는 ‘서·논술형 평가의 현장 여건과 대입 반영의 가능성’ 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 질문 1. 현행 객관식 평가로도 학력을 충분히 측정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바꿔야 하나요?
▶ 답변. 객관식 평가만으로는 미래 인재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가 있음.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역량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고차원적 사고로 바뀌고 있고, 이러한 미래역량을 측정하고 개발하는 데 서‧논술형 평가의 확대가 필수적임.
미래역량의 개념적 토대는 OECD가 오랫동안 발전시켜 온 역량 연구에 기반합니다. OECD는 1997~2003년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Key Competencies)」 프로젝트를 통해 정보화 사회에서 개인이 갖추어야 할 핵심역량을 체계화했습니다. 이후 「OECD 교육 2030」을 통해 미래의 복잡한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으로 그 개념을 한층 발전시켰습니다.
DeSeCo가 제시한 핵심역량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언어·상징, 지식·정보, 기술 등 여러 도구를 상호작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둘째는 이질적인 집단에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하며 갈등을 관리·해결하는 능력, 셋째는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권리와 책임을 주장하고 실천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을 넘어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며 행동하는 능력을 강조했다는 점입니다.
2015년부터 추진된 「OECD 교육 2030」은 이 역량의 개념을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이라는 개념으로 확장했습니다. 나아가 학습나침반( Learning Compass 2030)을 통해 ① 새로운 가치 창출하기, ② 긴장과 딜레마 조정하기, ③ 책임지기라는 세 가지 핵심 역량을 제시했습니다. 이때 역량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지식·기능·태도·가치를 동원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능력을 뜻합니다. 또 학생을 교사의 지시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성찰하며 책임 있게 행동하는 ‘학생 행위 주체성(student agency)’을 갖춘 존재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역량은 정답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평가가 어렵습니다. 미국의 교육심리학자 블룸(Bloom)의 교육목표 분류모형에서 인지적 학습은 단순한 기억과 이해를 넘어 적용, 분석, 종합, 평가, 창안 등으로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선택형 평가는 객관성과 효율성이라는 장점을 갖지만 분석·종합·평가‧창안와 같은 블룸의 인지 영역 상위 단계의 사고 과정을 측정하는 데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객관식 시험에서는 학생이 문제의 정답을 맞혔더라도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자료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서·논술형 평가는 학생이 자료를 분석·해석하고,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며, 문제를 해결해 가는 사고 과정 전체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충청북도교육연구정보원과 한국교원대학교 연구(2025)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해 과목별 표준 서·논술형 문항을 개발했습니다. 국어는 논증과 자료 해석, 수학은 개념적 서술과 풀이 과정, 과학은 탐구 과정과 증거 기반 설명을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서·논술형 평가로 바꾸자는 것은 객관식 평가를 없애자는 뜻이 아닙니다. 객관식 평가가 잘 측정할 수 있는 지식과 이해는 객관식으로 평가하되, 객관식만으로는 충분히 확인하기 어려운 사고·탐구·문제해결·논리적 표현의 역량을 서·논술형 평가로 보완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평가의 질문도 ‘정답을 알고 있는가?’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생각하고, 설명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AI 시대에 걸맞는 교육과 평가의 방향입니다.
■ 질문 2. 왜 지금 갑자기 서·논술형 수능을 도입하려고 하나요? 충분한 검토 없이 밀어 붙이는 것 아닌가요?
▶ 답변. 서‧논술형 평가는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닙니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30년이 넘도록 교육과정을 통해 선택형 중심 평가를 보완하고 서·논술형·수행평가를 확대해 왔으며, 관련 연구와 문항 개발도 꾸준히 축적해 왔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성급한 전면 도입이 아니라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수능 적용 가능성을 충분히 검증하고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입니다.
서·논술형 평가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닙니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선택형 일변도의 평가를 지양하고 학생의 사고 과정과 표현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를 확대하는 방향이 제시되었습니다. 이후 제7차, 2007 개정 교육과정을 거치며 서술형·논술형·관찰법 등 다양한 평가방법을 조화롭게 활용하도록 권장했고, 2009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서술형·논술형 평가와 수행평가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을 보다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방향은 최근 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 및 수행평가의 비중을 확대’하도록 했고 2022 개정 교육과정도 ‘수행평가를 내실화하고 서술형과 논술형 평가의 비중을 확대’를 명시했습니다. 즉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갑자기 등장했다 사라진 정책이라기보다 1992년 제6차 교육과정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까지 약 30년 동안 여러 차례의 국가 교육과정 개정을 거치면서 지속되어 온 평가의 방향입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최근의 정책 방향이 단순 양적 확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충청북도교육연구정보원 및 한국교원대의 연구(최슬기 외, 2025)에서는 우리나라의 서·논술형 평가정책을 크게 1992~2009년의 소극적 접근, 2009~2022년의 적극적 확대, 이후 질적 발전의 단계로 설명합니다. 특히,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확대’와 함께‘내실화’가 강조된 것도 문항의 질, 교육과정과 평가의 정합성, 채점의 공정성, 교사의 평가 전문성 등을 함께 갖추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AI의 발전과 함께 이와 관련된 현장 적용 연구도 빠르게 축적되고 있습니다.
연구뿐만 아니라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초중고교의 평가에서 서․논술형을 구현하겠다는 움직임도 최소 십 수 년이 되었습니다. 2010년 전후 경기도교육청을 중심으로 학교 서․논술형 평가 확대 바람이 불었고 당시 이명박 정부도 서술형․수행평가 확대라는 정책 기조를 펼쳤습니다. 이 기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적잖은 학교가 내신에서 서․논술형 경험을 축적한 것도 사실입니다.
수능에 서․논술형을 도입하자는 논의도 거의 10년이 되었습니다. 2018년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개편 과정에서 중장기적 과제로 '논․서술형 수능 도입'을 제시했고 2020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관련 가능성을 검토하는 연구보고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2025년에는 경기도교육청과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잇따라 수능에 절대평가 및 서·논술형 도입을 정부에 제안했고 12월에는 서울시교육청도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을 2033학년도 30%, 2037학년도 50% 이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자는 안까지 발표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서·논술형 수능 논의를 충분한 검토 없이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난 30여 년 동안 교육과정은 학생이 정답을 고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문제해결 과정을 표현하도록 변화해 왔습니다. 다만 입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수능이 여전히 오지선다형에 머물러 있어 학교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비정상적인 현상을 바로잡고 교육과정과 평가를 정상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질문 3. 일본도 실패한 서·논술형 대입, 한국은 다를 수 있나요?
▶ 답변. 일본의 실패는 서·논술형 평가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대규모 공통시험에 필요한 채점 인력과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도입을 추진한 실패였습니다. 한국은 이를 교훈 삼아 학교의 평가 역량과 국가의 공적 채점 인프라를 먼저 구축한 뒤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일본은 2021년부터 시행하는 '대학입학공통테스트(大学入学共通テスト)'에 국어와 수학에 서술형 문항을 도입하기로 했지만 시행을 1년여 앞둔 2019년 12월 계획을 보류했습니다. 이후 전문가 의견수렴 및 조사 등을 거쳐 드러난 가장 큰 실패 원인은 대규모 채점 시스템의 준비 부족이었습니다. 일본의 공통테스트에는 50만 명 이상이 응시하는데 1월 중순 시험 이후 약 2주라는 짧은 기간에 숙련된 채점자를 대규모로 확보해 답안을 처리하는데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채점업무 일부를 민간업체에 위탁했으나 실제 채점 인력은 시험 전년도 가을 이후에야 선발·연수를 거쳐 확정되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양질의 채점자 확보가 어려웠고 시행을 앞두고도 구체적인 채점체제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고부담 국가시험의 채점을 민간 업체에 크게 의존한 것도 논란을 키웠습니다. 단기간에 대량의 답안을 단기간에 처리하고자 채점업무 일부를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했지만 하필 해당 업체가 참고서 등을 판매하는 기업집단의 계열사라는 점에서 시험정보 유출과 이해충돌 가능성등 공정성 시비가 거세게 일었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게 채점하려 할수록 정작 서술형 평가의 장점이 약해지는 딜레마였습니다. 일본은 학생이 자유롭게 생각을 전개하는 문항 대신, 답안에 일정한 조건을 부여하는 ‘조건부 서술형 문제’를 중심으로 출제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답안을 제한할수록 측정 가능한 사고력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통시험에 서술형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서술형의 교육적 취지를 살리는 동시에 50만 명의 답안을 빠르고 공정하게 채점할 수 있는 문항과 채점체제를 일관되게 확보하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서·논술형 수능을 안정적으로 안착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실제 시행에 앞서 일선 학교에서 서·논술형 수업과 평가가 충분히 정착되도록 교사의 문항 개발·채점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국가 차원에서는 교육과정에 기반한 표준 문항과 채점기준, 전문 채점자 양성과 훈련, 복수채점과 제3채점, 채점자 간 편차 관리와 이의제기·재검토 절차 등 공적 채점 인프라를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나아가 반복적인 시범평가를 통해 대규모 채점의 정확성과 소요 시간·비용까지 검증해 낸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인 평가 혁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질문 4. 내신에만 적용하면 되지 왜 수능까지 적용해야 하나요? 평가가 달라진다고 교육이 달리지나요?
▶ 답변. 지금까지 내신에서는 서·논술형, 수행평가를 확대하면서 정작 대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수능은 선택형 중심으로 남아 있어, 고교 수업이 다시 수능 문제풀이로 회귀하는 문제가 반복되어 왔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평가하는 것과 수능이 요구하는 역량을 일치시켜야 교육과정-수업-평가의 변화가 교실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고교 교육은 수능이 무엇을 어떻게 묻느냐에 강한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여러 시·도교육청이 10년 넘게 내신에서 서·논술형 평가 비중을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수능은 여전히 선다형 중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풀이 과정을 쓰도록 가르치면서 막상 수능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선택지에서 정답을 찾도록 요구하는 서로 다른 평가체제가 공존해 온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의 불일치가 학교 수업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내신을 위해 서·논술형 평가와 수행평가를 준비하다가도 대입이 가까워질수록 수업의 무게중심이 수능 기출문제와 선다형 문제풀이로 이동하기 쉽습니다. 교육과정과 내신을 아무리 바꾸더라도 최종 관문인 수능이 그대로라면 학교와 학생은 결국 수능이 요구하는 방식에 적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능을 그대로 둔 채 학교 현장의 변화만을 촉구하는 정책이 한계에 부딪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내신과 수능의 평가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우고 내신에서 평가받은 사고와 표현의 방식이 수능에서도 이어진다면 학생은 '학교 공부' 와 '수능 공부'를 별개의 것으로 준비할 필요가 줄어듭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게 참여하고 내신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수능 준비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평가제도 하나가 바뀐다고 교육이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입평가를 그대로 둔 채 학교 수업만의 혁신을 요구해서는 결코 교육을 바꿀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 내신에서 평가하는 방식, 수능에서 묻는 역량을 같은 방향으로 맞춰야 합니다. 수능 서·논술형 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시험 하나를 더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교육과 대입 준비가 따로 움직여 온 구조를 다시 연결하는 데 있습니다.
■ 질문 5. 어차피 대학 서열과 입시 경쟁은 그대로인데 서·논술형 평가만 도입한다고 달라질까요?
▶ 답변. 서·논술형 평가 하나로 대학 서열과 입시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평가를 그대로 둔 채 시험 형식만 바꾼다면 더 정교한 줄 세우기와 새로운 사교육 경쟁을 낳을 수 있습니다. 서·논술형은 절대평가 전환과 대학체제 개편을 함께 추진하는 종합적인 교육개혁의 한 축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최근 국교위의 국민참여위원회 숙의 토론에서도 서·논술형 도입만으로 입시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우며 대학 서열화와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구조를 함께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수능이 학생을 줄 세우는 변별의 기능을 고수하는 한 어떤 평가 방식을 얹어도 0.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상황에서는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사교육 수요의 뿌리가 대학 서열에 있다는 것은 사교육걱정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다만 서열화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어떤 교육 정책도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서열 구조를 바꾸는 일과 평가 방식을 바꾸는 일은 순서를 정해 하나씩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할 문제입니다. 현시점에서 오히려 경계해야 할 것은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문항 형식만 객관식에서 서·논술형으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평가의 목적이 여전히 학생 간변별에 머문다면 문항이 무엇이든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늘어납니다. 줄 세우기의 도구만 더 정교하고 값비싸게 바뀌는 셈입니다. 고교학점제가 상대평가와 결합되면서 제도의 취지가 훼손된 경험을 우리는 이미 했습니다. 서·논술형 평가가 같은 길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이에 사교육걱정은 지속 불가능하고 비교육적인 상대평가 체제에서 절대평가로의 전환을 평가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합니다. 아울러 수능과 학교 평가의 괴리를 해소해 학교 교육만으로도 평가에 대비할 수 있는 연계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 확대는 절대평가 전환과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종합적인 평가 개혁을 이루는 하나의 축으로 기능해야 합니다.
현재 국교위가 논의 중인 중장기 국가교육 발전계획은 2028년부터 2037년까지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중대한 사안입니다. 그 주요 방향에는 고등교육 체제의 재구조화와 정부 투자 확대, 성장과 역량 중심의 평가 및 대입 패러다임 전환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견고한 서열화는 평가 방식 하나로 풀리지 않겠지만 평가와 대학 체제와 입시 구조를 동시에 바꾸는 설계 안에서라면 서·논술형 도입은 그 변화를 떠받치는 축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에 머무는 일이 아니라 이 10년 설계에 무엇이 담기는지 지켜보고 제대로 담기도록 요구하는 일입니다.
■ 서·논술형 평가가 교육 개혁으로 안착하기 위한 5대 과제
사교육걱정은 세 차례에 걸쳐 서·논술형 평가를 둘러싼 채점의 공정성, 사교육 유발 가능성, 도입의 필요성과 현실적 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서·논술형 평가가 또 하나의 입시 부담으로 귀결되지 않고 학교교육을 강화하는 평가개혁으로 안착하기 위해 다음의 다섯 가지 과제를 제안합니다.
▲ 첫째, 교육과정과 수업, 학교 평가와 수능이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의 평가 개편안이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와 대입에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정밀한 진단이 먼저입니다. 학교급별로 교육과정이 서·논술형 평가를 어디까지 전제하고 있는지, 교사가 수업과 학교 평가에서 이를 구현할 때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그 난점의 대안은 무엇인지 현장 검증을 거쳐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 둘째, 절대평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상대평가 체제를 그대로 둔 채 문항 형식만 바꾸면 서·논술형은 또 하나의 줄 세우기 도구가 됩니다. 평가의 목적이 여전히 학생 간 변별에 머문다면 문항이 무엇이든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사교육 수요는 팽창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학령인구 급감으로 소규모 학교에서는 상위 등급이 아예 산출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절대평가 전환은 서·논술형 도입의 전제 조건입니다.
▲ 셋째, 국가 주도의 공적 평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문항 개발부터 채점 기준, 공동 채점과 피드백 체계를 국가가 마련해야 합니다. 채점 루브릭과 기준 답안, 학생 답안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하고, 복수 채점과 교차채점, 채점자 간 편차가 큰 답안의 재채점 절차를 갖춘 공적 채점 체계가 함께 가야 합니다.
▲ 넷째, 교사의 평가 업무 과중 해소를 위해 인적자원 및 인프라가 함께 준비되어야 합니다. 채점 부담을 학교에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안착할 수 없습니다. 평가 전문성을 훈련하고 인증하며 그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하는 체계가 필요하고 고부담 국가시험을 담당할 전문 채점인력도 국가가 책임지고 길러야 합니다. 학교 안에서는 공동 출제와 공동 채점, 교차 채점에 필요한 시간이 업무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교원 확충과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다섯째, 사교육 시장이 움직이기 전에 선제 대응해야 합니다. 새로운 평가제도가 발표되면 사교육 시장은 곧바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냅니다. 정부는 사교육 시장의 업종·업태별 반응을 사전에 예측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예시문항과 평가기준, 실제 학생 답안과 채점 사례를 공공 데이터베이스로 충분히 공개해야 합니다. 새로운 평가에 관한 정보와 좋은 문항, 피드백 자료를 학원이 아니라 학교가 가장 먼저 풍부하게 자원을 갖추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제기되는 채점과 공정성, 현장 준비도에 대한 우려를 직시해야 합니다. 막연한 불안과 인상비평을 넘어 실제 가능성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시민에게 공개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은 찬성이냐 반대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근거를 함께 확인하고 대안을 함께 찾아가는 숙의입니다. 사교육걱정이 세 차례에 걸쳐 사실과 데이터를 하나씩 짚어 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공교육은 학생을 얼마나 촘촘하게 구분할 것인가를 넘어 학생 한 명 한 명이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사고하며,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책임지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논술형 평가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서·논술형 평가가 새로운 사교육 경쟁의 불씨가 아니라 공교육을 강화하는 평가개혁의 한 축으로 자리 잡도록, 앞으로도 객관적인 근거를 검증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신소영, 나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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